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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도 다시 매니저!-126화 (126/200)

제126화. 여행에서 생긴 일 (3)

“어음… 내가 뭘 도와줄까?”

“…….”

서지영에게 어색하게 대화를 시도해봤으나 묵묵부답이었다.

그래도 차근차근 시간을 주고 기다렸다. 그러자 서지영이 입을 열었다.

“요즘 좀 불안해요.”

“뭐가?”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하는 생각.”

“그게 뭐가 불안해.”

행복한데 불안하다는 게 무슨 뜻일까.

서지영의 말뜻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지금 모든 게 다 좋아서요.”

“좋은 게 왜?”

“제 인생에서 이렇게 행복한 적은 없었거든요.”

“음.”

“아무한테도 이야기 안 한 건데….”

서지영이 꼼지락대다가 내 눈을 보며 말했다.

“왠지 말하면 다 척척 해결해주는 거 같아서요. 말해도 돼요?”

“그러면 여기서 안 듣겠다고 말하겠냐?”

“그쵸? 우리 그렇게 정 없는 사이 아니죠?”

서지영의 모습에 실소를 흘렀다.

축 처진 강아지 같은 모습보다는 활발한 시츄 같은 모습이 더 좋다.

“그래서 뭔데?”

“음… 그러니까요.”

서지영이 계속 뜸을 들였다.

앞서 말한 내용을 토대로 하면 행복해서 고민이라는 건데, 그게 고민이 되나 싶었다.

“이건 가정사인데요….”

“응.”

“사실 저는 그렇게 잘 사는 편은 아니에요.”

아이돌 연습생들 대부분은 의외로 잘사는 친구들이 많다.

사실 예체능 계열은 돈이 없으면 할 수 없기도 했다.

나 또한 영화를 업으로 삼으면서 일반적인 친구들보다는 확실히 많이 쓴 편이었다.

“아이돌 하게 된 것도 도피성이 조금 강했어요.”

“음.”

“지금 기획사인 메이브에 들어가 연습생 생활하면서 그냥 다 잊었거든요. 그러다가 K.net에서 서바이벌 프로그램한다고 해서 지원했더니 덜컥 데뷔까지 하게 된 거고요.”

“…….”

서지영의 낯선 모습에 무어라 말할지 생각나지 않았다.

우수에 찬 눈빛이 너무나도 슬퍼 보였다.

“지금 너무 행복하고 좋은데… 가족들 보기가 너무 미안해요. 나 혼자만 행복한 거 같아서.”

“그게 왜 미안한 일이야. 잘된 일이지.”

“고생은 엄마 아빠 오빠가 다 했는데 나만 행복한 거 같으니까….”

서지영이 말을 하다가 감정이 북받치는 듯 울먹거리며 말했다.

“가족들도 행복할걸. 그리고 이제 네가 돈 많이 벌어서 행복하게 해드리면 되잖아.”

“그렇…겠죠?”

“응. 그러면 되지.”

“…….”

서지영은 내 말에 조금 진정이 되는 듯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뿐이 아니라 서지영이 무언가 행동을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 마음에 걸리면 이번에 정규앨범 할 때 작사나 작곡으로 답가 같은 형식으로 만들어보는 건 어때?”

“답가요?”

내 말에 서지영이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

“가수들 앨범 보면 흔히들 땡스투 성격으로 넣는 팬 송이라던가 그런 거 있잖아.”

“으음.”

“가족에게만 말하는 게 아니고 너에게 있어서 소중한 사람들을 묶어서 표현해보는 건 어때?”

“그건… 나쁘지 않네요. 근데 제가 그렇게 만든다고 앨범에 실을 수 있을까요?”

서지영이 걱정하는 문제는 내가 해결해줄 수도 있을 것 같다.

“퀄리티도 분명 중요하겠지만, 괜찮지 않을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더 좋을 거 같기도 하고.”

“좋아요. 한번 해보죠, 뭐.”

의욕적으로 할 일을 던져주니 평소의 서지영으로 돌아왔다.

자신감 넘치고 활발한 그 모습으로.

“그래. 나도 도와줄게.”

“그래도 끙끙 앓는 것보다 누군가에게 말하는 게 더 낫긴 하네요.”

“그래?”

“네.”

나와 서지영이 서로 바라보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요즘 내가 대나무 숲이 되는 것 같은 느낌도 없잖아 있지만, 담당 아티스트가 그렇게 해서 컨디션이 유지된다면 그걸로 된 거다.

“여기서 뭐해요?”

뒤에서 들린 말소리에 뒤돌아보니 어느새 신희진이 와있었다.

“언니이!”

서지영이 신희진을 보자 벌떡 일어나 신희진에게 안겼다.

“오빠가 괴롭혔어?”

“내가 뭘?”

“응, 응. 괴롭혔어. 혼내줘.”

“어어? 내가 뭘 했다고.”

벌떡 일어나 반박하자 서지영이 더욱더 신희진에게로 안겼다. 그리고 신희진의 눈을 피해서 내게 혀를 내밀었다.

저, 저 요망한 것.

“섬세하지 못하니까 솔로인 거예요.”

갑자기 훅 들어온 신희진의 말에 한 대 더 맞은 기분이었다.

“거기서 그 말이 왜 나와?”

억울한 표정으로 내가 말하자 신희진이 혀를 삐쭉 내밀더니 서지영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가자. 나라 언니가 우리끼리 단체 사진 찍재.”

“응.”

바람처럼 사라진 둘의 모습을 보며 어안이 벙벙했다.

정면에서 보이는 노을빛 풍경이 조금 전만 해도 황홀했던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처량한 느낌을 받았다.

에휴, 내 팔자가 이렇지 뭐.

갑자기 너무나도 서러웠다.

* * *

“한국 들어가기 싫다.”

“너도? 나도!”

박혜연의 한마디에 유미소가 대답했다.

산에서 내려와 헥사곤 식구끼리 식당에 왔다.

여행 마지막 날을 기리기 위해.

“보통 이렇게 해외 나오면 하루 정도는 놀라고 빼주던데 우리는 왜 그런 것도 없고….”

신희진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고 그 말에서 매서운 촉이 느껴져서 급히 말했다.

“그게 아니꼬우면 회사에 따져줘. 난 힘이 없단다.”

“팀장님! 어떻게 된 거예요!”

내 말에 서지영이 급발진했다.

좋아, 일단 화살을 회사로 돌렸고.

“야, 나도 힘없어. 그리고 이거 기획한 거 현진이거든? 책임자 쟤 맞아.”

남진수의 말에 뜨끔했다.

사실 일정을 하루 더 잡거나 넉넉하게 잡을 수 있었는데 이런 기획은 처음이라 빡빡하게 잡아버렸었다.

애들은 모르는 진실이다.

“팀장님.”

“왜?”

“일개 말단이 어디 힘이 있겠습니까. 하하.”

“무슨 소리야. 요즘 우리 회사에서 제일 힘 센 매니저가 넌데.”

“제가요?”

남진수가 갑자기 나를 띄워주는 발언을 했다.

그리고 그 발언에 스타즈 일동 전원이 놀란 눈으로 나와 남진수를 번갈아 쳐다봤다.

“와, 진짜요?”

“어. 얘가 지금 우리 업계 블루칩이야.”

이나라의 되묻는 말에 남진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왜 나는 그런 소문이나 말을 못 들었지? 당사자라 그런가?

처음 듣는 말이었다.

“오….”

“어째서요?”

“물어오는 것마다 흥행하고 손대는 것마다 터트리고 있으니까. 영업력도 누가 얘를 1년 차로 보겠냐? 너네도 신기하지 않아?”

“그러고 보니 그런 거 같기도….”

애들의 짧은 감탄사와 함께 남진수가 부연 설명을 했다.

그리고 남진수의 그 말에 낯이 화끈거렸다.

지금까지의 내 행적을 보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대놓고 띄워주는 거에는 면역력이 없다.

“정말?”

“그래요.”

유코가 커진 눈으로 말하자 남진수가 피식 웃으며 다시 답해줬다.

이거 너무 비행기를 띄워주는데 얼른 수습해야겠다.

“다 운이죠. 제가 한 게 뭐가 있겠어요. 담당 아티스트들이 다 뛰어난 덕이죠.”

“그건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와, 쟤 뻔뻔한 거 봐.”

내 말에 유미소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자 신희진이 감탄했다.

“저런 철판을 가지고 있으니까 예능에서도 그렇게 뻔뻔하게 하지.”

“야!”

서지영이 그런 유미소를 보며 혀를 차며 말했다.

그러자 유미소가 방방 날뛰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애들이 키득거리면서 유미소를 놀리자 유미소가 방방 날뛰는 걸 넘어 광분했다.

참으로 평화롭고 알찬 분위기였다.

한동안 유미소와 서지영이 으르렁거리더니 남진수가 진정시키고는 말했다.

“자, 짠이나 하고 오늘 마지막을 기리자.”

“네!”

“구호는 현진이가 할까?”

“저요?”

“찬성!”

“왜 자꾸 저한테 이런 거 시키는 거예요….”

“재밌잖아.”

“재밌으니까요.”

남진수와 스타즈 애들의 말에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잔을 들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아무 말이나 지껄였다.

“모두의 꽃길을 위하여!”

“와, 촌티. 나.”

막내인 린의 말이 내 심장에 비수가 꽂힌 기분이었다.

다른 인물도 아니고 스타즈 노잼의 대명사 린이 저런 말을 하다니.

“저 정도면 그래도 오빠가 많이 노력한 거 같은데? 좀 봐줄까?”

“그러게. 저 정도면 됐지 뭘.”

2타는 신희진이, 3타로 박혜진이 내 심장에 비수를 꽂았다.

“오빠 다시 한번 선창해 주세요.”

“그래….”

이나라가 웃으면서 나를 다독이며 말했다.

그리고 그 말에 시무룩하게 대답하고는 잔을 들었다.

하지만 이미 마음은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다. 그래도 힘내서 다시 한번 힘차게 외쳤다.

“모두의 꽃길을 위하여!”

“위하여!”

그렇게 우리의 해외여행 마지막 밤이 지나갔다.

* * *

“잘 놀다 오셨어요? 전 노래 고르느라 야근했는데.”

“저도 일하러 갔다 온 겁니다.”

다녀오자마자 바로 A&R팀의 민서희 팀장을 찾았는데, 민서희 팀장의 반응은 싸늘했다.

“그래요? 제가 듣기론 아니었는데?”

“아유, 무슨 말씀을 그렇게 다… 하하.”

눈빛으로 난도질당한다는 게 이런 건가 싶다.

민서희 팀장의 눈빛이 너무 매서웠다.

“그래서 거긴 어땠어요? 유럽의 휴양지라고 부르던데. 그 말 그대로 던대요?”

“네. 진짜 예쁘더라고요. 힐링 되는 기ㅂ….”

“놀다 왔네.”

나도 모르게 민서희 팀장의 유도신문에 걸렸다.

말하면서 아차 싶었다.

“큼큼, 언제 한번 갔다 오시죠. 좋은 곳입니다.”

“서러워서 진짜….”

민서희 팀장이 코웃음 치면서 팔짱을 끼고 나를 눈으로 흘기며 쳐다봤다.

아무래도 업무상이긴 해도 해외에 갔다 온 게 부러운 듯했다.

“그래도 놀다 온 것만은 아닙니다. 앨범 컨셉이랑 애들의 노선을 어떻게 할지 생각도 해왔어요.”

“좋아요. 한번 들어보죠. 뭔데요?”

내가 본격적으로 일 이야기를 하자 민서희 팀장도 표정을 풀고 경청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스타즈의 전략 노선은 어떻게 보면 신비주의에 가깝지 않습니까? 그걸 이용하는 거죠.”

“흐응.”

“게다가 이번에 플리트비체란 곳에서 저도 영감을 얻은 건데요, 요정. 신비주의. 이렇게 가는 건 어떨까요? 기존 미니앨범 두 개와 비슷한 맥락도 있고요.”

“흐음.”

“게다가 지금 애들 이미지가 팬들에게는 조금 친숙하고 소통하는 이미지지만 대중들에게는 아니잖아요. 신비스러운 요정. 어떻습니까?”

“나쁘지 않은 것 같네요. 조금 구시대의 컨셉이기도 한데 컨셉이 걸 크러쉬로 가는 게 아닌 이상 나쁘지는 않은 컨셉이에요.”

“그….”

내가 무어라 말을 하려고 하자 민서희 팀장이 손을 들어서 말하지 말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좋아요. 말해주신 거에 맞춰서 다시 좀 추려볼게요. 지금도 크게 벗어나는 건 아닌데 다시 한번 추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네요.”

민서희 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사람의 인연이라는 게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민서희 팀장과의 첫 만남은 안 좋게 시작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이렇게 잘 맞아떨어지니.

“아, 그리고 하나 더 의견 내고 싶은 게 있는데요.”

“네, 뭐죠?”

“그… 이번 앨범에도 지영이가 작사나 작곡한 곡을 넣을 수 있을까요?”

내 말에 민서희 팀장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저번에 했던 건 좀 얻어걸린 거 아니었어요? 그때도 지영이가 완전히 자작한 게 아니라 김동현 작곡가님이 많이 도와주신 거로 알고 있는데요? 곡 퀄리티가 돼야 넣죠.”

“그것도 맞는데요, 일단 해보라고 하고 후보군에 넣어보는 건 안 될까요? 지금까지 지영이가 배운 것도 있고 김동현 작곡가님도 지영이 센스가 좋다고도 이야기하셨거든요.”

“뭐, 안될 건 없죠. 곡 퀄리티만 괜찮다면요.”

“알겠습니다.”

민서희 팀장이 서지영이 작곡해서 앨범에 수록할 기회를 박탈하지는 않았다.

나는 난항을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쉽게 뚫렸다.

그럼 이제 고군분투하고 있을 서지영을 보러 가볼까.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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