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9화. 물결은 흘러가고 (3)
임진석 본부장을 만나고 2일이 지난 오늘, 총 내부 회의에서 스타즈의 정규앨범에 관해 내 모습이 공개적으로 드러났다.
“굳이 이런 리스크를 감수하셔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왜 리스크라고 생각하나?”
“당연히….”
정인수 대표의 말과 함께 전략 기획팀에서 반발이 일어났는데, 대표로 이야기하는 게 지금 백한성 팀장이었다.
그리고 백한성 팀장은 임진석 본부장의 라인이었다.
임진석 본부장과 이야기는 잘 끝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불만인 것 같다.
“내가 성공할지 김현진 매니저가 성공할지 아무도 몰라. 근데 지금까지 김현진 매니저가 맡아서 실패한 게 있나?”
“그건….”
정인수 대표가 나를 눈짓으로 잠깐 살피고 백한성 팀장에게 말했다.
백한성 팀장은 정인수 대표의 말에 입이 꽉 다물어 졌다.
“타이틀곡도 뭐가 뜰지 모르는데도 일단 밀어, 그걸 기회 삼아 띄운 것도 김현진. 뭐가 문제지?”
“그걸로 검증이 다 된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지금 검증을 해보려고 하는 거 아닌가?”
“리스크가 너무 큽니다.”
마치 창과 방패처럼 백한성 팀장이 찌르고, 정인수 대표가 방패로 막는 공방이 오갔다.
내가 볼 때는 창으로 찔리기보다는 방패로 때리고 있는 것 같았다.
“원래 아이돌 사업은 다 리스크야. 그리고 내가 이제 어비스 애들 때문에 아주 바빠. 선택과 집중을 할 때야.”
“그건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기획팀의 백한성 팀장이 정인수 대표에게 박살 나고 있었다.
“책임도 내가 진다고 말하지 않았나.”
“그걸 떠나서 대외적으로 스타즈 멤버들의 소속 기획사들이 알면 가만있지는 않을 텐데요.”
“그것도 법무팀이랑 이야기를 해봤는데 문제가 없더라고.”
“네?”
지속한 설전에서 나는 정말 묘한 느낌을 받았다.
정인수 대표가 나를 이렇게까지 밀어줄 이유가 있을까.
항상 드는 생각이었다.
나야 고맙긴 했지만.
“계약서의 조항에는 ‘정인수 프로듀서가 기획, 프로듀싱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라고 적혀 있지. 계약서상으로도 문제는 없어.”
“그건….”
저건 아무리 생각해도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같은 해석이다.
“그럼 더는 문제는 없는 건가?”
“이진성 실장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백한성 팀장이 정인수 대표는 설득하기 힘들었다고 판단했는지 화살을 다른 사람에게로 돌렸다.
“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고작 1년 차인데요?”
“1년 차라고 하기엔 보여준 게 너무 많습니다.”
“끙.”
이진성 실장의 대답에 백한성 팀장의 말문이 콱 막혔다.
“담당 매니지팀도 동의하는 거 같은데. 이 안건은 이제 여기까지 하지.”
“…….”
정인수 대표가 고개를 끄덕인 뒤에 장내를 정리했다.
반론은 없었다.
“그럼 잘 부탁하지. 김현진 매니저.”
“네.”
“더 할 말 있나?”
정인수 대표가 나를 보며 할 말이 있으면 해보라는 듯 말했다.
“많은 분의 걱정.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인수 대표님이 저보고 맡아보라고 하신 게 단순하게 말한 게 아니란 걸 이번에 다시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좋아. 정규앨범 안건은 이걸로 끝내지.’
정인수 대표가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나서 먼저 회의실을 나갔다.
회의실에 있던 인원들도 나를 한 번씩 보고는 자리를 정리하고 회의실을 나갔다.
결국, 마지막에는 우리 4팀 매니저들만 남게 되었는데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회의실에서 나와 4팀 매니지먼트실로 향하면서도 나와 이진성 실장, 그리고 남진수 셋은 조용했다.
그렇게 셋이 사무실로 돌아 왔을 때 이진성 실장이 내게 말을 걸었다.
“자신 있어?”
“자신 없었으면 하겠다고 말하지도 않았겠죠.”
“키야, 진짜 미친놈이 따로 없다.”
이진성 실장이 실소하며 말했다.
“저렇게 뛰어들 수 있다는 게 부럽네요.”
남진수도 우리의 대화에 끼어들어 한마디 했다.
“부럽긴 해.”
“부러운… 일인가요?”
이진성 실장도 남진수의 말에 동조했다.
이게 부러워할 만한 일인가 싶었는데 그런 것도 같다.
내 대답을 들은 이진성 실장의 입꼬리가 올라가더니 남진수에게 말했다.
“야, 너라면 기회가 오면 안 할 거냐?”
“해야죠.”
남진수의 대답에 이진성 실장이 웃음을 흘렸다.
“그치? 나도 똑같아. 나도 첫 입사 했을 때 눈 딱 감고 쟤처럼 해볼걸.”
“현진이야 여러 가지 잘 맞아 떨어진 거겠죠, 뭐. 정 대표님 스타일은 능력 중시니까요. 조금 이례적이긴 한데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네요. 근데 실장님 전 회사였으면 턱도 없었을 시도겠죠.”
“전 회사? 보통의 엔터 기획사는 이런 짓 못 할걸? 여기가 이상한 거야. 아무튼, 잘해봐라. 현진아. 난 응원한다. 진수는 모르겠다만.”
“저도 당연히 응원하죠. 부럽고 질투가 나긴 해도 어쨌건 기회를 잡고 키운 건 쟤니까요.”
“그래. 그게 정신 건강에 좋지. 그리고 평범한 사람이면 쟤처럼 하라고 해도 못 해.”
씁쓸하게 말하는 이진성 실장과 남진수를 보며 아이러니함을 느꼈다.
기회는 기다리지 않는다는 말.
그리고 내가 그 기회를 손쉽게 잡아 치고 올라간 점에 대한 아이러니함.
“아니에요. 많이들 도와주세요.”
내 상황에 항상 감사해하며 생각 또 생각하고 나아가자.
“그래? 우리 도움이 필요하겠냐만… 뭐 도움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고.”
“네. 감사합니다.”
훈훈하게 서로 간의 대화가 마무리되려는 찰나에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화 다 끝나셨으면 현진 씨 좀 데려가도 되죠?”
뒤를 돌아보니 싱그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민서희 팀장이 서 있었다.
“현진 씨. 우리 이야기 좀 할까요?”
* * *
“어때요? 기분은?”
민서희 팀장이 마주 보며 내게 말했다.
“얼떨떨하네요.”
“부담은 안 되고요?”
내 말에 손으로 입을 가리고 쿡 하고 웃더니 다시 내게 말했다.
“부담가질 거였으면 시작도 안 했습니다.”
“좋네요. 예전과는 좀 다른 상황이라 부담감에 압사할 줄 알았는데.”
부담감? 그게 뭐지? 먹는 건가? 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싶었으나 실상은 부담감이 없을 수가 없었다.
지금도 민서희 팀장과 말하면서 가슴이 쿵쿵 뛰는 중이었다.
“사실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있긴 있습니다. 그렇지만 딱 적당한 긴장감 정도네요.”
“그래요? 꽤 강심장이네.”
“계기가 있었거든요.”
“흐응.”
민서희 팀장이 내 말에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
“어쨌든, 따로 부른 건 다른 게 아니에요.”
“네.”
말을 하고는 탁자 위에 USB를 꺼냈다.
“자요. A&R팀에서 트랙리스트 뽑았으니까 검토해줘요.”
“전적으로 제가 다 선택해서 검토하는 겁니까?”
“글쎄요. 어떻게 메이킹 하실지 몰라 뭐라 말씀을 못 드리겠네요. 프로듀서마다 각자 스타일이 달라서.”
민서희 팀장의 말이 맞다.
다 같을 수야 없겠지.
“애들이랑 같이 회의 하는 건요?”
“컨트롤 잘할 자신 있으시면 하시고, 못하겠으면 안 하는 걸 추천해 드리네요.”
내 말에 민서희 팀장이 차근차근 대답했다.
“이유가 뭐죠?”
“아이돌 사업은 어쨌든 영리적인 목적으로 만드는 상품이에요. 가수로서의 길도 걷지만, 상업성이 무엇보다도 짙죠. 그리고 더해서 아이돌 친구들은 데뷔가 어린 나이에 해서 앨범에 관여하게 되면 상업적인 마인드보다는 자기가 좋아하는 거 하겠다는 마인드가 크거든요.”
“음.”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것 같다.
영화에서도 상업과 예술은 다르다.
아이돌도 똑같은 거다.
“물론 어비스 애들은 그걸 다 씹어 먹고 지금 괴물같이 성장하고 있지만요.”
“어비스요?”
“네.”
정인수 대표가 관여했던 어비스.
그래서 대세 흐름이 공장에서 찍어내듯 기획사에서 찍어낸 아이돌이 아닌, 색깔이 있는 아이돌로 방향이 틀어진 건가.
“초기에는 정인수 대표님이랑 제가 관여를 많이 했는데 좀 지나고 멤버들이랑 대화하면서 색깔이 조금 바뀌었거든요. 결과적으론 그게 더 좋았고요.”
“그럼 저도 애들이랑 이야기해 보면서 잡아보겠습니다.”
“좋을 대로요.”
민서희 팀장이 어깨를 으쓱하고는 양손을 펼쳐 보이면서 말했다.
“저를 믿으시나요?”
“믿고 가야죠. 안 믿고 간다면 될 것도 안 돼요. 그리고 망해도 책임은 제가 안 지니까요.”
“마지막 말은 조금 무섭네요.”
“사실이 제일 무서운 법이죠.”
민서희 팀장이 조금 섬뜩한 말을 하니 살짝 서늘해졌다.
그래도 괜찮았다.
자신이 없는 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망할 자신이.
“민 팀장님 추천 리스트는 있나요? 참고만 하겠습니다.”
“개인적으로 4번, 12번, 16번, 28번 이렇게 4트랙이요.”
4, 12, 16, 28.
민서희 팀장과 이야기가 끝난 후 확인해볼 생각으로 속으로 곱씹었다.
“앨범 컨셉을 짓는 타이틀 말씀하시는 거겠죠?”
“당연하죠.”
민서희 팀장이 당연한 걸 묻냐는 듯 나무라는 어조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잘해봐요. 도움 필요하시면 말하시고요.”
“네. 감사합니다.”
내 인사가 끝나자 민서희 팀장이 나를 지긋이 바라봤다.
이야기가 끝난 게 아니었나.
“더 하실 이야기라도?”
“아뇨. 없어요.”
없다고 하면서 계속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불편했다.
“흠, 흠. 그럼 노래 확인하러 일어나도 될까요?”
“네, 그러세요.”
“확인하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민서희 팀장에게 이야기하고 회의실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나오면서도 민서희 팀장의 시선이 나를 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느낌을 받은 건 뒤통수가 너무 따가웠기 때문이었다.
* * *
“무슨 일 있어요?”
“여기 올 때마다 일 생겼는데.”
“왜요? 무슨 일인데요?”
애들을 정규앨범 관련해서 이야기할 게 있어서 회의실로 불러 모았는데, 이 장소에는 애들에게는 안 좋은 추억만 가득한 장소였다.
그래서 그런지 애들이 걱정 어린 투로 내게 말했다.
그런 애들을 보며 갑자기 장난을 치고 싶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음…. 그게.”
잠깐의 머뭇거림을 섞어주고.
애들이 침을 삼키며 내 입에서 무슨 말이 떨어질지만 기다렸다.
“앨범이 조금 밀릴 거 같아.”
내가 침중한 어투로 말을 하자 회의실 분위기는 더 급격히 냉랭해졌다.
“아… 네.”
“것 봐. 여기 오면 항상 안 좋은 일만 생긴다니까.”
이나라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대답하자 그제야 서지영이 한마디 했다.
“여기. 기운이. 너무 구려.”
뒤를 이어 린도 불만을 토했다.
“그러며는 언제 해요?”
유코가 울듯 말듯 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글쎄 모르겠다.”
내 말에 급속도로 시무룩해지는 애들을 보고 빠르게 장난을 그만두지 않으면 사태가 커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뒷감당에 대한 걱정도.
“…는 뻥이야. 앨범 트랙리스트가 나왔어. 그리고 오늘 결정된 건데 프로듀싱은 정인수 대표님이 어비스 맡느라 바쁜 것도 있고 해서 내가 맡게 됐는데, 괜찮지?”
내 말을 뇌에 받아들이고 해석하기에 시간이 필요한지 애들의 표정이 전체적으로 멍해졌다.
그리고 가장 정신을 빠르게 차린 건 유미소였다.
“죽어.”
죽여도 아니고 ‘죽어.’라니.
유미소가 씩씩대며 내 쪽으로 다가오는 스탠스를 취했다.
“양심적으로 우리 한 대씩만 때리게 해줘요.”
“옳소!”
그리고 신희진도 일어나서 내게 다가올 태세였다.
그 뒤를 이어 다른 애들도.
목숨에 위협을 받는 느낌이라 서둘러 애들에게 말했다.
“워워. 얘들아, 진정하고.”
“잠깐!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
이나라가 탁자를 쾅! 하고 치면서 말했다. 그리고 이내 내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빠가 프로듀싱 한다고요?”
“응. 그렇게 됐네.”
애들에게 내가 지을 수 있는 가장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