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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도 다시 매니저!-128화 (128/200)
  • 제128화. 물결은 흘러가고 (2)

    “안녕하십니까.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어, 맞아.”

    임진석 본부장의 자리로 가 인사를 건네자 건성으로 인사를 받았다. 그리고 나를 한번 쳐다보더니 다시금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여기는 좀 그렇고 안으로 좀 들어가 있어. 하던 일만 보고 들어갈 테니까.”

    “네.”

    임진석 본부장의 말에 안쪽에 마련된 작은 소회의실로 들어갔다.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데 이 상황이 조금 의아했다.

    임진석 본부장과 나는 접점이 없다.

    임진석 본부장은 어비스 전담으로 1팀 소속이다.

    임진석 본부장이 매니저 총괄이긴 했지만 이렇게 따로 본 적은 없었다.

    뭘까.

    궁금함을 잔뜩 가지고 기다렸다.

    그리고 잠깐의 기다림 끝에 회의실 문을 열고 임진석 본부장이 들어왔다.

    “앉아. 인사했는데 또 할 필요는 없잖아.”

    “아, 네.”

    엉거주춤한 상태로 다시 앉았다. 그리고 내 맞은편 앞으로 임진석 본부장이 앉았다.

    “왜 불렀는지 궁금하지?”

    “…네.”

    “다른 게 아니라 내가 좀 전의 회의에서 신기한 소리를 들어서.”

    임진석 본부장의 말에 김동현이 떠올랐다.

    김동현도 회의가 있다고 했었기 때문이었다.

    둘이 같은 회의였을까?

    “이번에 스타즈 정규앨범 운전대 네가 잡는다며?”

    “네.”

    예상치 못한 질문에 조금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대답했다.

    “흠.”

    내 대답에 임진석 본부장은 조용히 나를 바라봤다.

    그 시선을 왠지 모르게 피하기 싫어 나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봤다.

    잠깐의 눈싸움 끝에 임진석 본부장의 입이 열렸다.

    “지금이라도 손 떼는 게 어떻겠나?”

    “그게….”

    임진석 본부장이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꺼냈다.

    어쩐지 조금 적대적인 느낌을 받았는데 괜한 느낌이 아니었던 것 같다.

    “대표님 때문이면 내가 잘 말해줄 수도 있고.”

    “…….”

    아무래도 임진석 본부장은 내가 운전대를 잡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사실 이게 정상적인 반응이 아닐까.

    “나는 좀 이해가 안 돼서 말이야. 사실 난 이전 타이틀곡 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거든. 아무리 대표님 말로 돌아가는 회사라지만… 뭐, 좋아. 그건 그렇다 쳐. 근데 앨범의 전체적인 운전대를 잡는 건 또 다른 말이란 말이지?”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에 걸린 이권과 이해관계가 얼마나 걸려 있는지는 알고 하는 소리겠지? 지금까지는 운으로 어떻게 해결했다고 하지만 이건 이야기가 틀려.”

    “…….”

    어떻게 보면 임진석 본부장이 이성적이고 현실적일지도 모른다.

    나보고 일단 해보라던 정인수 대표와는 다르게.

    “감당할 수 있겠나?”

    아무 말 못 하는 내게 쐐기를 박으려는 듯 임진석 본부장이 무심하게 말했다.

    맞다. 과분한 자리라는 걸 나도 안다.

    그렇지만 지금 이 기회를 놓친다면 내가 손수 메이킹 할 기회가 언제 다시 올까?

    그리고 그 자리까지는?

    3년? 5년? 10년?

    알 수 없다.

    여기서 겁나서 뒤지는 건 하수나 하는 짓이다.

    지금 위치에서 잃을 게 뭐가 있겠나.

    그리고 잃지 않을 자신도 있다.

    예전과 애들의 행보가 많이 달라져 내가 알던 지식과는 조금씩 틀어졌다.

    그러나 나에게는 아직 방송계가, 영화계가 어떻게 흘러가는지에 대한 ‘흐름’은 알고 있다.

    그 흐름을 읽어 기세를 타는 건 온전히 내 능력이겠지.

    그렇지만 나도 회귀한 뒤로 놀고먹지만은 않았다.

    축적된 경험과 미래의 정보 두 가지를 가지고 꾸준히 비교하면서, 누구보다 빠르게 숙련되었다고 자부한다.

    그럼 못 먹어도 고다.

    “네. 자신 있습니다.”

    “뭘 믿고?”

    내 말에 임진석 본부장이 피식 웃었다.

    “제 안목과 애들 능력의 시너지를 믿고요.”

    “으하하.”

    이어진 내 말을 들은 임진석 본부장이 박장대소를 했다.

    그와 반대로 나는 가슴속에서부터 스멀스멀 들끓어 올랐다.

    “5년, 10년 구른 사람들도 비일비재로 망하는 게 이 바닥인데 너무 자신감에 차 있는 거 아닌가? 너무 자만에 차 있어.”

    “아니요. 자만도 아닌 사실을 말할 뿐입니다.”

    조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는 임진석 본부장의 얼굴을 또렷하게 응시했다.

    * * *

    “무슨 일로 갔다 온 거야?”

    “지금 당장 말씀드릴 수는 없고 좀 나중에 말씀드릴 수 있을 거 같아요.”

    “뭐야. 사고 쳤어?”

    아직 내가 스타즈의 마지막 앨범이 될지도 모를 정규앨범 운전대를 잡는다는 건 대외비다.

    그래서 알려줄 수가 없어 얼버무렸는데 내 표정이 조금 오묘했나 보다.

    말하면서 표정 관리가 안 된 모양이었다.

    “으음, 사고라면 사고인 거 같기도 하고요.”

    “너도 참 대단하다. 진짜 그러기도 쉽지 않어.”

    “하하….”

    “이젠 모르겠다. 알아서 해.”

    내 말에 질린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남진수가 말했다.

    “아, 맞다. 너 찾는 사람 또 있더라.”

    “저를요?”

    오늘은 무슨 날인가 보다.

    여기저기서 나를 찾는 걸 보면.

    “이상하게 오늘 너를 찾는 사람이 많네.”

    “이번엔 또 누구예요?”

    “차 팀장이 찾더라고. 갔다 와 봐.”

    “네, 알겠습니다.”

    남진수에게 말하고는 사무실을 나와 차태수 팀장이 있는 사무실로 향했다.

    차태수 팀장과는 딱히 할 말이 없는 것 같은데 무슨 일로 부른 걸까.

    차태수 팀장을 만나러 가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떠오르는 게 하나 있었다.

    그게 맞으면 좋겠는데.

    2팀 사무실에 들어가 두리번거리니 풍만한 체격의 차태수 팀장이 한눈에 보여 그곳으로 향했다.

    “팀장님. 저 찾으셨다면서요?”

    “이거, 맞지?”

    차태수 팀장이 A4용지로 인쇄된 용지를 내게 건네주며 말했다.

    성재원 감독의 가제 ‘Finder’

    안재성에게 추천해주고 싶었던 그 영화였다.

    “네, 맞아요.”

    “근데 너 어떻게 알고 있었어? 성재원 감독 하반기에 크랭크인 들어갈 거라는 건?”

    “여기저기서 주워들었어요.”

    “신기한 놈일세.”

    어이없어하는 차태수 팀장에게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1년 치 정보, 미리 주워들었답니다.

    팀장님도 회귀 한번 하시면 다 알게 돼 있어요.

    “배역은 뭐 노리냐?”

    “저는 철수 역 생각하고 있었어요.”

    “무상이라….”

    차태수 팀장이 작품에 관해 이야기를 꺼냈다.

    ‘Finder’의 철수 역은 사이코패스 역할이다.

    극에서 나중에서나 밝혀지는 범인 역할의 인물인데 어떻게 보면 주연이고 어떻게 보면 조연이다.

    그래서 안재성에게 딱 적당했다.

    주연할 급은 되지 않고 조연으로서 입체감 있고 대중들에게 각인시킬 수 있는 역할.

    그게 바로 철수였다.

    그리고 성재원 감독은 배역 뽑는 게 까탈스럽기로 유명했다.

    마음에 안 들면 10년 차 배우도 어림없고 마음에 들면 신인도 데뷔한다.

    단지 성재원 감독의 성격이 지랄 맞은 게 조금 흠이었지만.

    “그거 승기한테도 추천해줘도 되는 거지?”

    “승기 형 작품 들어가지 않아요?”

    차태수 팀장이 내 눈치를 살피더니 슬쩍 말했다.

    홍승기 이 양반은 욕심도 많아.

    “그건 드라마잖아. 영화는 또 다르지. 어차피 이거 오디션 보고 크랭크인 들어갈 때면 드라마도 끝물이고.”

    “뭐 상관없습니다. 철수 역할은 제 배우가 가져갈 테니까요.”

    “이건 뭐 무슨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이야? 성재원 감독이면 까다롭기로 유명한 양반인데.”

    “그러니까 자신하는 거죠. 그 입맛을 만족시켜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이미 맞춤형으로 준비 중이었다.

    안재성이라면 그 누구보다도 배역에 스며들 거다.

    “그럼 승기한테도 이야기한다?”

    “네.”

    “뭐 말하지 말라고 해도 말했을 테지만. 승기가 네가 노리는 거 뭔지 알게 되면 꼭 알려달라고 했거든.”

    “근데 승기 형한테는 무슨 역할 추천하실 건데요?”

    “나도 철수를 밀고 싶긴 한데 배우한테 물어봐야지.”

    홍승기가 참전하게 되는 건 불의의 일격 같은 건데, 그래도 역시 자신 있었다.

    이제 내 배우가 된 안재성을 나는 믿는다.

    “철수 역할은 제가 침 발라놨습니다~”

    “인마. 침 바른다고 따내면 좀 좋겠냐. 성재원 감독이면 인맥, 회사 다 안 통하는 양반인데.”

    내 말에 차태수 팀장이 어처구니없어했다.

    “그렇긴 하죠. 그럼 이건 제가 가져가도 상관없죠?”

    “어, 그래.”

    손에든 A4용지를 들고 차태수 팀장에게 말하니 가져가라며 손짓했다.

    “아무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냐.”

    차태수 팀장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이어 말했다.

    “가보겠습니다.”

    내 말에 차태수 팀장이 손을 휘적휘적 내저었다.

    사무실을 나오자마자 안재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재성 씨? 이전에 말했던 작품 있죠? 그거 들어 왔어요.”

    물 흐르듯 순조로웠다.

    * * *

    “오빠! 지영이한테 무슨 말 했어요?”

    “어? 왜?”

    “막 죽일 거야 죽일 거야 하다가 아니야. 고마운 사람이야. 그러면 안 돼. 이러는데 너무 섬뜩해서요.”

    “어….”

    마치 옆에 서지영이 있는 듯한 서늘함이었다.

    아직도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하는 행동을 보니 내가 오지랖 부리지 않았다면, 이뤄지지 않았을 여행이었을 것 같다.

    “조금 도와줬는데 조금 과했나? 하하.”

    “뭐 했는데요?”

    “있어. 그런 게.”

    신희진이 물어 오길래 대답을 회피했다.

    서지영 개인사라 애들에게 이야기하기에는 조금 꺼려졌다.

    “나머지 애들은 어디 가고 너희 넷만 있어?”

    “지영이랑 미소는 혜연이 따라서 보컬 연습하러 갔고요. 저희는 나라 언니 주도하에 댄스 트레이닝 하고 있고요.”

    “다 같이 있는 거 아니었어?”

    여기 오면 나는 애들 모두를 볼 줄 알았는데 나누어져 있었다.

    “부족한 거 먼저 채워야죠.”

    “그러면 여기보다 보컬이 더 먼저 아니야?”

    안무도 안무지만 이제 콘서트 일정도 잡히고 라이브 준비를 해야 했다.

    콘서트에서도 립싱크하면 욕먹고 몰매 맞기 딱 좋다.

    돈 주고 립싱크 보러 온 거 아니라면서.

    “한 번에 다 연습하기는 힘드니까요. 로테이션 돌리면서 열심히 하고 있네요.”

    “유코랑 린이 노래는 기가 막히게 발성해서 부르니까 그렇다 쳐도 희진이는 춤보다 보컬이 더 급선무 같은데….”

    내 말에 신희진이 발끈했다.

    “오빠! 저 엄청나게 늘었거든요!”

    “마자. 언니 마니 느러써요.”

    “영화 촬영 끝나고 확 좋아졌어요. 희진이.”

    유코와 이나라가 신희진을 옹호해줬다.

    “그래?”

    “네.”

    확실히 영화 촬영 끝나고 나서 애들의 성장이 어떻게 됐는지 보지 못했다.

    나날이 발전해가고 있다는 이야기는 듣긴 했지만….

    “앨범 컨셉은 어떻게 나올지 알고 벌써 연습하는 거야?”

    “벌써라뇨. 꾸준히 하는 거죠. 그리고 기본기 다루는 거예요. 기존 안무에서도 어색했던 거 조금씩 잡는 거구요.”

    이나라가 내 궁금증을 풀어줬다.

    일단은 실력 향상을 위해 연습하고 있던 듯했다. 내 말에 묘한 걸 느꼈는지 이나라가 내게 물어왔다.

    “앨범 컨셉 나왔어요?”

    “응.”

    내 의견대로 갈 예정이니 컨셉이 확정됐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뭔데요?”

    “키워드는 세 개야. 요정. 몽환. 신비.”

    “요저어어어엉?”

    입을 떠억하고 벌리는 신희진과.

    “우리가?”

    황망한 표정을 짓는 이나라.

    “신비?”

    그리고 재밌어 보이는 듯 밝아진 유코와.

    “몽환?”

    마지막으로 린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무슨 동화도 아니고….”

    “도대체 누가 의견 낸 거예요?”

    예상 외로 애들에게서 강한 반발이 일어나는 것 같아 당황스러웠다.

    괜찮은 거 같은데.

    “이상해? 난 처음에 듣고 좋다 생각했는데.”

    “어딜 봐서요?”

    “Lovely, Love Up&Down 둘 다 지금 말한 컨셉이랑 크게 다르지도 않잖아.”

    “그건 그렇긴 한데….”

    내 말을 들은 이나라가 고심에 빠졌다.

    “몽환이. 뭐야?”

    “몽환은 꿈처럼 환상적인 걸 말해.”

    린이 눈을 끔뻑끔뻑하면서 물어보길래 대답해줬다.

    “그럼 안무가 뭔가 선 같은 걸 강조하는 식의 안무겠네요. 나풀나풀하게.”

    “그럴…걸?”

    무대 위를 뛰노는 요정이라면 격한 춤동작보다는 춤 선과 멜로디에 중점이 되지 않을까.

    컨셉이 잡힌 그룹이 자주 쓰는 방식이기도 했다.

    스타즈는 지금까지 그룹 컨셉보다는 대중성에 초점을 맞춰 짰다면 이번엔 조금은 다르달까.

    “뭐, 딱히 일 있어서 오신 건 아니죠?”

    “어.”

    “그럼 저희 다시 연습 시작할 건데 계속 보실 거예요?”

    이내 이나라가 교통정리를 시작했다.

    “아니야. 갈게. 잘하고 있나 한번 둘러보러 온 거였어.”

    “네.”

    애들도 의욕적으로 연습을 다시 시작했다.

    내심 애들은 어떨까 싶어 왔는데 애들은 애들 나름의 방법대로 다가올 정규앨범을 준비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만 흔들리지 않고 잘하면 되는 건가.

    애들을 보면서 다시 한번 다짐하게 되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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