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1화. 보이지 않는 손 (2)
“안녕하세요. 스타즈 매니저 김현진입니다.”
“아, 네. 민서희 팀장입니다.”
A&R팀에 들어가자 느낀 건 싸늘한 공기였다.
나를 대하는 담당자도 언짢은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트랙 리스트입니다. 외부로 가져가시면 안 되고 회사 안에서만 들어주세요. 유출시 법적으로 불리하실 수 있습니다.”
“네.”
민서희 팀장은 탐탁지 않아 하면서도 정인수 대표에게 연락을 받았는지 내가 말할 새도 없이 이야기를 꺼냈다.
민서희 팀장으로부터 트랙 CD를 받아 챙겨서 나가려고 할 때 민서희 팀장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근데… 음악 하셨었나요?”
“네. 관심 있어서 조금 공부했어요.”
음악을 해본 적은 없다.
단지 정보를 가지고 있을 뿐.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면 내 말에 설득력이 없어질 것 같다.
이번만 뻥카치지 뭐.
“흐음. 그러세요? 음악 기획해보신 적은 있으세요?”
“기획해본 적은 없지만, 스타즈를 맡으면서 많이 공부했습니다.”
지금 나보다 스타즈를 더 잘 아는 사람이 있을까?
“흐음, 대표님이 감이 죽으셨나, 아니면 방송을 타더니 겁이 없어진 건가?”
민서희 팀장은 작지만 마치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특히 마지막 말은 나를 보고 하는 말 같았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애들에게 어떤 게 어울릴지, 어떤 게 잘 맞는 옷인지는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세요? 박혜연 양이 음색은 얇지만 청량하죠. 서지영 양은 조금은 허스키하고요.”
민서희 팀장의 말투와 표정은 불만이 가득한 듯했다.
“네, 그렇죠.”
“그런 걸 다 일일이 분석해서 최적의 조합을 짜서 노래를 선정하고 기획하는 게 A&R팀입니다. 뭘 믿고 그러시는지 모르겠네요. 정인수 대표님이야 경험에서 우러나온 기획력과 음악을 보는 감각이 있으시니까 이해하겠는데, 김현진 매니저님은 아니잖아요?”
내가 대답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물고 뜯었다.
그리고 끝이 아닌지 바로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저희는 Babe Baby를 말씀드렸습니다만, Love Up&Down을 이야기하셨다고요? 그리고 Babe Baby가 더 다양한 느낌으로 애들이 팬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건 간과하시는 거 같네요.”
민서희 팀장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단순히 회의에서 의견 제시한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은 나도 몰랐다.
어떻게든 Love Up&Down으로 끌고 가려고 했던 것뿐이었는데.
내가 민서희 팀장에게 반문하려는 그때 A&R팀의 실장인 송민우 실장이 민서희 팀장에게 소리 질렀다.
“민 팀장! 그만해. 대표님도 생각이 있으시겠지. 무작정 맡긴 거겠어?”
“죄송합니다. 제가 좀 쏘았죠?”
“아닙니다. 이해합니다.”
송민우 실장의 말에 사과하는 민서희 팀장이었지만 별로 미안해 보이지는 않았다.
민서희 팀장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가 갔다.
그리고 민서희 팀장이 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해는 하셔서 다행이네요. 지금이라도 포기하실 생각은 없으시고요?”
“민 팀장!”
다시 벌처럼 쏘아붙이는 민서희 팀장과 그녀를 말리는 송민우 실장이었다.
내가 해줄 말은 크게 없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하! 책임이요? 기껏해야 말단 매니저가 책임져서 뭐하게요? 만약 고른 곡이 잘 안 되면 애들의 원망은요? 감당하실 수 있으세요?”
“감당해야죠.”
민서희 팀장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오기가 생겼다.
그리고 너무 답답했다.
내가 미는 곡이 성공할 곡이라고 허심탄회하게 말할 길이 없다는 게 통탄할 노릇이었다.
지금은 어떤 말을 해도 이 사람들은 모르겠지. 이게 먹힐지 안 먹힐지는 열어봐야 아는 거니까.
A&R팀도 답답할 거다.
전문가로 구성된 A&R팀보다 대표가 나를 밀고 있으니까 말이다.
“좋습니다. 뭐 애들이 설득될 것 같지는 않지만 한번 해보세요.”
“그럼 가보겠습니다. 고생하세요.”
“네. 고생하세요.”
민서희 팀장은 끝까지 말과 행동에서 불쾌함을 티냈다.
내가 민서희 팀장이었어도 같았을 것 같기도 했다.
근데 어떻게 해. 이게 뜨는 곡인데.
* * *
“너 미쳤냐?”
“아니요. 정신 멀쩡합니다.”
우리 팀에 돌아오자마자 조인트 까일 뻔했다.
이진성 실장의 화내는 얼굴이 흡사 야차 같았다.
“아니 대표님은 뭘 보고 그러시는 거지 도대체?”
답답한 듯 나를 두고 이진성 실장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움직였다.
“네가 A&R팀에서 말한 것보다 결과가 좋을 것 같아? 회의에서는 우리 팀이니까 일단 싸고돌았지만, 이해가 안 되네.”
“말하는 건 그럴싸하던데요?”
“그럴싸해서 이렇게 된 거 아니야.”
“어찌 됐든 간에 일을 저질렀으면 무조건 성공시켜. 난 응원할게.”
이진성 실장은 작금의 상황이 이해가 안 되는 듯했다.
이해가 가는 사람이 없지 않을까?
남진수는 그간 같이 다닌 정이 있는지 그래도 내 편이었다.
“감사합니다. 팀장님.”
“같이 붙어 다니더니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어휴.”
내가 남진수에게 고맙다는 눈치를 보내자 이진성 실장이 한숨을 푹 쉬면서 말했다.
“실장님도 안으로 굽어주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남진수는 실실 웃으면서 이진성 실장을 약 올렸다.
“커버칠 생각하면 내가 머리가 아파서 그래. 아파서. 임마, 너 이거 실패하면 우리 회사도 개쪽이고 우리 팀도 개쪽이고 너도 개쪽이고. 알아?”
“제가 얼굴 팔리는 건 상관없는데요. 회사까지 쪽팔릴 게 있을까요?”
“추진은 네가 했어도 책임은 회사가 지지. 아니 프로듀서는 정인수 대표님 이름으로 나갈 테니 정 대표님이 지겠네.”
여기까지는 생각을 못 했다.
나는 단지 스타즈가 잘될 길만 보고 밀고 나간 거였는데….
이진성 실장이 저렇게 이야기하니까 오히려 더 자신이 없어졌다.
안 될 자신이.
무조건 성공할 거다.
“그래도 현진이 들어오고 스타즈 애들 막힘없이 잘 굴러갔잖습니까? 이번에도 현진이가 불도저처럼 다 밀어버릴지 어떻게 알아요? 솔직히 저는 들었을 때 3곡 다 고만고만한 거 같던데.”
남진수는 자기 일 아니라고 열심히 관망 중인 것 같았다.
어쩌면 내 편을 들어준 게 아니라 그냥 강 건너 불구경하고 있던 건지도 모르겠다.
“이미 벌어진 일이니 어쩔 수 없지. 알아서 해. 그래서 지금 애들 설득하러 가야 한다고?”
“네.”
그리고 이진성 실장이 머리를 흔들며 내게 물어왔다.
“가봐. 업무는 진수가 하면 되지 뭐.”
“새꺄. 왜 일을 벌이고 있어? 안 하던 짓을 하네.”
이진성 실장이 체념한 듯 내게 말했다.
그러자 졸지에 내 업무를 떠맡게 된 남진수는 입이 걸쭉해졌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이왕 저지른 거 꼭 성공해서 회사의 한 획을 그어봐라.”
“네, 감사합니다.”
자, 욕은 먹을 만큼 먹었다.
부정적인 반응이 많아서 내가 너무 마음만 앞섰던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조금 들었다.
하지만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제 스타즈 애들을 만날 시간이다.
* * *
“노래 되게 좋아요!”
올망졸망 모여서 내가 가져온 트랙을 듣는 애들이었다.
“타이틀곡 후보가 트랙 1, 4, 8번이라고 하셨죠?”
“언니. 트랙 이름. 다 못 외웠지? Babe Baby, Love Up&Down, Shake Shake. 이렇게 세 개.”
유미소가 내게 말을 걸어왔지만, 대답은 린이 대신해줬다.
아직 애들에게 정확한 사정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냥 앨범에 수록될 곡들이라고만 알려주었다.
“너희는 뭐가 끌려?”
“저희가 고른다고 선택되는 게 아니지 않아요?”
“일단 참고하는 거지. 혹시 알아 선택할 수 있을지?”
애들에게 내가 곡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자 이나라가 의아한 듯 물어왔다.
애초에 신인에게 곡을 고르라는 회사는 없다.
우리 회사는 그래도 아티스트의 의견을 존중해주는 편이었다.
예전에도 곡이 나왔을 때 애들 의견 반영도 했었다.
정인수 대표가 나한테 넘긴 것도 비슷한 맥락인 걸까?
“저는 쉑쉑이요!”
“난 베베.”
“업 다운도 괜찮은데?”
애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꽤 갈렸다.
“난 수록곡에 있는 나비도 좋은 거 같아.”
“어! 나두!”
노래를 좀 부른다. 싶은 박혜연과 서지영은 오히려 느린 템포의 발라드에 더 관심이 많은 듯했다.
약간의 거짓말을 섞으면 쉽게 설득도 될 것 같은데….
그렇지만 나중에 알게 됐을 때는 후폭풍이 장난 아닐 것 같다.
정공법이 최선인가.
어떻게 약을 팔아야 애들 전부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 수 있을까.
아무 말 없이 고민하고 있는데 이나라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오빠는 뭐가 좋은 것 같아요?”
“나는 Love Up&Down.”
“왜요?”
“일단 다른 것보다 가사도 깔끔하고 포인트 안무 넣기도 괜찮을 것 같아서.”
내가 말한 그대로가 Love Up& Down이 뜬 이유였다.
가사도 흥얼거리기 쉬워서 대중성도 잡았고, 포인트 안무가 무엇보다도 눈에 띄었다.
지금이야 그게 그거 같지만.
그러고 보니 안무도 중요하네.
포인트 안무가 어땠더라.
“다른 거는요?”
“Babe Baby도 나쁜 곡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쉽게 흥얼거리기 힘들어서 대중성에는 약할 것 같고 Shake Shake는 훅 빼면 기억에 남지 않더라.”
예전과는 상황이 달라져서 Babe Baby도 히트 칠 가능성이 있지만, Babe Baby가 히트 칠 곡이었으면 분위기 안 좋은 스타즈의 상황 속에도 히트를 해야 했다.
티어즈는 결국 노래로 다시 성공하지 않았나.
그만큼 노래의 퀄리티는 중요하다고 본다.
배우는 작품으로 증명하고 가수는 노래로 증명한다.
연예인이 예능이나 행사를 많이 뛰어도 결국은 본질이 중요하다.
애들은 트랙을 돌려 후보곡 세 개를 다시 들어보았다.
“으… 난 솔직히. 잘 모르겠어.”
“나두.”
린이랑 유코는 노래를 다시 듣고는 백기를 들었다.
“현진 오빠 말 듣고 나니까 난 업 다운이 나은 것 같아.”
“난 처음부터 업 다운!”
박혜연과 유미소가 업 다운으로 넘어왔다.
린과 유코는 다수 의견에 따를 것 같고… 남은 건 셋인가?
“우리가 고민해봤자 어차피 고르는 건 정인수 PD님인걸.”
“그렇긴 하지. 그래도 재밌잖아. 뭐가 우리 타이틀곡이 될지 맞히는 것도.”
신희진과 서지영의 의욕 없는 말에 지금이 타이밍이라고 생각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음, 사실은 말이야.”
“갑자기 왜 무게 잡고 이야기해요?”
내가 갑자기 목소리를 깔자 서지영이 태클을 걸었다.
“어쩌다 보니 선택권을 받아왔거든? 너희 의견만 통일하면 말이야. 선택권이라고 하기는 뭐한데, Love Up&Down으로 모두가 OK 하면 그걸로 타이틀곡 내겠대.”
“Love Up&Down이요? 저희가 싫다고 하면요?”
“그러면 아마도 Babe Baby.”
“Love Up&Down은 누가 밀고 있는 거예요?”
내가 분위기를 잡고 말을 하자 이나라가 애들을 조용히 시키고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했다.
“나.”
“네?”
“그럼 Babe Baby는요?”
“그건 A&R팀.”
“정인수 PD님은요?”
“대표님은 지금 중립.”
“으음….”
필요한 정보를 다 얻었는지 애들이 생각에 잠겼다.
“잠시 저희끼리 회의할 시간을 주세요.”
“아, 그리고 내가 포인트 안무로 생각 난 게 있는데 말이야….”
“네?”
이나라가 시간을 달라 하자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애들에게 말을 하고 눈을 질끈 감고 춤을 췄다.
노래로 확 와닿지 않으면 안무를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Love Up&Down 안무는 노래에 맞게 꽤 훌륭한 안무였다.
이 안무를 짜신 안무가님 죄송해요. 먼저 쓸게요.
“어때? 업&다운 노래에 어울릴 거 같지 않아?”
“푸하하하.”
내가 말을 하자 스타즈 애들이 박장대소했다.
“안무가 재밌네요.”
“크흠.”
“알았어요. 알았어. 그럼 저희끼리 이야기 좀 할게요.”
춤에 해박한 이나라도 마음에 들었는지 아까보다 표정이 더 좋아졌다.
“알았다.”
마치 사형수가 사형을 기다리듯 초조한 심정으로 기다렸다.
그리고 회의가 끝났는지 우르르 나에게 몰려왔다.
“정했어요.”
“어떻게 할래?”
이나라의 입에 모든 신경이 집중되었다.
“Love Up&Down으로 가기로 했어요.”
이렇게 일이 쉽게 풀리나?
“솔직히 노래가 어떤 게 더 좋고 뜰지는 저희도 잘 모르겠지만, 일단 Love Up&Down이 더 좋다는 멤버가 과반수였어요.”
“일단? 또 있어?”
애들도 단순히 노래가 좋다고 정한 건 아닌 것 같다.
“당연히 있죠. 예전에 오빠 집에 갔을 때 봤던 우리 자료와 분석 때문에 좀 더 신뢰가 갔어요. 그래서 오빠의 감을 믿어 보자는 의견도 있었고요. 그리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필하신 춤이 마음에 들었어요. 이상 끝.”
이나라의 말에 내 신뢰가 일방통행이 아니라는 걸 느꼈다.
지금껏 애들과 친하다고만 생각했지 애들이 나를 이렇게 신뢰하고 있는지는 몰랐다.
“흐음.”
“근데 그 안무는 어떻게 짜셨어요? 재밌던데. Love Up&Down으로 확정되면 그거 써도 되는 거죠?”
“물론이지.”
써도 되는 게 아니라 그냥 제발 써.
“생각보다 빠르게 결정됐네. 일단 나도 보고하러 갈게.”
“네!”
쉽게 설득하기 어려울 거로 생각했는데 쉽게 설득했다.
노래가 확 눈에 띄는 게 아니었다는 점과 내가 약을 잘 팔아서일까?
어찌 됐든 나를 믿어주는 스타즈 애들이 고마웠다.
이제 마지막 관문을 뚫으러 가보자.
* * *
대표실 문 앞에 도착하니 역시나 심장이 쿵쿵 뛰었다.
뭐에 홀린 사람 마냥 이렇게 나댔을까.
그냥 가만히 회사에서 정해주는 대로만 하면서 내가 커버쳐도 됐을 텐데.
그러기엔 Love Up&Down의 성공이 내 뇌리에 강렬하게 박혀 있었나 보다.
놓치면 너무 아깝지 않을까.
똑. 똑.
“대표님, 김현진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어, 들어와.”
나는 심호흡을 하고 천천히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