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도 다시 매니저!-109화 (109/200)

제109화. 화랑 (2)

짝짝짝.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가자 관객들이 힘차게 박수를 쳐줬다.

박수 소리와 함께 주요 배우와 감독이 앞으로 나왔다.

그중에는 린도 있었고.

영화는 다행히도 감독이 신파를 싹 걷어 냈다.

그건 적당히 돈 주고 볼 영화 정도까지는 왔다는 이야기였다.

괜한 감독의 고집으로 인해 망가지는 영화가 수없이 많지만, 화랑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충재 감독이 꽉 막힌 감독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작품에 참여한 사람들에게나 나에게나.

관객들의 표정도 지루했다는 표정보다는 재밌게 본 얼굴들이었다.

“안녕하세요. 화랑의 감독 이충재입니다. 재밌게 보셨나요?”

네.

“하하하, 다행이네요. 즐거운 관람 되셨다니 저는 만족합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화랑에서 무성 역을 맡았던 김진성입니다. 오늘 영화 정말 즐겁게 봐주셨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습니다.”

“안녕하세요. 화랑에서 무호 역을 맡았던 홍승기입니다. 여러분 사랑합니다!”

그리고 몇 명 더 거치고 마지막으로 린의 자기소개 차례가 되었다.

“안녕하세요. 화랑에서. 린 역할을 맡은. 린입니다. 이런 자리에. 불러 주셔서. 감사하므니다.”

린의 마지막 말에 나도 그렇고 관객들도 웃었다.

떨림에도 불구하고 꽤 또렷이 발음하는 린이었지만, 이런 자리가 처음이라 그런지 마지막에 감사하다고 말하는 발음이 먹혀 버렸다.

발음이 먹히자 린은 얼굴이 화끈거리며 부끄러워하는 것 같았다.

린의 인사를 끝으로 관객들은 스크린 앞에 있는 배우와 감독의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주위를 쓱 둘러보니 배우들보다 오히려 린을 찍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았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착각인가 싶기도 했지만 린이 워낙 눈에 띄어서 착각 같지는 않았다.

남자 다섯 명에 여자 한 명이면 눈에 띌 수밖에 없지 않을까.

“모쪼록 오늘 영화 관람이 즐거우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귀중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독의 말에 배우들이 꾸벅 인사를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나도 그 모습을 보고 벌떡 일어났다.

바로 주차장으로 나간다고 했으니 가서 기다려야겠다.

영화관 바깥으로 나오니 인파가 상당했다.

소란스러운 걸 보니 배우들 이동 동선에 맞춰서 인파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비상계단을 통해서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주차장에서 기다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하나둘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중에 린의 모습도 보였다.

린이 나를 발견하고는 내 쪽으로 다가왔다.

“별일 없었지?”

“네.”

“영화는 어땠어?”

“재밌었어요.”

린이 웃으며 말했다.

의상 때문인지 린의 모습에 적응이 안 됐다.

린의 눈만 보고 이야기해야겠다.

“관객 인사해본 경험은 어때?”

“무대랑. 다른 기분…?”

“언니들한테 자랑해. 이런 경험 또 못하니까.”

“네!”

린이랑 희희낙락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우리 곁으로 누군가 다가왔다.

“아, 스타즈 린 씨 관계자 됩니까?”

“네. 매니저입니다. 무슨 일이시죠?”

“화랑 제작사 에너미 필름 총괄 PD 오종수입니다. 다른 게 아니라 혹시 화랑 식구끼리 저녁에 식사 자리가 있는데 참석하실 수 있으신가 해서요.”

오종수의 말에 조금 솔깃했다.

영화계 인맥 쌓을 기회라 린한테도 나쁜 기회는 아닐 것 같다.

스케줄도 이 이후로 딱히 있는 것도 아니었다.

긍정적으로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누군가 내 어깨를 짚었다.

“너 스케줄 있다면서? 안 가?”

“네?”

목소리의 주인은 홍승기였다.

내가 홍승기를 바라보자 홍승기가 오종수를 흘깃하고는 눈을 굴리며 내게 눈치를 줬다.

위치상으로는 오종수가 홍승기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위치였다.

“아, 가야죠. PD님 죄송한데 스케줄이 있어서요.”

“그래요? 아쉬운데요. 어떻게 안 되나요?”

“단체 스케줄이어서요. 죄송합니다.”

“그럼 어쩔 수 없죠.”

일단은 홍승기의 눈치대로 따르기로 했다.

이유가 있겠지.

오종수가 아쉬워하는 눈치를 팍팍 풍겼지만, 홍승기의 눈치가 마음에 걸렸다.

“린아, 차에 타. 가자.”

“네.”

린도 다행히 내 눈치에 따라 행동해줬다.

차에 탄 뒤에 핸드폰을 꺼내 홍승기에게 문자를 남겼다.

“무슨 일. 있어요?”

린도 조금 전 일이 의아했는지 내게 먼저 물어왔다.

“나도 모르겠다. 알아보는 중.”

스케줄 있다고 했으니 여기서 마냥 기다릴 수도 없고 일단 출발해야 하나.

“일단 여기 벗어나서 잠깐 다른 곳에 차 세우고 좀 알아볼게.”

“네.”

VIP 시사회가 열린 영화관에서 벗어나서 갓길에 차를 댔다.

홍승기에게 전화해볼까 고만하던 찰나에 전화가 왔다.

“린아. 잠깐만 전화 좀 받고 올게.”

“네.”

차에서 내려 홍승기의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 있어요?”

- 아, 딴 게 아니라 그거 평범한 식사 자리가 아니야.

전화를 받자마자 홍승기가 용건을 꺼냈다.

홍승기의 말이 조금 의아했다.

식사 자리가 아니라니.

“네?”

- 그거 접대 자리야.

“아….”

- 괜히 엮였다가 피 보지 말라고.

“감사합니다, 형.”

홍승기의 말을 듣고 벼락 맞은 기분이었다.

어쩐지 너무 아쉬워하더니 이유가 있었구나.

내가 고맙다고 말하자 핸드폰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 아냐. 같은 식구잖아.

“오늘 멋있었어요.”

- 고맙다.

“작품은 아직 안 들어가세요?”

- 영화가 터져야 작품이 들어오지. 괜찮은 건 다 이미 주인이 있더라.

홍승기의 말에서 화랑 이후로 딱히 작품을 못 구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홍승기도 이번에 화랑이 터지면 뭐 하나 하겠지.

배우들이 쉼 없이 작품을 하는 건 다른 이유가 아니다.

한번 물꼬를 트면 작품이 계속 들어오기 때문이다.

물론 못 뜨면 또 제로부터 시작한다.

“오늘 반응 괜찮던데요?

- 그러게. 나도 오늘 처음 봤는데 괜찮더라. 느낌이 좋아.

“잘되면 제 덕인 거 잊지 않으시죠?

- 그래서 지금 도와준 거 아냐.

“이거론 약하죠.”

영화가 꽤 잘 나와서 그런지 서로 이야기하는 게 훈훈했다.

졸작이라고 생각했으면 훈훈한 게 아니라 날이 서 있었을 텐데.

- 알았어. 나중에 술 사줄게. 그리고 나 작품 들어갈 때 얘기 좀 하자.

“형이랑 술은 좀… 작품은 왜요?”

- 나랑 먹기 싫어? 많이 컸다? 작품은 들어갈 거 고를 때 좀 도와달라는 거고.

“형이랑 먹으면 제가 일상생활이 힘들어져요. 작품은 회사에서 분석해서 골라주거나 형이 마음에 드는 거 고르는 게 아니에요?”

- 와, 단호한 거 봐라? 내가 그렇게 먹이디? 난 해치지 않아요. 작품은 나도 덕 좀 보려고. 너 꽤 평판이 좋더라.

홍승기가 영문 모를 소리를 했다.

“제가요?”

- 그래. 저번에 예진 누나 만나서 술 한잔했는데 네 이야기 나와서 물어보니까 꽤 유명하더라고?

“제가…요?”

뭐야, 이건 또.

나도 모르는 새에 무슨 소문이 퍼진 거야.

- 나도 덕 좀 보자.

“제가 한 건 없는걸요. 뭘.”

- 아, 됐어. 작품 고를 때 연락할게.

“형.”

홍승기가 내가 말하기도 전에 끊어버렸다.

골치 아프네.

지금까지 미래의 정보를 바탕으로 골라준 것도 있지만, 그래도 내가 안목이 나쁜 편은 아니다.

이건 나중에 생각해봐야겠다.

내가 작품에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그건 그렇고 이쁘게 입고 오라는 것도 이런 의미였나.

이유 없는 호의는 없구나.

시간이 좀 애매하게 남았는데 숙소 바래다주면 되려나.

남진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 왜? 무슨 일 있어?

“아뇨. 시간이 애매하게 남아서요. 숙소 데려다주고 퇴근하면 될까요?”

- 그렇게 해.

“알겠습니다.”

오늘은 나도 칼퇴근이구나.

- 기사 나갔는데 린이 이쁘더라.

“실제로 보셨으면 더 그렇게 느끼셨을걸요.”

- 아쉽네. 아, 그리고 너 월별 리포트 다 썼어? 업무용 파일 뒤져보니까 없던데?

칼퇴근을 좋아함도 잠시였다. 업무가 남아 있는 걸 생각하니 급격히 기분이 안 좋아졌다.

회사보다는 그래도 집이 낫지.

“월별 리포트는 집에서 작성해서 내일 올리겠습니다.”

- 그래? 알았어. 들어가고 내일 보자.

“네.”

남진수와의 전화를 끊자마자 한숨이 나왔다.

린이 데려다주고 얼른 집에 가서 업무 봐야겠다.

차에 타자마자 린이 물어왔다.

“뭐예요?”

“아냐. 별거 아니더라. 그냥 자리가 안 좋은 자리래.”

“아… 네.”

이 바닥이 원래 더럽다는 건 알고 있지만 린의 나이가 몇인데.

밥만 먹는 자리라고 해도 접대성 식사와 편히 먹는 식사는 다르다.

애들에게 때가 묻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숙소로 바로 갈게.”

“네!”

차를 출발하면서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 * *

집에 들어와 씻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집에 와서 업무라니 고달프네.

오늘 스케줄이 있던 린부터 시작해야겠다.

연예란에 오늘 자로 화랑 시사회에 관련된 내용이 있었다.

내용은 평이했다.

이번 여름에 기대되는 충무로의 액션 사극이라는 평이었다.

댓글에서 배우와 영화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지만, 눈에 띄는 건 역시 린이었다.

[와 존예네.]

└원래 저렇게 예뻤음??

└뭐가 이쁨? 그냥 전형적인 중국인인데 눈 삠?

└거울보고 와라

└영화 재밌나??

└보고 왔는데 괜찮음. 시원시원함.

└중간에 이상한 신파가 조금 껴 있는데 그럭저럭인 듯. 요즘 나오는 영화 중에는 가장 볼만함. 그리고 여자애는 오지게 이쁘게 나옴.

영화에 관한 평은 대체로 호의적인 반응이다. 린에 대한 평도.

린의 대외적인 활동은 이거 말고는 딱히 없었다. 다음은 유코랑 미소를 찾아볼까.

[사랑스러운 두 명의 소녀들]

유코랑 유미소도 금방 자료가 나왔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약한 이야기였는데 케미가 좋고 예능 블루칩으로 떠오른다는 이야기였다.

└유자매들 살살 녹는다

└유코야 나죽엌ㅋㅋㅋ 엌ㅋㅋㅋ

└유코한테 누가 저런 개그 알려줬냐???

└없던 캐릭이라 신선하고 좋은데

└얘네 예능은 서지영 원톱인 줄 알았는데 얘네도 예능 잘하네;;

나도 똑같은 생각을 했다.

의외의 재능이다.

방송 활동이나 외부 활동이 없는 서지영과 박혜연은 따로 화제성이 높은 이야기가 없었다.

단지 Y앱을 꾸준히 하면서 얼굴을 비춰줘서 그나마 팬들이 꾹꾹 참고 있는 정도였다.

이나라도 말이 많았지만, 다음 주에 방영되는 댄싱 투나잇에 관한 정보가 풀리자 팬들의 떡밥은 댄싱 투나잇 쪽으로 돌아갔다.

└댄싱 투나잇 정보 아는 사람??

└그거 서로 퍼포먼스 대결이라고 함

└나라 춤선 대박 이쁜데 제작진이 혜안이 좋은 듯

└방송 기대 중

확실히 상승세를 타니까 팬들도 여유롭고 관대하구나 싶었다.

망했었을 때는 정말 악의 가득 찬 이야기와 회사 탓밖에 없었는데.

마지막으로 신희진에 대한 이야깃거리가 없나 싶어서 뒤적여 보았지만, 영화 처음 찍을 때 나왔던 정보 말고는 찾을 수가 없었다.

드문드문 ‘영화 잘 찍고 있겠죠?’ 라는 글만 보일 뿐이었다.

문득 업무용 리포트를 쓰면서 느꼈다.

애들이 많이 커졌구나.

회사의 방침만 아니었으면 더 활발하게 활동했을 거라는 아쉬움도 있었다.

팬들 또한 기한이 정해져 있는 그룹이다 보니 더 많은 활동을 바랐다. 하지만 회사 차원에서는 이 정도도 충분히 많이 활동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Love Up & Down이 크게 터지지만 않았다면 스타즈 애들은 오프라인 행사만 뛰었을 거다.

지금은 노래가 확 뜨는 바람에 오프라인 행사와 함께 방송 활동도 하면서 이미지를 챙기고 있었다.

그리고 변화는 스타즈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원래라면 촬영에 들어가야 했을 드라마나 영화 촬영도 조금씩 바뀌었다.

3월까지만 해도 내가 알고 있던 흐름으로 흘러갔는데, 마녀가 확 터지고 나서는 방송계나 영화계에서 제작에 들어간 드라마와 영화가 예전과 조금씩 달라졌다.

그 이유는 예전과 같이 방송된 드라마도 있었지만, 제작이 안 돼서 안 나온 드라마도 있어서다.

이건 오히려 나에게는 호재였다.

안 나온 드라마와 영화 중에 괜찮았던 걸 낚으면 되니까.

그래도 걸리는 건 있다.

영화는 흥행 여부를 모른다는 것.

그러나 어떤 작품이 크랭크인 하는지는 대충 알고 있다.

그리고 어떤 평판이었는지도.

특히 올해 상반기에 들어갈 성재원 감독의 작품은 잡을 수 있다면 잡아야 했다.

성재원 감독의 작품은 흥행이 안 된 작품이 없었으니까.

여기는 누굴 들이밀어야 할까.

우리 애들은 힘들고 또 다른 사람을 찾아봐야 할 것 같은데.

생각에 계속 꼬리를 물자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 손으로 뺨을 두어 번 때렸다.

그러고는 쓰던 리포트를 마저 쓰고 내 이메일로 보낸 뒤에 침대에 누웠다.

지금 고민할 문제는 아니다.

내가 지금 고민해야 할 건 앞으로 남은 신희진의 마지막 촬영과 이나라의 댄싱 투나잇이다.

이 둘의 스케줄이 끝나고 생각해도 늦지 않을 것 같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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