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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도 다시 매니저!-97화 (97/200)

제97화.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가을 (3)

“10분 뒤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임지예가 크게 외쳤다.

이제 첫 촬영이 얼마 안 남은 시점이었다.

신희진과 안재성은 이진철과 함께 이번 장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둘이 처음 만나는 장면인데, 스치듯 지나쳐가는 장면이었다.

“여기서 뭐 하세요?”

임지예가 할 일이 없었는지 내 쪽으로 어슬렁어슬렁 다가와서 물었다.

“구경.”

“팔자 좋으시네요.”

“열심히 담당 배우 보고 있잖아. ‘뭘 해줘야 할까?’하고.”

“정말이죠?”

임지예는 학교 다닐 때도 넉살이 좋았다.

그리고 사람을 봐가면서 장난을 걸기도 했고.

내가 저런 말에 정색하는 사람이었으면 저렇게 말하지도 않았을 거다.

그래도 한마디는 해야겠다.

“너 학교 다닐 때랑 좀 다르다?”

“똑같은데요?”

“학교 다닐 땐 이러지 않았던 거 같은데….”

“저도 이제 4학년이라고요.”

내 말에 임지예가 따박따박 대꾸했다.

요것 봐라?

“머리 굵어졌다 이거지?”

“머리는 원래 굵었어요.”

“한마디를 안 지네. 네! 오빠! 할 때가 그립다.”

스타즈 애들도 그렇고 임지예도 그렇고.

생각해보면 나보다 어린 여자애들이 나를 꽤 편하게 대하는 것 같다.

뭐가 문젤까.

“그 시절 다신 안 올 거예요.”

“근데 이신형 감독…님이 현장 컨트롤을 안 하시네?”

“안 해도 다들 알아서 잘하시니까요. 호흡 맞춰온 게 한두 번이 아니시던데요?”

보통은 조연출, 즉 조감독이 현장을 통제했을 거다.

근데 막내인 임지예가 시간 경과를 알려주는 걸 보고 어쩔 수 없나보다 싶었다.

아마도 이신형 감독은 현장 분위기와 이진철이 어떻게 찍는지, 어떻게 컨트롤하는지 보려는 듯했다.

“그래서 네가 진행 보고 있는 거야?”

“이신형 조…감독님이 몇 분 전입니다! 할 수는 없잖아요. 저보고 하래요.”

“그치. 그게 맞지.”

임지예의 말을 통해서 내 생각이 맞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이제 슬슬 촬영에 들어갈 것 같았다.

지예를 슬슬 돌려보내야 할 것 같네.

“일은 할 만해?”

“그냥 학교에서 영화 찍을 때보다 좀 더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는 거 말고는 없네요.”

“그래? 그럼 지금 빠릿하게 움직여야 할 거 같은데? 이진철 감독 지금 모니터 앞에 있잖아.”

“앗. 가볼게요!”

내 말에 임지예가 급히 현장을 살펴보더니 빠르게 모니터로 향했다.

감독이 자기 위치에 들어갔으니 나머지 스태프인 촬영 감독과 조명 감독도, 그리고 배우들도 각자 위치에 섰다.

그러자 이진철이 모니터 앞에 앉아 있다가 일어났다.

“자, 이제 첫 촬영입니다. 짧게 하겠습니다. 좋은 작품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짝짝짝.

이진철이 쑥스럽게 말하는 것 같으면서도 시선은 올곧았다.

분위기가 조금 쳐지는 것 같아지자 옆에 있던 이신형 감독이 거들었다.

“당연히 좋은 작품으로 보답해야죠. 감독님.”

“조감독님 부담되니까 그런 말 하지 마세요.”

하하하.

이신형 감독이 분위기를 풀어줬다.

출발 분위기는 매우 좋았다.

이 분위기가 쭉 유지될지 중간에 파탄이 날지는 하늘밖에 모른다.

“자. 그럼 슛 들어갑시다!”

이진철이 손뼉을 짝 치면서 말했다.

“슛 들어가겠습니다!”

이진철의 말에 이어서 임지예가 큰 소리로 외쳤다.

이제 촬영이 시작되는 것 같았다.

시선을 돌려 신희진을 바라보니 신희진은 여유롭게 준비하고 있었다.

긴장할 만도 한데 별 긴장이 안 되는 듯했다.

오히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눈웃음을 짓는 신희진이었다.

“막내야! 슛 들어간다고 이야기만 하면 어떻게 하니. 슬레이트 가져다 대야지!”

“아! 네!”

이신형 감독이 웃으면서 말했다.

임지예가 생각보다 바쁘겠는걸.

슬레이트 챙기랴, 현장도 보랴. 그래도 영화 찍은 짬이 있어서 잘 적응할 거다.

임지예가 슬레이트를 챙긴 후 카메라 앵글에 맞춰 슬레이트를 댔다.

“막내야, 조금만 더 내려!”

“네!”

카메라 세컨드가 슬레이트 위치를 잡아줬다.

임지예가 슬레이트를 정확히 대자 바로 카메라의 녹화가 시작되었다.

“카메라 롤.”

“사운드 스피드.”

“7-1-1!”

딱!

경쾌한 슬레이트 소리와 함께 빠르게 화면 밖으로 사라지는 임지예였다.

모니터를 확인하던 이진철은 임지예가 화면 밖으로 나가자 첫 촬영의 신호를 알렸다.

“레디!”

바늘 하나가 떨어져도 들릴 만큼 현장이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액션이 나오기 전에 빠르게 이진철 뒤로 가 모니터를 보았다.

“액션!”

그리고 이진철의 액션 소리와 함께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가을’ 의 첫 촬영이 시작되었다.

앵글은 평범하게 시작했다.

기교를 부린다기보다는 감수성을 건드리는 듯한 화면이었다.

모니터 화면으로 본 앵글은 참 따뜻했다.

화면 오른쪽에서 ‘현승’의 안재성이 걸어 들어오고, 그와 동시에 화면 왼쪽에서 ‘연희’의 신희진이 걸어 들어왔다.

이내 정중앙에서 둘이 스치듯 지나갔다. 현승은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연희를 조심스럽게 뒤돌아보았다.

평범한 앵글과 전형적인 화면 구성이었지만 화면을 구성하는 그림이 너무 이뻤다.

모니터 화면에는 멍하니 연희를 바라보는 현승의 하반신은 나오지 않고 상체만 보였다.

이내 앵글이 점차 크레인을 이용해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앵글로 변화되었다.

그리고 멈춰진 화면에는 현승과 연희의 모습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첫 만남부터 둘의 만남으로 이야기가 진행될 거라는 전형적인 구도의 컷이었다.

너무나도 전형적인 구도는 결국 미장센이 중요한데 화면을 보면 미장센에 충분히 신경 쓴 것을 알 수 있었다.

살랑거리는 나뭇잎, 장소에서 물씬 풍겨 나오는 앤티크한 감성.

종합적으로 아릿하고 따뜻한 감성으로 그림을 잘 그린 것 같았다.

“컷!”

널찍한 화면 바깥으로 신희진이 완전히 사라지자 그제야 이진철이 컷을 외쳤다.

“좋네요.”

그리고 이진철이 짤막하게 한마디를 했다.

“장소가 다 했지 뭘.”

“그러게요.”

이신형 감독도 동의하는지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진철도 멋쩍게 웃으며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다시 갈 거지?”

“네.”

“다시 가겠습니다!”

이신형 감독의 말에 긍정의 의미를 내비치자 임지예가 크게 소리쳤다.

임지예의 말에 카메라도 원래의 첫 구도로 돌아갔고 연기자들도 본래의 자리로 다시 돌아갔다.

스크립터나 메이크업, 분장팀들도 딱히 손댈 게 없었는지 별말 없었다.

내 생각이지만 지금 느낌이 제일 좋아서 나중에 편집에 사용할 테이크도 첫 테이크를 쓰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첫 테이크로 오케이 하기에는 혹시? 라는 게 있으니 하나 더 찍는 것 같았다.

다들 준비가 되었는지 임지예가 카메라 구도에 맞춰서 슬레이트를 댔다.

“테이크 2!”

딱!

“레디!”

“액션!”

첫 컷을 보면 영화의 분위기와 냄새를 알 수 있는데, 시작은 훈훈하고 따뜻하게 시작한 것 같았다.

* * *

“저 어땠어요?”

다음 장소로 촬영 이동 중에 신희진이 물어왔다.

신희진이 자기가 찍은 컷들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뭐 평가할 만한 게 있어? 말없이 걸어 다닌 게 끝인데.”

“에이 그래도 분위기라던가….”

내 말이 섭섭했는지 신희진이 한층 시무룩한 얼굴로 되물었다.

너무 퉁퉁댔나?

“그림은 괜찮더라. 그리고 잘 나왔어.”

“그래요?”

“어.”

내 말에 언제 시무룩했냐는 듯 활짝 웃는 신희진이었다.

그러고 나서는 몸을 들썩였다.

“아, 궁금하다.”

“아까 한번 보지 그랬어?”

“그래도 돼요? 재성 오빠도 별말 없어서 가만히 있었는데.”

“모니터링 하겠다고 하면 보여줬을걸. 게다가 오늘 촬영 일정이 빡빡한 것도 아니라서.”

내 말에 촬영했던 기억이 떠올랐는지 한껏 아쉬워했다.

“아, 그럼 한번 볼걸.”

“오늘 재성 씨랑 이예진 선배님 찍는 거 잘 느껴봐. 침대에 누워만 있는 거지만 그래도 호흡이나 분위긴 느낄 수 있을 테니까.”

시나리오 시간의 순서대로 찍는다면 이 장면은 좀 나중에 찍어야 했는데 이예진의 스케줄 때문에 앞으로 당겨졌다.

“네.”

“밥은 어떻게 할래? 3계절 팀에서 준비한 밥은 있는데.”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가을’ 팀을 줄여서 3계절 팀이라고 부르기로 정했다.

영화 제목이 너무 길다 보니 줄일 만한 단어가 필요했는데 제목에서 4계절 중에 3계절만 나오니 3계절 팀이라고 줄여 부르고 있었다.

“간단히 샐러드만 먹을게요.”

“아까 올 때 너무 많이 먹었지?”

간단히 샐러드란 말이 의외였다.

아까 올 때 열심히 먹더니 배가 부른 모양이었다.

“아니거든요!”

내 말에 신희진이 버럭 했다.

어느 포인트에서 버럭 한 걸까.

많이 먹은 거? 아니면 아직 자기 배에는 더 들어갈 자리가 있다?

내가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신희진이 다른 말을 꺼냈다.

“근데 영화 촬영장은 뭔가 이상하네요.”

“뭐가?”

“좀 다른 거 같아요.”

“당연히 다르지.”

“뭐가 다른데요?”

신희진은 오늘 촬영한 영화 촬영장이 신기한 것 같았다.

뭐가 다르냐라….

“우리가 지금까지 프로그램 위주로 현장 돌았지? 영화 촬영장은 감독 성향이나 여러 가지 요건에 따라 틀리긴 하는데 뭔가 같이 작업한다는 느낌이 더 날거야. 난 그렇게 느꼈거든.”

“흐음, 맞는 거 같기도 해요. 프로그램은 뭔가 일한다는 기분이었고 영화 촬영은… 같이 작업? 아닌데, 암튼 뭔가 달랐어요.”

“재밌어. 머리는 아프지만.”

“그런 거 같아요.”

신희진과 이야기 나누며 운전하다 보니 벌써 다음 장소인 병원에 도착했다.

미리 가 있던 3계절 팀이 장비를 나르는 모습이 보였다.

“도착했다. 지금 앞에 3계절 팀 움직이고 있으니까 따라가. 난 샐러드 좀 사갈게.”

“네.”

신희진을 내려주고 별 탈 없이 스태프와 안으로 들어간 걸 보고 샐러드를 사러 오면서 봤던 빵집으로 차를 틀었다.

* * *

샐러드를 사고 주차를 하려고 들어갔는데 낯익은 밴이 보였다.

이예진이 온 것 같았다.

원래 정했던 콜타임보다 조금 일찍 온 것 같은데 이예진은 여전한 것 같다.

차를 주차하고 3계절 팀에서 들었던 호실을 찾아 올라갔다.

호실 앞 복도에는 조명 장비와 카메라 장비 그리고 스탠드들이 쭈욱 나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문부터 호실 안까지 지하철 철도처럼 레일이 깔려 있었다.

레일이 깔린 걸 보니 달리 촬영이 있는 듯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콘티에서 달리 촬영이 있는 걸 본 것 같았다.

레일을 피해서 조심조심해서 호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이예진이 이진철과 이신형 감독과 이야기 나누는 게 보였다.

나는 슬며시 침대 곁에 서 있는 신희진 곁으로 가 샐러드를 건네줬다.

“인사드렸어?”

“네. 인사 받으시더니 이진철 감독님한테로 가셨어요.”

신희진은 샐러드를 받더니 이예진을 바라보며 내게 말했다.

그리고 내 곁으로 한 인물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현진아.”

“팀장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다?”

“그러게요.”

말을 건 인물은 이예진의 담당인 차태수 팀장이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예진 씨 담당인 팀장 차태수입니다.”

“스타즈 신희진입니다!”

신희진이 인사하자 차태수 팀장이 본인 소개를 했다.

둘은 아무래도 만날 일이 없다 보니 지금 현장에서 처음 보는 사이인 것 같았다.

“알고 있어요.”

차태수 팀장의 말에 신희진이 헤실헤실 웃음으로 답했다.

신희진을 바라보던 차태수 팀장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현진아, 잠깐만.”

“네? 희진아, 이거 먹고 있어.”

“네.”

가져온 샐러드를 신희진에게 건네주고 차태수 팀장을 따라갔다.

“무슨 일 있으세요?”

“아니. 그냥 현장 어떻게 돌아가나 궁금해서.”

“가을동화 때랑 비슷해요.”

“그래?”

“네.”

특별한 일은 아니고 현장 분위기가 궁금했던 듯했다.

그렇지만 차태수 팀장의 용건은 그게 끝이 아닌 것 같았다.

“오늘 예진 씨 기분 별로 안 좋은 것 같더라.”

차태수 팀장이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기분이요? 왜요?”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다운 톤이었거든.”

뭘까? 캐릭터 때문에 그러나?

지금 생각나는 이유로는 연화 캐릭터 때문이지 않을까 싶었다.

연화 캐릭터는 연희의 친언니이지만 연희의 병 때문에 가슴을 앓으며 슬퍼하는 캐릭터였기 때문이었다.

“일단 알겠습니다.”

“그래.”

차태수 팀장에게 알겠다고 이야기한 뒤에 차태수 팀장과 같이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안에 들어오니 이예진과 안재성이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잘 부탁해요.”

“잘 부탁드립니다. 선배님! 말씀 편하게 하세요.”

“하는 거 봐서.”

이예진이 웃으며 안재성과 인사를 나눴다.

이예진의 분위기가 묘하게 달랐다.

뭔가 날카롭게 서 있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가라앉아 있다고 해야 할까.

내가 알던 이예진과 다른 모습에 마냥 신기했다.

“잠깐 세팅 후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임지예가 큰 목소리로 말했다.

이예진의 촬영 스케줄은 오늘 안재성과 찍는 것과 후에 신희진과 감정을 다루는 것, 이렇게 두 장면뿐.

지금 찍는 장면은 그렇게 중요한 장면은 아니었다.

병실에 있는 연희를 만나러 온 현승의 모습과, 이를 바라보는 연화의 모습을 그린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연화의 표정과 눈빛. 그리고 이에 반응하는 현승이다.

둘이 어떤 호흡을 보여줄지 사뭇 기대감이 차올랐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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