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4화. 보이지 않는 손 (5)
“자, 다시 시작해 볼까?”
“네!”
타이틀곡에 2시간을 썼으니 나머지 곡들도 다 녹음하려면 단순 계산으로는 12시간이 더 걸릴까?
아니면 다른 건 수록곡이라 조금 덜 깐깐할까?
내가 궁금했던 점은 금방 알 수 있게 되었다.
정인수 대표는 수록곡도 타이틀곡만큼 깐깐하게 했다.
오히려 타이틀곡보다 더 욕을 먹었다.
“수록곡이라고 연습 안 했어? 음이 왜 이렇게 튀어?”
보면서 느낀 거지만 다른 구성원보다 박혜연에게 정말 깐깐하게 굴었다.
아무래도 아이돌의 경우 그룹의 중심이 되는 목소리는 메인 보컬이기 때문이라서 그런 것 같았다.
“너가 부를 때 이렇게 불안하면 듣는 사람도 불안해. 그리고 니 목소리가 그룹의 색깔인데 이러면 안 되지.”
“애 잡겠어요. 살살해요.”
“어비스는 욕도 섞어서 했어. 이 정도면 많이 양호한 거지.”
“걔들이랑 얘네들이랑 같아요?”
“당연히 같지.”
김동현과 정인수 대표가 말하는 모습에 움찔움찔하는 애들의 모습이 방관자의 처지에선 정말 귀여웠다.
애들은 가시방석이겠지만.
애들이 가시방석인데도 불구하고 내가 귀여워 보인다고 한 건 다른 게 아니었다.
분위기가 험악해 보였지만 실상은 그렇게 험악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녹음실 분위기는 훈훈했다.
이유는 말만 거칠었지 정인수 대표나 김동현도 눈은 따뜻했기 때문이었다.
애들도 녹음에 대한 걱정 때문에 오는 긴장이지 둘에 대한 긴장은 아닌 것 같았다.
“좋아! 오케이! 다음은 미소가 들어가자.”
“네!”
박혜연의 파트가 끝나고 이제 유미소가 호명되어 방음 부스로 들어갔다.
방음 부스에서 나오는 박혜연의 모습은 영혼이 빠져나간 모습이었다.
“잘했어. 굿. 굿.”
“몰라요….”
내가 격려해주자 박혜연은 세상 다 필요 없다는 말투로 소파에 앉아 눈을 감았다.
박혜연을 제외하고는 생각보다 부드럽게 흘러갔다.
오히려 타이틀곡보다 더 빠르게 진행되는 느낌이었다.
“좋아. 마지막으로 지영이지?”
“네!”
정인수 대표가 마지막 타자인 서지영을 부르자 서지영이 힘껏 대답하며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타이틀곡보다 금방 끝나겠네. 현진이는 어때? 보니까?”
정인수 대표가 안에 들어간 서지영을 보면서 내게 말을 걸었다.
“잘 모르겠어요. 근데 확실히 느낀 건 정인수 대표님이 애들의 포인트는 정말 잘 캐치하시는 것 같아요.”
“어비스 애들도 그래서 정 대표님 디렉에는 암말 안 해요.”
내가 대답하자 김동현이 끼어들며 엄지를 척하며 말했다.
“잘 모르면 배워볼 생각은 없어?”
“음악까지 배우려면 너무 힘들 것 같아요.”
“그래?”
정인수 대표는 뭔가 아쉬운지 자꾸 내게 음악 배워볼 생각 없냐며 권했다.
내가 음악에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굳이 배울 필요가 있나 싶다.
“아, 저 대신 혹시 지영이가 녹음실에서 곡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는데 가능할까요?”
“지영이가?”
“네.”
그 대신 아까 서지영과 한 이야기가 생각나 서지영의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저녁에 가봐야 하는데, 동현이가 한번 봐줄래?”
“그럴까요?”
“어차피 오늘 녹음은 다 못 끝낼 것 같고… 내일까지 비워놨었지?”
“네.”
“그래. 오늘은 두 곡 정도만 더 하고 내일 마무리하자고.”
“네. 그렇게 해요.”
정인수 대표와 김동현의 대화를 들으니 오늘은 아무래도 길게 녹음할 것 같지는 않았다.
하긴 장시간 녹음하는 건 애들도 많이 힘들 테니까.
시간이 촉박한 거면 몰라도 시간에 여유가 있는데 굳이 혹사해가며 퀄리티를 낮출 필요는 없었다.
그게 아니면 그냥 정인수 대표의 스케줄 때문에 변동된 거일 수도 있고.
“야호!”
“왜 좋아해? 너네는? 너희가 더 잘했으면 빨리 끝나고 내일 쉬잖아.”
녹음이 저녁 늦게까지 하는 줄 알았던 스타즈 애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정인수 대표는 그런 애들을 보고 웃으며 핀잔을 주었다.
“저희는 아직 파릇파릇 배워가는 신인 그룹 스타즈입니다!”
“이거, 이거. 데뷔하더니 능청스러워졌어. 데뷔곡 녹음할 때는 움츠러들어만 있더니.”
“원래 성장은 빠른 법입니다!”
“그래. 일단 녹음이나 마저 끝내자.”
“네!”
애들도 마냥 정인수 대표가 불편한 것 같지는 않았다.
조금 불편하긴 해 보여도 워낙 친화력이 좋은 아이들이라 그런지 정인수 대표도 살살 녹은 것 같았다.
서지영의 파트가 끝나고 수록곡인 ‘너에게로’가 끝이 났다.
다음 곡은 이번보다 더 빠르게 작업이 끝났다.
벌써 3곡이나 작업을 끝내다니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는 것 같다.
오늘은 그럼 1곡 정도만 더 녹음하고 끝내지 싶다.
시간도 벌써 6시가 넘어 저녁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시간이 애매한데? 그래도 이왕 기세를 탔으니까 빨리해보자.”
“네!”
정인수 대표의 말마따나 기세를 탔는지 오늘의 마지막 곡도 녹음이 수월하게 진행됐다.
“고생했어. 내일 보자. 동현이도 고생했다.”
“고생하셨습니다!”
“내일 뵐게요.”
“고생하셨습니다.”
정인수 대표의 말에 모두 일어나 정인수 대표를 마중했다.
“자, 어떻게 할까. 아까 지영이가 곡 만들어보고 싶다고 했지? 해볼래? 작곡 해본 적은 있어?”
“네! 작곡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하고 노트북으로 조금씩 만들어봤어요.”
서지영은 김동현의 말에 냉큼 대답했다.
이런 기회는 쉽게 오는 게 아니긴 하지.
“다른 애들은 어떻게 할래? 먼저 퇴근할래?”
“저희도 한번 볼래요!”
“그래.”
애들도 제법 흥미가 동했는지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그러나 한 인물은 아니었던 듯했다.
“근데… 배 안 고프세요?”
“어?”
“노래한다고 공복이었는데 배가 고파서요.”
“아, 그러네. 일단 밥부터 먹고 시작할까?”
“네!”
나도 깜빡 잊고 있었는데, 역시 자기 밥그릇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챙기는 신희진이었다.
“여기 근처에 밥집 있는데 거기로 가자. 매니저님 법인카드 있죠?”
“네.”
“좀 비싼 곳이긴 한데 이럴 때 회삿돈 쓰면서 밥 먹어야죠.”
“하하하, 맞습니다. 너무 비싸지만 않으면 이해해 주시겠죠. 뭐.”
그렇다. 법인카드는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이다.
우리만 먹는 거면 눈치 보였겠지만 이 정도면 뭐.
단지 애들이 이제 관리 기간에 들어감에 따라 식단 조절을 하고 있는 점이 좀 걸리는데 상관없지 싶다.
어차피 체중 조절은 본인들이 알아서 하고 있으니.
“안내해 드릴게요. 갈까요?”
“동현 삼촌! 메뉴가 뭐예요?”
“메뉴? 당연히 고기지.”
“야쓰!”
김동현은 신희진의 격한 환영을 받으며 다 함께 바깥으로 나왔다.
그렇게 김동현이 추천해준 음식점에서 맛있게 고기를 먹은 뒤에 녹음실로 돌아왔다.
고깃값은 김동현이 말했던 대로 꽤 값이 나갔다.
9명이 먹었는데 50만 원이 더 나왔으니까.
애들도 식단 관리와 공복에 고기를 먹어서 그런지 많이 먹기도 했다.
“밥도 먹었겠다… 이제 한번 해보자. 지영이는 무슨 곡을 만들어보고 싶어? 조금씩 만들어봤다고 했지? 지금 들려줄 수 있어?”
“여기 앉아도 돼요?”
“그럼.”
김동현이 녹음실에 들어오자마자 본론을 꺼냈다.
서지영은 좀 전에 정인수 대표가 앉은 자리를 가리키며 수줍게 물었다.
“내가 PD님 앉는 자리에 앉았어!”
서지영은 자리에 앉자마자 방방 뛰었다.
“넌 PD님이 아니잖아.”
“기분은 나잖아. 미소야, 음이 불안한데? 그렇게 하면 되겠어?”
“어쭈?”
유미소가 그 점을 짚어주자 서지영은 오히려 정인수 대표의 톤을 따라 하며 유미소를 나무랐다.
“삼촌도 시간 내서 봐주시는 거잖아. 조용히 해.”
“넵.”
내가 뭐라 하기도 전에 이나라가 카리스마 있게 애들을 휘어잡았다.
김동현에게 조금 실례이지 않을까 걱정됐다.
“하하하. 괜찮아, 괜찮아. 그래, 만든 건 있어?”
“네! 인터넷 되나요?”
“당연히 되지.”
김동현이 재차 물어보자 서지영이 컴퓨터를 보고 말했다.
그리고 서지영 본인의 이메일에 본인이 만든 곡을 남겨놓았는지 곡을 찾아 김동현에게 들려주었다.
“흐음, 이런 분위기의 곡 말이지?”
“네! 저는 얼터너티브 장르를 해보고 싶어요!”
“얼터너티브?”
“네!”
“흠….”
김동현은 사람 좋은 얼굴로 애들을 바라보며 이야기하다 서지영의 눈을 맞추며 본격적으로 곡에 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베이스는 어떻게 할래?”
“어쿠스틱이 좋을 것 같아요!”
“그래? 한번 들어봐.”
서지영이 전문적인 음악 지식이 있다기보다는 서지영이 어떤 걸 요구하면 김동현이 알아서 착착 맞춰주는 느낌이다.
“아뇨. 좀 더 샤랑샤랑한 느낌이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잠시만.”
확실히 전문가는 전문가인 것 같다.
서지영이 원하는 느낌대로 빠르게 맞춰주고 있었다.
“네! 이거요!”
“다른 건?”
“여기에… 이렇게 흐르다가 좀 더 빠르게?”
“음, 이렇게?”
“네!”
서지영이 노래에 대한 센스가 없는 건 아닌지 김동현도 서지영에게 맞춰주면서 신나는 모습이 보였다.
김동현도 본인의 일이 즐거운 것 같았다.
“스트링을 좀 더 넣어볼까?”
“오! 이거예요. 이거!”
“훅은?”
“좀 더 풍성하게 가능할까요?”
“잠시만.”
오히려 서지영보다 더 신이 난 김동현이 이것저것 서지영에게 묻기 시작했는데 갈수록 곡이 꽤 세련되게 변하고 있었다.
둘의 합이 잘 맞나?
“와, 신기하다.”
“곡을 이렇게 만드는 건가?”
“동현 삼촌이 센스가 좋아서 지영이가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시는 것 같은데?”
애들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나랑 같이 곡 작업을 쳐다보고 있었다.
“지영이가 말한 분위기의 장르로도 몇 개 만들어둔 게 있으니까. 거기에 원하는 걸 덧붙여서 만든 거야.”
김동현은 녹음을 작업하다가도 애들의 말에 틈틈이 대답해 주었다.
“그래도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요즘은 예전처럼 빡빡하게 배우기보다는 기계로 만지면서 하니까.”
“그래도 아는 게 더 좋겠죠?”
“그건 당연하죠.”
나도 궁금해서 김동현에게 물어보자 김동현은 친절하게 대답해줬다.
그러다 어느덧 곡의 뼈대가 완성되었다.
“자, 그럼 지영이가 만든 곡을 한번 들어 볼까?”
곡을 들으며 느낀 건 잔잔하면서도 세련된 곡이란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어쿠스틱 기타가 베이스가 되어 전체적으로 아날로그 감성이 묻어났고, 스트링을 풍성하게 해 웅장한 느낌도 들었다.
“생각보다 좋은데요?”
“그러게?”
서지영이 손뼉을 치며 좋다고 말하자 김동현이 동의했다.
“PD님한테 한번 말해볼까?”
“네?”
“지영이랑 나랑 공동 작곡으로 해서 자작곡으로 올려도 되지 않을까? 이렇게 만드는 것도 감이 좋아야 가능하거든.”
“너무 날로 먹는 것 같은데요.”
서지영이 머쓱해서 하며 손사래를 쳤지만, 김동현이 괜찮다며 우직하게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다들 이렇게 많이 하니까. 그리고 기여가 아예 없다고 볼 수도 없고. 일단 이건 내가 오늘 좀 더 다듬어볼게. 작사까지는 시간이 걸릴 거 같고….”
“네, 알겠습니다.”
“근데 빠꾸당할 가능성도 있으니까 너무 기대하지 말고.”
“네!”
콘솔 앞에 앉아 있던 서지영이 다시 스타즈 애들이 앉은 자리로 돌아왔다.
“조금 지루하셨죠?”
“아뇨. 재밌었습니다.”
“그럼 다행이네요.”
“Love Up&Down은 어떤가요?”
“좋아요. 잘 나왔어요. 들어보셨잖아요?”
내가 타이틀곡을 묻자 김동현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그렇긴 하죠. 궁금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잘될 거예요. 이 정도면 훌륭해요.”
“그렇겠죠?”
“하하하, 빵 뜨면 제 덕입니다. 물론 이걸 타이틀곡으로 민 김현진 매니저님 혜안도 있긴 하겠지만.”
“물론이죠. 오늘 고생하셨습니다!”
나를 띄워주는 김동현이 살짝 부담스러웠다.
김동현의 호의를 받으며 오늘 하루 마무리 인사를 했다.
“네, 내일 뵐게요.”
“고생하셨습니다!”
“얘들과 고생했다! 푹 쉬고 내일 보자.”
“네!”
생각보다 알찬 하루였다.
아직 녹음이 남았지만 정말 느낌이 좋았다.
의외의 수확도 있었고.
녹음하기 전만 해도 불안감이 있었는데 말끔히 날아가 버렸다.
좋아. 아주 좋아.
* * *
애들의 녹음이 끝난 날 이후로 우리도 바쁘게 움직였다.
첫날에 타이틀곡을 비롯한 수록곡 4곡을 녹음했고, 그다음 날 나머지를 녹음했다.
그리고 서지영과 김동현이 만든 곡은 좀 더 다듬어서 앨범에 실릴 예정이었다. 정인수 대표도 듣고 흔쾌히 동의했었다.
이후로 애들의 앨범 컨셉에 맞춘 의상, 뮤직비디오, 쇼케이스, 향후 일정 등을 준비하다 보니 확실히 업무량도 늘어나고 바빠졌다.
그리고 준비를 하는 와중에 마녀의 순조로운 출발도 들려왔다.
마녀의 첫 방송 시청률은 3%로 순조롭게 출발했다.
케이블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하면 너무나도 순조롭고 좋은 출발이었다.
게다가 화제성 지수도 상당히 높아 긍정적이었다.
이 정도면 예전보다 출발이 더욱더 좋은 게 아닌가 싶다.
“현진아.”
“네.”
남진수가 나를 불러 남진수를 봤더니 옆에 홍승기가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무슨 일로 오셨어요?”
“너 보려고 왔는데?”
“절요? 왜요?”
홍승기가 웃으며 나를 찾는 모습이 너무 불안했다.
홍승기랑 엮이면 항상 묘한 일이 벌어지던데.
“팀장님 잠깐 현진이 좀 쓰겠습니다.”
“이제 애들 활동 들어가서 안 되는데요….”
“아, 스케줄로 쓴다는 게 아니라… 스케줄인가? 아무튼, 잠깐 이야기 좀 할게요. 아니다. 여기서 이야기해도 되나?”
남진수가 난처하게 홍승기에게 말하자 홍승기는 별일 아니라는 듯 남진수에게 말했다.
뭐지? 스케줄인데 스케줄이 아니라고?
“뭔데 그러세요?”
“야. 너 비공개 시사회 가볼 생각 없냐?”
“비공개 시사회요?”
“어. 화랑 시사회.”
홍승기의 입에서 뜬금없는 말이 흘러나왔다.
화랑? 거긴 또 왜?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