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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도 다시 매니저!-76화 (76/200)

제76화. 다가오는 증명의 시간 (2)

“음…. 민병수 평론가님. 말씀이 너무 지나치신 게 아닌가요?”

한승택 대표가 조용히 민병수 평론가를 보며 말했다.

“그렇게 느끼셨다면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이충재 감독님이 저를 초청하셔서 이 영화를 보여주신 건 보다 직설적인 말을 듣고 싶으셔서 초청하신 게 아닙니까? 그게 아니라면 저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아닙니다. 말씀하세요. 경청하겠습니다.”

민병수 평론가의 말에 이충재 감독이 차분하게 말을 받았다.

“다른 분들은 쉬쉬하시면서 돌려 말씀하시길래 말하는 겁니다. 이거 이대로 내보내실 겁니까? 제가 투자자라면 절대 이렇게 안 내보낼 거 같은데요.”

“…….”

“일단 되지도 않는 신파는 집어치우고 본질적인 거에 집중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굳이 넣어야 합니까? 다른 분들도 느끼신 것 같은데요. 돌려들 말씀하셨지만.”

민병수 평론가의 말에 분위기가 험악해지는 게 실시간으로 느껴졌다.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도 보였고 혀를 차는 사람도 보였다.

정말 대쪽 같은 양반이다.

“거 연출해 보지도 않은 사람이 너무 말을 막 하시네.”

“축구를 해야 국가대표를 욕합니까? 관객이 영화를 보고 영화에 대해 평가도 못 합니까?”

“크흠….”

민병수 평론가의 말에 김철수 감독이 침음을 삼켰다.

“어쨌든 다른 분들처럼 저도 영상에는 흠뻑 젖어 들었습니다. 그러나 되지도 않는 신파 때문에 다 잊게 만들더군요. 제발 고려해 주셨으면 합니다. 차라리 다 빼고 전쟁만 보여줘도 평타는 칠겁니다. 이상입니다.”

“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충재 감독의 얼굴이 시뻘겋게 붉어졌다.

그리고 이충재 감독의 눈은 나를 향했다.

나야? 이 상황에서 내가 말을 하라고?

“안녕하세요. 저는 스타즈 매니저 김현진입니다. 작 중 나온 린의 매니저입니다. 어…. 이런 분위기에 말하게 되어 부담이 크네요. 게다가 저는 뭣도 없는 사람인지라…. 정말 관람객의 시선으로 이야기하겠습니다.”

나름 분위기를 풀고자 우스갯소리를 했는데 웃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식은땀이 삐질삐질 흐르는 것 같다.

“먼저 화려한 액션과 드문드문 나오는 유머 코드는 좋았습니다. 적당한 긴장감과 함께 눈요기도 하고 재미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도 신파가 들어간 부분에서는 도대체 왜? 라는 말이 안 나올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마치 스파게티 전문점 가서 스파게티를 먹고 있는데 후식으로 라면이 나온 느낌이었습니다. 둘을 잡는 것보단 하나에 집중하는 게 좋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이야기 드립니다. 이상입니다. 감사합니다.”

내 말이 끝나자 룸 안은 더 조용해졌다.

내가 말한 이후로 아무도 말을 안 하는 것을 보면 내가 끝인 듯싶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화랑 측 인원인 듯했다.

생각보다 외부 인사를 몇 명 안 부른 자리였구나.

나 포함해서 다섯 명뿐이라는 사실과 그 안에 내가 포함된 게 참 신기했다.

“감독님 저도 이야기해도 될까요?”

“어? 어. 그래.”

화랑 팀의 스태프인지 분위기를 보다가 손을 든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화랑의 조연출을 맡았던 김신태입니다. 이런 자리가 의미가 있을까 싶었지만, 생각보다 참석해주신 분들의 의견에 저도 공감하는 바가 있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김신태가 잠깐 머뭇거리며 이충재 감독의 얼굴을 보다가 말을 이어갔다.

“화랑의 초기 시나리오는 단순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곳과 시간이 걸려 지금의 화랑이 완성되었지요. 감독님이 메가폰을 잡고 이 화랑이 완성되기까지 6년이 걸린 것 같습니다. 화랑이 영화화할 수 있었던 요인은 아무래도 흡입력 있는 전개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지금 와서 흡입력 있는 전개라니 무슨 말인가 싶으시죠? 여러분이 말씀하신 신파를 걷어내면 스토리는 별반 없지만, 흡입력이 있는 영화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야! 그걸 일찍 말했어야지.”

김신태의 말에 울화통이 터진다는 듯 말하는 이충재 감독이었다.

상황이 조금 웃기게 돌아가고 있는 모양새였다.

“전 말씀 드렸어요. 감독님이 찍기 전까진 모른다고 하셨잖아요. 뭐 제작사랑 투자사 입김도 있긴 했지만.”

“저걸 확 그냥.”

내가 우스갯소리로 말했던 좀 전보다 분위기가 확 풀렸다.

저런 말도 서로 간의 신뢰가 없으면 쉽게 말하기 힘든 문제다.

“아무튼, 화랑 연출팀이나 편집팀에서도 종종 이야기가 나왔던 문제를 짚어주셔서 솔직히 기뻤습니다. 이제라도 알게 돼서 다행이라고요.”

“이 감독님. 신태가 총대 메는 거예요.”

“총대는 아닙니다. 문 기사님.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여기까지입니다. 감사합니다.”

김신태의 말에 누군가 끼어들었는데 김신태가 말하는 거로 봐서는 편집 기사인 듯했다.

이충재 감독도 가만히 듣다가 김신태의 말이 끝나자 생각에 잠긴 모습이었다.

잠시간의 침묵이 있는 직후 이충재 감독의 입이 떨어졌다.

“모두의 의견 잘 들었습니다. 확실히 부족한 게 느껴지네요. 이대로 투자자들과 같이 시사했으면 욕 많이 먹었을 것 같군요. 끝나고 같이 저녁 식사라도 하시는 게 어떠냐고 여쭤보려고 했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조금 힘들 것 같긴 하네요. 따로 찾아뵙겠습니다. 오늘 와주신 여러분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다음 시사회 때 꼭 참석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짝짝짝.

이충재 감독의 장문의 말에 사람들이 박수를 쳐줬다.

내심 노발대발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역시 이충재 감독도 영화를 만들고 불안했던 듯했다.

그러니 이런 자리도 마련했겠지.

“나가시기 전에 한분, 한분 인사드리겠습니다.”

스크린 맨 앞에 있던 이충재 감독이 뒤에 있는 문에 서서 한 사람씩 배웅했다.

이충재 감독은 김철수 감독이나 한승택 대표 그리고 이희성 기자에게는 특별한 말은 하지 않고 신변잡기 성 말만 했다.

그러나 민병수 평론가의 차례는 조금 달랐다.

“날카로운 지적 감사합니다. 솔직히 많이 아팠어요. 그래도 내심 걸리던 문제라 시원합니다. 다른 세 분과 다르게 직설적으로 이야기해 주시더군요.”

“잘되길 바랍니다. 다음에 볼 때는 너무 욕심 많은 영화가 아니길 바랍니다.”

“그럼요. 그래야겠죠.”

민병수 평론가가 나가자 이제 마지막으로 내 차례였다.

“제가 와도 되는 자리였나요? 감독님?”

“사실 부를까 말까 고민하다가 승기가 술자리에서 하는 말에 넘어가서… 연출 좀 한다며? 영화제에서 상도 받았고.”

“승기 형이 정말 쓸데없는 이야기를 했네요. 상이야 운이 좋았죠. 나중에 초대해주실 때는 린이랑 같이 갈게요. 참, 저는 이런 영화는 여름에 보는 게 제 맛일 것 같아요. 참고만 해주세요.”

홍승기가 술자리에서 과장해서 말했나 보다.

나를 좋게 봐주는 건 참 좋은데 말이야.

어찌 됐든 이충재 감독은 오늘 비공개 시사회에서 화랑의 전개에 대해서 느끼는 게 많은 것 같았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시기만 잘 조율해서 개봉하면 예전처럼 흥행할 것 같다.

“물론 초대해야지. 근데 들어내고 다시 작업해야 하니 앞이 깜깜하네. 여름? 원래 개봉 시기를 그때로 보고 있었어. 맞추려면 조금 빠듯하긴 하겠지만 맞춰야지 뭐.”

“잘될 겁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그래. 들어가.”

이충재 감독은 오히려 시원한 듯했다.

오히려 이렇게 쉽게 피드백을 받아들이는 이충재 감독이 신기했다.

괜한 고집과 아집을 피우는 사람도 많은데….

쉽지 않은 선택을 쉽게 선택하는 모습을 보고 그래도 단순히 운만으로 흥행한 건 아니었구나 싶었다.

예전에도 이런 시사회가 열리고 영화에 칼질을 댔던 걸까.

아마 그랬을 것 같다.

그리고 그때도 민병수 평론가가 시사회에 참석했을지 궁금했다.

“저기요.”

“네?”

“프로그램 잘 봤습니다. 와이프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이라 챙겨보는 프로그램이었거든요.”

“아, 감사합니다.”

민병수 평론가가 아직 가지 않고 남아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프로그램 이야기를 하는 걸 보니 방송으로 내 얼굴을 본 듯싶었다.

조금 부끄럽다.

그런데 고작 이런 이유로 나를 기다렸다는 건 이상한데.

내 의문을 풀어주겠다는 듯 민병수 평론가가 바로 이야기를 꺼냈다.

“근데 궁금한 게… 왜 영화는 안 찍고 매니저 하고 계시죠?”

“네?”

“방송을 보다가 눈에 익어서 혹시나 해 인터넷에서 검색했는데 예전 영화제에서 찍은 단체 사진에 모습이 남아 있더군요. 떡값 감독님 맞으시죠?”

이예진에 이어서 두 번째로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었다.

왠지 방송으로 나를 알아볼 때보다 더 부끄러웠다.

“아, 예.”

“그 단편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왜 연출을 포기하고 매니저 하고 있습니까? 재능 낭비 같은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만, 매니저 쪽에 더 뜻이 있는 것 같아 이쪽으로 왔습니다.”

“연출할 계획은 아예 없고요?”

“그건 잘 모르겠어요. 아무튼,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민병수 평론가의 말에 얼굴이 정말 화끈거렸다.

한편으로는 내가 연출을 계속 공부했다면 감독이 될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후회는 없다.

“아쉽네요. 좀 더 익으면 성숙한 감독이 하나 나올 것 같았는데… 응원하겠습니다.”

“아닙니다.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고생하세요.”

자신의 목적을 다 달성했다고 생각했는지 휑하니 사라지는 민병수 평론가였다.

말하는 화법처럼 대나무 같은 사람 같다.

믹싱실에서 빠져나와 밖으로 나와 보니 아직 해가 떠 있었다.

이렇게 빨리 끝나다니 오늘은 조기 퇴근이다.

회사에서는 이 일정 이후로 그냥 퇴근하라고 했기 때문에 오늘이 입사 후 처음 조기 퇴근하는 날이다.

그래, 이런 날도 있어야지.

* * *

내가 화랑 비공개 시사회를 다녀온 이후로 내 일정도 생각보다 꽤 바빠졌다.

애들의 일정 조율과 함께 이것저것 수립해야 할 일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예진의 일정을 담당하는 일은 없었다.

아니면 마녀가 탄탄대로를 걷고 있어서 더 집중적으로 케어가 들어가 나를 안 찾는 걸 수도 있다.

마녀가 5월 중순 넘어가서 종영으로 알고 있는데 지금 이예진의 주가가 장난 아니었다.

올해 가을에 개봉하는 가을동화는 예상외로 이예진 후광을 입고 더 흥행할지도 모르겠다.

하루는 회의했고.

“그럼 컴백 날짜는 3월 24일로 확정 짓고 추진하겠습니다. 일정이 한 주 당겨진 만큼 더 바쁘게 움직여야 합니다.”

“이번 컴백 쇼케이스는 사녹으로 갑니까? 생방으로 갑니까?”

“생방으로 갈 겁니다.”

“마케팅팀에서 이제 슬슬 언론 활용해서 홍보해 주세요.”

또 다른 날에는 애들의 뮤직비디오 촬영이 있었다.

- Love Up&Down Up&Down

“컷! 다시 갈게요.”

- 사랑이 오려나 봐. 너도 알지. 나도 알지.

“컷! 오케이! 다음 신희진 씨 갈게요.”

서지영과 김동현이 같이 만든 곡도 따로 날을 잡아 녹음했다.

- 봄이 오고 내게 온 날.

- 다시 찾아온 너.

“혜연아, 좀 더 천천히 당겨볼래?”

- 내 앞에서 힘껏 웃어준 너.

“유코야, 악센트 조심하고. 좀 더 속삭이듯이.”

그리고 준비하는 기간 동안에 애들도 소홀히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

“야! 유미소! 너 자꾸 그럴래?”

“미안, 집중할게. 삼촌이 봐주니까 더 안 되잖아.”

“너 그거 변명이야. 한지연쌤 앞에서도 그렇게 말할래?”

“나라 언니는 나한테만 뭐라그래.”

“바보들.”

그렇게 차곡차곡 준비를 하면서 팬들과의 소통도 빠지지 않았다.

“짜자잔! 컴백 날짜가 드. 디. 어. 나왔습니다!”

“와아아! 박수! 지금 보고 있는 당신! 박수 안 치는 거 다 알아요. 박수!”

“저희가 컴백 준비하느라 Y앱을 조금 소홀히 했죠? 회사에서 안 시켜줬어요!”

“회사 방패는 만능이라고요? 그럼요. 만능이죠.”

그렇게 하루하루 회사도 바쁘고 애들도 숨 가쁘게 움직였다.

그리고 마침내 컴백 날짜가 다가왔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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