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6화. Dancing tonight (1)
“…빠. 오빠!’
“어? 어. 다 끝났어?”
이나라가 메이크업 받을 동안 멍하니 안재성과 정인수 대표의 말을 곱씹느라 이나라가 가까이 다가온 줄 몰랐다.
요즘 생각할 시간만 나면 머릿속에 정인수 대표의 말이 맴돌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어? 아무것도 아니야.”
지금만 해도 금방 이나라와의 대화에 집중하지 못하고 또 그랬다. 내 상태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이나라의 표정이 기묘했다.
“뭔데요.”
“아니라니까.”
굳이 알려줄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발을 뺐다. 그러나 내 말에 이나라의 눈썹이 팔자를 그리더니 강수를 뒀다.
“안 알려주면 궁금해서 오늘 무대 망할 거 같은데….”
“야, 그렇게 말하면 어떻게 해.”
“오늘 무대는 망하는 건가….”
궁상맞은 오리처럼 입을 삐쭉 내밀며 본인의 무대를 저주하길래 식겁해서 알려줬다.
내 머릿속을 차지하는 생각 중 상대적으로 비중이 덜한 거로.
“아니, 그냥 이번에 신인 배우 계약할 거 같아서.”
“배우 계약이요?”
“응.”
“그럼 우리는요?”
내 말에 이나라가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괜한 걱정을 하네.
“신인 배우잖아. 전담은 스타즈지.”
“신인 배우는 뭐 달라요?”
“스케줄이 많이 없거든. 관리는 하겠지만 전담해서 맡는 건 아니니까 언제나 유동적.”
“아하.”
내 말에 이나라가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고 늘어지기 전에 화제를 바꿀 요량으로 이나라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오늘 컨디션은 어때?”
“당연히 최고죠.”
“그래?”
“네!”
근육도 없는 게 근육 있는 척 양팔을 불끈 쥐는 모습을 보니, 오늘 컨디션은 갓 잡은 생선처럼 팔팔한 것 같다.
한차례 그렇게 자신의 자신감을 과시하더니 자신의 손바닥에 주먹을 쳤다.
“아, 맞다. 애들이 여기 도착하면 영상통화 걸라고 했는데.”
“영상통화?”
“네.”
“왜?”
“응원해 준다고요. 미소랑 유코도 방송 나갈 때 시간 남은 인원끼리는 영통 하면서 응원했어요.”
요즘은 신희진만 맡아서 하다 보니 애들이 방송 나가는 멤버를 그런 식으로 응원하는 줄은 몰랐다.
근데 저번에 스튜디오 녹화할 때는 안 했던 거 같은데 또 다른가 보다.
“무대 올라가기 전에 영통으로 보는 게 낫지 않아?”
“그때는 바쁘잖아요. 선배님도 같은 대기실 쓰기도 하구.”
“그런가? 근데 지금 애들이 일어나 있어? 너 빼고 쉬고 있잖아.”
“저 나올 때 애들 다 깨어 있었어요.”
“그래? 편한 대로 해.”
내 말에 핸드폰을 들고 영상통화를 걸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핸드폰 화면에서 서지영의 모습이 비쳤다.
“헬로~”
- 언니!
“웅. 웅. 뭐 하고 있었어?”
- 우리는 지금 치킨파티 중!
“야! 같이 먹기로 했잖아!”
서지영이 대표로 이나라와 통화하는 모습이 보였다.
게다가 슬쩍 보니까 숙소에 남아 있는 스타즈 애들은 테이블에서 모여 치킨을 먹고 있었다. 서지영 뒤로 애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건 그렇고 점심 조금 지난 시간인데 벌써 치킨을 먹고 있다니 대단하다.
이나라의 반응을 보아하니 나오기 전에 치킨 이야기를 꺼냈던 것 같다.
- 그렇지만 먹고 싶었는걸~
“너 숙소 가서 보자 진짜.”
- 오빠한테 사달라 해.
“안 돼. 기름진 거 먹었다가 컨디션 나빠지면 어떻게 해?”
어쩐지 점심은 간단하게 밥류로 달라더니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지만 이나라가 서지영이 치킨 먹는 모습에 군침이 도는지 침을 꿀꺽 삼키는 게 옆에서 들렸다.
그런 이나라를 서지영이 얄미운 표정으로 놀렸다.
- 아우 맛있어.
“너 진짜 숙소 가서 보자.”
갑자기 대기실에 한기가 서렸다.
애들의 시달림에 고생하는 이나라가 불쌍해 이나라의 편을 들어줬다.
“너희 그만 놀려.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러냐?”
- 이건 놀리는 축에도 못 드는데….
“응원해 준다면서 오히려 놀리고 있네.”
- 긴장 풀어주려고 하는 거죠~ 그치~?
- 그럼 그럼.
내 말에 서지영이 뻔뻔하게 대답하다가 옆에 있던 유미소도 서지영처럼 화면에 끼어들어 말했다.
얘네를 데리고 컨트롤 하는 이나라가 새삼 대단해 보였다.
“나라가 고생이 많네.”
“맞아요. 나라가 고생이 많죠.”
내 말에 감동하였는지 마치 자기가 아닌 양 말하며 뿌듯해했다.
- 나라 언니 너무 뻔뻔한 거 아니야?
황당하다는 듯 말하는 유미소의 모습에서 이나라가 발끈했다.
“뻔~뻔~? 야, 리더 재투표할래?”
- 아앙. 언니 최고!
“어휴.”
유미소의 애교에 이나라가 깊은 한숨만 내쉬었다. 이번엔 서지영 옆에 있던 박혜연이 얼굴을 들이밀고 물었다.
- 근데 언니. 왜 의상은 아직 안 입었어?
“불편하니까. 어차피 곧 카메라 리허설 들어가서 입긴 할 거야.”
- 의상 입은 것도 보고 싶었는데… 메이크업뿐이네. 근데 평소 무대 메이크업보다 좀 진하네?
“응. 우리 무대 할 때 하는 메이크업 분위기랑 좀 달라. 아무튼, 의상까지 입은 풀 퍼포먼스는 TV로 봐~”
- 쳇, 우리한테도 안 보여주고. 삼촌! 삼촌은 봤죠? 어때요?
유미소가 내게 물었으나 나도 궁금한 건 애들이랑 같았다.
“나도 못 봤어.”
- 말이 돼요?
“꼭꼭 숨기더라. 저번에 보려고 몰래 연습실 들이닥쳤는데 그때 나라랑 눈만 안 마주쳤어도… 리허설 때는 봐야지.”
“리허설도 보여주기 싫은데….”
“혹시라도 사고 날 수도 있잖아.”
“반감되는데….”
내 말에 이나라가 발을 동동 구르며 무척 아쉬워했다. 그래도 혹여나 무슨 일이 있을까 안전상 한번은 봐야 했다.
“이건 양보 못 한다.”
“쳇.”
- 아무튼, 잘하고 와, 언니! 우린 치킨 좀 먹을게!
- 화이팅!
나와 이나라의 상황을 보던 서지영이 상황을 정리하여 이나라에게 말했다.
그러자 뒤에서 치킨을 열심히 뜯던 멤버들도 이구동성으로 응원하는 목소리가 들리더니 영상통화가 종료되었다.
“먹느라 바쁜가 보네?”
“그런 거 같네요. 타이밍이 안 좋았네요. 우리 애들은 밥 먹을 때는 건드리는 거 싫어하거든요.”
“애들이 전체적으로 식성이 좋아서 그래.”
진짜 밥 먹을 때 스타즈 애들 건드리면 사납게 으르렁거린다. 그래서 웬만해서는 먹을 때는 잘 안 건드린다.
괜히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 말이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예전에 실감했었다.
“한창 잘 먹을 나이니까요. 부럽다.”
이나라가 기지개를 켜면서 한탄했다.
그 모습을 보니 어이가 없었다.
“애늙은이 흉내 내지 마. 그래 봐야 애들이랑 얼마 차이도 안 나면서.”
“오빠도 리더 해봐요. 애늙은이가 안 되나.”
“나도 많이 해봤거든?”
“의외네요. 그럼 더욱더 제 편을 들어주셔야죠!”
“내가 네 편을 얼마나 많이 들어주는데?’
“음… 그건 인정!”
나랑 이나라가 티키타카 하면서 말하고 있을 때 대기실 안에서 있던 스타일리스트가 이나라를 불렀다.
“나라야. 옷 갈아입자.”
“앗, 네!”
이나라가 스타일리스트한테 가고 나서 시간을 확인하니 리허설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도 퍼포먼스는 처음 제대로 보는 거라 몹시도 궁금했다.
* * *
똑똑!
“이제 무대 리허설 준비해 주세요!”
“네!”
“언니,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준비했을까요?”
“글쎄, 나도 모르겠어. 물어봐도 안 알려주더라.”
“궁금하다.”
무대에 올라가는 팀은 총 4팀이다.
메이&이나라, 리쉬&제인, 톰&하연. 션&진우.
각자 특징들이 있었는데 메이와 이나라는 처음엔 걸스힙합 느낌으로 꾸려졌으나 실상은 스트리트 댄스계열이었다.
이나라가 각 팀이 짜이고 나서 팀 색깔을 내게 이야기해 줬었다.
지금 기억나는 건 리쉬&제인 팀은 현대무용 느낌, 션&진우는 스트릿 댄스 계열, 톰&하연 팀은 어떤 식으로 구사할지 예측이 안 됐다고 평했었다.
“하나는 현대무용 살려서 선을 강조하면서 할 테고 하나는 비보잉에 아크로바틱이 섞였을 거고, 한 팀은… 예측이 안 되네요.”
“보면 알겠지.”
이나라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옆에 있던 메이도 일어나면서 스트레칭을 했다.
“그래도 우리가 제일 돋보일 거예요!”
“그건 당연하고.”
이나라가 메이를 보고 이야기하자 메이가 자신감 있게 말했다. 둘은 퍼모먼스를 준비하면서 많이 친해진 것 같았다.
이나라와 메이가 대기실 밖으로 나가 무대로 향하자 딸린 스태프들 모두가 우르르 이동했다.
무대에 도착하니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팀들이 있었다. 우리가 등장하니 메이에게 인사를 건네는 참가자들을 볼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
“안녕하세요!”
메이가 참가자 중에서 업계 연차가 제일 오래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나라가 제일 연차가 낮음에도 불구하고 메이가 같이 있어서 먼저 인사를 받고 건네는 식이었다.
“준비 많이 했어?”
메이가 앞서 와 있던 션&진우 팀에 다가가 말했다.
메이의 말에 션이 웃으며 대답했다.
“아유, 하나도 못 했어요. 서로 시간이 안 맞아서….”
“너희 둘 스케줄 없다고 매일 만났다던데?”
“어? 누구한테 들으셨어요?”
션이 손사래를 치며 호들갑을 떨자 메이가 그를 툭 치며 말했다. 그리고 옆에 있던 진우는 메이의 말에 놀란 눈치였다.
“다 아는 방법이 있다.”
“누나한테는 뻥카도 못 치겠네.”
“그래도 뭐 하는지는 안 알려주더라.”
“그건 좀 다행이네요.”
션이 짐짓 너스레를 떨었으나 메이는 피식 웃었다.
아무래도 춤에 관해서는 한 가닥 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서로서로 친한 것 같다.
“참, 그거 들으셨어요?”
“뭐?”
“톰&하연 팀이요.”
“둘이 사귄대?”
션이 뭔가 중요한 정보를 알려주려고 하는 듯 목소리를 까는가 싶더니, 그런 션에게 메이가 대뜸 말하자 션이 놀라 했다.
“그건 또 어떻게 아셨어요?”
“척하면 척이지. 프로그램하면서 한두 번 눈 맞냐? 게다가 남녀커플로 구성한 건 걔네밖에 없잖아.”
“딱히 숨길 생각은 없는지 스태프들은 다 알더라고요.”
“그래? 둘 다 잃을 게 없나?”
“둘 다 데뷔한 지는 꽤 됐잖아요. 회사에서도 그냥 그러려니 하나 봐요.”
“의외네.”
“솔로 가수의 장점 아닐까 싶어요.”
션과 메이가 하는 말이 꽤 흥미로웠다. 보통은 연애 사실을 숨길 텐데 말이다.
메이나 션뿐만 아니라 주위 스태프들 또한 그러려니 하는 걸 보니 뭔가 새로웠다.
나랑 이나라는 이런 분위기에 적응 못 하고 눈만 멀뚱멀뚱 뜨면서 관전하고 있었다.
“리쉬&제인 팀은 뭐 하는지 알아?”
“거긴 저도 베일에 싸여 있어요. 초청된 팀이라 그런지 정보 구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프로그램 특성상 경연 아닌 경연이라 그런지 다른 팀들이 신경 쓰이기는 하는 모양이었다.
메이는 션을 통해서 다른 팀들의 정보를 얻고 있었고, 션은 이미 다 알아본 모양이었다.
어차피 리허설 시작하면 다 알게 될 텐데 궁금한 건 다 똑같나 보다.
“하연이네는?”
“거기는 탱고 섞은 거 같던데요.”
“눈 맞을 만하네.”
“그렇죠?”
션에게서 장르를 들은 메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탱고. 정열의 탱고!
나도 왠지 눈 맞은 게 이해가 갔다.
“진우야, 나라 그만 좀 쳐다봐. 애가 부담스러워서 하잖아.”
“네?”
메이의 말에 진우가 당황스러워했다.
메이와 션의 말에 집중하느라 못 봤는데, 진우가 이나라를 계속 주시했던 듯했다.
이건 내 실수다. 대화 주제가 흥미롭다 보니 주위를 못 살폈다.
“관심 있니? 그래도 데뷔한 지 얼마 안 된 데 건드리지는 마라.”
“누나. 저 그런 놈 아니에요.”
진우가 안색을 굳히며 메이에게 말했다.
나 또한, 메이의 말에 진우의 등급을 경계 대상으로 격상시켰다.
조금 전 메이의 말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프로그램에 같이 출연하는 출연진 1이었다.
“나라야, 쟤 조심해. 버릇 안 좋은 애야.”
“누나!”
“아하하….”
메이의 놀림에 진우가 당황했다.
그리고 이나라는 이 상황에 어색한 웃음만 흘릴 뿐이었다.
짓궂은 분위기는 밝은 목소리와 함께 반전됐다.
“안녕하세요!”
톰&하연 팀이 들어왔다. 둘이 들어오면서 알콩달콩 이야기를 나누는 게 확실히 예사롭지가 않아 보였다.
앞서 션이 말한 것처럼 숨길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3팀이 무대 안에 들어오자 댄싱 투나잇 스태프들이 더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일단 1팀부터 리허설 시작하겠습니다!”
그리고 조연출의 외침과 함께 출연진들도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