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0화. 보이지 않는 손 (1)
A&R팀에서 총 20곡의 노래를 들려줬다.
이 중에서 7곡이 스타즈의 두 번째 미니 앨범에 편성된다.
그런데 내 심장을 뛰게 만드는 곡이 있었다.
Love Up&Down.
이게 우리한테도 왔었다고?
“이상 20곡입니다. 이 중 7곡을 추려야 하는데 일단 A&R팀에서 10곡을 다시 추려왔습니다.”
A&R팀 사람이 회의실 스크린에 자료를 띄웠다.
예전에 담겨 있던 곡들도 보였고 아니었던 곡들도 보였다.
지금 내 눈에는 Love Up&Down만 보였다.
“타이틀곡 후보는?”
“이 중 후보는 Babe Baby와 Love Up&Down, 그리고 Shake Shake 총 3개입니다.”
정인수 대표가 나직이 이야기하자 발표를 하던 A&R팀 사람이 타이틀곡 후보 3개를 알려주었다.
레트로와 트로피컬 하우스 중에서 트로피컬 하우스 장르가 이긴 듯했다.
예전에 썼던 타이틀곡은 Babe Baby였다.
“다른 사람들도 의견 내봐.”
정인수 대표가 회의를 주도했다.
그리고 내 생각도 많아졌다.
Babe Baby는 스타즈가 스캔들에 휘말려 그렇게 큰 탄력을 받은 곡은 아니었다.
노래는 그저 그런 평균치 정도는 되었던 곡이었다.
그러나 Love Up&Down은 6월에 발매한 티어즈의 곡이었는데 속칭 ‘대박’이 터졌다.
특히 중독성 강한 후렴구와 포인트 안무는 대한민국을 휩쓸어 티어즈가 다시 한번 도약하는 계기가 된 곡이었다.
Love Up&Down은 티어즈가 열애 스캔들도 씹어먹고 다시 굳건히 정상에 있게끔 해준 곡이다.
“저는 Babe Baby가 나은 것 같네요. 두 번째 곡은 데뷔곡이랑 조금 비슷한 거 같아서요.”
“저도 같은 의견입니다.”
회의의 흐름은 Love Up&Down보다 Babe Baby 쪽으로 기우는 추세인 것 같았다.
내 얼굴을 내가 볼 수 있다면 똥 마려운 강아지 같은 표정이지 않을까 싶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 회의에서 내가 의견을 피력하는 게 맞을까?
“저는 Shake Shake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두 번째는 기획팀이랑 의견이 같습니다.”
갈등하고 있는 사이에 여러 의견이 쏟아졌다.
Shake Shake는 묻힌 곡인 것 같다.
앞서 들은 것 외에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엔터 회사들은 아주 많은 곡이 돌아다니는데 이 중 묻히는 곡도 있고 나중에 쓰려고 아끼는 곡도 있고 다양했다.
Shake Shake도 그중 하나인 곡이겠지.
“곡들은 다 고만고만한 것 같은데….”
세 곡 다 트로피컬 하우스 기반이기 때문에 어느 게 더 특별하다고 단정하기는 힘들다.
뜨는 곡은 여러 조건이 맞아서 뜨기 때문이다.
회의실에 있는 사람들의 발언이 어느 정도 끝나자 정인수 대표가 생각에 잠겼다.
그런 분위기가 이어지자 나는 참지 못하고 손을 들고 저질러 버렸다.
“저도 발언해도 되겠습니까?”
“말해 봐.”
정인수 대표의 눈이 나에게로 오자 오싹해지는 기분이었다.
비단 정인수 대표의 눈뿐만 아니라 회의실에 있는 열 명이 넘는 인원이 한꺼번에 나를 보자 느끼는 중압감 같았다.
“저는 Love Up&Down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중독성 있는 후렴구가 대중에게 어필하기 좋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애들 분위기와도 잘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의견을 제시했다.
사실 말하기 전까지 고민이 많았다. 원래 이 곡의 주인은 티어즈 애들이다.
그런데 이 곡을 가져오는 게 맞는 걸까?
미래에 아는 정보를 쓸 때마다 찔리는 양심이었다.
하지만 사람이 착하기만 할 수는 없다. 그리고 차려진 밥상을 차는 것만큼 멍청한 건 없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갚자. 내가 성공해서.
“4팀 전체 의견인가?”
정인수 대표가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우리 매니지먼트 4팀을 훑어봤다.
남진수 옆에 있던 이진성 실장이 마이크를 앞에 대고 말하기 시작했다.
“아마 김현진 매니저가 스타즈는 제일 잘 알 겁니다. 현장에서 애들이랑 가장 많이 만나면서 부대끼니까요. 저는 김현진 매니저의 의견에 힘을 실어주고 싶습니다. 동의합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람은 역시 잘나고 봐야 한다니까.
이진성 실장과 남진수의 말에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좋아. 임진석 본부장과 김현진 매니저는 대표실에서 다시 따로 보지.”
“네?”
“알겠습니다.”
우리 매니지먼트 4팀의 이야기를 듣자 정인수 대표에게서 엉뚱한 이야기가 흘러나와 나도 모르게 반문했다.
내 뒤를 이어 말하는 임진석 본부장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프로듀싱은 내가 하기로 되어 있으니까 말이야. 이야기 들어보고 참고해 보려고. 타이틀곡에 맞춰서 수록곡 추려 내보자고. 오늘 회의는 일단 여기까지 하지.”
“고생하셨습니다.”
정인수 대표가 먼저 회의실을 나가고 따라서 임진석 본부장이 나갔다.
회의에 참석하고 있던 다른 사람들도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지만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뭐해? 가봐.”
“아, 네!”
남진수가 나를 툭툭 건드리며 하는 말에 다시 정신을 붙잡고 대표실로 향했다.
* * *
“그래, 가장 가까이서 본 매니저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볼까?”
“네? 네.”
참 신기한 일들이 많다.
벌써 여기에 온 게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정인수 대표의 눈을 똑바로 보고 나는 말하기 시작했다.
“일단 스타즈 애들의 초기 데뷔 컨셉은 사랑스러움이었습니다. Love Up&Down과 컨셉이 겹쳐 보이나 실상 가이드에 나온 가사를 들어보면 사랑스러움보다는 예전에 수록곡이었던 Bomb Bomb의 발랄함이 더 섞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굳이 컨셉을 바꿀 필요가 없다고도 생각합니다.”
“그래? 또?”
무심히 듣던 정인수 대표가 맞장구쳐주었다.
옆에 있는 임진석 본부장은 무표정으로 내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Love Up&Down 노래가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대중성에서는 다른 노래보다 더 다가가기 쉽다는 점도 한몫할 것 같아요.”
“다른 노래는?”
“Babe Baby는 퍼포먼스를 중심으로 애들의 초기 컨셉을 살짝 틀어 다른 매력을 주는 노래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굳이 그렇게 틀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두 번째 곡인 Babe Baby를 말하고 나는 잠깐 호흡을 가다듬었다.
대표의 두 눈을 마주치며 말하니 중압감이 상당했다.
“또 Shake Shake는 단순 훅만 기억에 남는 노래가 될 것 같지만 Love Up&Down은 둘 다 잡을 수 있는 노래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점점 말하면서 내가 뭘 말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지금 말하는 정보는 사실 예전에 다 나왔던 정보를 말하는 것뿐이다.
내가 음악적 지식이 뛰어난 프로듀서가 아니니까.
“껄껄. 말하는 것만 보면 한 10년은 굴러먹은 기획자 같네. 언제 음악 공부한 적 있다고 했나?”
“죄송합니다. 음악을 공부한 적은 따로 없으나, 스타즈 애들에 관한 건 자료를 모으고 제 나름대로 공부했습니다.”
정인수 대표가 웃으며 말하는데 아차 싶었다.
내가 뭐라고 이런 말을 했을까.
좀 더 설득력 있게 말해야 했지 않았을까.
“그래? 참 열정적이네. 오히려 가까이서 쭉 봐온 사람이 더 맞을 수도 있지. 나한테 이렇게 직접 말한 사람도 없어서 그런지 신선해. 진석이 너는 의견 있나?”
“전 모르겠네요. 어차피 프로듀서는 대표님 아닙니까? 대표님이 선택하시죠.”
정인수 대표가 이번에는 옆에 있는 임진석 본부장을 보며 물어봤다.
“좋아. 그럼 이번 타이틀곡은 네가 선택해봐.”
“네?”
정인수 대표가 무슨 말을 한 거지?
내가 애들 타이틀곡을 쥐여주라고?
“단, 네가 선택한 곡을 애들도 납득하게 해. 그러면 오케이 해주지.”
“어, 으음….”
정인수 대표의 말에 나는 침음을 삼켰다.
“기한은 오늘까지. 네가 말한 노래가 그렇게 매력적이라면 오늘 안에 애들에게서 확답을 받아올 수 있겠지? 그 정도도 못 하면 여기서 포기하고.”
정인수 대표의 말은 나를 당황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뭘 믿고 나한테 이런 권한을 주는 걸까.
“알겠습니다. 해보겠습니다. 노래는 A&R팀에서 받아서 애들이랑 같이 들어도 되겠습니까? 애들도 노래는 알아야 할 것 같아서요.”
“그래, 그렇게 해. 본인들이 부르고 퍼포먼스 할 노래인데 들어야지. A&R팀에는 내가 연락해놓지. 얼른 가봐. 시간도 없을 텐데.”
“네, 감사합니다. 꼭 애들이 Love Up&Down을 선택하게끔 만들어 오겠습니다.”
내 위치에는 과분한 임무였다.
일개 매니저에게 아이돌 그룹의 타이틀곡 선정 기회라.
그러나 이런 기회를 못 받아먹으면 병신이다.
그리고 난 이 곡은 뜰 노래라는 확신이 있다.
좋은 노래는 가수를 가리지 않는다.
티어즈가 아닌 스타즈 애들이 해도 뜰 노래다.
“글쎄, 과연 애들이 동의해줄까? 뭘 믿고?”
“그게 제 능력이 되겠지요.”
정인수 대표의 말마따나 내가 어떻게 말해야 애들이 이 곡을 선택할까.
막상 저지르고 정인수 대표의 말을 들으니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가는 걸 느꼈다.
그렇지만 자리가 자리인지라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정인수 대표의 옆에 있는 임진석 본부장의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 보였다.
지금 이 자리가, 그리고 나에게 선택권을 넘기는 정인수 대표의 판단에 불만이 큰 것 같았다.
그러나 임진석 본부장은 정인수 대표의 말에 끼어들거나 불만을 표시하지 않았다.
그만큼 정인수 대표의 말에 신뢰하는 걸까.
“하하하, 당돌하다니까 진짜. 가봐.”
“가보겠습니다.”
호탕하게 웃는 정인수 대표와 무표정의 임진석 본부장을 바라보다 인사하고 대표실을 나왔다.
대표실에서 나오자마자 등 뒤가 땀으로 흥건해진 걸 느꼈다.
꼬르륵.
일단 밥부터 먹고 시작하자.
* * *
“도대체 뭘 보고 이런 도박 수를 던지슈, 형님? 쟤가 뭐 특출나나?”
“우리가 손해 볼 건 없으니까.”
답답하다는 듯 벌떡 일어나 말하는 임진석 본부장이었으나 정인수 대표는 시큰둥했다.
“손해가 왜 없어? 있지. 그리고 누가 지금 상황 보면 웃을 거요. 우리가 무슨 구멍가게 운영하는 것도 아니고.”
“걸그룹이 돈이 된다면 얼마나 된다고 그래? 진석아. 차라리 유능한 기획자가 더 돈이 된다. 기획자가 유능하면 굴릴 수 있는 게 무궁무진하거든. 게다가 그런 애들은 쉽게 키울 수도 없고 말이야. 머리 굵어지면 맡았던 애들 빼가서 다 자기 회사 차려서 나가잖아. 그리고 우리 구멍가게 맞아. 껄껄, 엔터 사업하는 사람들치고 구멍가게 아닌 곳이 어디 있다고.”
정인수 대표는 어처구니없어 하는 임진석 본부장을 보며 크게 웃었다.
“허참, 쟤한테 그 가능성이 보이나? 고작 1년 차인데? 아무리 매니저의 끝은 매니지먼트 대표라지만….”
“그냥 신입 핫바지면 내가 이렇게 신경 안 쓰지. 근데 신입인데 웬만큼 연차 쌓인 애들보다 감이 좋은지, 운이 좋은지 실적이 꽤 훌륭하네? 게다가 방송도 자기 손으로 물어와서 방송에 얼굴도 타고…. 모든 건 흐름이 있어. 쟤는 그 흐름을 타고 있는 애고. 그럴 땐 올라타야지. 그게 현명한 거야.”
답답해하던 임진석 본부장이 정인수 대표의 말에 소파에 다시 털썩 앉았다.
“그러니 이렇게 한번 툭툭 건드려보는 거지. 운인지 아니면 감이 탁월한 건지. 아무래도 쟤는 내 과 같은데 말이야.”
“형님이야 10년 넘게 구르면서 다져진 거 아니요? 차라리 4팀에 진성이나 2팀에 태수가 낫지 싶은데. 기도 아니면 우리 팀에 형석이도 있고.”
“이 바닥은 경험도 경험이지만 너도 알다시피 알게 모르는 제6감이 더 중요할 때가 있어. 나랑 일하면서 느끼지 않았나? 근데 쟤는 그 6감이 탁월한 거 같아. 물론 내 느낌이지만…. 지금까지 가져온 성적도 꽤 훌륭하고.”
계속해서 의심해서 말하는 임진석 본부장이었으나 정인수 대표의 표정은 확고했다.
“그런가? 난 잘 모르겠는데. 너무 형님 감에 의존하는 거 아니요?”
“그래서 네가 지금 내 밑에 있는 거야. 쯧쯧, 기획사 하나 차리지 않고.”
“나가봤자 쪽박 찰 거 아니까 여기 붙어 있는 거 아뇨?”
어이없다는 듯 정인수 대표를 타박하는 임진석 본부장이었다.
그러나 정인수 대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받아쳤다.
“일단 한번 밀어줘 봐. 우린 손해 볼 거 없으니까. 손해는 스타즈 애들 기획사가 손해 보지, 우리 회사가 손해 보나. 어차피 1년 지나면 흩어질 애들이야. 그리고 우리 상품들은 멀쩡히 있으니 괜찮아.”
임진석 본부장이 계속 미심쩍어하자 정인수 대표는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 해주었다.
“실패하면 내가 욕 좀 먹으면 되지 뭘. 그걸로 미래 가능성을 엿보는 거면 싸지. 그러려고 맡은 프로젝트 아니었나?”
“흠, 알겠수다.”
임진석 본부장이 그제야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더 볼일 없으면 나가보겠습니다.”
정인수 대표는 나가는 임진석 본부장에게 손을 흔들고 여전히 소파에 앉아 있었다.
“이번에도 운일까? 운도 반복되면 실력이겠지.”
그가 홀로 남아 있는 대표실에서 창밖을 응시하며 나직이 읊조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