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8화. 터져 버렸다 (2)
미니앨범을 발표하자 생각보다 노래가 괜찮았는지 타이틀곡은 순위권을 유지하고 있었다.
첫 진입이야 팬덤의 힘이 크다지만 음원 순위를 유지하려면 아무래도 대중들이 많이 들어줘야 하는데 그게 성공적이었다.
발표 후 약 하루 정도는 1위를 유지하고 있다가 순위가 조금 내려갔다.
우리 위로는 음원 강자인 지수와 B.B가 위에서 버텼고 그 이후로는 꾸준하게 4위권 안에 들어가 있었다.
회사 사람들의 평가도 꽤 긍정적이었다.
아직 A&R팀에 방문은 하지 않았지만, 지상파 1위를 하면 무슨 이유를 대서라도 한번 들릴 거다.
쇼케이스로 컴백하고 그 주는 무난하게 음악방송을 진행했고 이제 대망의 순위 발표를 하는 주가 돌아왔다.
걱정했던 것보다 추세가 너무 좋았다.
음원 강세인 가수를 제외하면 지금 음악방송 무대를 뛰고 있는 우리 애들을 이길 가수 팀이 없었다.
음원 강세인 가수는 음원만 나왔기에 기타 점수는 우리가 압도했으니까.
게다가 이번에는 시기도 잘 잡았기에 이번 주는 확정적으로 1등을 할 거라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우리 1등 하겠죠?”
“할걸?”
“다음 주에는 클린힛 선배님들 컴백하시잖아. 그다음 주에는 퀸 선배님들 컴백이구. 이번 주가 사실상 1위하기 제일 좋은 주인데….”
“할 거야. 불안한 말 하지 마.”
똑똑.
노크 소리에 대기실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문으로 향했다.
“네.”
문이 열리자 못 보던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둘, 셋.”
“안녕하세요! 이번에 데뷔하게 된 신인 그룹 미스티입니다!”
“둘, 셋.”
“안녕하세요! 스타즈입니다!”
와우. 애들이 인사를 받게 되는 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이야.
예전에도 이때쯤 받았던가?
1월~3월은 신인들이 대거 데뷔하는 달이기도 했다.
1월~3월에는 보통 인지도 있는 가수들은 연말 준비 때문에 앨범 준비를 못 하고, 밀린 스케줄을 연초에 처리해서 보통 4월에 컴백한다.
그래서 1월부터 3월은 빈집이라고 말이 많기도 하고, 신인이나 인지도 낮은 그룹들이 1위 하기 좋은 시기이기도 했다.
남들 바쁠 때 준비해서 나오면 되니까.
“어? 혜진아!”
“나라야!”
누가 보면 이산가족 상봉하는 줄 알 것 같다.
둘이 반가웠는지 얼싸안고 방방 뛰며 안부를 묻고 있었다.
“이번 신곡 너무 좋은 거 같아요!”
“감사합니다. 미스티분들도 타이틀곡 미스트, 노래 좋은 거 같아요. 우리 같이 힘내요!”
우리와 다른 세계에 있는 미스티의 혜진이라는 친구와 이나라를 제쳐두고 서로 훈훈하게 덕담을 주고받고 있었다.
확실히 지금은 잘 나가고 있으니 신인이던 선배 가수들이든 인사를 잘 받아줬다.
예전에는 휘청휘청하니까 신인도 잘 안 오고 선배 가수들도 건성이었는데.
역시 연예계는 인지도가 깡패다.
“안녕하세요. 미스티를 맡고 있는 김신태 실장입니다.”
“안녕하세요. 스타즈 담당하고 있는 남진수 팀장입니다.”
“안녕하세요. 미스티 매니저 박재현입니다.”
“안녕하세요. 스타즈 매니저 김현진입니다.”
애들과는 또 다르게 우리 매니저들끼리 인사를 나누었다.
미스티의 인원 5명과 우리 애들 7명. 그리고 스태프와 매니저까지 같이 있으니 대기실이 무척 좁아 보였다.
“인사 다 했지?”
“네!”
“아직 돌아야 할 곳이 많아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네, 고생하세요.”
미스티의 김신태 실장이 미스티 애들에게 눈치를 주며 우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 여기 우리 CD예요!”
“잘 들을게요!”
“서로 화이팅해요!”
“네!”
후배 그룹이 나갈 분위기가 되자 이나라가 냉큼 사인 CD를 건네주었다.
미스티의 데뷔 앨범은 아까 애들끼리 떠들 때 벌써 받았나보다.
미스티가 대기실에서 나가자 잠깐이나마 고요했다.
고요한 적막을 깬 건 유미소였다.
“와. 우리가 선배래. 푸하하.”
“시간 참 빠르다.”
“대박 실감 안 나.”
유미소가 말하자 신희진과 서지영이 호들갑 떨었다.
“얘들아. 입 놀리고 있을 때 사인 좀 할래?”
방방 뛰는 애들을 보고 한숨을 내쉰 남진수가 일거리를 던져주자 바로 스타즈 애들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
“악덕 기획사 물러가라! 물러가라!”
“물러가라. 물러가라.”
“야! 앉지 마! 의상 구겨져! 의상에 먼지 묻어!”
애들이 철푸덕 앉아 고래고래 소리 지르길래 나도 맞받아쳤다.
“기운도 좋지.”
“그래도 이 정도면 귀엽죠.”
“얘네는 보면 힘이 난다니깐요?”
내 뒤에서 소곤소곤 말하는 코디와 메이크업 아티스트였다.
다 들려요.
“그러면 폴라 사진이라도 찍고 있어.”
“그거 할래요! 우리 사진 찍자!”
“와!”
사인은 중노동이었나 보다.
사진 찍으라니까 이나라가 냉큼 받아서 자기들끼리 사진을 찍어댔다.
뭔가 폭풍이 지나간 듯한 기분이었다.
* * *
Love Up&Down 무대를 끝내고 대기실에서 하릴없이 1위 발표까지 기다리는 중이었다.
“투표했죠?”
“했죠?”
“했어. 몇 번째 묻는 거야.”
대기실에 얌전히 있지 못하고 요리조리 움직이면서 귀찮게 하는 애들이었다.
“어제 했다고 해놓고 안 했잖아요.”
“어제는 안 해도 1위 할 거 같으니까 그랬지.”
서지영이 어제 일을 꺼내와 나를 다그쳤다.
내 변명에 인상을 한층 더 구기는 애들이었다.
특히 신희진의 표정은 수라 나찰 같았다.
왜 나만 가지고 그래. 실장님도 안 했는데.
“와! 당신의 그 선택! 그 선택이 1위와 2위를 만듭니다. 반성하세요!”
“너무해.”
“너무해.”
신희진의 매서운 말에 가슴이 뜨끔했다.
신희진의 말보다 유코와 린의 말에 더 뜨끔했다.
어제는 너무 압도적 점수 차가 보여 무의미했다고 생각했는데 애들은 아니었나 보다.
괜한 빌미를 줘버렸다.
똑똑.
“곧 1위 발표 있으니 준비해 주세요.”
“네!”
스태프의 말에 힘차게 대답하는 스타즈였다.
다행이다. 계속 물어뜯길 타이밍이었는데 벗어난 것 같다.
“가자. 1위 하러.”
“못하면 푸우 탓.”
“못하면 삼촌 탓.”
“못하면 오빠 탓.”
내가 말하자 아직도 꽁해 있는 신희진, 서지영, 박혜연이었다.
나만 이 상황이 황당하다고 느끼는 게 아닌지 대기실에 있던 스태프들도 킥킥대며 웃었다.
“남 탓은 하는 거 아니야.”
“왜 남이에요? 우리지?”
“근데 왜 못하면 다 내 탓이야? 우리라며?”
내가 손으로 머리를 싸매며 말하자 내 말을 정정해주는 이나라에게 나도 다시 반문했다.
“원래 제일 나이 많은 사람이 책임지는 거예요.”
“그럼 내가 아닌데? 우리 회사 최연장자가 누구지?”
이나라가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하길래 맹점을 짚어줬다. 그러자 이번엔 신희진이 와서 반박했다.
“현장 기준으로 해야죠.”
“현장 기준이면 남진수 팀장님이네.”
“나?”
키득대는 둘을 보며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남진수는 내 말에 손으로 자기를 가리키며 억울해했다.
“진짜 한번을 안 져! 무조건 오빠 탓이에요!”
“그래, 내가 졌다. 졌어. 언제 이렇게 말이 늘었냐?”
이제 논리가 안 되니 우기기 시작했다.
“이 혹독한 곳에서 살아남으려면 늘 수밖에요.”
내가 알던 이나라는 어디 가고 유미소가 두 명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역시 환경이 중요한 것 같다.
“됐고, 가자.”
“네!”
발표 시간이 다가오자 남진수가 교통정리를 했다.
다 같이 대기실에서 나왔다.
그럼 이제 맡겨둔 1위 트로피를 받으러 가볼까.
* * *
“이번 주 1위는… 네! 스타즈입니다!”
펑!
“축하합니다!”
MC의 말과 폭죽 소리와 함께 우리 애들이 지상파 첫 1위를 했다.
어안이 벙벙한 애들이 MC가 건네주는 트로피를 받으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 일단 우리와 함께하는 별님들한테 제일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고요. 좋은 노래 만들어준 정인수 프로듀서님. 김동현 작곡가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서포트해 주시는 스태프 모두 모두 감사해요!”
이나라는 지상파 1위는 느낌이 남달랐는지 소감도 울먹거리면서 말했다.
“그리고 좋은 타이틀곡을 선택하게 해준 김현진 매니저님 정말 고맙습니다. 항상 우리랑 같이 다니는 남진수 실장님, 머리 봐주는 현영 언니, 옷 챙겨주는 지혜 언니도 모두 모두 사랑해요!”
이나라에게 마이크를 받자 씩씩하게 말하는 유미소였다.
이번엔 꽤 많은 사람의 이름이 나왔다.
그래도 첫 번째로 이름이 나오니 기분이 좋네.
“네! 마지막으로 스타즈의 Love Up&Down을 들으시겠습니다! 지금까지 생방송 인기 탑 텐이었습니다!”
MC의 말이 끝나자 Love Up&Down MR이 흘러나왔다.
1위 앵콜 엔딩 무대는 라이브 MR이 아닌 쌩 MR을 튼다.
애들은 다른 가수들과 적당히 인사를 나누고 무대를 즐겼다. 그리고 가수들이 다 내려가자 무대 위에서 흩날리는 가루를 줍고 뿌리면서 놀고 있었다.
예전에 처음 1위 했을 때는 어떻게 할지 몰라 방방 뛰기만 했던 애들이었다.
이제는 1위를 몇 번 하더니 자유롭게 즐기는 모습이 보였다.
이내 앵콜 무대가 끝나고 나와 남진수 곁으로 애들이 왔다.
“축하한다.”
“숙소에 놔둘 거예요.”
“마음대로 해.”
남진수는 무뚝뚝하게 말했지만 그래도 표정에서는 기쁜 티가 났다.
그래도 담당인데 기쁘지 않을까.
“오늘 그럼 회식이죠?”
“안 그래도 하려고 했어. 메이크업팀이랑 헤어팀도 기다리고 있으니까 얼른 가자.”
“아싸!”
배가 어지간히 고팠는지 박혜연이 회식 여부를 물어왔다.
남진수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는데 남진수의 말에 제일 좋아하는 건 신희진이었다.
애들을 진정시키고 나는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들고 애들에게 말했다.
“트로피 들어봐. 사진 하나 찍어줄게.”
“네!”
“하나, 둘, 셋!”
찰칵!
정말 한시름 놨다. 어찌 됐든 1위를 했으니 내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이제 곡이 롱런 했으면 좋겠는데….
예전에 티어즈는 어떻게 롱런한 거지?
* * *
“고생했다. 한시름 놨지?”
“네.”
“그러게 함부로 손대지 마라. 말도 조심하고.”
“그래도 결과가 좋잖아요.”
고기를 먹으면서 나를 타박하는 남진수였다.
결과가 좋으면 장땡 아니겠는가.
“안 좋았으면 어떻게 하려고 했어?”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야죠.”
“진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놈이다 너는. 어휴.”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쉬는 남진수였다.
나는 대답할 말이 없어 고기만 주워 먹었다.
지잉. 지잉.
“잠시만.”
남진수가 본인의 핸드폰을 확인하더니 전화를 냉큼 받았다.
“네, CP님. 아 스케줄이요? 잠시만요.”
통화하다 말고 이야기가 길어질 거 같은지 핸드폰을 가리면서 내게 말했다.
“먹고 있어.”
“네.”
아무래도 섭외 관련한 전화가 온 듯했다.
혼자 가만히 있기에는 심심해서 나도 핸드폰을 열었더니 의외의 연락이 와 있었다.
[이진철
애들 1위 했더라. 축하한다.]
[이예진
차 팀장님이 알려줬어요. 축하해요.]
너무 의외의 인물들이었다.
둘 다 관심 없는 줄 알았는데.
이예진은 지금 한창 마녀가 상승세라 바쁠 텐데 연락이 온 게 신기했다.
이예진에게 간단하게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이진철에게 전화를 걸었다.
- 왜.
“네가 어떻게 알고 그런 연락을 다 했냐?”
- 그냥 연예란 뉴스 보는데 기사가 있더라고.
“요즘 한가한가 봐?”
- 한가하긴. 투자자 구하느라 죽겠다. 돈만 어떻게 구하면 진행할 수 있을 거 같은데.
“네 영화?”
- 어.
“그래?”
- 어디 돈 나올 곳 있냐?
“있으면 매니저 하고 있겠냐?”
- 꺼져. 끊는다.
이진철은 정말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예전에도 돈 구하는 게 힘들어서 애먹었던 것 같은데 지금도 같은 것 같다.
어디 돈 나올 구석이 있나?
이진철에 관한 생각은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니 스타즈 애들은 신나게 자기들끼리 고기를 먹고 있었다.
체중 관리해야 하는데 고삐가 풀렸네. 그래, 오늘 같은 날은 먹어야지.
나도 술을 마시고 싶었으나 운전을 해야 해서 못 마시는 게 아쉬웠다.
“여기요! 여기 콜라 하나 더 주세요.”
탄산이나 먹어야지.
* * *
첫 지상파 1위를 하자마자 그 뒤로도 있던 지상파 음악방송에서도 1위를 먹었다.
확실히 지상파 1위의 힘이 큰지 물밀듯이 섭외 요청이 왔다.
이제 음악방송뿐만 아니라 각종 행사에 돌 행사용 트랙 CD를 구하러 A&R팀에 방문했다.
예전엔 긴장한 얼굴로 왔는데 지금은 싱글벙글한 얼굴을 감출 수 없었다.
“계세요?”
“네. 무슨 일이시죠?”
“아, CD 받으러 왔습니다. 행사 때문에 트랙 CD를 받아야 해서요.”
“잠시만요.”
“민서희 팀장님은 안 계시나요?”
“계시는데… 잠깐 화장실 가셨나 봐요.”
“아하. 알겠습니다.”
A&R 팀원과 대화를 나누고 CD를 기다리고 있는데 입구에서 민서희 팀장이 오는 게 보였다.
나를 보자 대번에 인상을 찌푸리는 민서희 팀장이었다.
“안녕하세요. 민 팀장님.”
“안녕하세요.”
나를 보더니 인상을 한껏 더 구기는 민서희 팀장이었다.
왠지 모르게 통쾌했다.
“제 말이 맞았죠?”
더욱더 구겨지는 민서희 팀장이었다.
세 번이나 얼굴이 구겨지다니 신기한걸.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