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도 다시 매니저!-130화 (130/200)

제130화. 물결은 흘러가고 (4)

“잠깐잠깐잠깐.”

서지영이 손을 들고 다급하게 말했다.

“중요한 말을 은근슬쩍 집어넣으셨네.”

“은근슬쩍 안 넣었거든?”

서지영의 말에 움찔했다가 급히 말했다.

너무 경직된 분위기에서 말하는 건 아니다 싶어 홧김에 넣은 발표였다.

“은근슬쩍 맞거든요?”

“오빠 작곡도 할 줄 알아요?”

유미소가 나를 흘겨보며 말했다. 그러자 이어서 박혜연이 재차 내게 물었다.

“아니, 내가 작곡을 해서 노래 만들어 주는 건 아니고 노래 트랙 리스트 중에서 너희들에게 어울릴 만한 트랙 고르고 방향성 제시하는 역할.”

“흐음.”

내 말에 스타즈 멤버 전원이 생각에 잠겼다.

충분히 당황스럽고 그럴 만도 했다.

“사실 이건 섣불리 너희들에게 이야기해줄 문제는 아니어서 확정된 다음에 말하려고 했거든. 너희들이 내가 이렇게 키를 잡는 게 꺼림칙하다면 회사에 이야기해 볼게. 바꿔 달라고.”

나도 내가 억지로 애들의 정규앨범에 관여할 생각은 없었다.

내 말에 이나라가 잠깐 고민하는 듯싶더니 내게 말했다.

“아뇨, 아뇨. 근데 잠깐 저희끼리 이야기 좀 해야 할 거 같은데, 잠깐 자리 좀 비켜주실 수 있으세요?”

“그래.”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 바깥으로 나왔다.

안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무척이나 궁금했지만, 잠시 후면 결과를 알게 되겠지.

면접 보기 전 결과 발표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기다렸다.

생각보다 많이 떨렸다.

이게 뭐라고.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데 이나라가 문을 열고 나를 불렀다.

“들어오세요.”

이나라의 말에 회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 들어가 보니 애들이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반겼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정인수 대표와 이야기할 때보다도 지금이 더 긴장됐다.

더욱이 애들은 내 맞은편에 주르륵 앉아 있어서 부담감이 더 다가오는 것 같았다.

“결과는 어떻게 됐어?”

“음….”

이나라가 뜸을 들였다.

나는 그 순간 직감했다. 그리고 내려놓았다.

“괜찮아. 말해봐.”

“애들이랑 얘기 좀 했는데요, 타이틀 곡 때랑은 조금 다른 것 같아서요. 프로듀싱이라는 게 쉬운 게 아니기도 하고요.”

“응. 그래, 무슨 말 할지 알았어.”

어쩐지 뭔가 술술 풀린다더니 가장 큰 벽은 앨범을 가지고 활동할 스타즈 애들이었다.

애들이 나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하면 어쩔 수가 없었다.

내가 정인수 대표만큼의 뭔가를 보여준 건 아니었으니까. 애들의 선택도 이해가 갔다.

“죄송해요.”

“아냐, 미안할 게 뭐 있어.”

말을 하면서도 평소의 웃음이 아닌 쓴웃음이 나왔다.

나도 사람인지라 애들의 입장이 이해가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섭섭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그럼 오늘 더 이야기할 건 없겠네. 여기서 끝. 나중에 또 정해지면 알려줄게.”

“네.”

정규앨범을 어떻게 기획하고, 어떤 컨셉을 하고, 어떤 노래를 골라줄까 고민하던 게 비눗방울처럼 사라져 버렸다.

회사에서 내가 맡게 되었다고 그냥 진행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애들에게 그렇게 하기가 싫었다. 그렇게 해서 과정도, 결과도 좋을 것 같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씁쓸한 마음을 감추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찰나에 유미소가 말했다.

“잠깐!”

“왜?”

“뭔가 저희에게 어필하고 싶은 말이나 그런 건 없으세요? 그냥 이대로 끝?”

“너희도 많은 생각을 했을 거고, 내가 말한다 해도 입바른 소리밖에 더 되겠어? 어쩔 수 없는 거지.”

내 말에 애들의 무표정한 표정이 살짝 깨졌다.

“미안할 것도 없는 일이야. 너희에게도 중요한 선택이니까.”

내 말에 일곱 명이 서로 눈빛 교환을 하더니 이내 이나라가 대표로 내게 말했다.

“손바닥 위로해서 줘봐요.”

“응? 왜?”

“아, 얼른요.”

손바닥을 위로 펴서 애들에게로 향하자 이나라가 내 팔을 잡더니 주먹으로 쿵쿵 두 번 쳤다.

“합격!”

“와!”

“뭐…야?”

“스타즈의 프로듀서 테스트에 합격하셨습니다! 짝짝짝.”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뇌에서 잠깐의 딜레이가 걸렸다.

“테스트한 거야?”

“테스트할 생각 없었는데 오빠가 너무 진지했잖아요. 우리끼리 회의했을 때, 이전 타이틀곡도 선정한 게 오빠였으니까 믿고 따라가 보자는 게 중론이었어요. 딱히 반대는 없었구요.”

내 말에 이나라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이 이상한 분위기를 잡은 건?”

“그건 오빠 잘못이죠.”

“내가? 뭘?”

내 잘못이라며 신희진이 나를 나무랐다.

내가 이런 분위기를 잡았다니 뭘 했단 말인가.

“오빠가 우리 모아놓고 먼저 장난쳤잖아요. 그래서 우리도 갚아주자고 해서 그런 거였어요.”

“하….”

진지하게 다른 사람들에게 무어라 말해야 할지 고민했던 좀 전의 내가 떠올라 허탈했다.

“원래는 그러다가 하하 호호 웃으면서 ‘뻥이야.’ 외칠 타이밍 재고 있었는데 타이밍이 안 나와서 미소 언니가 급하게 잡은 거예요.”

“아….”

서지영이 키득키득 웃으며 말하자 더욱더 맥이 빠졌다.

“근데 하는 말이 조금 감동이었어요?”

신희진의 말에 스타즈 전원 고개를 끄덕였다.

“마저.”

“응. 응. 믿을 수. 있는 말.”

가만히 있던 유코와 린이 신희진의 말에 동의하며 내게 말했다.

이런 복잡한 이야기를 할 때는 대체로 유코와 린은 추임새만 넣는 편이었다.

본인들의 의견을 확실하게 피력하기에는 한국어가 서툴렀기에 멤버들에게 먼저 의견을 전달했고, 보통은 지금처럼 이나라가 종합해서 대표로 말했다.

“그냥 좋아요! 좋아요! 하는 것보다 오빠가 우리를 얼마만큼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있어서 더 좋았어요.”

“…….”

이나라의 말에 무어라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내가 뭐라 했는지 지금은 기억도 안 난다.

애들한테 뭐라고 말했었지?

“근데 지금까지는 회사에서 곡을 정해줬잖아요. 이번에 그러면 오빠가 다 골라주시는 거예요?”

“아니, 너희 의견도 듣고 싶어서 전체 트랙리스트 가져왔어.”

이나라의 말에 정신을 붙잡고 말했다.

“와…”.

“그럼 일단 가져온 거 들어볼래? 나도 한번 듣긴 했는데 아직 곡을 고르진 않았어.”

“네!”

회의실에 있는 기기에 USB를 연결해 노래를 틀기 시작했다.

* * *

노래를 다 듣고 나니 한 시간이 훌쩍 넘어가 버렸다.

“당장 어떤 게 좋고 뭐가 어울리는지 이야기하기는 그러니까, 전체적으로 종합해서 본인들이 끌리는 노래를 정리해서 내게 알려줘.”

“네.”

이나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리고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나갈 준비를 했다.

“지영이는 잠깐 남고.”

“저요? 왜요?”

밖으로 나가려던 서지영을 내가 불러 세웠다.

“나한테 보고해야 할 거 있잖아.”

“아…?”

내 말에 서지영이 움찔했다.

“지영아, 우리 연습실로 가 있을게. 이야기 끝나면 거기로 와!”

“알았어!”

앞에서 먼저 나가려던 박혜연이 서지영을 보고 연습실로 오라고 하곤 나갔다.

“제가 뭘 보고해야 하는데요?”

“어땠어? 잘 갔다 왔어?”

“뭘요? 가족 여행이요?”

서지영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밖에 더 있어?”

“네. 즐거웠어요.”

내게 말하는 서지영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도 행복해 보였다.

가족들과 잘 보내고 온 것 같았다.

그 좋은 에너지를 양분 삼았으면 좋겠다.

“그럼 다행이고.”

“할 말은 끝? 그럼 저 가도 돼요?”

서지영이 다시 몸을 일으켜 나갈 준비를 하길래 제지했다.

그것도 그거였지만 묻고 싶은 게 있었다.

“아니, 그것도 그거지만 너한테는 다른 것도 듣고 싶어서.”

“뭘요?”

“노래 전체적으로 들었으니 알 거 아냐. 뭔가 감은 와?”

내가 궁금했던 건 컨셉에 맞춰 곡을 만들 수 있냐는 것.

“아직 정리 중이긴 한데… 조금은? 기대하지는 마요.”

“당연하지.”

“와, 진짜….”

내 말에 서지영이 인상을 팍 찡그렸다.

나도 정말로 큰 기대를 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컨셉 말해주셨던 거 오빠 의견이었어요?”

“어.”

“요정이 뭐예요. 요정이.”

서지영이 말하면서도 어이가 없는지 헛웃음을 지었다.

“왜, 좋기만 하고만.”

“설마 뒤에 나비 날개 달아주고 그런 거 꾸미는 거 아니겠죠?”

“어, 그래 볼까?”

내 말에 서지영이 기겁하더니 머리를 세차게 좌우로 저었다.

그럴 생각은 없으니 안심하고.

“그러면 진짜 바로 파업. 일 안 할 거예요. 멤버들도 다 단체 파업할 듯.”

“설마 지금이 어느 땐데 그러겠냐?”

“불안 불안한데….”

서지영이 나를 째려봤다.

“내가 한다고 해도 반대할 사람이 더 많을 테니 걱정 안 해도 될 거야.”

“암튼, 더 없죠?”

“어.”

내 말에 서지영이 냉큼 일어섰다.

“가볼게요.”

“그래.”

일어서서 서지영이 회의실 문고리를 잡더니 나가지 않고 멈칫했다.

무슨 일이 있나 싶어 바라보자 그때 서지영이 말했다.

“아, 그리고 오…빠가 프로듀싱 하는 거. 만장일치로 찬성이었어요.”

회의실에서 나가면서 말한 거라 서지영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말투에서 쑥스러워하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만장일치로 찬성했다는 그 말에 고양감이 차올라 혼자 키득키득 웃었다.

그러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홀로 남아 있는 회의실에서 혼자 키득키득거리고 있는 나를 보면 미친놈이라고 생각하겠지.

급히 회의실을 정리하고 빠져나왔다.

* * *

애들에게 트랙 리스트를 들려주고 난 후 꽤 시일이 지나 8월이 되었다.

정규 앨범 발매까지 약 3주 남은 이 시기.

그간의 일은 생각보다 별거 없었던 거 같은데도 많았다.

먼저 스타즈 관련해서 큰 회의가 있었다.

“스타즈 정규앨범 컴백 시기는 9월 3일로 잡겠습니다.”

“그리고 올해 상을 받을 확률이 높으므로 공식적인 해체 시기는 데뷔 일이 아닌, 1월이나 2월로 시기 조율 중이며 콘서트 대관 관련해서 1월로 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스타즈 그룹을 해체할지 연장을 할지는 아직 조율 중입니다.”

“기존 앞선 유닛 그룹들과는 다르게 너무나도 성장세가 좋아 의견이 분분합니다.”

또 애들에게서 트랙 리스트를 건네받았으며.

“저희 멤버들 의견이 담긴 파일이에요.”

“파일로 만들었어?”

“대화한 양이 많아서 파일로 정리했어요.”

“알았어.”

민서희 팀장과는 갑론을박을 펼치기도 했다.

“이 트랙리스트. 확실해요?”

“네, 애들 의견 종합적으로 받아보고 여러 가지 시뮬레이션 돌려본 결과 이 리스트가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좋아요.”

서지영의 히스테리도 겪었고.

“아!! 이게 다 오빠 때문이잖아요!!”

“내가 뭘.”

“사탕발림에 넘어가지만 않았어도 즐겁게 작곡했을 텐데. 괜히 앨범에 넣어준다고 바람 넣어서는!!”

“그게 어떻게 바람이야.”

“아, 몰라요 몰라. 나가요! 방해되니까.”

서지영의 히스테리는 지금도 진행형이었다.

또 다른 건 안재성의 준비도 착착 되고 있다는 점이다.

“준비는 잘 돼 가?”

“네.”

“배역 하나 따내려고 고생 많이 한다. 너도.”

“이 정도는 해야죠.”

“형사님들이랑 많이 친해 졌다며?”

“네. 하루가 멀다고 경찰서에서 죽치고 앉아 있으니까요.”

안재성의 지인 중 형사가 있었다. 안재성은 공무 집행에 방해가 안 되는 선에서 배역에 관한 연구를 하는 중이었다.

“이제 오디션 공고 날짜까지 일주일 남았네.”

“스타즈 애들 앨범 준비하느라 바쁘신데 그날 같이 갈 수는 있겠어요?”

“바빠도 그날은 비워서 같이 가야지.”

“좋네요.”

안재성도 날카롭게 벼려지고 있었다.

몸이 두 개, 세 개 아니 열 개였으면 좋을 정도로 바쁘게 보내고 있었다.

“현진아. 7월 식비 계산 끝냈지?”

“아, 잠시만요. 정리 덜 끝나서요. 정리해서 드릴게요.”

“그거 오늘까지 해줘야 된다고 말했잖아.”

본연의 업무도 같이 하느라 정말 죽을 맛이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바쁜 와중이었지만 오늘 하루만큼은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왜냐하면, 오늘은 내게 있어서 특별한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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