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도 다시 매니저!-102화 (102/200)

제102화. 확신과 그리고 그 경계 (1)

한창 연습실에서 숙제 아닌 숙제를 하는 이나라에게 갔다.

“네? 뭐라고요?”

“이거 파일럿 프로그램인데 한번 나가볼래?”

이나라가 나에게서 프린트된 자료를 건네받고는 진지하게 보기 시작했다.

“음….”

“어때? 괜찮지 않아? 한번 해볼래?”

내 말에도 이나라는 계속 내가 건네준 자료를 읽고 있었다.

아무래도 관심이 있는 것 같다.

관심이 없었다면 저렇게 계속 보지 않았을 거다.

근데 왜 이진성 실장은 관심 없다고 말했던 걸까.

어제 나눈 대화로 마음이 바뀐 건가?

자료를 계속 읽던 이나라가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봤다.

아무리 봐도 표정이 하고 싶다는 얼굴이다.

“이거 언제부터 하는 건데요?”

“6월 말에 촬영 들어갈 거야. 사전 미팅 한번 하고. 프로그램 방영은 2주간 총 2회. 원래라면 명절에나 파일럿 프로그램 돌리려고 했던 건데 급히 섭외하고 있다더라. 원래 런칭하기로 한 프로그램이 내부 사정으로 2주 밀려서 그사이 넣을 게 필요하대.”

“그래요? 오빠는 어때요? 해볼까요?”

“한번 해보는 게 어때? 불안해하지 말고 가능성을 한번 점검해보는 게. 게다가 이건 경쟁보다는 협업 같은 느낌이라 괜찮을 거 같은데.”

“음….”

내가 멍석을 슬슬 깔아주자 이나라가 고민에 잠겼다.

이럴 때는 쐐기를 박아 넣어야지.

“춤도 혼자 만족하려고 추는 게 아니잖아. 결국은 보여줘야 하고. 어느 정도 레벨 업 했는지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내 말에 이나라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노래도, 연기도, 춤도, 미술도, 영화도 모든 예술 기반 작품 활동은 나만의 만족도 있겠지만 남들이 봐주고 좋아하는 데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대중들과 호흡하는 매체들은 더더욱 그렇다.

암만 연주를 잘하고 연기를 잘하고 미술을 잘한다고 해도, 봐주는 사람이 없으면 그게 가치가 있을까.

“좋아요. 해보죠, 뭐. 근데 제가 한다고 해서 무조건할 수 있는 거예요?”

“그건 제작진이랑 미팅해 봐야 알 것 같아.”

이나라 본인에게는 오케이 사인이 났으니 이제 프로그램 제작진에게 확인할 차례다.

이나라가 내 말에 머뭇거리다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물어왔다.

“저 말고도 춤에 관심 있으신 아이돌 선배님들 꽤 많을 텐데… 어떻게 섭외가 온 거예요?”

“갑자기 일정이 잡힌 거라 여러 군데하고 이야기한 거 같더라. 근데 이거 실장님이 이야기 안 하셨어?”

나도 이나라에게 궁금했던 점을 물었다.

이건 이나라가 할 만했는데 왜 이야기가 없었을까.

“네. 예전에 몇 번 방송 이야기하셨는데 제가 다 거절했거든요. 이번에도 그럴까 봐 이야기 안 하신 거 같은데요.”

이나라의 말을 들어보니 이진성 실장은 이나라가 계속 거절하자 아예 이야기를 안 한 것 같았다.

“그래? 일단 알았어. 이건 꽤 괜찮아 보여.”

“네. 저도 괜찮은 것 같아요. 결과 나오면 알려주세요.”

“알았어. 그럼 그렇게 알고 미팅 잡을게.”

“네.”

이나라와 헤어진 후 사무실로 돌아왔다.

사무실에는 이진성 실장이 일 보러 나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일단 올 때까지 업무 보면서 기다려보자.

그러고 보니 희진이는 잘하고 있으려나.

* * *

“한다고?”

“네.”

“그거 근데 저번 주에 연락 와서 종합해둔 거라 지금도 자리가 있을지 모르겠네.”

“그래요?”

이진성 실장에게 말했더니 이진성 실장은 조금 떨떠름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어. 한번 연락해 봐.”

“알겠습니다.”

이진성 실장에게 말하고 자리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이진성 실장이 나를 붙잡았다.

“잠깐만. 너 그러고 보니 이런 거 연락하거나 한 적은 없었지? 다 진수가 했고.”

“네.”

내가 따로 제작진에게 연락을 돌린 적은 없었다.

섭외에 관한 건 남진수가 다 했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내가 발로 뛰어서 따온 프로그램 빼고는 방송은 남진수 소관이었다.

“그거 담당 PD랑 작가 누구야?”

“쓰여 있는 건 노정수 PD님이랑 김지연 작가님이라고 되어 있는데요.”

이진수 실장이 묻길래 프린트된 자료에서 정보를 찾아 읽어줬다.

“노정수 PD면 까칠하지 않은 양반이니 괜찮을 거고… 작가 이름은 처음 들어보는데.”

“작가들 이름도 외우세요?”

“프로그램 하다 보면 보던 사람 또 보고 그러거든. 한번 연락해 봐.”

“알겠습니다.”

“PD한테 다이렉트로 연락하지 말고 거기 보면 연락받는 작가 연락처 있을 거야 거기로 해.”

“네.”

PD한테 다이렉트로 하면 안 되나?

이진성 실장의 말에 의아함을 느꼈지만 말해준 대로 섭외 담당 작가 연락처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내 생각으로는 아무래도 직급이나 체급 문제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신호음이 몇 차례 가고 난 뒤 핸드폰에서 상대 작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스타즈 매니저 김현진입니다. 이전에 저희 쪽으로 섭외건 연락해주신 것 때문에 연락드렸습니다.”

- 아, 네.

“조금 늦게 전화 드린 것 같은데… 혹시 가능한가요?”

- 네. 연락 온 분들 아직 미팅 안 했거든요. 일괄적으로 목요일에 하기로 되어 있어요. 그때 시간 괜찮으세요?

작가의 말을 들어보면 다행히 아직 섭외가 끝난 건 아닌 것 같았다. 근데 목소리가 피곤에 찌든 목소리였다.

런칭 전이라 엄청 바쁜 건가?

“네! 물론이죠. 그럼 그때 뵈면 될까요?”

- 근데… 미팅 전에 간단한 퍼포먼스 영상을 하나 첨부해서 보내주셔야 하는데 이틀 안에 가능하시겠어요?

퍼포먼스? 왜 난 이 부분은 못 봤지?

생각할 시간이 없다.

일단 못 먹어도 고다.

“네. 가능합니다.”

- 알겠습니다. 그럼 미팅 장소랑 시간 적어서 연락드릴게요. 이 번호로 연락드리면 되죠?

“네.”

- 네.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

“네. 고생하세요!”

작가가 전화를 끊기를 기다렸다가 끊은 걸 확인하고 이진성 실장에게로 갔다.

가는 도중 내 머릿속은 온통 퍼포먼스 생각뿐이었다.

뭐가 좋을까.

나보단 전문가인 이나라가 알아서 정하려나.

근데 이건 왜 필요한 것인지 의문이었다.

“실장님. 일단 미팅 날짜는 잡았습니다.”

“나도 듣는 귀 있거든?”

“아… 네. 근데 무슨 퍼포먼스 영상 하나 첨부해서 보내달라는데 뭔지 아세요?”

이진성 실장은 혹시 알까 싶어 물어봤다.

“영상? 어중이떠중이는 자기들이 자체적으로 거른다는 거네. 아니면 자기들 입맛에 맞는 애들을 더 보겠다는 거겠지.”

“나라면 충분히 통과하겠죠?”

“글쎄. 그건 또 모르지. 그리고 미팅은 네가 나라 데리고 나가.”

“네?”

“네가 일 벌였으니까 네가 해야지. 또 진수 시키게?”

“아닙니다. 제가 해야죠.”

이진성 실장은 어이없다는 듯 표정을 짓고 있었다.

스케줄 잡은 건 나니까 할 말은 없긴 했다.

근데 내가 해도 되는 건가?

“희진이랑 나라랑 일정 겹치면 그때 조율해서 희진이나 나라 스케줄 진수한테 넘겨.”

“네. 알겠습니다. 전 일단 나라한테 이야기해주러 다시 가볼게요.”

“그래.”

졸지에 이나라를 맡게 되어버렸다.

내가 맡을 거라고 생각은 못 했는데.

나쁘지는 않았다.

단지 내가 죽도록 힘들어지겠지만.

희진이 스케줄이 생각보다 타이트 하지 않아서 될 것 같기는 했다.

스케줄 문제는 둘째 치고 퍼포먼스 영상을 빨리 짜서 보내줘야 하니 일단 이나라한테 가서 말해봐야겠다.

* * *

“또 뭐요!”

이나라가 내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나를 보고는 퉁퉁댔다. 그래서 얼른 이야기를 꺼냈다.

“제작진이랑 이야기했는데 2일 후 3시 미팅. 근데 미팅 전에 간단한 퍼포먼스 영상을 보내달래.”

“퍼포먼스 영상이요?”

내 말에 눈이 이나라의 눈이 커졌다.

“회사로 온 메일 읽어보니까 자신만의 색깔이 있는 아티스트와 함께하고 싶습니다. 라고 되어 있던데.”

“그럼 전 안 되겠네요.”

내가 색깔이라는 이야기를 하자 이나라가 급격하게 시무룩해졌다.

그런데 눈빛이 살아 있는 거 보니 그냥 장난인 것 같았다.

오히려 호기심에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왜 안 돼. 이미 색깔이 있잖아? 없으면 뭐 찾아가는 거지.”

“아~ 몰라요, 몰라. 그거 2일 뒤라고 했죠? 그럼 저 오늘 하루는 시간 주세요.”

땀에 젖어 말하는 이나라의 모습에서 자신감을 엿볼 수 있었다.

“하루면 구상 다 할 수 있겠어?”

“당장이라도 할 수 있거든요?”

이나라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래. 알았어. 내일 다시 이야기하자.”

“근데 내일 희진이 스케줄 가잖아요.”

“응. 희진이도 스케줄 있지.”

“그럼 저는 팀장님이랑 같이 움직여요? 방송하고 있는 유코랑 미소는 팀장님이 맡아서 관리하시던데.”

“아니. 나랑 움직일 거 같아. 내일 희진이 촬영이 저녁 늦게까지 있긴 한데, 아마도 새벽까지 촬영은 안 할 거야. 아니면 팀장님이랑 같이 해도 되고.”

“새벽이요? 으음, 일단 기다려볼게요. 끝나고 연락 주세요.”

“알았어.”

이나라에게 대꾸하고 잠깐 생각해봤다.

더 필요한 게 있으려나?

“뭐 다른 거 필요한 거 있어?”

“생기면 이야기할게요. 아직은 모르겠어요.”

“알았어.”

“넵!”

내 용무가 끝났다고 생각하는지 이나라가 몸을 틀고 스트레칭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흥얼거리면서 노래를 틀었다.

기죽거나 별로라고 생각하면 어떻게 하지 싶었는데 다행히도 그러지는 않았다.

오히려 기대하는 것 같기도 했다.

출연이 확정된 건 아니지만 내가 다른 아이돌이나 퍼포먼스를 하는 가수들을 많이 봐왔지만, 이나라 레벨이면 충분히 통과될 것 같았다.

가재는 게 편이라지만, 대중들의 반응도 이나라는 춤 선이 꽤 이쁘다고 평가받는 편이기도 했다.

나도 그중 한 명이기도 했고.

이나라를 구경하다가 연습실 밖으로 나왔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게 있었다.

여기 내려온 김에 신희진도 만나서 말해둬야겠다.

* * *

“나라 언니랑 저랑요?”

“응.”

신희진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내 말을 들은 신희진이 곰곰이 생각하더니 내게 말했다.

“내일 그럼 저도 스케줄 끝나고 구경 가도 돼요?”

“쉬는 게 낫지 않겠어?”

“한두 시간 덜 쉰다고 안 죽어요. 그리고 지금은 촬영이 익숙해져서 괜찮은 것 같아요.”

“그래. 그래라.”

본인이 괜찮다는데 내가 할 말은 없었다.

게다가 촬영이 밤늦게까지 하는 것도 아니라 체력적으로 문제 될 건 없었다.

“나라 언니 색깔이 뭘까요? 언니가 추는 춤이랑 우리가 추는 거랑 조금 다르긴 해요. 선이 다르긴 달라요. 확실히.”

“맞아. 너희가 댄스 동아리면 나라는 약간 국립 발레단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내 말에 푸핫 하고 신희진이 웃었다.

내 비교가 너무 찰졌나 싶다.

그래도 틀린 비유는 아니었다. 애들이랑 이나라랑 비교하는 건 이나라한테 실례였다.

“갭이 너무 큰데요? 그리고 그 정도 차이는 아니거든요! 다 말해야지.”

“야. 이건 팩트야. 팩트.”

신희진도 그렇게 느끼긴 했는지 툴툴대면서도 내 말에 그렇게 토 달지는 안았다.

“됐고. 내일 촬영 말인데요.”

“어.”

“내일 키스신 있잖아요.”

“응.”

“무슨 느낌으로 해야 해요?”

이건 또 무슨 참신한 질문이야.

신희진의 질문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몰라서 질문한 것 같지는 않은데.

“어? 안 해봤어?”

“사는 게 퍽퍽해서 아직 못 해봤네요. 왜요? 불만이에요?”

내가 황당한 눈초리로 보자 신희진이 나를 째려봤다.

생각해보니 신희진이 아직 연애를 제대로 안 해봤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건 둘째 치고 이걸 왜 나한테 물어.

“언니들한테 알려 달라 해. 나한테 묻지 말고”

“남자 입장도 궁금하단 말이에요.”

투덜거리는 신희진이 내 대답을 촉구하는 눈빛을 보냈다.

민망한데 조금.

“음, 뭐라고 말해야 하지… 근데 내일 키스신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 않아? 그냥 짧게 입맞춤하는 장면이잖아.”

“그게 그거 아니에요?”

“나한테 원하는 대답이 뭐야?”

“네?”

내 말에 갸우뚱거리는 신희진이 참 얄미웠다.

연기하는 건지 진짜 모르는 건지 헷갈리네.

그러다가 피식피식 웃는 모습에 나를 놀리려고 하는 거라는 걸 알게 됐다.

그래도 장단에 맞춰 준다고 하면, 이걸 어떻게 설명해줘야 하나.

어느새 신희진이 피식 웃던 모습을 멈추고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