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1화. 흔들리는 별빛 (2)
“네가 뭘 도와줄 수 있는데?”
“뭐라도 해보려고요.”
“새꺄. 오냐오냐 해주니까 회사가 만만하냐? 여기가 네 회사야 뭐야? 너 말단이야.”
이진성 실장이 화내는 걸 처음 봤다.
줄곧 내 편이었던 이진성 실장이 이런 말을 할 정도니 지금 내 행동이 오지랖일 수도 있다. 그래도 조금 더 보듬을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뭐라 할 말이 없어 가만히 있었다.
“…….”
“야, 야. 힘 빼지 말고 냅둬. 네가 뭘 한다고 그래?”
“실장님. 원하는 대로 해주게 둬보죠. 쟤가 아직 안 겪어봐서 모르는 겁니다. 싹수도 괜찮은 놈인데 이럴 때일수록 빨리 겪게 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이진성 실장과 나 사이에 분위기가 험악해지려고 하자 남진수가 가까이 와서 끼어들었다.
“하… 참.”
“죄송합니다.”
남진수가 나와 이진성 실장 사이에 서자 이진성 실장은 고개를 흔들며 한숨을 쉬었다.
이 상황에 나도 무어라 하기 애매해 고개를 숙이고 상황을 봤다.
“진짜 별종이 들어왔네. 별종이. 그냥 남들 하는 만큼만 해.”
“죄송합니다.”
이진성 실장이 재차 말해도 나는 이진성 실장에게 지금 내뱉은 말 외에는 해줄 말이 없었다.
나도 이게 유난 떠는 거라는 걸 안다.
그러나 새롭게 애들을 맡으면서 다짐한 것이 있다.
나는 그걸 지킬 뿐이다.
“아이고, 속 터지네. 진짜.”
“실장님 내일 스케줄은 어차피 저 혼자 감당 가능하니 보내주죠.”
이진성 실장은 울분을 터트리듯 답답해했다.
남진수가 그런 이진성 실장에게 내 편을 들어주는 말을 했다.
“후… 그래. 알았다. 야, 이번에 빨빨거리면서 돌아다녀 보고 한번 느껴봐. 네가 하는 행동이 얼마나 쓰잘데기 없는 행동인지. 그냥 딱 비즈니스로 대하라니까? 어차피 쟤네가 감당해야 할 몫이야. 우리가 해줄 게 없어. 그 짧은 새에 정들면 얼마나 정들었다고.”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일단 이번에 너 원하는 대로 해봐. 한번 경험해보고, 별다른 성과가 없으면 이제 오지랖 부리지 말고 그냥 너 할 것만 해. 그래도 나나 진수는 너를 몇 개월 동안 봐서 이해를 해주려고 노력하지만, 남들이 볼 땐 아니야.”
“노력해 보겠습니다.”
이진성 실장도 결국 내가 원하는 대로 처리를 해줬다.
그래도 그간 내가 해왔던 행적이 헛된 건 아닌 것 같았다.
말도 안 되고 생뚱맞았다면 이진성 실장도 욕만 했을 테니까.
“죽어도 알겠다는 대답은 안 하지?”
이진성 실장은 이제 화를 내기보다는 어이가 없다는 듯 실실 웃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나는 이진성 실장의 모습을 보며 분위기가 조금 풀린 것 같아 미소를 띠며 답했다.
“아직 1년도 안 됐잖아요.”
“아직 세상 무서운 줄 모르잖아. 이런 낭만주의가 가득한 놈이 아직도 이 바닥에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어. 나이도 20대 초반도 아니고 20대 후반인데 말이야. 담당 연예인 성격이 개 같은 걸 처음부터 겪었어야 했는데.”
“쟤 복이려니 해야죠.”
“모르겠다. 둘이 알아서 해.”
남진수가 정말 필사적으로 나를 커버해줬다.
괜히 남진수가 고마웠다.
이럴 사람이 아닌데 말이지.
남진수와 대화를 하던 이진성 실장이 대화를 끝내고 휙 하고 나가버렸다.
답답해서 담배 피우러 가는 듯했다.
이진성 실장이 나가는 걸 끝까지 보다가 남진수가 내게 다가왔다.
“임마. 나도 좀 숨통 트고 살자.”
“죄송합니다.”
“실장님은 내가 어떻게든 커버칠 테니까, 힘닿는 것 해봐. 난 응원한다. 그리고 실장님도 말은 저렇게 하셨지만 다 너 생각해서 그러는 거야.”
“네. 감사합니다.”
“왜 그렇게 목숨 거는지 모르겠는데, 잘 해봐라.”
“네.”
남진수가 나를 밀어주는 게 정말 의외였다.
괜히 고마웠다.
그래도 다짐과 별개로 이렇게 해야만 할 것 같았다.
내가 이렇게 하는 이유가 있다.
예전에 신희진이 이런 루머는 아니었지만 루머에 휩싸이고 악플을 무더기로 받았을 때 굉장히 힘들어했다.
그리고 그걸 회복하는 시기가 너무 늦었다.
이진성 실장의 말마따나 본인이 견뎌야 한다지만, 도와줄 수 있다면 도와주는 게 좋지 않을까.
사실 잘 될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안 하는 것보단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이번 것도… 글쎄, 난 잘 모르겠다. 뭐 계획은 있어?”
“생각해둔 게 있는데 잘 마무리되면 나중에 알려드릴게요.”
“그래, 알았다. 어휴. 담배 땡기네.”
남진수가 물어왔지만 나도 섣불리 대답할 수는 없었다.
남진수도 이진성 실장이 나간 방향으로 나가려 하길래, 나는 다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 팀장님. 혹시 그럼 오늘 조기 퇴근해도 될까요?”
“뭐? 이 새끼 진짜…. 한 말이 있으니 뭐라 하지도 못하겠고. 그래,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마음대로 해라. 커버 치는데 하나 더 추가된다고 달라질 게 없으니까.”
“정말 감사합니다.”
“됐어. 가봐.”
“네.”
남진수도 내 기행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다 포기했다는 듯 이야기했다.
그리고 내 대답을 듣고 남진수는 휙 하고 이진성 실장이 나간 방향으로 나갔다.
나도 내 책상으로 가 정리를 하고 필요한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 * *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저… 죄송한데 혹시 박정석 선생님이 어디에 계시나요?”
“여기 학생이었어요?”
“네.”
지금 나는 신희진이 예전에 다녔던 고등학교에 와 있다.
학생이 아니라고 하면 내쫓을 것 같아 일단은 학생이라고 대답했다.
마침 남녀공학이기도 했고.
“박 선생이 아마 지금 2학년 맡고 있을 거요. 2층에 2학년 교무실로 가보세요.”
“네. 감사합니다.”
신희진이 힘들어할 때 큰 힘이 되어준 건 신희진의 학창시절 때 은사인 박정석 선생의 도움이 컸었다.
이건 나중에 신희진한테 직접 들었던 거라 기억이 생생했다.
본인이 힘들었을 때 본인을 믿고 응원해준 사람 때문에 힘을 냈다고.
그게 박정석 선생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자기가 연예인 하겠다고 나섰을 때 응원해준 사람이라고도 했다.
나에게 박정석 선생의 위치를 알려준 사람의 멀어지는 모습을 보다가 나도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다닌 학교가 아니라 이곳저곳 구경하면서 위치를 찾을 수밖에 없었는데 수업 중인 학생들을 보니 나도 감상에 젖어 들어갔다.
언제 내가 이만큼 컸을까.
그러다 보니 다시 여기를 오게끔 만든 신희진이 생각났다.
평범한 사람이 수십 수백 수천 명한테 악의를 받을 일이 있을까.
신희진은 학생이라는 신분에서 벗어난 지 고작 1년밖에 안 됐다.
신희진이 21살이지만 대학교를 진학하지 않았으니 학생이라는 신분에서 벗어난 건 맞으니까.
그렇게 감상에 젖어 들어가며 2학년 교무실을 찾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 선생님 한 분이 계셔서 그 사람에게로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박정석 선생님 찾아 왔는데요. 혹시 계신가요?”
“박 선생 아직 수업 중인데. 누구세요?”
방금 전과 다르게 상대편의 질문에 많은 고민을 하게 됐다.
제자라고 해야 할까? 신희진의 매니저로서 찾아 왔다고 해야 할까?
“누구 부탁을 받고 찾아 왔습니다.”
“부탁이요?”
“네.”
잠깐 수상한 사람 보듯 했지만 내 태도가 괜찮았는지 더 캐묻지는 않았다.
“곧 있으면 수업 끝나고 올 테니 기다렸다가 그때 말해 보세요.”
“감사합니다.”
대답해준 뒤 본인의 업무를 다시 보는 선생님이었다.
좀 멀찍이 떨어져 기다리고 있는데 마치 벌 받기 전에 교무실에서 담임 선생님을 기다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교무실은 왠지 계속 있기가 너무 꺼림칙하단 말이야.
그래도 곧 수업 끝난다는 말은 빈말이 아니었는지 수업시간 끝났다는 종이 울렸다. 오랜만에 듣는 종소리에 정말 묘한 기분이 느껴졌다.
하나둘 선생님들이 교무실 안에 들어왔는데 들어오고 나를 쓱 쳐다보고 가는데 너무 뻘쭘했다.
근데 생각해보니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이름만 알고 얼굴을 모른다는 것.
어떻게 하지?
내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박 선생! 저기 기다리는 사람이 볼일 있다는데요?”
“네?”
내가 말을 걸었던 선생님이 나를 힐끔 보고는 알려주었기 때문이었다.
도와준 선생님에게 가볍게 목을 숙이고 박정석 선생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박정석 선생님.”
“누구시죠?”
“혹시 잠깐 둘이서 이야기 가능할까요?”
“왜 그러시는데요?”
생각보다 경계심이 너무 짙었다.
아무래도 모르는 사람이 이렇게 말을 건다면 나도 똑같은 반응일 거다.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편이 좋을까?
신희진이 믿었던 사람이니 괜찮지 싶다.
“그게… 희진이 관련된 이야기로 찾아뵙게 됐는데요, 시간 괜찮으실까요?”
“오래 걸립니까?”
신희진의 이름이 나오자 눈동자가 조금 흔들리는 게 보였다. 그리고 경계심도 조금 얕아졌다.
“금방은 아닐 것 같긴 합니다.”
“금방이 아니면 지금은 곤란할 것 같은데요. 제가 다음 수업도 있어서 수업 끝나고 찾아오시죠. 다음이 마지막 교시입니다.”
“아… 네. 기다리겠습니다.”
너무나도 단호한 박정선 선생의 말에 기다리겠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계속 교무실에 있기에는 너무 뻘쭘해서 바깥으로 나와서 학교를 구경했다.
마지막 교시라고 했으니 길어야 한 시간이었으니까.
학교를 어느 정도 둘러보고도 시간이 남아 핸드폰으로 연예란 뉴스와 커뮤니티 사이트를 둘러보았다.
아직 연예란 뉴스는 뜬 건 없었고 커뮤니티는 불바다가 되어가고 있었다.
[진짜 관심법으로 애들 조리돌림 지겹지 않냐? 패턴이 바뀌질 않네]
└ㄹㅇ데뷔하기 전에도 오지게 돌리고 데뷔 하고나서도 돌리고 대단하다 진짜
└그만큼 질투가 나서 그런 듯
└지금 pdf 수집 중
└소속사는 왜 고소 안 때리냐 고소한다고 하면 쏙 들어갈 텐데 초기 때처럼 확 잡아야지 이런 건
└뭐로 고소 때림? 사실적시?ㅋ
└무슨 사실적시야 허위사실 유포로 인한 명예훼손이지
잠깐 반짝하고 수그러들 줄 알았는데 역시나 계속 활활 타고 있었다.
회사에서는 사실 확인 후 무대응으로 가려는 듯했다.
딩동댕동. 딩딩딩딩.
아까 교무실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는 제대로 못 들었는데 다시 종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다시 찾아간 교무실에 박정석 선생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게 보여 거기로 향했다.
“선생님 시간 괜찮으세요?”
“잠시만요. 업무만 좀 끝내고요.”
“네.”
잠깐의 기다림 끝에 박정석 선생이 업무를 끝내고 일어났다.
“일대일로 대화하기를 원하셨죠? 상담실로 이동하죠.”
“네.”
박정석 선생을 따라갔다.
박정석 선생을 따라가면서 느꼈던 건 학생들의 신망이 꽤 두텁다는 걸 느꼈다.
지나가면서 인사하는 학생들의 태도와 박정석 선생의 학생들에게 대하는 태도를 보면 괜히 신희진이 이 선생님을 신뢰하는 게 아닌 듯했다.
박정석 선생을 따라가 상담실이라고 적힌 곳으로 들어갔다.
들어가 앉으니 괜히 심장이 쿵쿵댔다. 마치 학생의 기분으로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말씀하시죠. 그전에… 희진이는 잘 지냅니까?”
“네. 어제까지는 좋았는데 지금 좀 이상한 소문에 휘말려서요.”
“이상한 소문이요?”
“그냥 흔히들 연예인들 루머 도는 거 있잖아요. 아이돌 애들은 뭐 사이 안 좋다던가, 학생 때 행실이 안 좋았다던가….”
처음으로 말문을 연 박정석 선생의 대화 주제는 역시 신희진의 안부였다.
박정석 선생의 얼굴에서도 신희진을 걱정하는 게 티가 났다.
“희진이는 학생 때 일은 걸릴 게 없을 텐데요.”
“네. 저도 희진이 행실 봐서 잘 알죠. 사랑 듬뿍 받고 자란 애고 본인도 열심히 받은 사랑을 전파하는 친구고요.”
“그렇죠. 인간 비타민이에요. 그래서 연예인 한다고 했을 때도 응원했었고요.”
박정석 선생도 비타민 가득한 신희진을 떠올리는지 경계심 가득한 얼굴을 풀고 미소 가득한 모습을 보였다.
왠지 이야기가 쉽게 풀릴 것 같다.
“근데 이번에 악플 때문에 너무 힘들어하더라고요.”
“그래요? 원체 본인이 힘든 건 티를 잘 안 내는 애였는데….”
“혹시 도와주실 수 있으세요?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해서 스스로 견디는 것도 견디는 거지만 주위 사람들의 격려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근데 희진이랑 관계가 어떻게 되시는지…?”
“아, 제 소개를 안 드렸네요. 죄송합니다. 스타즈 매니저 김현진이라고 합니다.”
내가 매니저라는 말에 다시 경계심을 보이는 박정석 선생이었다.
저 나쁜 사람 아닙니다.
“아, 매니저셨구나. 그럼 회사 일로 찾아오신 건가요?”
“아니요. 순전히 개인적으로 왔습니다. 회사는 아니고요.”
“그럼 저한테 원하시는 게 뭐죠?”
“따로 제가 응원 영상을 모으고 편집해서 희진이에게 힘내라고 격려를 해주고 싶은데요. 혹시, 선생님과 학생 때 희진이랑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이랑도 연락해서 가능할까요?”
“…그건 좀 힘들 것 같은데요.”
박정석 선생의 부정적인 말에 몹시 당황했다.
이러면 안 되는데?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