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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도 다시 매니저!-98화 (98/200)

제98화.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가을 (4)

“여기가… 연희가 있는 곳이 맞나요?”

문에서부터 천천히 ‘현승’ 역의 안재성이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과연 이진철과 1년간의 호흡을 맞춰온 티가 났다.

떨리는 목소리에서 숨길 수 없는 그리움.

그리고 표정에서 나오는 혼란스러움과 반가움까지.

병실에 누워 있는 연희를 보러온 현승이었다.

“네? 누구…시죠?”

연희의 이름을 부른 현승을 보고 리액션을 해주는 ‘연화’의 이예진도 훌륭했다.

당황스러운 눈동자와 떨리는 동공.

그리고 손끝을 떨며 연희를 만지는 연화의 모습에서 낯선 이에게서 연희를 보호하려는 연화가 보였다.

또한, 연희를 찾아와주는 이에 대해 반가움을 목소리로 표현했는데 과연 이예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장면이었지만 모니터로 본 두 배우의 모습은 너무나도 디테일했다.

누워 있는 연희를 발견하고 연희를 보며 조금씩, 아주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현승의 모습은 너무나도 애달팠다.

그리고 이내 현승이 연희가 있는 침대 곁으로 다다랐을 때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컷!”

“이야, 느낌 좋은데? 감정이 제대로 살려 있네.”

“그렇죠? 전 이거로 가겠습니다. 더 찍어도 이거보다 좋은 건 안 나올 거 같아요.”

이신형 감독과 이진철이 모니터 앞에서 방금 찍은 컷에 관해 이야기했다.

둘의 표정이 매우 만족스러운 얼굴이었다.

“왜? 그래도 하나 더 찍지?”

그렇지만 이신형 감독은 혹시 모르니 하나 더 찍어보자고 이진철에게 말했다.

“감독님. 제가 감독님한테 배운 것 중 하나가, 더 좋은 컷이 나올 수도 있으니 더 찍어보자는 건 욕심이라는 겁니다. 매번 그렇게 찍고 첫 테이크 쓰셨잖아요.”

“매번이라니. 한두 번은 딴 테이크 썼다고.”

하하하.

이신형 감독의 혹시 모르니 하나 더 찍자는 말에 이진철은 웃으며 이야기했다.

그 말에 주위 스태프도 공감하는지 힘껏 박장대소했다.

이 광경을 보고 있자니 서로 간에 얼마나 호흡을 맞춰 왔는지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저 말에 웃는 스태프도, 웃으면서 저렇게 말하는 이진철도.

영화만큼이나 따뜻한 현장이었다.

이 상황 속에서 임지예가 자기 할 일을 찾아 이진철에게 다가가는 모습이 보였다.

“감독님. 그럼 다음 컷 준비할까요?”

“어, 그렇게 하자.”

“다음 컷 준비하겠습니다!”

임지예가 이진철에게 진행을 듣고는 호실 안으로 들어가 크게 외쳤다.

안이 협소해서 카메라에 선을 연결하여 복도에서 모니터링을 하고 있었다.

임지예의 말을 들은 이예진과 안재성이 복도로 나와 모니터 쪽으로 다가왔다.

“한 테이크에 끝낼 정도로 괜찮았나요?”

“굿이었어.”

“네, 좋았어요.”

이예진의 말에 엄지를 척하면서 말해주는 이신형 감독과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는 이진철이었다.

“그럼 다음 컷 준비하는 동안 돌려봐도 돼요? 다음 컷은 달리 컷이던데. 시간 좀 걸리잖아요. 레일 다시 깔고 하려면.”

이예진이 다음 콘티를 확인하더니 이진철에게 말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번 장면은 유독 달리 컷이 많기도 했다.

아무래도 이진철은 화면이 부드럽게 이동하거나 천천히 들어가는 느낌을 살리고 싶은 것 같았다.

“네, 그렇게 하시죠. 한 감독님! 좀 전에 찍은 거 좀 돌려주세요.”

이예진의 말에 이진철이 카메라 감독에게 말했다.

“좀 전에? 알았어!”

조금 전 장면을 모니터링 할 것 같아서 문 쪽으로 다가가 침대에 있는 신희진을 손짓해서 불렀다.

내 손짓에 쪼르르 신희진이 달려왔다.

“왜요?”

“너도 와서 한번 봐봐. 제대로 못 봤잖아.”

“모니터링해요?”

와서 이유를 묻자 내가 이유를 알려줬다.

그러고는 슬금슬금 모니터 쪽으로 다가가더니 위치를 잡았다.

모니터 주위에는 이진철, 이예진, 안재성, 신희진 이렇게 넷이 옹기종기 모였다.

신희진은 무표정으로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고개를 미약하게나마 흔들었다.

내 위치에서는 모니터의 화면이 잘 보이지 않아 어디까지 보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좋네요.”

“저도 만족합니다.”

모니터를 본 이예진과 안재성은 만족하는 것 같았다.

“더 찍고 싶어도 이 감정 이상 잘 안 나올 것 같아서요. 동의하시죠?”

이진철이 두 명을 보면서 이야기하자 이진철을 보고 둘 다 피식 웃었다.

“무슨 소리세요. 더 찍었으면 이것보다 더 좋게 찍죠.”

“이건 맛보기죠.”

둘 다 한마디씩 했는데 목소리부터 자신감이 넘쳤다.

조금 전 보았던 내 느낌으로는 두 명이 당연히 저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하하. 걱정이 없네요. 세 분 모두 잘 해주셔서요.”

이진철이 자신감을 내비치는 배우들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신희진은 자기도 언급하는 것 같아지자 움찔하더니 어색하게 웃었다.

왠지 주눅 든 모습인 것 같기도 했다.

“아니에요. 전 한 것도 없는데요, 뭘.”

“앞서 촬영은 잘 끝났나요?”

신희진이 떨떠름한 목소리로 말하자 이를 보던 이예진이 이진철에게 물었다.

이예진 없이 찍었던 장면들도 꽤 잘 나왔다.

감정 잡는 장면들은 아닌지라 다른 느낌이긴 하지만.

“네, 좋았어요.”

“그래요? 나중이 기대되는걸요. 저랑 찍는 스케줄은 좀 나중이죠?”

이진철이 웃으면서 이야기하자 이예진이 눈을 빛내며 신희진을 바라봤다.

신희진도 이예진의 시선을 느꼈는지 이예진을 바라보았다.

“네, 선배님 스케줄이랑 감정선 따라가다 보니 좀 뒤에 잡혔어요.”

“좋네요.”

이진철 감독이 이예진과 신희진의 묘한 대치를 보면서 말했다.

이진철의 말을 들은 이예진이 여전히 신희진을 보고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확실히 저 둘은 뭔가 있는 것 같았다.

뭘까?

“감독님! 세팅 5분 후면 끝날 거 같습니다!”

“준비해야겠네요. 고생해요.”

“네. 잘 부탁드립니다.”

임지예가 끼어들지 않았다면 이 묘한 대치는 제법 갔을 것 같았다.

임지예의 말에 호실 안으로 이예진이 들어가자 안재성도 따라 들어갔다.

“희진아. 너도 화면에 걸려. 너도 가야 해.”

“아! 네!”

내가 가만히 있는 신희진에게 말을 걸자 화들짝 놀라며 답했다.

예전에 이예진이 신희진을 만났을 때 확실히 물어볼 걸 그랬나 보다.

신희진이 급하게 안으로 들어갔다.

환자복 입고 뛰어가는 신희진의 모습을 보니 묘한 느낌이 들었다.

확실히 의상이 사람의 분위기도 확 바뀌긴 하는 것 같다.

“자자 오늘 몇 컷 남지 않았으니 다들 힘내서 가봅시다!”

“네! 조감독님!”

하하하.

이신형 감독이 호실 안에서 나와 이진철 곁에 와서 소리쳤다.

그 말을 들은 이진철이 대답하자 주위 스태프 모두가 웃었다.

나도 그 모습에 실소가 안 새어 나올 수가 없었다.

상황이 웃기긴 했다.

근데 그만큼 현장 분위기는 좋았다.

불협화음 하나 없이 순탄하게 굴러가고 있는 것 같다.

이 분위기 그대로 중반, 후반까지 이어졌으면 좋겠다.

영화 촬영은 초반에는 잘 나가다가 촬영이 진행될수록 망가지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인데, 내 쓸데없는 걱정으로 끝나길 바랄 뿐이다.

* * *

“고생하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오늘의 촬영이 다 끝났다.

이예진 컷들을 먼저 다 찍고 이예진을 보낸 뒤 안재성과 신희진 컷들을 마저 찍었다.

신희진이 누워만 있다 보니 나는 대역을 쓰고 싶었는데 얼굴이 컷에 계속 나와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도 마냥 쓸모없는 시간은 아니었다.

신희진이 안재성의 감정을 다이렉트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조금 더 캐릭터 구성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안재성은 확실히 잘했다.

“오빠! 저 의상 반납 좀 하고 올게요.”

“어, 그래.”

신희진이 환자복을 입은 채로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신희진이 빠르게 촬영장을 벗어났다.

나는 신희진을 보다가 혼자 있는 이진철에게 다가갔다.

“크랭크인 축하한다.”

“스크린 걸리기 전에는 축하받기엔 이르지.”

“어때?”

“그냥 아직은 꿈같기도 해. 학교 다닐 때 영화 찍는 것 같기도 하고. 아직도 얼떨떨하다.”

“오늘 찍은 거 다 좋더라. 딱 네 취향이야.”

“내 취향이 뭔데?”

“감수성 흐물흐물한 거.”

“그게 뭐야.”

이진철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었다.

서로 멋쩍게 웃자 서로 말이 없어졌다.

무슨 말을 더 해줘야 할까.

데뷔 축하해? 영화 대박 날 거야?

“고생해.”

“그래, 너도.”

그런 말은 필요 없었다.

서로 간에 어떤 고생을 하고 어떤 선택으로 이 자리에 있게 된 건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한 작품에 나는 매니저로, 친구는 감독으로.

또다시 같은 작품을 하는 거에 나는 만족한다.

이진철과 인사를 나눈 뒤 얼마 안 있자 신희진이 다가왔다.

“가자.”

“네!”

함께 차에 타자마자 신희진이 의자에 푹 쓰러졌다.

많이 피곤한 듯했다.

촬영은 저녁 열한 시 전에는 끝나서 그렇게 길게 찍은 것도 아니었다.

“와, 이건 체력적으로 힘든 게 아니라 정신적으로 힘드네.”

“음방이랑 지금이랑 뭐가 더 힘들어?”

“촬영 시간 좀 더 길어지면 연기하는 게 더 힘들 것 같아요. 체력 문제가 아니라 정신적으로 너무 지쳐요. 음방은 체력적으로 지치고.”

의자에 푹 쓰러진 채 신희진이 쫑알쫑알댔다.

목소리를 들으면 지쳐 있다기보다는 쌩쌩해 보였다.

“그래서 오늘 어땠어?”

“재밌었죠.”

내가 물어보자 신희진이 벌떡 일어나 의자에 앉더니 대답했다.

“근데 진짜 베테랑 배우는 관록이 다르네요. 솔직히 조금 놀랐어요. 전 별 차이 없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오후 촬영이랑 저녁 촬영이랑 조금 다르더라구요. 솔직히 기 빨린 것 같아요.”

신희진은 이예진과 안재성의 호흡에서 느낀 게 많은 듯했다.

신희진은 그 장면을 떠올리는 듯 시선이 먼 곳을 바라보는 듯했다.

“재성 씨랑 촬영할 때는 즐겁게 촬영하더니만.”

“그때는 즐거웠으니까요. 병원은 죄다 감정이었잖아요. 딱히 제가 연기를 한 건 없지만, 감정이 제게도 전해져서… 근데 재성 오빠나 이예진 선배님이나 디테일하시네요. 시나리오 대본에 없는 것도 캐릭터에 맞게끔 창조하시고.”

자신의 부족함을 느낀 것 같았다.

내가 봤을 때도 둘에 비하면 레벨이 딸리긴 했다.

단지 압도적인 마스크로 배역을 소화했을 뿐이다.

신희진의 연기는 평범했으나 이진철의 컷 구성이나 배우의 동선을 보면 이미지를 최대한 살리는 쪽이었다.

그 점을 신희진도 느끼는지 너무 기가 죽었다.

“재성 씨는 아무래도 감독이랑 이야기한 시간도 기니까. 대단한 건 선배님이지. 아무리 배역이 영화상에는 짧게 나온다지만 분석을 철저하게 해서 오셨으니까.”

“맞아요. 그건 인정.”

내 말에 쿨하게 인정하는 신희진이었다.

그럼, 여기서 다른 걸 물어볼까.

백미러로 힐끔 본 신희진의 상태는 무엇이든 이야기해줄 것 같았다.

촬영으로 인한 피곤함과 상대 배역들의 연기력 때문에 살짝 정신이 나간 것 같다.

눈치를 살피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근데 너 선배님이랑 무슨 일 있는 것 같은데 아니야?”

“네? 별일 없었는데요?”

내 질문에 고개를 좌우로 흔들더니 평소의 신희진으로 돌아왔다.

“그래? 아까 보니까 별일 있는 것 같던데.”

“에이, 착각이에요.”

다시 한번 묻자 신희진이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

“네.”

“흐음.”

“…….”

갑자기 차 안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저 좀 피곤해서 그러는데 도착할 때까지 눈 좀 붙일게요.”

“어, 그래.”

아예 대화를 단절하겠다는 듯 신희진이 눈을 감고 수면에 들어갔다.

확실히 보면 무슨 일이 있는 거 같은데 말이지. 도통 나한테 말해줄 생각은 안 한단 말이야.

뭔지 궁금한데 저렇게 나오니 억지로 물어볼 수도 없고.

도대체 뭘까?

궁금하긴 했지만 둘이 싸운 건 아닌 것 같았다.

선배님이나 희진이나 알아서 하겠지.

괜히 배우들 일에 끼어들었다가는 피 보기 쉬우니 관망하면서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백미러로 신희진을 힐끔 보다가 운전을 하면서 생각해봤다.

신희진이 영화가 끝나고 나면 스타즈는 어떤 행보를 걸을까.

예전과는 너무나도 달라졌다.

내가 알고 있던 스타즈의 정보는 죽은 정보가 되어버린 지 오래였다.

알고 있던 건 어두컴컴한 스타즈였지 밝고 빛나는 지금의 스타즈가 아니었다.

의도한 결과라 뿌듯하기도 했지만 걱정도 되었다.

지금은 신희진에게 집중하고 있다지만 영화도 길어야 한 달이면 끝이 나고, 스타즈도 다시 활동에 들어가거나 뭔가를 하게 되니까.

지금은 알던 정보로 어떻게 끌고 나갔는데 이제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냥 하던 대로 하는 게 최고일 것 같다.

일단은 눈앞에 닥친 신희진의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가을’만 신경 쓰자.

백미러로 뒤편을 보니 신희진이 자는 듯 고개를 옆으로 까딱까딱하고 있었다.

잠에서 깨지 않게 좀 더 조심히 운전해서 숙소로 향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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