소설리스트

회귀해도 다시 매니저!-131화 (131/200)

제131화. 특별하고도 이상한 (1)

“팀장님. 7월 식비 정리 끝났습니다.”

“어, 그래. 고생했다.”

남진수에게 다가가 업무보고를 하자 남진수가 하던 일을 하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리고 이내 나를 보며 말했다.

“요즘 아주 바쁘지?”

“네….”

“네가 벌려놓은 거니까 불만 품지 말고. 그래도 일은 몇 개 안 주잖아.”

“하하….”

요즘 여기저기 일이 많아 바쁘게 돌아다니는 통에 남진수나 이진성 실장도 내 편의를 조금은 봐주는 편이었다.

“지영이는 좀 어때?”

“조금 있다가 한번 갔다 올 생각인데 요즘은 좀 얌전해졌어요.”

“의욕적이고 열정적인 건 알겠는데, 예전에 한창 녹음실에 틀어박힐 때는 어우, 말도 못 걸겠더라.”

남진수가 질색한 표정으로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서지영이 조금, 아니 많이 까탈스러워지긴 했다.

비글이 활동성 좋고 귀여움을 받기도 하지만 그 특유의 활동량 때문에 악마견, 지랄견이라는 별명도 있다.

그리고 서지영의 지금 평가는 후자에 가까웠다.

좋게 말하면 남진수의 말처럼 열정적인 거였고, 나쁘게 말하면 광기였다.

“데드라인이 임박해서 그런 거 같던데요? 곧 앨범에 넣을 곡들이 픽스 되니까요.”

“마감 압박 같은 건가?”

“비슷하지 않을까요?”

“작곡이 잘 안 나와도 본인 손해도 아니고 나쁠 건 없잖아. 리스트도 다 나왔고.”

“그래도 앨범에 본인이 작곡한 곡이 실리면 좋으니까요.”

“뭐, 마지막 앨범이 될 수도 있으니 더 그렇긴 하겠다.”

“그렇긴… 하죠.”

마지막 앨범이라는 관점으로는 해석을 못 했는데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러네. 첫 정규앨범이자 마지막 앨범이 될 수도 있겠구나.

“아, 그리고 아까 밥 먹다가 애들 만났는데 오늘 좀 늦게까지 연습하겠다네?”

“오늘…이요?”

“어.”

오늘은 그래도 1년에 한 번밖에 없는 인생 기념일이라 칼퇴근하고 싶었는데 그른 것 같다.

생일이라고 일찍 보내 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표정이 뭐 할 말이 있는 거 같다?”

“아뇨. 딱히 없습니다.”

남진수가 내 표정을 보고 묻길래 급히 대답했다.

아무래도 표정 관리가 안 됐나 보다.

애들이 회사에서 늦게 나갈 때는 나도 퇴근이 자연스럽게 늦어졌다.

애들은 자기들끼리 알아서 숙소로 간다고 했지만, 관리를 소홀하게 되면 아이돌 극성팬 때문에 더 골치가 아파져서 그렇게 둘 수는 없었다.

애들 처음 만났던 그 날처럼 그런 사람이 없을 거라고 어떻게 확신하나.

“아무튼, 오늘도 좀 고생하고.”

“네.”

남진수가 그렇게 말하고는 휙 하고 사라졌다.

오늘은 꼼짝없이 회사에서 보내다가 집에 들어갈 팔자인가 보다.

힘없이 서지영이 있는 녹음실로 걸음을 옮겼다.

* * *

“또 뭐요.”

“보자마자 으르렁거리지는 말아 줄래?”

내 말에 서지영이 심호흡을 깊게 하더니 낀 안경을 위로 올리더니 나를 바라봤다.

꾀죄죄한 몰골이 눈에 띄었다.

안 감은 듯 푸석푸석해 보이는 머리카락.

눈 밑에 짙게 깔린 다크 서클.

하지만 외관과는 다르게 눈은 빛나고 있었다.

서지영도 자신의 모습을 알고는 있는지 잠깐의 몸단장을 하고는 내게 말했다.

“좋아요. 말해봐요.”

“안 씻은 지 얼마나 됐어?”

“2일? 3일인가?”

곡은 어떻게 되가냐는 질문보다 언제 씻었는지가 더 궁금했다.

차에 탑승할 때는 마스크와 모자로 아예 꽁꽁 싸매고 다녀서 몰랐는데 이렇게 보니 진국이었다.

“좀 씻고 다녀라.”

“어차피 짱 박혀 있으니까 귀찮아요.”

내가 질색한 표정으로 말해도 서지영은 담담하게 받아쳤다.

“팬들이 볼까 봐 겁난다. 누가 널 아이돌이라고 생각하겠냐.”

“안 보이니까 괜찮아요.”

“구성원들은 뭐라고 안 그래?”

“딱히요?”

그래도 서지영 본인이 생각하기에 조금 무안했는지 뜬금없이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계속 앉아 있었더니 조금 찌뿌둥하네.”

“허허….”

서지영의 능청맞음에 너털웃음만 나왔다.

서지영뿐만 아니라 스타즈 애들도 따로 스케줄 없이 회사에 올 때는 전체적으로 편하게 하고 오기는 하지만 서지영만큼은 아니었다.

“곡은?”

“어느 정도 완성했어요.”

내 물음에 서지영이 자신 있게 말했다.

“동현 삼촌이랑 조금만 더 다듬으면 될 거 같아요. 삼촌도 괜찮다고 하셨거든요.”

“그래?”

“네.”

데드라인이 다가오니 드디어 결과물이 나온 것 같았다.

“내가 단독으로 고를 수 있는 건 아니고 내부에서도 회의는 해야 하는 거 알지?”

“알죠. 그래도 일단 제 편 두 명은 있잖아요.”

“한 명은 김동현 작곡가님이고… 하나는 나야?”

“당연한 거 아니에요?”

서지영이 나를 황당한 눈으로 바라보며 손으로 손짓까지 취했다.

그게 당연한 거였구나.

“내가 별로라고 할 수도 있잖아.”

“그건 생각 안 해봤는데.”

“태평하네. 태평해.”

내 말에 서지영이 눈을 찡그리며 나를 바라봤다.

“그래서 별로라고 할 거예요?”

“곡이 정말 별로라고 생각이 든다면.”

“거기서는 ‘내 가수를 믿으니 그럴 일 없어.’라고 해야죠.”

서지영이 혀를 차면서 내게 말했다.

원래 현실은 냉정한 법이다.

“헛바람 넣는 성격은 아니라서.”

“씨, 한번을 안 져.”

내 말에 서지영이 삐진 듯 입술을 삐쭉하고 내밀었다.

“너 몸은 안 굳었어? 애들은 보컬 연습, 춤 연습하느라 바쁜 거 같던데. 넌 계속 여기에만 있잖아. 이제 안무도, 녹음도 들어가잖아.”

“숙소에서 복습하고 있으니까 괜찮아요. 곡만 다 만들어지면 다른 멤버들보다 더 빡세게 할 거니까. 보컬이나 춤은 혜연이나 나라 언니한테는 조금… 아니 꽤 밀리지만 종합적인 능력치로 보면 제가 더 좋거든요?”

“흐음.”

서지영은 팔방미인이다.

본인이 말한 것처럼 보컬은 박혜연한테, 춤은 이나라한테 밀리지만 모든 면에서 이인자의 위치는 된다.

“근데, 오늘 우리 퇴근할 때 픽업 하는 거 오빠죠?”

“언제는 나 아니고 다른 사람이 해줬냐?”

“그냥 궁금해서 물어봤어요.”

“별게 다 궁금하네.”

내 말을 들은 서지영이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더니 내게 말했다.

“가이드까지 녹음된 노래는 언제 나와요?”

“아마도 다음 주? 빠르면 이번 주 안에 나올 거고.”

“작사까지 하려면 너무 빡빡하겠네….”

서지영이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다 인상을 찡그렸다. 아무래도 촉박한 일정을 생각하는 듯했다.

“저번처럼 나중에 녹음 들어갈 수도 있으니까.”

“그래도 제가 초인은 아니라서 두 개 다 신경은 못 써서요. 그전에 끝내고 싶어요.”

서지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작곡 신경 쓰랴, 노래 녹음 신경 쓰랴, 안무 신경 쓰랴.

하나만 챙겨도 힘든데 다 챙기기엔 힘들지 싶다.

“다른 멤버들은 뭐 하고 있어요?”

“오늘 아침에 너희 픽업할 때 보고 처음 보는 거야.”

“그럼 연습실 내려가세요?”

“아마도?”

“알겠습니다~”

“왜?”

“아무것도 아니에요.”

서지영이 아까부터 자꾸 내 행동반경과 시간을 체크하는 게 이상했다.

혹시…?

갑자기 기대감이 차올랐다.

애들이 내 생일을 알고 챙겨주려는 걸까?

생일이라고 이야기한 적은 없었는데.

그래. 내가 얼마나 알뜰살뜰하게 애들 생일을 챙겨줬는데.

“아무튼, 얼른 끝내고 곡 넘겨줘.”

“네, 네.”

“간다.”

“네.”

서지영이 나를 힐끔 보고는 작곡 작업에 몰두했다.

그런 서지영을 보다가 녹음실을 빠져나와 애들이 있는 연습실로 향했다.

* * *

연습실 문을 열 때만 해도 혹시나 해 긴장되었는데, 막상 열고 들어가 보니 애들은 평소와 똑같이 연습하고 있을 뿐이었다.

“잠깐 쉬자!”

“으어.”

내가 들어오자마자 이나라가 손뼉을 치며 분위기를 환기했다.

그러자 애들이 철퍼덕 앉아 숨을 몰아 내쉬었다.

이나라는 지치지도 않는지 내게 성큼성큼 다가와 물었다.

“무슨 일 있어요?”

“무슨 일 있어야 오는 건 아니잖아.”

“그렇긴 하죠.”

내 말에 이나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잘하고 있나 잠깐 들렀어.”

“잘하고 있죠. 노래는 언제 나와요?”

“오기 전에 지영이한테도 이야기했던 건데, 빠르면 이번 주 늦어도 다음 주.”

“와! 정규앨범이래! 와!”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나와 이나라의 대화를 듣고 있던 유미소가 소리를 지르며 기뻐했다.

“오빠! 린이 곧 생일인데 선물 뭐 주실 거예요?”

“엉?”

“다음 주에 생일인데 모르셨어요?”

뜬금없이 박혜연이 린의 생일 이야기를 했다.

“아니, 알고 있었어. 그리고 그때 Y앱 한번 할 거야. 소통방송 느낌으로다가.”

“언제는 안 한 적 있었나.”

내 말에 퉁퉁대는 유미소를 무시하고 린의 선물은 뭘 줄지 고민에 들어갔다.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는데.

그나마 하나?

“참, 그러고 보니 오빠 생일은 언제예요?”

“나?”

“네.”

신희진이 이번에는 내 생일을 물었다.

알고 저러는 건지 아니면 정말 모르는 건지 모르겠다.

“갑자기 그건 왜?”

“궁금해서요.”

“오늘인데?”

“네?”

내 말에 모두가 벙찐 얼굴로 변했다.

몰랐구나.

그럼 괜한 기대감만 품고 있었네.

“오늘이라고.”

“정말요?”

“어.”

담담한 내 말에 연습실에 있던 스타즈 멤버 모두가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러다가 박혜연이 내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와! 생일 축하드려요!”

“그래…. 고맙다.”

“미리 알려주셨으면 뭐라도 준비했을 텐데.”

“그러게.”

근처에 있던 이나라가 미안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그리고 옆에서 신희진도 이나라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지금 몰랐다고 섭섭해하는 거 아니죠? 알려주신 적 없었잖아요.”

“물론이지.”

이어 유미소의 말에 조금 흔들렸지만, 최대한 담담하게 대꾸했다.

“삐졋써?”

“백 프로. 삐짐.”

유코와 린의 말에 움찔했지만 태연하게 대했다.

“아니라니까. 괜찮아.”

“내일 케이크라도 하나 사드릴까요?”

“됐거든?”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는 신희진을 보니 오히려 애처럼 투덜댔다.

더 있다가는 분위기가 이상해질 것 같아 나갈 생각으로 애들에게 말했다.

“아무튼, 잘하고 있는 거 같으니 가볼게.”

“지금 가면 완전 삐돌이인데.”

“삐돌이!”

“아니야!”

뒤에서 들린 말을 무시하고 연습실을 빠져나왔다.

그건 그렇고 린의 선물이라.

가능하려나.

핸드폰을 들고 스타즈 스타일 리스트 김수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깐의 신호음이 가자 핸드폰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 여보세요?

“어, 수연 누나. 통화 가능해?”

- 응. 왜?

“다른 게 아니라 저번에 화랑 시사회 때 린이가 입고 갔던 치파오 말인데…. 구할 수 있을까?”

- 어디 또 시사회 같은 거 있어? 같은 옷 입기에는 그렇잖아?

“아니, 그냥 옷 자체를.”

- 왜?

“린이가 곧 생일인데 마땅히 줄 건 없고 그 옷은 좀 마음에 들어 하는 거 같아서.”

- 지극 정성이야. 아주?

“담당이잖아.”

- 한번 알아볼게~

“알았어. 고마워. 내가 도와줄 거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고.”

- 그래~

린의 선물은 이게 안 되면 다른 것도 생각해 봐야겠다.

사무실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 * *

사무실에서 업무 처리할 건 다 처리하고 하염없이 커뮤니티 반응을 보며 기다리고 있던 이때.

지잉.

이나라에게서 전화가 왔다.

- 오빠 연습 끝났어요.

“어, 차로 갈게.”

- 네.

이제 퇴근인가.

사무실에서 업무 보며 곰곰이 오늘 있었던 일들을 정리해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애들은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오늘 애들이 나를 대한 태도는 내가 그런 생각을 품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렇다면 이대로 넘어가지는 않을 거고, 숙소 갈 때 뭔가가 있는 건가?

주차장으로 내려가 스타즈 밴으로 향했다.

애들은 나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다.

아무래도 연습실이 주차장이랑 가까워 보통은 애들이 차 앞에서 기다리는 편이었다.

“문 열어주세요. 더워요.”

“알았어. 잠시만.”

삑.

잠금을 풀자 애들이 우르르 차 안으로 들어갔다.

나도 운전석으로 향했다.

차에 타고 시동을 걸며 애들에게 한마디 했다.

“내가 또 이런 건 기가 막히게 맡지.”

“뭐가요?”

“땀 냄새가 나나?”

이나라가 의아한 말투로 내게 물었고 유미소는 킁킁대며 냄새를 맡았다.

“에이, 다 알고 있어. 오늘 많이 티 났거든.”

“네?”

내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애들을 보니 내가 무언가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연기 같기도 했지만, 애들이 이렇게 능구렁이처럼 모른척할 수 있는 애들이 아니었다.

김칫국 한 사발로 먹고 체한 기분이었다.

“아닌…가?”

쥐구멍에 숨고 싶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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