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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도 다시 매니저!-115화 (115/200)

제115화. 일단 찍어 봐 (2)

“오래 기다리셨죠?”

“아니요. 오랜만에 카페에서 여유롭게 있었습니다.”

이나라의 스케줄이 끝나고 회사로 돌아오기 전에 안재성에게 연락했다. 그리고 지금, 회의실에서 만나게 되었다.

“어제 이야기 드렸는데 이렇게 빨리 와주실 줄 몰랐네요.”

“원래 제가 빨리빨리 하려고 하는 성향도 있긴 한데 어제 좋은 말을 많이 들어서요.”

내가 웃으며 말하자 안재성도 웃으며 알 수 없는 소리를 했다.

“네?”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게 있으신 거 같아요.”

“제가요?”

“네.”

내가 아리송한 표정을 짓자 안재성이 다시금 웃었다.

“어제 감독님도 그렇고, 선배님도 그렇고… 가만히 보니까 은근히 매니저님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고요.”

“그래요?”

내가 없는 자리에서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궁금했다.

“칭찬이 많았어요. 감독님은 욕도 많이 하셨지만.”

“그 자리에 계속 남아서 들었어야 했는데 아쉽네요.”

“그러게요. 같이 있으셨으면 더 좋았겠네요. 재밌었거든요.”

생각보다 안재성과 이야기 나누는 게 화기애애했다. 그래서 내가 바로 본론을 꺼냈다.

“오늘 오신 건 계약을 하려고 오신 건가요?”

“계약이라기보다는 좀 더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서요. 물론 의사도 조금 있기도 했고요.”

“이야기요?”

“네.”

“어떤 이야기를 원하시는지…?”

안재성이 무슨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 하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배우가 인지도와 화제성이 뛰어나면 배우가 갑이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면 배우는 한없이 을에 가까워진다. 아니, 오히려 병정일 수도 있다.

지금 안재성의 위치는 을도 안 되는 병정이다.

“제가 계약을 하게 된다면 매니저님이 전담하시나요?”

“그건 저도 확답을 드릴 수는 없을 거 같아요. 이런 경우가 저도 처음이라….”

“그런가요. 그건 좀 아쉽네요.”

안재성이 무척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쉬워하는 안재성을 보니 내 기분이 참 묘했다.

“그래도 작품에 대한 정보를 얻기는 좋으니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물론 어디 작품에 꽂아 주겠다! 라는 건 확답드릴 수 없지만요.”

“그렇죠. 제가 지금 뭐 필모그래피가 되는 게 아니니까요. 그래도 제가 작품을 고를 권한이 있는 건 아니지만 많은 도전 기회는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요.”

안재성도 본인의 위치는 자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확실히 될성부른 떡잎은 다른 것 같다. 마음에 들었다.

“그건 괜찮을 거 같아요. 혼자서 정보 얻으시는 것보단 아무래도 회사에서 오디션이라던가, 작품에 관한 정보가 더 빠르니까요. 그리고 이번에 드라마랑 영화가 각각 흥행이 된 편이라 회사로 들어오는 작품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죠. 화랑도 기세 타서 잘되고 있고, 마녀는 두말할 것도 없고요.”

내 말에 안재성도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럼 이제 떡밥은 걸어 놨으니 던져볼 차례다.

“네. 그럼 계약은…?”

“매니저님이 안 맡아주시는 게 걸 리긴 합니다만 저야 이런 큰 기획사랑 할 수 있으면 저야 좋죠.”

“그럼 계약에 관련한 건 제가 확답을 드릴 수 있는 부분이 아니어서요. 회사랑 이야기해 보고 연락드려도 좋으실까요?”

“네. 그렇게 하세요.”

안재성에게서 긍정적인 답변은 받았다. 그럼 이제 회사의 스탠스를 확인할 차례인데, 어떻게 해야 할까.

“기다리신 거에 비해 이야기를 나눈 시간이 너무 짧게 끝난 것 같네요. 혹시 더 이야기하실 게 있으신가요?”

“아니요. 딱히 없는 것 같네요.”

“네, 알겠습니다.”

안재성의 답변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안재성과 악수했다.

“좋은 소식 기대합니다.”

“하하하, 저도 그렇게 연락드리고 싶네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네. 고생하세요.”

안재성이 바깥으로 나가자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이야기해야 끌어안을 수 있을까. 일단은 부딪혀 봐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 * *

“뭐라냐?”

안재성과의 미팅 후 4팀 사무실에 돌아오니 이진성이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퇴근 안 하셨어요?”

“어, 일이 좀 남아서. 그래서 누구야?”

“희진이 영화 촬영하면서 봐둔 사람이었거든요. 어제 촬영 끝나고 우리 회사 어떠냐고 슬쩍 찔러봤죠.”

“진수가 말해줬던 거 같은데 맞아?”

“네.”

이진성이 남진수에게서 안재성에 관해 들은 모양이었다.

“넌 어떻게 생각하는데?”

“포텐셜 높은 친구라고 생각해요. 아직 무명이지만 분명히 뜰 조건은 갖춘 친구예요. 마스크도 훤칠하고 연기력도 괜찮고요.”

이진성이 관심이 있는 듯 내게 안재성에 관해 묻기에 대답했다.

이진성은 내 대답을 듣고는 계속 고민하는 눈치였다.

“흠. 그래?”

“네.”

“너는 낚는 게 좋겠다는 거지?”

“네.”

내 대답에 이진성이 슬며시 간을 보면서 말했다. 지금 이야기를 꺼내려는 주제가 이진성이 하고 싶은 말인 듯했다.

“너도 알다시피 우리 회사 배우 풀이 그렇게 넓은 편은 아니야.”

“알고 있습니다.”

“예진 씨 말고는 대부분 조연급이니까. 아, 승기 씨도 주가가 이번에 올라가긴 했네.”

헥사곤 대표 배우라고 하면 딱 떠오르는 인물이 없다.

지금에 와서야 그나마 이예진이나 홍승기를 쳐줄 수 있을지도.

“네. 알고 있습니다. 사실 헥사곤은 어비스로 큰 거잖아요.”

“맞아. 대표님이 배우 풀을 넓히려고 데리고 온 거니까. 예진 씨는 대표님이 데리고 온 것이거든.”

“아하.”

이 부분은 나도 모르던 사실이었다.

확실히 정인수 대표가 수완이 좋은 거 같긴 하다.

“사실상 배우팀을 맡고 있는 건 차 팀장 한 명이 다이기도 했고.”

“아….”

“그래서 말인데 너 배우 매니지에 관심 있냐?”

여기가 왠지 내 선택의 기로가 될 것 같다.

근데 신중할 필요가 있나? 사실인데.

“없다고 하면 말이 안 되겠죠? 그렇긴 해요.”

“이번에 안재성 영입도 해보고 싶고?”

“네.”

“케어는 누가 하고? 너 지금 스타즈 맡고 있잖아.”

“사실 배우가 작품 생기거나 인지도 생기기 전까지는 매니저가 크게 필요 없잖아요. 안재성도 그렇고요. 천천히 작품 고르면서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렇단 말이지?”

내 말에 턱을 쓰다듬는 이진성의 모습에서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그리고 마치 지금까지는 나를 떠본 듯한 느낌이었다.

“그럼 너 지금 대표실 올라갔다 와.”

“네?”

여기서 대표실이 또 왜 나와?

내가 황당해하자 이진성이 말을 이어갔다.

“나도 자세한 건 모르겠고, 오늘 계약 때문에 배우가 찾아왔다는 이야기가 대표님한테 들어간 모양이야. 연락 왔었거든.”

“네.”

“근데 누가 데리고 온 건지 물으시길래 너라고 하니까 네가 안고 갈 자신 있다고 하면 올려 보내라더라.”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그럼 안재성 계약을 할 수 있는 건가요?”

“글쎄, 거기까진 나도 모르겠어.”

“그럼 지금 대표실에 올라가라고 하시는 거예요?”

“어, 올라가서 말해봐. 대표님 아직 퇴근 안 하셨거든.”

나보고 사라지라며 이진성이 손을 내젓고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일이 묘하게 흘러가는 것 같다. 그러면 지금은 정인수 대표를 만나러 갈 때인가?

* * *

“들어가겠습니다.”

“그래.”

안에 들어가니 대표실 의자에 앉아 서류를 보고 있는 정인수 대표가 보였다.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서자 정인수 대표가 말했다.

“거기 앉아 있어. 잠깐 보던 거만 마저 볼 테니까.”

“네.”

정인수 대표가 눈짓한 소파에 앉아서 찬찬히 대표실을 둘러봤다.

예전에 처음 이곳에 왔을 때와 다른 게 없었다.

잠깐의 시간 동안 대표실을 구경하고 있자 정인수 대표가 내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그래, 배우 하나 계약해보고 싶다고?”

“제가 주제가 되는 건 아니지만 성장 가능성이 있는 배우라 추천하고 싶습니다.”

“누군가?”

정인수 대표가 눈을 빛내며 물어왔다.

“희진이랑 같이 촬영을 했던 안재성이라는 친구입니다.”

“필모그래피라도 있나?”

“아니요. 내세울 만한 필모그래피는 없습니다만, 현장에서 봤을 때 배우로서 잠재력은 높다고 판단했습니다.”

내 말에 정인수 대표가 고개를 미미하게 끄덕이더니 소파 등받이에 기대며 말했다.

“그래? 흐음. 잠깐 영입 건은 제쳐두고 영화 이야기 좀 해볼까? 거기에 우리 자본이 투자된 건 알지?”

“네.”

“사실 이익이 크게 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어. 상업영화와 독립영화 중간에 있는 애매한 작품이잖아.”

“네.”

“근데 내가 투자를 한 건, 네가 뭘 보고 들이밀었을까 싶었기 때문이었어. 물론 나도 확인했을 때 나빠 보이지 않기도 했고.”

“네.”

정인수 대표가 뭘 말하고 싶은 것인지 감이 안 왔다. 지금 정인수 대표의 앞에서 나는 예스맨이었다.

“예진이가 영화 촬영에 도와줬다지?”

“네.”

“알고 기획한 건가?”

“선배님까지 영화에 합류할 줄은 몰랐습니다.”

“자기가 하고 싶다는데 말릴 생각은 없었어. 뭐 좋아. 그리고 영화에 투자한 제작비는 어중간한 체급이긴 하지만 그간 제작 보고서 올린 현황으로 따지면 꽤 그럴싸한 영화인 것 같단 말이야.”

생각보다 정인수 대표가 영화에 관심이 많은 눈치다.

아직은 정인수 대표가 무슨 말을 할지 몰라 눈치를 살피면서 가만히 있었다.

내가 아무 말 않자 정인수 대표가 자세를 똑바로 하며 말을 꺼냈다.

“좋아. 배급에 관해서는 나도 한번 힘 써보지.”

“네?”

정인수 대표의 말은 조금 놀라웠다. 회사가 배급에 힘을 쓸 수도 있나 싶었다.

그리고 스치듯 떠올렸다.

가능하겠구나. 모회사 힘을 얻으면.

“우리도 이득을 남길 수 있으면 남겨야 할 거 아니야? 영화 괜찮게 찍었다면서? 편집이 남았다지만 붙어 있는 게 이신형 감독이면 큰 문제는 없을 거고. 영화에 기대를 크게 안 했지만 그간 보고 받아본 걸 보니 괜찮은 것 같고.”

“…….”

확실히 영화 스크린 확보가 된다면 더 날개를 펼 수 있겠지. 게다가 예전보다 더 퀄리티 좋은 영화가 나올 거라고 나는 확신한다.

나는 아무 말 하지는 않았지만, 정인수 대표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래, 이 문제는 이렇게 일단락 짓고. 배우 영입을 하고 싶다라….”

“충분히 먹힐 만한 배우입니다.”

정인수 대표의 의중은 모르겠지만 안재성은 좋은 배우다.

지금이야 무명이지만 영화가 개봉된 후라면 다르다. 내 심정으로는 그전에 잡고 싶다.

그래서 그 의도를 담아 이야기를 했는데 정인수 대표가 뜻밖의 말을 꺼냈다.

“그럼 네가 키워볼 생각인가?”

“네?”

“그게 아니면 왜 데려 오려고 해?”

맞다. 남에게 주기에는 아깝다.

미래의 충무로 블루칩 아닌가.

“할 수 있다면 제가 해보겠습니다.”

“스타즈는 어쩌고?”

“스타즈 활동 기간 동안 안재성이 그렇게 바쁠 거 같지는 않습니다. 같이 맡아서 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그래?”

“네.”

내 말에 정인수 대표가 흥미가 돋은 듯했다. 정인수 대표가 상체를 내게 가까이 숙였다.

“내가 예전에 이야기했지? 네 능력을 보고 싶다고.”

“네.”

“사실 나는 스타즈 애들보다 네 행보를 보는 게 더 재밌어.”

“네?”

“재밌잖아. 핫바리가 어디까지 클 수 있을까? 하고.”

정인수 대표가 조금 독특하다고 생각했다. 보통은 연예인에게 더 신경 쓰지 않을까 싶다.

“그게….”

“아니야. 나쁘다는 게 아니야. 기회를 줘도 못 먹는 등신들이 많거든. 그런 면에서 넌 아주 훌륭해. 원래 이 바닥은 저돌적으로 먹어치우는 놈이 장땡이야.”

지금까지 내 행보가 저돌적으로 먹고 있는 거였을까?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자신 있으면 데리고 와. 내가 전에 말했지? 팀장, 아니 실장 자리까지도 생각해줄 수 있다고.”

“…….”

정인수 대표의 말에 기쁘기보다는 뭔가 묘했다. 그리고 이상했다.

“그거 빈말 아니니까 납득할 만한 성과를 꾸준히 만들어 와봐. 지금까지는 조금 부족해. 대신 지금까지 해온 게 있으니 성과급은 지급할 거야. 4팀 전체에게 주겠지만 너는 좀 더 들어갈 거고. 이번에 노래 터진 게 노났거든.”

“감사합니다. 근데 궁금한 게 하나 있습니다.”

묘하고 이상한 느낌을 떨쳐내고 싶었다.

정인수 대표가 말해보라며 턱짓했다.

“저에게 이렇게 하시는 이유가 뭔지 알 수 있습니까?”

내 말에 정인수 대표가 크게 웃었다. 그러고는 말했다.

“이유? 재밌잖아. 성과도 나쁘지 않고. 그게 다야.”

“…….”

그저 재미있으므로? 성과가 좋았기 때문에?

정인수 대표의 속내를 알 수가 없었다.

“부담되나? 싫어?”

“아닙니다.”

“그럼 지금까지 하던 대로 해. 이 바닥에 너 같은 놈도 한둘은 있어야 재밌지.”

“…….”

정인수 대표의 말에 뭐라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정인수 대표가 그런 나를 보고 껄껄 웃으며 말했다.

“그럼 그 친구랑은 표준 계약서 받아서 진행해. 뭐 더 챙겨주고 싶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

“네.”

“그래, 가봐.”

정인수 대표에게 인사를 하고 대표실을 나왔다.

그리고 4팀 사무실로 돌아와 퇴근 준비를 하며 생각했다.

바뀌고 있는 건 스타즈뿐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그럼 더 가열차게 놀아볼까.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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