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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도 다시 매니저!-110화 (110/200)

제110화. 3계절 (1)

“드디어 마지막 촬영이다!”

신희진이 도시락을 먹다 말고 숟가락을 번쩍 들면서 말했다.

“그게 그렇게 좋아?”

“당연하죠.”

오늘 촬영장 올 때부터 유독 들떠 있더니 배에 밥까지 들어가니 참지를 못한 모양이었다.

“별 느낌 안 날걸? 실감 잘 안나.”

그래도 너무 들뜨면 연기에 지장이 갈까 싶어 브레이크를 걸었다.

“그럼 언제 실감 나는데요?”

“영화 크레딧까지 봤을 때. 그전까지는 목에 걸린 가시처럼 계속 신경 쓰일걸. 근데 연기자는 모르겠다. 난 그랬어.”

“저도 신경은 쓰이겠죠. 근데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이번이 처음이라.”

나는 그랬다.

촬영이 끝나도 끝난 게 아니었고 영화 엔딩 크레딧까지 삽입하고 완성된 영화를 봤을 때 그제야 끝났다는 실감이 났다.

물론 연기자들은 좀 더 다르기야 하겠지.

도시락을 먹으면서 신희진이 중얼거렸다.

“오늘 촬영 끝나면 진짜 먹을 거 다 먹어야지.”

“언제는 안 먹은 것처럼 이야기하네?”

신희진이 중얼거린 말이 솔직히 좀 어이없었다.

먹고 싶은 거 다 먹었으면서.

“자제했었거든요!”

“퍽이나.”

“어? 진짠데. 멤버들한테 물어봐요.”

내 말에 억울하다는 표정을 한껏 지으며 온몸으로 토로했다.

게다가 얼마나 억울하게 느낀 건지 손이랑 발이랑 동동 구르면서 포효했다.

“너 살도 안 찌잖아. 근데 먹고 싶은 걸 안 먹었다고?”

“그건 활동량이 있으니까 안 찌는 거구요. 저도 비활동기에 아무것도 안 하면 찌거든요?”

“그래?”

“네.”

마냥 안 찌는 체질인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니었던 모양이다.

내가 아무 말 않자 씨익씨익거리던 신희진도 얌전히 남은 도시락에 집중했다.

그사이에 나는 대본을 들고 오늘 마지막 장면을 다시 한번 봤다.

“잡았다.”

“네? 뭐가요?”

갑작스러운 내 말에 신희진이 깜짝 놀라 했다.

“마지막 장면 말이야. 현승이가 하는 대사로 ‘잡았다.’ 어때?”

“무슨 의미예요?”

내 말에 신희진이 호기심을 비췄다.

그런데 내 말의 의미를 바로 알아채진 못한 것 같았다.

“배우면 바로바로 눈치채야지. 너 술래잡기하자고 한 다음 둘이 못 만나잖아. 그리고 엔딩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현승이가 연희를 보는 장면이고.”

“어… 음…. 그렇죠.”

“그러니까 처음 만났을 때 회상 들어가고 다시 돌아오고 끝나잖아. 근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마지막에 손만 잡는 건 느낌이 안 사는 것 같아서.”

“흐음.”

내 말에 신희진이 눈을 감고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전 괜찮은 거 같은데요?”

상상이 다 끝났는지 신희진이 다시 한번 자신의 대본을 찬찬히 훑어보면서 내게 말했다.

“그치?”

“오빠가 한번 말해 봐요. 감독님이랑 친구라면서요.”

“글쎄….”

나도 이진철에게 말할까 고민을 했었다.

그러나 이걸 신희진에게 이야기한 건 다른 게 아니었다.

“나보단 네가 말하는 게 좋을 거 같다.”

“왜요?’

“친구긴 해도 작품에 이야기하는 건 너무 주제 넘는 거 같아서. 차라리 직접 작품에 참여하고 연기하고 있는 배우가 말하는 게 더 낫지. 내가 직접 영화에 참여한 스태프라면 말해 보겠다만….”

“제가 이야기해 보라고요?”

내 말에 신희진이 눈을 커다랗게 떴다.

“지금까지 촬영하면서 종종 이야기 나누면서 바꾼 컷들도 있으니 아마 괜찮을 거야.”

이진철도 그렇게 깐깐한 연출가는 아니다.

좋은 의견이라면 주체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래도 배우가 이야기하는 것과 매니저가 이야기하는 건 모양새가 다르다.

내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신희진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저도 오빠가 말한 게 더 마음에 들긴 하는데… 알았어요. 이야기해 볼게요.”

“그래. 어차피 오늘 재성 씨도 마지막 촬영이라고 온다고 했으니까.”

“근데 그거 찍겠다고 하면 어떻게 해요?”

신희진이 내게 궁금한 점을 물었다.

신희진이 하는 말의 요지는 이미 찍었던 장면인데 어떻게 하냐는 거였다.

엔딩 장면은 첫날 이예진이 있을 때 몰아 찍었다.

“뭘 어떻게 해. 다시 찍어야지. 의상은 가지고 다니니까 괜찮을 것이고 마침 마지막이라고 촬영 일정 끝났는데도 오잖아.”

“그때 위치나 구도, 날씨 이런 거 다 다르잖아요.”

“그건 연출부에서 알아서 할 거야. 그때 찍어놓은 클립도 있을 것이고. 스크립터가 왜 있겠어? 혹시 추가 촬영이나 다시 찍어야 하면 스크립북 찾아서 재배치하고 찍는 거지, 뭐.”

내 말에 궁금증이 풀린 듯 신희진의 얼굴이 밝아졌다.

“아하, 전 그냥 컷 사이마다 더블 액션 안 맞는 거만 알려주시는 분인 줄 알았어요.”

“너는 그런 거 신경 쓸 필요 없어. 오늘 마무리 잘할 생각이나 해. 선배님이랑 호흡 맞추는 건 좀 다르니까.”

“네, 네. 알고 있다고요.”

내가 잔소리하자 신희진의 입이 댓 발 튀어나왔다.

내가 괜한 잔소리를 하는 게 아니었다.

지금까지 신희진이랑 호흡 맞춘 사람들은 연기 경력이 엄청 많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런지 신희진도 그렇고 상대 배우들도 그렇게 서로 어려워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예진은 경우가 조금 달랐다.

예전에 이예진과 처음 촬영했을 때는 감정이 터지는 장면이 거의 없었다. 호흡도 주로 안재성과 맞췄었고. 그래서 별 탈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감정이 터지는 장면밖에 없다.

게다가 이번 촬영의 주는 이예진과 신희진이다.

또 둘의 감정선을 확연하게 건드리는 촬영이기도 했다.

그래서 뒤에 촬영하는 것이기도 했다.

얼마 남지 않았으니 학교라도 가보고 싶다는 연희.

그리고….

살고 싶다고 연화에게 울부짖는 연희.

이렇게 두 장면이 오늘의 하이라이트다.

오늘 촬영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신희진이 내게 빈 도시락을 들이밀었다.

“저 그럼 지금 감독님한테 말하고 올게요.”

“지금?”

신희진에게서 빈 도시락을 받으며 말했다.

“네. 나중에 가면 말할 시간 없을 거 같은데요.”

“그래. 알았어.”

신희진이 내 대답을 듣고는 이진철과 이신형 감독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촬영하면서 스태프나 배우들이나 두루두루 많이 친해졌다.

그래서 지금의 행동도 할 수 있었다.

내 눈에 둘에게 생기발랄하게 말하는 신희진이 보였다.

그와 함께 이신형 감독도 이진철도 신희진을 보며 환하게 웃는 모습도.

그렇게 신희진이 재차 이야기를 꺼내자 웃음기가 사라지고 진중하게 듣는 모습이 보였다.

신희진의 입이 앙다물어지고 이신형 감독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내 눈에 보였다.

이진철은 생각에 잠긴 듯한 모습이었고.

잘 됐을까?

그냥 같이 가서 이야기할 걸 그랬나?

이내 이진철이 무어라 말하는 모습이 보였는데 신희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둘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내 쪽으로 다가왔다.

“뭐래?”

“생각해 보시겠대요!”

다행히 의견까지는 수용한 것 같았다.

이걸 작품에 수용할지는 연출가의 몫이다.

“근데 될 것 같아요. 이신형 감독님이 긍정적이시던데요?”

“그래?”

“네.”

신희진은 아무렇지 않게 내게 말하며 본인의 대본을 봤다.

어떻게 할지 궁금하다.

찍을까? 아니면 그냥 원안으로 갈까?

그리고 내가 이렇게 손대는 게 맞을까? 하는 걱정도.

어찌 됐든 선택은 감독의 몫으로 넘어갔다.

내가 하염없이 엔딩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현장이 어수선해졌다.

“오셨나 봐요.”

신희진의 말과 함께 입구에서 이예진이 들어오는 게 보였다.

이예진이 나타남과 동시에 나는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가을’의 마지막 촬영이 시작되겠구나 싶었다.

* * *

“꼭 가야겠니?”

병실에 누워 있는 연희를 보며 연화가 말했다.

“언니…. 나 대학교는 꼭 가고 싶어. 알잖아. 그래서 시험 본 거구.”

“그래도 몸이 먼저야.”

울 듯한 표정의 연희였지만 연화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그나마 몸이 정상적일 때 다녀보고 싶어.”

연희가 침대보를 들썩이며 연화에게 토로했다.

그런 연희를 보고 연화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수술하고 가도 늦지 않아.”

“나 바보 아니야. 수술 성공해도 의식 회복 못 할 가능성 큰 거… 나도 알아.”

“연희야….”

덤덤하게 말하는 연희의 목소리와 반대로 연화의 목소리는 떨렸다.

“부모님 그렇게 떠나시고 언니가 나 업어 키운 거 알아. 항상 고맙게 생각해. 하지만… 어릴 때 엄마가 환하게 웃으면서 대학생 때 아빠랑 만났던 이야기하는 게 아직도 생각나.”

연희가 젖은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이내 연화의 눈을 또렷이 바라봤다.

“그러니까… 나도 한번 대학교 생활 해보고 싶어.”

“정말 별거 없다니까?”

“별거 없는 그거 해보고 싶다고!”

마치 창과 방패의 대결처럼 둘의 이야기는 평행선을 달렸다.

“연희야….”

“…….”

시위하듯 입을 꾹 다물고 연화의 시선을 피한 연희.

“그럼 하나만 약속해.”

“싫어.”

연희가 연화의 말에 여전히 시선을 회피하면서 대답했다.

“안 하면 끝이야.”

“그것도 싫어.”

“언제까지 애처럼 굴래? 성인 되고 싶다며?”

“…….”

간곡한 연화의 말에 연희가 고개를 휙 돌렸다.

그러다 슬며시 연화를 바라보며 물었다.

“…뭔데.”

“학교 다니면서 악화되면 바로 다시 입원할 것. 그거 하나만 약속해.”

“…알았어.”

연희가 마지못해 수락한다는 듯 말했다.

그런 연희를 보며 연화가 한숨을 쉬었다.

“언니. 근데 있잖아… 대학교 가면 운명 같은 사랑 할 수 있을까?”

“그거 다 드라마야. 괜히 드라마겠어?”

연화가 철없다는 듯 나무랐다.

“엄마 아빠는 만났잖아.”

“가끔은 그런 일도 일어나겠지. 근데 평범하지는 않아.”

“그렇구나.”

그 말에 무언가를 떠올리는 듯 연희가 부끄러워했다.

연화가 그런 연희를 보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꿈 깨. 넌 그럴 일 없으니까.”

“나 이래봬도 매력적이거든?”

“웃겨, 정말.”

티격태격하면서 우애 좋은 자매의 모습이었다.

이 장소가 병상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컷!”

이진철의 힘없는 컷 소리가 들렸다.

이진철의 목소리가 힘이 없는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 찍는 장면이 무려 6테이크나 왔기 때문이었다.

테이크가 길어진 이유는 조금 미묘했다.

이예진의 연기가 묘하게 어색했기 때문이다.

이진철이 조금씩 돌려 말하면서 다시 찍고 있었지만 테이크가 길어지는 원인은 이예진의 묘한 연기 때문이었다.

나는 처음 NG가 났을 때는 이예진과 신희진이 호흡을 못 맞추는 줄 알았고, 그다음에는 이예진이 아직 몸이 덜 풀려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회수가 반복되다 보니 고의적이라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도 네 번째에부터는 왜 그러는지 눈치를 챘다.

흔히 베테랑 배우와 신인 감독이 만나면 종종 나오는 일이다.

기 싸움.

즉, 작품에 대한 주도권 싸움이었다.

대개 영화나 드라마나 감독이 갑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틀리다.

노련한 베테랑 배우는 어지간한 감독보다 연출적인 측면이나 작품을 보는 눈이 뛰어나다.

그렇지만 감독은 배우에게 먹히면 안 된다.

감독이 작품에 확신이 없거나 자신이 맡긴 캐릭터를 제대로 파악하고 보지 못한다면, 종종 배우에게 시험을 받기도 한다.

감독의 자질을 의심하는 시험.

미묘하게 연기를 엇갈리게 해서 감독이 제대로 연출을 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시험.

지금 같은 경우에도 이예진의 표현은 한 끗 차이였다.

안타까운 슬픔. 분노의 슬픔.

슬픔에도 감정이 다양했다.

이 미묘한 차이를 캐치하는 게 감독이고 그게 작품의 질의 향상에 이어진다.

“선배님. 시험은 여기까지 하시죠.”

“어머, 티 났어요?”

이예진이 싱그럽게 웃으며 이진철에게 말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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