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도 다시 매니저!-73화 (73/200)

제73화. 보이지 않는 손 (4)

“두둠칫. 둠바바~”

“이상한 소리 좀 그만 내주면 안 되겠니?”

“둠둠칫. 둠바둠바.”

녹음하러 가는 게 신이 났는지 애들은 한껏 흥이 올랐다.

그중 가장 독보적인 건 유미소였다.

타이틀곡이 정해지고 3일이 지난 지금, 우리는 녹음하러 가고 있었다.

“너네가 그러니까 팀장님도 도망치시잖아.”

“왕관을 쓴 자 무게를 견뎌라!”

운전하면서 앞보다는 뒤가 신경 쓰여 한마디 했더니 서지영이 대뜸 말했다.

“왕관이 어딨어? 어?”

“팬들은 우리 못 봐서 안달인데 어쩜 그러실 수가 있죠?”

“그건 팬이니까 가능한 거고.”

“어휴, 낭만이 없다. 낭만이….”

서지영의 자의식이 유미소 뺨 때릴 만큼 차올랐다.

저런 말은 유미소나 할 줄 알았는데 서지영도 물 들은 것 같다.

“박혜연 얘는 녹음한다고 한마디도 안 하는 것 봐. 그런다고 목소리가 나가?”

“조금이라도 아껴야지. 목은 소모품이란 말이야.”

“이 정도로 목이 나가면 가수 하면 안 되지.”

“그건 네가 고음 파트가 없어서 그런 거고.”

“하! 우리 혜연이가 요즘 많이 컸어?”

“원래 키는 너보다 더 컸거든.”

서지영은 타깃을 바꿔 박혜연을 공격했지만 박혜연도 그동안 당했던 내공이 있어서인지 잘 대응했다.

“오늘 하루 안에 녹음 다 못 끝내겠죠?”

“내가 그건 전문가가 아니라 답변을 못 해주겠네. 저번엔 어땠는데?”

“저번엔 금방 끝났어요.”

이번엔 이나라가 나에게 물어왔다.

근데 이건 내가 답변해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럼 금방 끝나겠지.”

“근데 이번엔 다 새로운 곡이잖아요. 저번엔 세 개 빼곤 다 아는 노래였단 말이에요.”

“정 대표님 프로듀싱은 어때?”

“좋아요. 세밀하게 찝어주시기도 하고요.”

이나라의 말을 들어보면 별문제는 없을 것 같은데 괜히 녹음하니까 설레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해서 그런가 싶다.

이나라의 표정이 오묘한 걸 보면 내 생각이 맞는 듯했다.

“그래?”

“네, 근데 생각보다 까다롭지는 않으세요.”

노래 프로듀싱 하는 걸 직접 본 건 김민재 녹음실 갔을 때 말곤 없었는데 정인수 대표는 어떨까?

“근데 팀장님은요?”

“일 있으시다고 나만 보내셨어. 너희 스케줄 잡고 여러 가지 할 게 많다고 하시던데.”

“그거 실장님 일 아니에요?”

“실장님은 또 실장님대로 바쁜가 보지.”

잠자코 듣고 있던 신희진이 안 보이는 남진수의 행방을 물어왔다.

남진수도 요즘은 슬슬 스타즈 관련 일정은 전부 나한테 넘기고 있었다.

내가 애들 컨트롤을 잘해서 맡긴다고는 하지만 애들 일곱 명을 혼자 감당하려니 벅차긴 했다.

“삼촌은 왜 안 바빠 보여요?”

“너네가 바빠야 바쁘지.”

“와, 너무해. 뼈 때린다.”

“이제 컴백하면 바빠질 거야.”

그래. 대 히트곡으로 컴백하는데 무척 바빠지겠지.

하지만 조금 불안한 건 있다.

히트한 곡이지만 우리가 해도 또 히트할까? 라는 불안감.

그러나 나는 우리 애들의 매력을 믿는다.

정상에 있는 티어즈보다 결코 매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팬덤 크기도 이 정도면 훌륭한 편이고.

불안감을 떨치고 백미러로 애들을 보니 신나 하는 모습이 보였다.

스타즈가 부른 Love Up&Down은 어떤 느낌일까?

티어즈는 통통 튀는 느낌이었는데.

왠지 오늘 녹음이 기대됐다.

* * *

“안녕하세요!”

“안녕.”

녹음실에 들어가자마자 우리를 마중해주는 사람이 있었다.

엔지니어인가?

애들은 구면인 듯했다.

“삼촌! 오랜만이에요!”

“어허, 오빠라고 부르래도.”

“에이, 저희 매니저님도 삼촌이라 부르는데요?”

“오빠가 좋지. 삼촌은 좀….”

액면가는 40대쯤 되어 보이는데 삼촌으로 만족하십쇼. 아저씨가 아닌 게 어딥니까.

“그럼 여덟 살만 더 젊어지시면 그렇게 불러드릴게요.”

“바랄 걸 바라라.”

애들이랑 티키타카 하는 모습이 꽤 친해 보였다.

어느 정도 애들이랑 정리가 되는 듯싶어 내가 먼저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스타즈 매니저 김현진입니다.”

“안녕하세요. 정 PD님이랑 같이 작업하고 있는 팀 뮤즈 김동현입니다.”

“동현 삼촌이 어비스랑도 같이 작업하는 분이에요!”

박혜연의 부연 설명에 누군지 알았다.

짐작은 했었지만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니까.

이분이 그 금손들 중 하나구나.

정인수 대표의 어비스는 노래 퀄리티가 좋기로 유명했다.

그리고 정인수 대표와 같이 다니는 팀도 업계에선 유명했다.

그런 팀이 맡아서 해주는 거면 정인수 대표도 상당히 신경을 많이 써주는 거다.

예전에도 이 팀이 맡아서 했다고 들었는데 이 사람들도 악재가 겹친 스타즈는 못 살렸다.

“민서희 팀장님은 안 오시나 봐요?”

“민 팀장은 레코딩 담당이 아니어서요. 아세요?”

“아, 저번에 A&R팀 갔을 때 몇 번 이야기 나눴어요.”

“아! 이번 타이틀곡?”

“네, 맞습니다.”

김동현이 나를 알은체했다.

역시 파다하게 퍼진 유명한 이야기인 듯싶었다.

그럼 이 사람도 나에게 적의가 가득하려나.

“이야, 저도 Love Up&Down을 밀었거든요. 반갑습니다. 지금 타이틀곡에 대해서 한창 말이 많기는 한데 저도 이 곡이 더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잘해봅시다.”

“아, 네! 잘 부탁드립니다.”

그러나 김동현은 내 예상과 달리 꽤 호의적이었다.

오히려 김동현의 표정에는 고맙다는 표정이 가득했다.

본인은 Love Up&Down을 밀고 싶었는데 다수의 의견에 밀린 듯싶었다.

동현 씨. 당신이 옳다고요. 옳은 선택이었어요.

목구멍까지 올라온 내 마음의 소리였지만 참았다.

사막에서 바늘 찾듯 어렵게 찾은 내 편이었다.

물론 나를 믿어주는 스타즈 애들을 제외하고다.

애들은 녹음실이 익숙한 듯 소파에 앉아서 김동현과 함께 오늘 녹음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애 같아 보여도 얘네들은 이제 데뷔까지 마친 프로라는 게 실감이 났다.

“삼촌! 그럼 이 파트는 좀 더 통통 튀는 느낌일까요?”

“그게 더 좋겠지? 자세한 건 정 PD님이 디렉팅 할 거야.”

“아 어렵다, 어려워. 노래는 진짜 어려워.”

열정적으로 물어보는 애들이 있지만, 열심히 발음 교정하는 린과 유코도 보였다.

“우리는. 우리는. 우리는.”

“빛나는. 빛나는. 빛나는.”

한 단어를 쉼 없이 뱉고 있는 모습이 퍽 웃겼다.

린과 유코도 꽤 힘들겠구나 싶다.

발음도 신경 써야 해, 노래도 신경 써야 해.

각자 녹음 전 자신만의 방법으로 긴장을 풀고 있던 때에 문이 벌컥 열리고 늠름한 풍채의 정인수 대표가 등장했다.

“안녕.”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딱 맞춰 오셨네요.”

“딱 맞추다니, 평소보다 일찍 왔지.”

“그런가요? 하하하.”

같이 작업한 시간이 있어서 그런지 김동현과 정인수 대표는 터울이 없어 보였다.

“우리 친구들은 4개월 만에 보는 건가?”

“네!”

“잘 지냈지?”

“네! PD님은 잘 지내셨어요?”

정인수 대표의 말에 스타즈 애들은 반듯한 자세로 대답했다.

김동현에게 대하는 태도랑은 사뭇 다른데?

“잘 지냈지. 녹음 하루 만에 끝낼 수 있지?”

“어…. 노력해 볼게요!”

“노력만 하면 안 돼. 데뷔도 했는데 프로잖아. 잘해야지.”

“네.”

나직하게 말하는 정인수 대표는 대표실에 봐왔던 모습과는 또 다른 카리스마가 있었다.

정인수 대표가 하는 말들이 애들에게 뼈를 때린 듯 긴장해 굳어지는 표정들이 보였다.

정인수 대표의 말은 예전에도 들었던 말 같은데.

안무가 한지연이 했던 말이었나?

맞는 말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잘하지 못하면 알아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

“기죽지 말고. 나도 잠깐 준비 좀 할 테니까 기다려.”

“네!”

“현진이 너는 잘 봐두고.”

“네? 저요?”

능숙하게 기계를 조작하던 정인수 대표가 나를 보고 말했다.

“그래. 잘 봐놔야 나중에 써먹지.”

“알겠습니다.”

“타이틀곡 먼저 갈 테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네!”

마지막으로 애들에게 이야기한 뒤 김동현과 회의를 하기 시작했다.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는데 애들 앨범 컨셉에 대한 이야기와 어떻게 갈지에 대한 이야기를 꽤 길게 나누었다.

둘의 이야기는 내게는 어렵긴 했으나 공통된 둘의 의견은 애들의 컨셉이었다.

“자, 그럼 시작하자. 혜연이 먼저 들어가자.”

“네!”

정인수 대표가 박혜연을 부르자 박혜연은 긴장된 얼굴로 방음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스타즈의 두 번째 컴백 앨범의 준비가 시작되었다.

정인수 대표는 물 흐르듯 애들의 포인트를 잡아 디렉팅했다.

“혜연이 고음 끝처리가 불안정해. 너가 중심을 못 잡으면 안 돼.”

박혜연은 그래도 메인 보컬의 짬이 있어서인지 정인수 대표가 터치하는 부분은 빠르게 수정했다.

“희진이 실력 많이 늘었네? 좋아. 감정만 좀 더 실어보자.”

신희진은 오히려 정인수 대표가 만족스러워하며 크게 요구한 건 없었고.

“린아, 좀 더 깔끔하게 실어 볼까? 그래. 그렇게.”

린은 발음보다는 목소리의 톤을 조절해가며 밸런스를 맞췄다.

“유코야, 빙나는이 아니라 빛.나.는. 그래. 빛나는. 그리고 좀 더 밝고 깜찍하게.”

유코는 아직 발음이 서툴러서인지 발음 지적과 함께 디테일하게 요구했다.

“지영이 좋아. 아주 좋아. 그대로만 가자.”

의외로 서지영이 정인수 대표의 마음에 쏙 든 것 같았다.

요구사항이 별로 없었다.

“미소야, 더 상큼하게. 더 발랄하게. 여기서 네가 확 치고 나가는 부분인데 그렇게 하면 안 되지. 그렇게 하면 무대에서 어떻게 중심을 잡아? 네가 중심을 잡아야 해.”

그러나 유미소는 다른 애들보다 더 엄격하고 칼 같이 지적받았다.

아무래도 유미소가 무대의 중심에 서기 때문인 것 같았다.

“나라는 좀 더 통통 튀는 느낌으로. 아니야. 더. 더.”

이나라는 딱 평균이었다. 무난하게 정인수 대표의 디렉팅을 흡수해서 자기 것으로 소화해 녹음했다.

이렇게 일곱 명 스타즈의 Love Up&Down 녹음이 끝났다.

그러나 정인수 대표와 김동현은 끝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었던 듯했다.

“이 파트는 느낌이 혜연이보다는 지영이가 더 살 거 같은데? 넌 어때?”

“그러네요. 지영이가 더 나을 것 같은데, 파트 조정 좀 할까요?”

“한번 나눠서 해보자.”

“네.”

다 녹음된 노래를 듣고 어디가 더 누구에게 어울릴지를 찾아보고 그 자리에서 조정에 들어갔다.

확실히 둘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갑자기 파트를 나눠야 하는 박혜연의 경우 자책하는 표정이었고, 서지영은 미안해하는 표정이었다.

생각보다 잔인하구나.

얼마 없는 파트도 별로면 나뉘거나 뺏기니까.

이런 경우가 드문 경우도 아니겠지.

“좋아. 타이틀곡은 일단 여기까지 하고 수록곡으로 넘어가기 전에 조금 쉬어볼까?”

“네! 고생하셨습니다!”

시간은 금방 흘러 어느새 타이틀곡 녹음이 끝났다.

생각보다 별로 안 걸린 것 같다. 온 지 두 시간이 조금 넘었을 뿐이었다.

정인수 대표와 김동현이 녹음실 바깥으로 나가자 숨 막히던 녹음실 공기가 조금은 풀렸다.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진짜 재밌어 보인다.”

“뭐가?”

“프로듀싱 하는 거요. 아니, 그… 곡 만드는 게 재밌어 보여요.”

서지영이 녹음실에 있는 콘솔을 보면서 이야기하는 모습에 나도 호기심이 동했다.

“관심 있어?”

“관심은 당연히 있죠.”

“의외네. 별생각 없이 사는 줄 알았는데.”

“티를 안 내서 그렇지 누구보다 미래를 걱정한다고요! 저를 뭐로 보고! 그리고 틈틈이 만들어보고 있었거든요?”

호기심 가득한 서지영의 눈을 보니 뭔가 도와주고 싶어졌다.

“그럼 한번 여기서 해볼래?”

“네?”

“한번 해봐. 이 기회에 좀 더 배워보던가.”

“여기서요?”

내 말에 서지영은 엉뚱한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 눈이 삽시간에 커지며 놀랐다.

“응, 혹시 알아? 너에게 엄청난 재능이 있을지?”

“재능은 모르겠고 재미는 있을 것 같아요.”

“녹음 빨리 끝나면 내가 여쭤볼게.”

“동현 삼촌한테요?”

“응, 왠지 들어주실 것 같기도 하네.”

김동현은 의외로 내게 호의적이기도 했고 애들과 관계도 좋으니 지금 진행 상황으로 보면 무리한 부탁은 아닐 것 같았다.

그리고 감이었지만 왠지 서지영이 뭔가 해낼 것 같았다.

이러다가 서지영이 기똥찬 곡 하나 뽑을지 어떻게 알겠나.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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