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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도 다시 매니저!-68화 (68/200)

제68화. 배우 (3)

“알겠습니다. 다시 가볼까요? 진형 씨는 조금 더 신경 써주세요.”

이예진의 말에 이서진 감독이 크게 반발할 줄 알았으나 아니었다.

이서진 감독의 표정은 태평했다.

오히려 이예진의 편을 들어줬다.

극을 끌어가는 건 이예진이다 보니 어찌 보면 맞는 선택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서진 감독도 한번 현장을 잡아야 할 필요성을 느꼈을 수도 있다.

물 흐리는 건 빨리 잡는 게 좋으니까.

어느 현장이나 촬영이 일정 이상 진행되다 보면 문제점이 하나둘 나오기 마련이다.

마녀의 촬영장은 바로 지금이 그때인 듯싶다.

“테이크 2.”

“액션!”

조연출과 이서진 감독의 사인에 다시 좀 전의 장면이 시작되었다.

“민지 씨 때문에 오긴 왔는데 왜 불렀어요?”

“왜 못 고친다는 겁니까?”

“그 이야기는 이미 했을 텐데요. 이 PD한테 이야기했어요.”

이 씬은 이예진의 극 중 배역 이해인과 김진형의 극 중 배역 김성민의 감정 씬이었다.

이예진은 차분하게 이야기하는 캐릭터지만 김진형의 캐릭터는 다혈질의 캐릭터였다.

“PPL 넣기 싫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이해인 씨?”

“왜 말이 안 되죠?”

“신인 작가라 드라마 돌아가는 상황을 잘 모르시나? 이래서 공모전으로 등단하는 작가랑은 작업하는 게 아니라니까.”

김진형의 연기를 방금 처음 봤는데 못하는 연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첫 테이크 때보다는 확실히 감정이 죽어 있었다.

이예진은 첫 테이크와 다른 모습이 보이지 않았으나 김진형은 확실히 흔들린 듯했다.

“그 장면에서는 감정이 중요하다고 해서 다른 곳에 쓰겠다고 했잖아요? 이건, 월권이죠. 좋아요. A팀 감독은 오케이 한 걸 왜 B팀 감독이 뭐라 하시는 거죠? 이 정도도 이해 못 하는 PD랑은 일을 못 하겠네요. 전 여기서 그만두겠습니다.”

“신인 작가라 배짱이 두둑한 건지 아니면 멍청한 건지 모르겠네. 당신 말고 다른 작가로 쓰면 될 문제야. 뭘 믿고 이렇게 뻗대?”

“이 작가님! 잠시만요! 잠시만요! 저랑 이야기 좀 해요!”

도도하게 말하는 이예진은 완벽히 극 중 캐릭터 ‘이해인’이었다.

그러나 김진형은 극 중 캐릭터인 ‘김성민’보다 ‘김진형’의 색깔이 더 묻어났다.

마지막에 끼어든 송민희 또한 극 중 캐릭터 ‘성민지’였으나 김진형은 불협화음처럼 화음이 맞지 않았다.

“컷!”

“다시 가요. 그림이 별로네요. 진형이 이번에 동선 무너졌지?”

“네?”

“바로 다시 갑시다.”

지금 이예진의 행동은 배우의 ‘감독질’이라고 할 수 있었다.

지금 하는 행위는 연출의 고유 권한에 손을 대는 월권행위라고 볼 수 있었다.

영화든 드라마든 감독의 파워가 강하지 않으면 이런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감독의 권한에 끼어들 만큼의 배우가 파워가 있으면, 감독의 고유 권한을 조금씩 침범하고 나중 가서는 배우 본인이 하는 경우가 있다.

흔히 신인 감독과 기성 배우가 만날 때 종종 일어나는 경우이기도 했다.

이서진 감독의 경우 그 정도 레벨은 아니지만, 이예진의 경력에 비해서는 다소 밀리는 편이다.

“테이크 3!”

“죄송해요. 다시 가도 될까요? 전체적으로 감정도 별로고 서로 호흡도 안 맞는 것 같네요.”

이번에는 이예진이 다른 핑계를 대면서 다시 촬영을 요구했고.

“테이크 4!”

“제가 연기한 게 마음에 안 드네요. 다시 될까요?”

다음 테이크에서는 본인의 연기를 문제 삼아 다시 요구했다.

“테이크 6!”

“왜 호흡을 못 맞추니? 내가 너한테 맞춰줘야 해?”

테이크가 길어지자 감정 소모가 심했던 김진형의 경우 호흡이 달리기 시작했고.

“테이크 8!”

“왜 더듬어?”

이내 부담감에 짓눌려 연기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테이크 11!”

“죄송해요. 테이크가 길어지니 집중하기가 힘드네요.”

“선배님. 죄송합니다.”

“죄송할 게 뭐가 있어? 내가 연기를 못 해서 그러는 건데. 미안해요, 여러분.”

악마다. 악마가 분명했다.

웃으며 말하는 이예진과 별개로 이서진 감독도 어지간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러면 본인의 권위가 많이 떨어질 텐데도 이예진의 손을 들어주는 거 보면 돌아가는 상황이 뻔했다.

아무리 이서진 감독이 이예진과 비교하면 끗발이 딸린다고 하더라도 이예진의 행동은 과했기 때문이다.

이서진 감독 또한 김진형의 행동이 별로 마음에 안 들었던 듯했다.

그게 아니라면 가뜩이나 바쁜 현장에서 이렇게까지 길어지는데 커팅을 안 할 리가 없었다.

“다시 할까요?”

이서진 감독의 말에 고개를 끄떡이는 이예진이 보였다.

스태프들도 다시 지친 얼굴로 준비하기 시작했다.

“테이크 12!”

김진형은 정신 나간 사람처럼 있다가 스태프들이 움직이고 콜사인이 들리자 마치 이게 마지막이라는 듯 집중하기 시작하는 게 보였다.

첫 테이크와 비견할 만큼의 집중력이었다.

이번 테이크로 끝이 나려나 싶다.

“컷!”

“…….”

“예진 씨 문제없으면 다음으로 넘어갈까 하는데 괜찮겠어요?”

이예진이 별말 안 하자 이서진 감독이 눈치를 보다가 이예진에게 물어왔다.

“감독님이 오케이면 오케인 거죠.”

“다음 컷으로 넘어갈게요. 다음 컷 뭐야?”

이예진도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하는지 천연덕스럽게 감독에게 대꾸했다.

이서진 감독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곁에 있던 조연출에게 눈치를 주며 물어봤다.

“다음은 김ㅈ… 아니, 이해인 단독입니다. 다음 컷은 이해인 단독입니다! 준비해 주세요!”

조연출의 반응을 보아하니 원래는 김진형 단독이었는데 이서진 감독의 눈치에 이예진으로 넘어가려는 듯했다.

김진형의 멘탈이 지금 산산조각이 나 있으므로 바로 찍기에는 무리라고 판단한 듯했다.

이후 촬영은 생각보다 부드럽게 진행되었다.

김진형도 이예진이 질질 끌지 않자 조금씩 멘탈을 찾은 듯 집중하고 촬영에 임했다.

게다가 다른 사람이 촬영에 들어갈 때도 혼자서 대본에 얼굴을 박고 미친 듯이 외우는 게 보였다.

처음 촬영장에 와서 송민희에게 다가갔던 모습과 대조되는 이질적인 모습이었다.

나는 김진형이 완벽히 무너져 오늘 촬영을 접을 줄 알았는데 프로는 프로라는 생각을 했다.

“고생하셨습니다! 다음 장소로 이동할게요!”

“고생하셨습니다! 다음은 이해인의 집입니다. 스튜디오 6번으로 이동해주세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씬이 끝이 났다.

조연출이 바쁘게 다음 장소를 안내했다.

이예진은 말없이 본인의 대기실로 향했다.

김진형은 그런 이예진을 따라가려고 하는 듯하다가 매니저가 무언가 말하자 매니저와 같이 사라졌다.

송민희는 촬영이 끝나자 김명성과 함께 또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근처에 있던 스태프에게 다가가 장소를 물었다.

“스튜디오 6이 어디죠? 따로 헌팅을 안 하고 세트 제작을 했나 보네요?”

“위층에 있어요. 아무래도 크로마키 작업이 있다 보니까 세트 작업으로 진행했어요.”

“그 떠다니던 빗자루랑 특수효과 처리된 것들 말이죠?”

“네.”

스튜디오 6이 아무래도 이해인의 집 내부와 마녀의 방이 같이 있는 모양이었다.

하긴 CG 작업을 하려면 크로마키 작업이 편하긴 했다.

“고생하세요.”

“네, 고생하세요.”

나에게 대답했던 스태프가 일하러 사라졌다.

“이예진 선배님 매니저 되시죠?”

“네, 무슨 일이시죠?”

내가 물어봤던 스태프가 사라지자 이번에는 마녀 조연출이 나에게로 쭈뼛쭈뼛 다가왔다.

“오늘 촬영이 조금 딜레이 될 것 같은데 시간 괜찮은지 여쭤보려고 왔어요.”

“아… 촬영 종료 예정 시간이 23시였죠?”

“네, 딜레이 된 거로 봐서는 새벽 좀 넘어가서까지 촬영하게 될 듯싶은데….”

“일단 저도 일정을 살펴봐야 할 것 같아서요. 선배님이랑 이야기하고 알려드리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원래 드라마와 영화나 촬영 딜레이가 잦다.

고지한 시간과 다르면 배우 사정에 따라 촬영을 접어야 할지 계속해야 할지, 판단을 내려야 하니 아무래도 제일 치이는 건 중간에서 조율하는 스태프다.

배우가 안 된다고 하면 감독은 무조건 잡아서 오늘 찍어야 한다고 하면 이제 중간 스태프가 미치는 거다.

“그럼, 저도 잠시….”

“네, 알겠습니다.”

간절한 눈빛을 나한테 보내 봐도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없다.

오늘 이예진 스케줄은 촬영이 끝인 걸로 알고 있는데….

이예진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모르겠다.

이예진이 대기하고 있는 대기실로 들어가니 의자에 기대 눈을 감고 있는 이예진이 보였다.

“선배님. 오늘 일정 딜레이 될 것 같다고 새벽까지 촬영 괜찮냐고 물어보는데 어떻게 답변할까요? 내일 일정으로는 오전에 인터뷰, 오후에 드라마 촬영이 잡혀 있습니다.”

“해야죠. 나 때문에 딜레이 걸린 건데.”

“아….”

“이런 모습 처음 봤죠?”

“그게….”

“별것도 아닌 일인 것 같은데 지랄 맞죠?”

이예진의 목소리에는 왠지 힘이 없었다.

“네? 아닙니다.”

“그래도 내 눈앞에서 저런 꼴을 못 봐요. 내 앞에서 저러고 싶으면 나보다 연차가 깡패던가, 나보다 잘나가던가? 괜한 거로 작품 망가지는 꼴은 못 봐요. 특히 내가 들어간 작품이면 더더욱.”

이예진은 눈을 감은 채로 아무런 일도 아닌 듯 이야기했다.

그러나 평소의 톤이 아닌 자조적인 목소리였다.

다른 이유가 있나 궁금했지만, 분위기상 물어볼 분위기는 아닌 것 같았다.

“못 볼 꼴 보여줬네요. 진상이죠? 저?”

“아닙니다. 스태프들도 선배님 때문에 더 촬영한다고 생각 안 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서진 감독도 그렇고요.”

“그런가요? 이서진 감독도 벼르고 있었나 봐. 내가 있을 때는 내가 분위기를 잡아서 그런가? 별 탈 없는 줄 알았는데.”

나는 김진형이 그렇게 크게 잘못한 건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이예진의 그러한 행동에는 이유가 있지 싶었다.

이예진이 연기에 임하는 모습이나 촬영에 임하는 모습을 보면 김진형의 행동이 이예진으로선 고까울 것 같기도 했다.

“진형이가 간도 크지. 나 없을 때는 저랬구나.”

“그럼 스태프에게는 촬영 가능하다고 전달하겠습니다.”

“그래요.”

이예진의 목소리가 한층 더 기운 빠지는 목소리처럼 느껴졌다.

현장에서 이예진의 존재가 생각보다 큰 것 같았다.

이렇게 중심을 잡아주니 이서진 감독도 스태프도 뭐라 하지 않았던 게 아니었을까.

나는 조용히 대기실에서 빠져나와 조연출을 찾아가서 상황을 설명해줬다.

“촬영 가능하다고 하십니다.”

“휴, 알겠습니다.”

내 말을 들은 조연출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이서진 감독에게로 갔다.

정신없이 바쁜 촬영장을 멍하니 보다가 문득 생각이 나는 게 있었다.

차태수 팀장에게 전해 받은 거로는 이예진이 저녁은 안 먹는다고 했었는데 촬영시간이 더 길어지면 또 이야기가 다르다.

나는 식사 여부를 물으러 다시 이예진에게로 갔다.

“선배님. 혹시 식사는 어떻게…?”

“저는 저녁은 안 먹어요.”

“그럼 간단한 샐러드류는 괜찮으세요? 새벽까지 강행하시려면 뭐라도 조금 드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그것도 그러네요. 그럼 샐러드류로 부탁할게요.”

“네.”

이예진은 내가 나갔을 때도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있는 상태였는데, 지금도 그때와 똑같은 자세로 대답했다.

이예진은 지금 상황 자체가 마음에 안 드는 듯했다.

눈을 감고 있는 이예진을 놔두고 나는 밖에 나가 빵집에서 샐러드를 사서 다시 돌아왔다.

이예진이 있는 대기실에 가까워지자 오늘의 주인공인 김진형이 보였다.

내가 김진형과 눈을 마주치자 김진형은 나에게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이봐, 당신.”

“네? 무슨 일이시죠?”

“내가 못 보던 스태프 같은데… 제작부? 아니, 연출부야? 그래,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왜 일을 제대로 처리 못 해? 돈 받고 일하고 있으면 일정은 재깍재깍 알려줘야 할 거 아냐?”

내가 이예진 매니저라는 걸 모르나?

말하는 걸 들어보니 나를 현장 스태프로 착각한 것 같다.

아직 정신을 못 차렸구나.

“그게 무슨….”

“너희가 일을 제대로 안 해서 내가 이 모양 이 꼴 된 거 아니야? 진짜 일 개같이도 하네.”

이 새끼도 오래갈 놈은 아닌 것 같다.

스태프한테 막 대하는 배우치고 오래 간 놈이 없지.

아무리 본인 상황이 답답하다고 하나 남 탓을 하면 쓰나.

본인이 문제인 줄 알았다면 이렇게까지 오지도 않았겠지.

평소 행실도 잘했을 거고.

“진정하시고, 일단, 저는….”

“아 됐고, 이거 어떻게 할 거야? 선배님한테 찍힌 거. 어? 현장 분위기 개같이 만들어서 어쩌자는 거야?”

김진형이 내 말을 끊어가며 성토했다.

그건 네 문제고요.

괜히 성질내는 김진형이 왠지 모르게 딱해 보였다.

그래도 그것과는 별개로 지금 상황이 짜증나기는 매한가지였다.

“저는….”

“우리 후배님은 내 매니저한테도 관심이 많나 봐.”

들려온 목소리에 김진형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김진형의 오늘 일진은 정말 안 좋은 것 같다.

운이 참 없군.

아니, 개념이 조금 부족한 건가.

둘 다이지 않나 싶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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