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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도 다시 매니저!-101화 (101/200)
  • 제101화. 6월의 어느 날 (3)

    이나라와 같이 차 안으로 들어왔다.

    이나라가 봉투에서 캔 맥주 하나를 꺼내더니 자기 볼에다 가져다 댔다.

    “앗. 차가워.”

    “그건 또 언제 샀어?”

    “최근에요.”

    내가 황당한 눈으로 물어보자 대수롭지 않게 봉투 안에서 맥주 하나를 더 꺼내 나에게 권했다.

    “자요.”

    이나라에게서 캔 맥주를 건네받은 뒤 물었다.

    “갑자기? 무슨 일 있어?”

    “오늘 녹화하면서 생각이 많아지더라고요.”

    “뭐가?”

    “내가 뭘 잘할까…라는 생각?”

    아무래도 생각이 많아진 듯했다.

    하긴 나도 생각이 많아졌는데 당사자들은 오죽할까.

    먹이를 눈앞에서 뺏긴 강아지처럼 시무룩해진 이나라에게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잘하는 게 왜 없어.”

    “있긴 하죠. 꽤 긴 연습생 생활 동안 익힌 춤 실력? 노래는 선천적인 것 같아요. 제 노래 실력은 평범하잖아요? 지영이처럼 음색이 특이하거나 혜연이처럼 시원시원하게 음을 뽑아내거나 하지는 못하겠더라고요.”

    “…….”

    이나라가 조곤조곤 말하는 걸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그래서 나만의 매력은 뭘까 하고 계속 고민하고 있었죠.”

    “…….”

    나는 묵묵히 들으며 이나라를 응시했다.

    이나라는 손에 들고 있는 캔만 만지작거리면서 캔만 바라봤다. 그러다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답답한데… 누구한테 털어놓을 사람이 없어서요.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내가 더 가수 생활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계속 들고… 나이가 있으니까요. 하하 웃프죠?”

    “아니.”

    이나라가 서글프게 웃으며 말했다.

    가식적으로 다 잘한다고 말할 수도 있었지만 이나라의 표정을 보니 그렇게 말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내가 아무 말 없자 이나라가 다시 덤덤히 말을 이어갔다.

    “이런 고민을 회사에 말하기도, 가족한테 말하기도, 친구한테 말하기도 힘들어서요.”

    “난 편하고?”

    “오빠는 뭐, 그냥 묵묵히 들어줄 거 같았어요. 얌전히 제 대나무 숲이 되시죠?”

    “그래. 맘껏 써라. 뭔들 못 해주겠어.”

    나에게 말해서 조금이라도 짐을 덜고 편해진다면 언제나 환영이다.

    “아무튼! 오늘 녹화하다가 활동 기간에 관한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지 더 싱숭생숭했거든요. 근데 계속 끙끙 속으로 앓기보다는 누구한테 말하는 게 더 편해지잖아요?”

    “그래서 그게 나다?”

    “그렇죠! 무난하잖아요. 원래는 더 참을 수 있었는데 방송에 공개적으로 그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좀 힘들어졌나 봐요.”

    이나라가 말하고 나서 캔 맥주를 홀짝였다.

    나도 받은 캔 맥주 뚜껑을 따고 한 모금 마셨다.

    “오빠라면 어떻게 할 거 같아요?”

    “뭐가?”

    “지금 이야기 다 들었잖아요. 제 처지에서 어떻게 할 거 같아요?”

    “글쎄, 내가 아이돌을 해본 경험이 있는 게 아니라 제대로 조언은 못 해주겠네.”

    “그래도 저보다 오래 살았잖아요.”

    “내가 너보다 10년 20년 더 산 것도 아니고 고작 6년이야.”

    “그래도요.”

    “흐음.”

    돌파구가 없어서 나에게 묻는 걸까 아니면 확인하는 걸까.

    무슨 답이 좋을까.

    “그럼 객관적으로 절 평가하면 어때요?”

    “객관적으로?”

    “네.”

    차분히 생각을 정리해봤다.

    이나라의 솔로 성공 가능성이라.

    “요즘 추세로는 스타즈 활동 끝나고 아이돌로 재데뷔는… 그래도 팬덤이 있으니까 할 수 있지 않을까?”

    조금씩 내 생각을 말하면서 이나라의 반응을 보았다.

    내 말을 들은 이나라는 생각보다 더 차분했다.

    “그래요? 솔직히 이런 말 하기는 그렇지만 우리 그룹 내에선 제가 제일 팬덤이 적을 거 같은데요? 그래도요?”

    “아예 없이 데뷔하는 친구들은 쌔고 쌨으니까.”

    “그럼 솔로는요?”

    “솔로?”

    “네.”

    “음….”

    이나라는 아무래도 본인이 정한 답이 있는 것 같았다.

    솔로 가수.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쁜 선택지는 아니었다.

    이나라가 노래를 못하는 건 아니니 본인의 색깔을 찾으면 오히려 더 긍정적인 것 같기도 했다.

    이나라의 경우에는 스타즈 활동이 끝나고 걸그룹으로 재데뷔하면 오히려 안 좋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앞선 사례에서도 안 좋은 일이 많았다.

    “나쁘지 않은 것 같기도? 지금 솔로 여가수들은 퍼포먼스보다는 노래에 치중한 가수들밖에 없으니까.”

    “제가 퍼포먼스에 자신이 있잖아요? 그래서 솔로로 가닥 잡고 있었어요. 근데도 불안하긴 해요. 그룹을 벗어나서 혼자서 잘할 수 있을까 싶고….”

    이나라가 걱정하는 부분은 그룹에서 솔로로 전향하는 경우 많이들 겪는 고민이기도 했다.

    혼자서 모든 걸 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생각보다 크다.

    “그래서 외국 안무가 선생님들 초빙해서 춤 배우고 있는 거야? 나중을 위해서?”

    “네. 저도 미래 준비는 조금씩 해야죠. 애들도 저마다 하고 있던데요. 저 같은 경우 춤이 강점이라 생각해서 더 살리려고 하는 거구요.”

    이나라의 말이 맞다.

    자기 강점을 살리는 게 좋다.

    이나라는 확실히 춤 선이 예쁘고, 시원시원했다.

    그리고 지금 스타즈의 상황에서는 각자 자신의 개인 브랜드 가치를 키우는 게 가장 좋아 보였다.

    스타즈가 이번 미니앨범으로 대중들에게 확 각인되어 있기는 했지만, 애들의 소속은 다 제각각이다.

    그리고 활동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도 한몫했다.

    극적 타협으로 모든 소속사가 합의해서 연장하지 않는 한 결국은 뿔뿔이 흩어진다.

    “지영이, 혜연이는 보컬이 매력적이니까 활동하면서 조금 더 다듬고 싶어 하는 거 같고. 희진이랑 린이는 연기 생각하고 있는 것 같고. 유코랑 미소는 예능 캐릭터 잡아가고 있구요. 근데 전 춤 말고는 내세울 게 없겠더라고요.”

    “흠.”

    이나라가 나를 힐끔힐끔 보면서 이야기했다.

    “가능성이 있을까요?”

    “내가 전문가가 아니라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앞선 서바이벌로 데뷔했던 앞선 그룹들을 보면 솔로로 성공한 사람도 많아. 성공한 그룹도 없지는 않잖아.”

    “그렇긴 하죠….”

    이나라는 내 말에 자신이 없는 듯 힘없이 대답했다.

    “프로그램이 반복되면서 관심이 조금 멀어졌다고는 하지만 너네는 지금도 충분히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어.”

    “배부른 투정이란 것도 아는데…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가 없나 봐요. 아직 끝난 것도 아닌데.”

    “걱정 없이 사는 사람이 어딨어.”

    “그쵸?”

    이나라가 이렇게까지 자신 없어 하는 건 의외였다.

    매사 긍정적이라 이런 고민은 없을 줄 알았는데.

    게다가 예전 박혜연을 보는 것처럼 자존감도 많이 죽어 있었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것 같다.

    “마지막으로 짠하고 들어갈게요. 짠해요. 짠.”

    내가 멍하니 있자 이나라가 캔 맥주를 들고서 말했다.

    지금은 이나라의 장단에 맞춰주자.

    “그래.”

    “짠!”

    이나라랑 맥주 캔을 부딪치고 맥주를 한 모금 마시면서 생각해봤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다 마셨죠? 주세요. 제가 갖다 버릴게요.”

    “어? 어.”

    캔 안에 들어 있는 맥주를 다 마셨는지 캔을 우그러뜨리고 가져온 봉투 안에 넣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캔도 달라길래 얼떨결에 줘버렸다.

    내 캔을 받더니 똑같이 봉투에 넣고는 차에서 내렸다.

    나도 이나라를 뒤따라서 나갔다.

    “저 갈게요!”

    “그래. 들어가.”

    봉투를 들고 숙소로 향하는 이나라의 모습을 지켜봤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생각보다 위태위태한 것 같다.

    근데 지금은 그것보다 내가 문제다.

    어쩌다 보니 술을 먹었는데 어쩌지? 택시 타고 가야 하나?

    * * *

    “언니! 어디 갔다 와?!”

    거실에서 TV를 보던 박혜연이 현관에서 들어오고 있는 이나라에게 물었다.

    “남자 만나고 왔는데?”

    이나라의 말에 거실에서 TV를 시청하고 있던 여섯 명의 시선이 이나라에게로 향했다.

    “뭐?”

    “누구야?”

    “아이돌이야?”

    “언제부터야?”

    보던 TV에서 시선을 떼고 스타즈 멤버들이 우르르 이나라 곁으로 다가와 물었다.

    “아, 시끄러. 조용!”

    동서남북 사방에서 서라운드로 들리는 소리에 정신을 못 차리던 이나라가 손을 번쩍 들고 말했다.

    애들이 똘망똘망한 눈으로 이나라의 입을 쳐다봤다.

    “오빠 만나고 왔어.”

    “오빠?”

    이나라의 말에 유미소가 반문했다.

    애들의 머릿속에는 벌써 수십 명의 오빠가 스쳐 지나갔다.

    “푸 오빠.”

    “뭐야…. 김샜네.”

    이나라가 김현진을 언급하자 서지영이 허탈해했다.

    나머지 인원도 흥미를 잃은 듯 신희진과 서지영만 남고 거실로 복귀했다.

    “근데 언니 술 마셨어?”

    신희진이 킁킁대며 냄새를 맡고는 물었다.

    신희진의 모습에 이나라가 헤프게 웃었다.

    “너희가 너무 힘들게 해서 한잔했다! 왜!”

    “우리처럼 말 잘 듣는 사람 있어?”

    이나라가 꽥하며 이야기하자 서지영이 콧방귀를 뀌면서 반문했다.

    “네가 제일 문제인 거 알아? 내가 오늘 너 옷 정리하고 나가랬지!”

    “아, 급한데 어떻게 정리해. 지금이라도 할게!”

    이나라의 말에 서지영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이나라의 눈치를 살피던 서지영이 방으로 돌아가다가 고양이처럼 조심조심 거실로 가 소파에 앉았다.

    그런 서지영을 보면서 이나라가 한숨을 내쉬었다.

    “으이구.”

    “언니 무슨 일 있었어?”

    이나라를 조심스럽게 보던 신희진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응? 아니. 별일 없는걸.”

    “근데 왜 오빠랑 술 마셨어?”

    태연하게 말하는 이나라의 말에 신희진이 물었다.

    “그냥 오늘 우리 활동 기간 언급되니까 꿀꿀해서.”

    “나랑 마시지….”

    “그럴까 하다가 우린 처지가 다 똑같잖아. 그래서 그랬지.”

    이나라의 말에 신희진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신희진이 이내 표정을 풀고는 밝게 되물었다.

    “그래서 뭐래?”

    “그냥. 하던 대로 열심히 하라는데?”

    “뭐야. 확실한 솔루션을 제시해줘야지.”

    이나라가 기운 빠진 목소리로 말하자 신희진이 여기에 없는 사람에게 투덜거렸다.

    “그러게. 난 방법이 없는 걸까?”

    이나라가 조용히 읊조렸다.

    그러나 이나라는 마음속에 담아둔 말이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온 것에 당황했다.

    신희진도 이나라가 말한 의미가 궁금했다.

    “무슨 소리야?”

    “아냐.”

    이나라가 신희진의 시선을 회피하면서 대답했다.

    둘 사이에 어색한 분위기가 흐를 뻔했지만, 다행히도 거실에서 서지영이 뛰어나와 이나라에게 말을 걸었다.

    “언니! 족발 먹자. 족발!”

    “그럴까? 먹자. 시켜.”

    “야호!”

    이나라의 말을 들은 서지영이 소파에 둔 핸드폰을 찾으러 소파로 돌아갔다.

    이나라가 그런 서지영을 보며 생각했다.

    아직은 멀었으니까. 아직은.

    * * *

    출근해서 회사에 앉아 업무를 보면서도 어제의 일이 잊혀지지가 않았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가장 좋은 방법은 이나라가 본인 스스로 자신감이 차는 게 가장 좋은데 말이야.

    일단 연예란 뉴스를 보면서 연예계 근황을 살폈다.

    뉴스를 체크 하면서 확인하는 중에 이나라에게 도움이 될 만한 뉴스가 있어 유심히 보았다.

    이거라면 혹시?

    자리에서 일어나 이진성 실장에게로 갔다.

    “실장님! 혹시 스타즈 애들에게 섭외 온 것 리스트 좀 받을 수 있을까요?”

    “프로그램 명단?”

    “네.”

    “메일로 보내줄게.”

    “감사합니다!”

    내 자리로 돌아가 이진성 실장이 메일을 보내주기를 기다렸다.

    조금 기다리자 이메일이 왔다는 표시가 나서 파일을 열고 확인했다.

    “실장님! 섭외 온 프로그램 중에 이 프로그램이요. 이 중에 하나 눈에 띄는 게 있는데, 이거 나라한테 말해도 돼요?”

    섭외 명단 리스트를 훑어보다가 눈에 띄는 프로그램이 있어 이진성 실장에게 물었다.

    “응? 나라? 물어봤는데 방송은 별로 생각 없고 지금은 춤 배우는 거에 열중하고 싶다고 해서 내버려 뒀는데.”

    “제가 한번 말해볼게요. 이건 괜찮을 거 같아요.”

    “뭐 그래라. 방송 해주면 좋지.”

    이건 이나라도 승낙할 것 같았다.

    이 프로그램을 하면서 이나라가 본인 스스로 자신감을 되찾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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