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도 다시 매니저!-79화 (79/200)

제79화. 터져 버렸다 (3)

“네네. 맞았네요. 제가 아니 우리 팀이 틀렸네요.”

“말씀이 좀 그러시네요?”

다 큰 성인이 어린아이가 삐진 듯한 어투로 말하는 게 어이가 없었다.

그것도 나를 똑바로 보면서 말하는 것도 아니었다.

민서희 팀장의 시선은 내 눈을 피하고 있었다.

“어머! 완전 축하드려요!”

“됐습니다. 엎드려 절 받기도 아니고.”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지으며 민서희 팀장의 말에 답했다.

“그래도 전 Babe Baby도 충분히 1위 할 수 있는 곡이었다고 봐요. 1위를 한 건 애들이 가지고 있는 팬덤의 크기를 생각하면 이상할 것도 없죠. 중요한 건 그 곡이 얼마나 롱런하느냐 아니겠어요?”

민서희 팀장은 여전히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끝까지 안 지려고 하는 민서희 팀장의 모습이 지금은 오히려 귀여웠다.

“롱런할 겁니다.”

“무슨 근거로요?”

“지금 추세를 보면 가능할 거라 생각합니다.”

지금 추세는 확실히 나쁘지 않다. 롱런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내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는지 민서희 팀장도 별반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래도 내 눈을 똑바로 보면서 냉기 풀풀 가득한 얼굴로 화답했다.

“운 좋게 얻어걸린 거예요.”

“롱런하게 되면 다음에는 제 안목은 인정해 주시나요?”

“물론이죠. 오히려 롱런하면 나중에 제가 여쭤봐야 할 정도겠네요. 도대체 어떤 감으로 선택하는지.”

그건 아니야. 내가 알아맞힐 수 있는 건 올해 한정이라고.

민서희 팀장은 별다른 뜻 없이 말한 거겠지만 나는 조금 당황했다.

“뭐 그럴 필요는 없죠.”

“…….”

내 말을 끝으로 서로 간에 어색한 침묵만 맴돌았다.

이 침묵을 깬 건 다른 사람이었다.

“김현진 매니저님? 트랙 CD요. MR만 담은 CD랑 AR이요.”

“아! 네! 감사합니다.”

나에게 다가온 A&R팀 직원에게 CD를 건네받고 민서희 팀장을 살폈다.

여전히 똑같은 자리에서 팔짱을 끼고 눈썹이 팔자로 변한 모습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네~”

목소리는 나긋나긋했지만, 왠지 모를 한기가 느껴졌다.

다음에 대할 때는 적당히 해야겠다. 적당히. 솔직히 조금 무서웠다.

* * *

“이번 주 1위는… 클린힛입니다! 축하드립니다!

펑!

아쉽게 1위를 놓쳤다.

아무래도 이 정도 화력으로도 남자 아이돌 그룹을 넘기는 건 머나먼 산인 것 같다.

얘네를 잡으려면 걸그룹은 정말 메가 히트곡이 아니면 안 될 것 같다.

화력 자체가 너무 다르네.

그래도 압도적으로 밀린 게 아닌 근소한 차이로 밀렸다는 게 위안인가.

아니 오히려 더 아쉬웠다.

밀었다면 확실했을 텐데.

무대 위에 있는 애들도 내색은 안 하는 것 같지만 아쉬워하는 얼굴이었다.

“애들이 많이 아쉬워하네요.”

“응? 저게? 어째서?”

“네? 지영이는 평소보다 덜 날뛰고 있고 린이랑 유코도 묵묵히 있잖아요.”

“1위 안 하니까 그런 거 아니야?”

내가 조목조목 말하자 미친놈 바라보듯 바라보는 남진수였다.

“에이, 팀장님 봐온 게 몇 달인데….”

“얘가 돌았나. 한 반년 가까이 같이 생활하다 보니 맛이 갔구만.”

아뇨. 1년 6개월입니다.

어느새 무대에서 애들이 내려와 스태프들에게 인사하며 우리 쪽으로 왔다.

“고생하셨습니다!”

“고생했어.”

옹기종기 모여서 한층 더 아쉬운 얼굴을 하는 스타즈 애들이었다.

“아, 아쉽다. 중간 집계까지는 1등인 줄 알았는데.”

“이게 다 우리 매니저가 투표 안 해서 그래.”

투덜거리는 박혜연과 그 와중에 신희진이 눈을 흘기며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나 했다?”

“안 했잖아요. 다 알아요.”

난 너무 억울해서 핸드폰을 들고 보여줬다.

분명, 난 했다.

“자.”

“아무튼 삼촌 탓.”

신희진은 내 핸드폰을 힐끗 보더니 아무튼 내 탓이라며 린한테 갔다.

진짜 투표 한번 안 했다고 언제까지 우려먹을지.

빌미를 준 내 잘못이다. 내 잘못이야.

“고생했다, 얘들아. 내일도 음방 있는 거 알지? 일찍 일어나야 하니까 마무리하고 얼른 나가자.”

“네!”

나도 일찍 들어가고 싶다.

음악방송 활동할 때가 제일 헬이다.

아이돌 매니저는 음악방송 활동할 때 가장 많이 도망간다.

하루에 네 시간씩 자면서 한 달을 버텨야 하는데 몸이 남아나겠나.

이제 반 남았다.

* * *

“팀장님… 이러다 죽을 거 같아요.”

“버텨 임마. 2주만 더 버티면 돼.”

“그럼 2주 뒤에 병원 가도 됩니까?”

“안 되지. 행사 돌아야 하는데. 너 가면 누가 일해?”

와, 스케줄이 너무 살벌해서 미칠 것 같다.

수목금토일 음악방송.

월화 팬 사인회 일정 및 스케줄.

차라리 월요일 화요일이 그나마 나았다.

음악방송은 맨 새벽부터 준비해야 했으니까.

오늘이 월요일이고 애들 컨디션 문제로 스케줄은 오후 시작이었으나 나는 오전에 회사에 나와 일 처리를 하고 있었다.

애들은 지금도 자고 있겠지.

“하아….”

“현진아!”

“네?”

“이리와 봐.”

“네.”

세상 다 산 표정으로 가만히 서 있었는데 이진성 실장이 나를 불렀다.

보통 잘 안 부르는데 무슨 일로 부른 걸까.

“무슨 일이세요?”

“야, 삘가는 거 하나 찍어봐.”

“네?”

이진성 실장의 말에 모니터를 쳐다보았다.

화면에는 영화 투자 기획서 두 장이 있었는데, 회사에서 이런 것도 하는구나 싶었다.

“이게 뭐예요?”

“투자 기획서인데 어디가 느낌 좋냐? 너 요즘 감 좋은 거 같던데?”

하나는 킬러를 다루는 영화였고 다른 하나는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화였다.

내가 둘 다 개봉한 걸 본 적이 없었으니 예전에는 만들고 있었던가 아니면 엎어졌거나 둘 중 하나겠지.

“선택 못 하신 거예요?”

“어. 둘 다 고만고만한데 대표님이 기획서 하나 올려보라고 해서.”

“이건 아무나 올릴 수 있는 거예요?”

왠지 호기심이 동했다.

“너도 기획에 관심 있냐?”

“아뇨. 그건 아닌데… 어, 관심이 있는 거 같기도요.”

원래는 관심이 없었는데 이진성 실장과 말하는 도중에 생각나는 게 있었다.

“뭐야. 뭐 있어?”

“확실한 건 아니라서요.”

이진성 실장이 나를 의아하게 바라봤다.

혹시 진철이 시나리오에 숟가락 얹을 수 있지 않을까?

시기가 늦어 개봉은 못 했지만, 업계 소문은 엄청 핫한 영화였던 걸로 기억한다.

“좋은 거 있으면 뽑아서 올려봐. 보고 승인해서 대표님한테 올려줄게.”

“제가요?”

“너 감 좋잖아. 어차피 기획서 구리면 내 선에서 커트야.”

“네. 알겠습니다. 저는 웹툰 원작이 더 나은 것 같아요.”

“그래?”

이진성 실장의 긍정적인 반응에 나도 혹했다.

한번 기획서 써서 올려봐야지 싶다.

혹시 이진철 시나리오에 투자할 수 있으면 로우리스크 하이리턴이다.

“오늘 애들 팬 사인회 몇 시냐?”

볼일은 끝났는지 오늘 스케줄을 물어보는 이진성 실장이었다.

“오늘 네 시부터 시작이에요.”

“사고 안 나게 조심하고.”

“네.”

이진성 실장에게 대답하고 내 자리로 가려는 찰나에 대화에 끼어드는 인물이 있었다.

“현진이가 눈 부라리면 꼼짝 못 하던데요?”

“그래? 얘가 인상이 더러운 편은 아닌데.”

“실장님. 그래도 바로 앞에서 그런 말은….”

“뭐? 내가 틀린 말 했냐?”

“아닙니다. 맞습니다.”

내가 인상이 더럽지는 않지.

오히려 이진성 실장이 인상이 험악한 편이다.

지금도 팍 찡그린 인상은 조폭을 연상되게끔 했다. 그래서 애들도 이진성 실장은 무서워하는 편이었다.

“현진아, 애들 데리고 슬슬 샵 갔다 와야 할 거 같은데?”

“네, 알겠습니다.”

남진수가 무심하게 내게 말을 하면서 일을 떠넘겼다.

귀찮은 건 다 나야. 내 밑으로는 언제 들어오나. 제길.

1년 반 정도 하면 그래도 밑으로 하나는 생길 짬인데.

돌아온 1년을 이럴 때는 찾고 싶다.

갑자기 1년 손해 본 기분이다.

의미 없는 생각은 그만두고 애들을 데리러 나갔다.

* * *

“저번에 만났었죠?”

“네! 기억해 주시네요.”

“당연하죠.”

“와….”

유미소가 자신을 기억해주는 모습에 감동한 팬이었다.

유미소의 미소에 정신 못 차리는 팬이 보였다.

팬 조련을 정말 잘하네.

“저번에 오셨죠?”

“아뇨. 오늘이 처음인데요.”

“죄송합니다….”

옆에 있던 유미소에게 노하우를 전수 받았는지 똑같이 다른 팬에게 시도한 서지영이었으나 먹히지 않았다.

오히려 분위기가 더 어색해졌다.

한번 본 것 같은 얼굴이면 그냥 던지는 멘트였구나.

“애들도 익숙하게 하네. 이제는.”

“팬 사인회 횟수만 두 자릿수인데요. 익숙할 만하죠.”

“앞으로 세 자리 네 자릿수까지 하겠지.”

“그렇겠죠?”

남진수와 애들의 사인회를 보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팬 사인회가 네 자릿수가 넘어가면 어떤 기분일까.

상상하기가 힘드네.

애들 팬 사인회는 정말 부드럽게 진행되었다.

회사 차원에서도 진상 팬은 강경하게 블랙리스트에 넣어 버리니까 청정수만 남은 것 같았다.

차라리 이게 낫지, 예전에는 정말 혼돈의 장이었다.

그리고 예전에는 악재가 겹치고 겹쳐서 더 안 좋아졌다면, 지금은 순풍만 불고 있으니 그런 영향도 있는 것 같다.

원래 팬덤은 가수의 분위기를 따라간다는 표현을 많이 한다.

그 말이 확실히 맞는 것 같다.

“아! 수능 잘 봤어요?”

“어? 기억해 주시네요?”

“제가 수능 잘 보라고 했던가? 공부 잘하라고 했던 거 같은데….”

의외로 신희진이 기억력이 좋았다.

신희진은 평소에도 사소한 것까지 잘 기억하는 편이었다.

지금 마주 보고 있는 팬이랑 대화를 나눈 걸 들어 보면 수능 전에 왔던 팬인 것 같다.

수능 전이면 거의 데뷔하고 바로 한 사인회에서 본 거일 텐데.

“네. 그때 공부 열심히 하라고 했었어요. 대학은 붙었어요.”

“와, 축하해요.”

“감사합니다.”

저 팬도 대단하네.

덕질도 하면서 공부도 잘하다니 세상은 불공평하다.

요즘 잠이 부족했는지 눈꺼풀이 너무 무거웠다.

“지금까지 무지갯빛 스타즈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깜빡 졸았는지 애들의 인사 소리에 잠이 깼다.

오늘 하루도 끝이 났구나. 나도 좀 쉬어야지. 이러다 골병들겠네.

* * *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내 인생 최대 위기가 오늘이지 않을까?

신희진이 케이크 앞에서 후 불면서 불이 붙은 초를 다 껐다.

“모두 고마워!”

어느새 스타즈 애들의 음악방송 활동기가 마지막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오늘은 활동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날이자 신희진의 생일이었다.

너무 바쁜 와중에 신희진의 생일이 있다는 걸 깜빡했다.

남진수는 나한테 이야기했다고 하는데 나는 오늘까지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똑같은 일이 두 번 일어나니까 진짜 내가 흘려들은 건가 싶다.

“언니. 우리 선물은. 숙소에 있어.”

린이 신희진을 껴안으면서 선물 이야기를 했다.

“쑴기느라 힘드러써.”

“다 같이 모아서 샀어.”

유코도 곁으로 다가와 선물 이야기를 꺼냈는데 이나라의 말을 들어보니 다 같이 모아서 산 듯했다.

“뭔데? 뭔데?”

“비밀. 가서 봐.”

신희진은 눈이 동그래지면서 궁금해했지만, 서지영이 약 올리면서 안 알려줬다.

그러자 이내 나를 보고 다가와서 손을 펴는 신희진이었다.

“줘요.”

“어?”

“어? 가 나오면 안 되는데?”

신희진의 손을 보자마자 머릿속에서 수많은 변명이 빠르게 떠올랐다.

“아니, 배송이 꼬여서 좀 늦게 와서 일정을 못 맞췄어.”

그중에서 최적의 변명을 골라 둘러댔다.

내 말을 들은 신희진의 눈이 뜬지도 모를 만큼 좁혀졌다.

“솔직히 말해요. 몰랐죠?”

“회사에서 관리하는데 몰랐을 리가 있어?”

다음에는 핸드폰에다 알람 띄워놓고 살아야겠다.

숨 막히네.

“이번 활동 고생했고, 오늘 가서 푹 쉬어. 내일은 컨디션 관리 차원에서 다 쉬니까, 너희도 푹 쉬고.”

“네!”

남진수가 시기적절하게 끼어들어서 내 선물 문제는 겉으로는 부드럽게 넘어간 것처럼 보였다.

쉬는 동안 맹렬하게 선물이나 찾아야겠다.

애들의 이번 활동은 그럭저럭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고 볼 수 있는 성적이었다.

지상파 3사 1위도 했고, 타이틀곡인 Love Up&Down은 그래도 차트 이탈하지 않고 10위권 안에 지박령처럼 박혀 있었다.

이렇게 차트 안에 박혀 있으면 역주행이나 반등할 기회가 아직은 남아 있다고 볼 수 있다.

무슨 기회만 있으면 바로 날아오를 수 있을 것 같은데.

티어즈는 어떻게 연간 1위를 한 걸까.

커버댄스로 떴나?

이것도 내일 다시 한번 생각을 정리해봐야 할 것 같다.

어떤 게 세일즈 포인트였는지.

“고생하셨습니다!”

“현진이는 애들 데려다주고 퇴근해.”

“네.”

애들 데려다주고 집에 가서 얼른 자야겠다.

한 달간 네 시간 넘게 자본 적이 드물다 보니 너무 피곤했다.

* * *

지잉. 지잉. 지잉.

한 달간의 짧은 활동이 끝나고 드디어 쉬는 날이라 달콤한 잠에 빠져있었는데, 핸드폰 진동 소리에 잠이 깼다.

받기 싫다.

누가 나를 찾는 걸까.

지잉. 지잉. 지잉.

진동이 울리는 핸드폰을 주섬주섬 들어서 내 귀에 가져다 댔다.

“여보세요….”

- 야, 현진아. 애들 숙소 가서 희진이 좀 데리고 와.

“지금요? 오늘 다 쉬는 날 아니었어요? 그리고 갑자기 희진이는 왜요?”

- 좀 묘하긴 한데 본인 확인이 필요한 거 같아서.

“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뭔데 또 뭐가 문제야?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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