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9화. Dancing tonight (4)
“오늘 고생했다.”
“네, 오빠도 장시간 녹화 기다리시느라 고생하셨어요!”
녹화가 끝난 뒤 이나라와 숙소에 도착했다.
“내 일인 걸, 뭘.”
“그래도요.”
담담하게 말하는 내게 이나라가 웃으며 답했다. 그런 이나라를 바라보며 물었다.
“괜찮아?”
“뭘요?”
“그….”
내가 말을 잇지 못하고 끌자 이나라가 끼어들었다.
“성적이요?”
“어.”
이나라와 메이의 점수는 다른 팀들보다 다소 낮았다.
340점.
4팀 중 가장 낮은 점수였다.
말을 하고서도 이나라의 눈치를 슬금슬금 살폈다.
“에이, 괜찮아요. 1등 하자고 한 프로그램도 아니고 성적 때문에 열심히 했던 것도 아니었는데요, 뭘. 그냥 조금 아쉬운 정도?”
“그게 그거 아냐?”
“그게 그거 아닌데요.”
이나라의 눈치를 살피면서 장난식의 어조로 툭툭 건드렸다.
정말 개의치 않은 건지, 개의치 않은 척하는 건지.
일단 지금 이나라의 표정을 보면 척 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방송은 언제 나간다고 했죠?”
“이번 주 첫 방 나가고 다음 주로 끝.”
“다음 주에 애들 못 보게 해야겠다.”
“왜?”
내 말에 이나라가 발로 땅을 퍽퍽 찼다.
“성적에 연연하는 건 아니긴 한데, 우리 애들은 그걸로 엄청나게 놀릴 게 뻔해서요. 왜 1등 못하고 왔냐면서.”
“그럼 한마디 해줘. 너네는 4등도 못할 거라고. 입구에서 컷 당한다고.”
“킥, 그러네요. 그렇게 말해줘야겠다.”
이나라가 춤을 춘다면 다른 애들은 율동 수준이다. 어딜 춤으로 이나라를 놀린단 말인가.
이나라와 메이의 구성이 나쁜 건 아니었다. 단지 다른 팀들의 준비 퀄리티가 압도적으로 높았을 뿐.
오히려 이나라와 메이의 색깔이 짙은 무대여서 나는 더 좋게 봤다.
특히 이나라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더 좋았다. 무대 위에서 즐기는 이나라의 모습도 한몫했다.
상큼하고 발랄한 무대의 모습만 보다가 파워풀하고 에너지 넘치는 모습을 보니 확실히 다른 매력이 느껴졌다.
기분 좋게 웃는 이나라에게 슬쩍 물었다.
“그래서 지금은 좀 어때?”
“좋아요. 아주!”
이나라가 두 팔을 하늘 높이 들면서 상큼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다행이고.”
“근데 무대를 준비하면서 제 자신을 점검한 것보다 선배님들의 마인드를 보며 배운 게 더 많은 거 같아요.”
이내 이나라가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내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뭐가?”
“특히 하연 선배님이 방송 중에 하셨던 말이 제일 와닿았어요.”
“여인의 향기에서 나온 대사?”
“네.”
그게 아마 요약하면 ‘인생은 탱고다’였던가.
“그냥 저도 편하게 마음먹으려고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거보다 오늘 최선을 다하자!”
“지금까진 최선을 안 한 거야?”
“마음가짐이 다르다고요! 마음가짐이!”
내 말에 이나라의 눈썹이 팔자로 그려지더니 귀엽게 화를 냈다.
“근데 오빠, 다음 주부터 스케줄 거의 없고 휴식기 들어간다면서요?”
“어.”
이나라의 말처럼 다음 주부터는 스타즈도, 매니지먼트 4팀도 잠깐의 휴식기를 가진다.
이나라가 휴식기 관련해서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했다.
뭘까.
“음… 아니에요.”
“왜? 뭐 있어?”
“아뇨. 꾸준히 보컬 레슨이나 안무 레슨은 받아왔고 휴식기에도 여전히 레슨은 받겠지만… 휴식기라고 딱 정해 버리니까 애들이랑 여행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휴식기라고 이야기한 적은 없었으니까요.”
“여행?”
“네.”
“흐음.”
여행이라. 여행.
배우든, 가수든 보통 활동을 하고 난 뒤 휴식기를 가질 때 많이들 여행을 떠난다.
“어차피 안 될 거라는 건 아는데 아쉬워서요.”
“여행이라… 여행 보내 달라고 나한테 지금 돌려 말하는 거지?”
“네.”
난 ‘아뇨. 그냥 해본 말이었어요.’라고 할 줄 알았는데 이나라가 냉큼 긍정의 답을 내놨다.
새삼 이나라의 태도에 놀라서 이나라에게 물었다.
“이젠 돌려 말하지도 않는다?”
“이제 그 정도 사이는 됐다고 느껴서요. 처음 만났을 때도 느꼈지만, 오빠는 회사 편이라기보단 우리 편이라고 생각했거든요. 희진이 때 이후로는 완전히 확신했구요. 게다가 저한테 신경 써주는 것도 그렇고… 이건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닐걸요?”
“그냥 일하면서 얻어걸린 거야.”
“그래서 애들이 다 오빠한테는 고마워해요. 좋아도 하고요.”
“…….”
난데없는 이나라의 말에 머쓱해졌다. 애들이 간혹 이렇게 훅 들어올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적응하기 어려웠다.
“왜 눈 피해요?”
“어? 내가 언제.”
슬쩍 눈을 피하면서 이야기를 했더니 이나라가 이를 캐치하고 쿡쿡 웃었다.
“지금요. 내 눈 피했잖아요. 쑥스러워하는 거 같은데?”
“아냐. 지금 똑바로 보고 있잖아.”
이나라의 말에 눈을 부릅뜨고 이나라와 눈을 마주쳤다.
눈을 마주친 지 5초 정도 흘렀을까, 이나라가 눈웃음을 짓더니 내게 말했다.
“와, 무슨 눈을 이렇게 살벌하게 떠? 눈싸움 하자는 거예요?”
너무 눈에 힘줬나. 완전 도둑이 제 발 저린 꼴이 된 것 같다.
조금 무안해져서 눈을 풀고는 이나라에게 인사말을 건넸다.
숙소 앞에서 너무 붙잡아 둔 것 같다.
“흠흠. 아무튼 오늘 고생했고, 들어가서 푹 쉬어.”
“네. 오빠도 고생하셨어요!”
이나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활기차게 대답했다.
“아, 참. 오늘 멋있더라. 오늘 무대, 나는 400점이었어.”
내 가수 기는 살려놔야 하지 않겠나. 아무리 그렇게 말했어도 신경은 쓰일 테니까.
“핫, 고마워요. 들어가 쉬세요.”
“오냐.”
이나라가 내 말에 크게 웃더니 내 몸을 건드리며 차 쪽으로 밀어내고는 숙소로 향했다. 얼른 가서 쉬라는 듯이.
숙소로 돌아가는 이나라의 모습을 보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자식이 성장한다면 이런 기분을 느끼지 않을까 싶었다.
이제 이나라 일정도 끝이 났으니 나도 좀 쉴 수 있는 건가?
* * *
“다녀왔어!”
이나라의 목소리에 거실에 있던 스타즈 애들이 이나라에게 우르르 다가갔다.
“언니!”
“몇 등?”
“잘하고 왔어?”
“어땠어?”
도떼기시장처럼 사방에서 정신없이 들려오는 목소리에 이나라가 머리가 지끈거렸는지 손을 들며 크게 외쳤다.
“그만!”
그리고 이내 검지를 들더니 자신의 주위를 둘러싼 애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한 사람씩 말해.”
“나부터!”
“그래, 우리 지영이. 뭐가 궁금해?”
이나라의 말에 서지영이 손을 번쩍 들고는 물었다.
“몇 등 했어?”
서지영의 말에 모두가 이나라의 입만 바라봤다. 그런 모습에 이나라가 웃더니 말했다.
“스포를 해주면 재미없잖아. 다음 주를 기대하시라!”
“아, 왜! 그딴 게 어딨어! 몇 등인데!”
“내 맘이지롱~ 다음!”
이번에는 린이 손을 들고 이나라에게 물었다.
“잘하고. 왔어?”
“응. 난 만족해.”
“그럼. 다행.”
이나라의 대답을 들은 린이 고개를 끄덕인 뒤에 다시 거실로 돌아가 드라마를 시청했다.
이나라가 소파에 앉은 린을 보다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내가 너희들 걱정하게 했나?”
“우리가 모르는 척하느라 힘들었지. 우리 다 알고 있었는데?”
이나라가 갸웃거리면서 묻자 유미소가 피식 웃으며 답했다.
“응?”
“계속 힘들어했잖아. 이유는 뭔지는 몰라도.”
유미소의 말에 곁에 있던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그랬나?”
“원래 그거 본인만 못 느끼고 주위 사람들이 더 잘 느끼는 거래.”
“그래도 보니까 댄싱 투나잇 준비하면서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했거든. 그리고 실제로 언니 분위기도 많이 살아났고.”
의아해하는 이나라에게 박혜연과 신희진도 한마디씩 보탰다.
“흐응, 그래? 그 분위기라는 건 또 뭐야?”
“그… 있어. 암튼. 언니의 그 특유의 분위기가.”
이나라가 신희진을 바라보며 묻자 신희진이 마땅한 답을 찾지 못한 듯 눈을 굴리다가 얼버무렸다.
그러자 서지영이 이어 말했다.
“그래서 이거 끝나면 물어보기로 합의했어.”
“누구랑?”
“우리끼리.”
“우리끼리? 왜 내 의견은 없어? 우리끼리면 나도 있어야 하는 거 아냐?”
서지영의 말에 이나라가 뚱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당사자는 빼야지. 그리고 원래 이런 건 민주주의로 하는 법이야. 우리 숙소 규칙 정할 때 ‘다수결을 따른다.’라고 한 거 기억 안 나나 봐?”
“그게 어째서 그렇게 연결되는데?”
서지영의 말에 이나라가 어이가 없는지 헛웃음만 지었다.
이나라가 허탈해 하고 있을 때 유코가 이나라의 옷깃을 잡아끌더니 말했다.
“그래서 어때써어?”
“어땠냐니? 흠… 기분으로 따지면 지금은 홀가분한 기분? 그냥 나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는데 방향을 정한 기분이랄까.”
유코의 말에 덤덤하게 대꾸해주던 이나라의 표정은 마치 급하게 화장실 갔다가 나온 사람처럼 상쾌했다.
“움…. 모르겟써. 난.”
“넌 하던 대로 하면 돼.”
유코의 말에 이나라가 웃으며 답했다.
“확실히 오빠가 대단하네.”
신희진이 대뜸 감탄하면서 말했다.
“누구?”
“한 명밖에 더 있어?”
유미소가 반문하자 신희진이 유미소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지만 신희진의 말에는 박혜연이 대답했다.
“현진 오빠?”
“응.”
대답을 들은 신희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동의합니다!”
“확실히 삼촌이 좀 다르긴 해.”
박혜연 활기차게 손을 들며 말하자 옆에 있던 유미소도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맞아. 완전 해결사야. 지금까지 다 해결해줬잖아. 게다가 우리가 잘 풀리게 된 것도 어떻게 보면 현진 오빠 때문인 거 같기도 해.”
이나라도 애들의 의견에 거들었다.
“혜연이도 처음에 도움 받았지, 희진 언니도 도움 받았지, 이번엔 나라 언니까지!”
“오빠가 알게 모르게 우리 신경 많이 써주니까.”
이나라가 유미소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생각해보면 그러네?”
서지영이 멍하니 듣다가 중얼거렸다. 이나라가 곁에 있는 애들을 슬쩍 보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예전에 내가 오빠랑 술 한잔하고 온 적 있잖아? 그때 상담하고 나서 바로 댄싱 투나잇 잡아주더라. 넌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면서.”
“언니 자신감 떨어졌었어?”
박혜연이 이나라의 말에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응. 내가 너희보다 나이도 많고, 그렇다고 너희보다 뭐 특출난 것도 없는 거 같아서.”
이나라가 씁쓸하게 말했다.
“에이, 그건 아니지.”
이나라의 말에 서지영이 강한 부정을 내비쳤다. 그걸 보고 이나라가 웃었다.
“어쨌든 난 그랬어. 근데 내가 좋아하는 춤추면서 그리고 댄싱 투나잇 진행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
이나라가 담담하게 말하고 나서 손뼉을 쳤다.
“자, 나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야식이라도 먹을까?”
“그거 완전 찬성!”
이나라의 말에 신희진이 과하게 좋아했다.
“뭐 먹을래? 오늘은 내가 쏜다!”
이나라의 말에 다들 환호했다.
“치킨 치킨!”
“언니! 아침에 먹었잖아!”
“그래도 또 먹고 싶은걸. 그리고 나라 언니는 못 먹었잖아?”
“맞아. 너희는 먹었지만 난 안 먹었다고.”
평소와 다름없는 스타즈 숙소였다.
* * *
여행. 여행이라….
회사에 출근해서 어제 이나라와 이야기 나눴던 여행이라는 주제에 관해 생각해 봤다.
단순 여행이 아니라 콘텐츠로도 쓸 수 있지 않을까?
한번 말한다고 닳는 것도 아니니 한번 건의해볼 요량으로 이진성 실장에게 다가갔다.
“실장님.”
“왜?”
“건의할 게 있는데요.”
내 말에 이진성 실장이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었다.
“안 돼. 하지 마.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마.”
“네?”
이진성 실장의 반응에 아리송했다.
내가 뭐 잘못한 게 있었나 해서.
“너 건의하거나 뭐 한다고 하면 일 하나씩 터졌잖아. 안 돼. 돌아가. 잠잠하다 싶더니….”
“진짜 별거 아닌 건데요.”
“안 들을란다. 현진아, 또 머리 아프기 싫다, 나 요즘 탈모 오는 거 같다고.”
뭉크의 절규처럼 표정이 괴이해진 이진성 실장의 표정에 조금 당황했다.
뭐야, 언제부터 내 이미지가 트러블 메이커가 된 거야.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