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도 다시 매니저!-66화 (66/200)

제66화. 배우 (1)

“차태수 팀장님. 찾으셨어요?”

“어, 현진아.”

2팀은 4팀과 다르게 사무실에 있는 인원이 많았다. 지금 소속된 배우 중 활동기에 들어간 여배우는 이예진 하나뿐이어서 그런 듯싶었다.

그 외에는 작품 고르느라 여념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른 게 아니라 너네 팀 물어보니까 스타즈 애들 앨범 들어가기 전까진 시간이 좀 남는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잠깐씩 나랑 교대로 예진 씨 좀 맡아줄 수 있나?”

차태수 팀장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확실히 앨범 들어가기 전에 2주 정도의 공백은 있었다.

남은 스케줄들은 남진수 혼자로도 가능하긴 할 텐데 왜 굳이 맡은 연예인이 있는데 날 원할까?

그리고 사무실을 슥 둘러보니 남는 인원도 많은 것 같은데.

“제가요?”

“어, 예진 씨도 은근히 말하더라고. 너라면 괜찮다던데?”

“선배님이 절 좋게 봐주셨나 봐요.”

“그냥 통보식으로 전달하려고 하다가 그래도 우리 회사 에이스인데 의견은 물어봐야 할 것 같아서.”

내가 힘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고작 입사 1년 차 막낸데 이렇게 물어보는 것도 좀 의아하긴 했다.

“제가요?”

“야. 네가 해온 게 몇 개냐? 뭐 중간에 사고도 몇 번 친 거 같긴 한데 프로그램도 세 개나 물어왔지. 게다가 화제성도 좋지. 너 요즘 길 가다가 알아보는 사람은 없냐?”

“아직 있긴 있으세요. 물이 다 안 빠졌나 봐요. 알아봐 주시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마냥 막내로만 대하기가 힘들어졌어. 너 같은 놈은 내가 본 적이 없다. 시기를 잘 타고났나? 운도 좋은 놈.”

“제가 운이 좀 좋죠? 하하하.”

차태수 팀장이랑 이렇게 농담 따먹고 다니는 것도 예전이랑 바뀐 일상 중에 하나랄까.

그리고 어떻게 물어왔는지, 어떻게 해결했는지를 묻는다면 내가 할 말은 운이 좋았습니다. 말고는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어쨌든, 되겠냐?”

“네,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언제 가면 되나요?”

“그건 4팀이랑 조율해서 너한테 스케줄 넘겨줄게.”

“알겠습니다. 근데 주의 사항 같은 건 없을까요?”

차태수 팀장의 말을 들어보니 어차피 스타즈 애들 공백기에 잠깐잠깐 땜빵식으로 맡는 거라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그래도 주의해야 할 사항은 혹시 있는지 차태수 팀장에게 물어봤다.

“주의 사항?”

“네.”

“딱히 없는데. 시간 잘 지키고 할 것만 하면 예진 씨가 딱히 뭐라 했던 적은 없는 것 같다. 워낙 혼자 잘하셔서.”

“네, 알겠습니다.”

차태수 팀장의 말처럼 지금까지 봐 온 이예진은 그렇게 까탈스럽지도, 히스테릭하지도 않았다.

까탈스러운 연예인도 많은데 나와 지금까지 엮인 연예인 중에는 그런 사람은 없었다.

“더 있어?”

“혹시 생기면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래, 고생해.”

“가보겠습니다.”

내가 인사를 하자 차태수 팀장이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좋은 건가. 나쁜 건가.

어차피 이예진이 아니었더라도 다른 곳으로 팔려갔겠지.

왠지 예전보다 더 자주 팔려 다니는 것 같은데 착각인가?

착각은 아닌 것 같다.

일 잘한다고 회사에서 인정해주는 거니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 * *

“그럼 이제 영영 안녕인 거예요?”

“아니라니까. 로테이션이야. 너희 활동기 들어가면 전담이고.”

성난 애들을 달래주느라 진땀이 났다.

성난 척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내 상황을 이야기하자 꽤 반발이 일어났다.

“얘들아! 우리 버리고 튄대.”

“너무해!”

“너무해!”

이 모든 원인은 선동하고 있는 저 유미소 때문이었다.

유미소를 필두로 돌아가면서 섭섭한 티를 팍팍 내고 있었다.

게다가 메아리치듯 말하는 저 화법은 상대하기가 너무 힘들다.

방송에서 내가 진땀 흘리는 걸 본 뒤로 애들이 종종 저렇게 말한다.

“아니 그게 아니라니깐?”

“너무해!”

“너무해!”

린과 유코도 키득대면서 따라 하고 있었다.

몰아가기가 장난 아닌걸.

애들이 이렇게 섭섭함을 내비치는 것은 아무래도 남진수보다 내가 더 편하고 친해서이지 싶다.

“거절하지 못한 죄인은 고개를 들지 마시오!”

“아니, 회사에 소속된 월급쟁이가 무슨 힘이 있어….”

이번에는 신희진이 테이블을 탕탕 치면서 마치 판사처럼 말했다.

애초에 내가 무슨 힘이 있다고 이러는지 모르겠다.

“그래요. 어쩔 수 없죠. 고마웠어요, 오빠.”

“우리 그러면 이별 파티는 언제 해요?”

이번에는 애들이 컨셉을 바꿨다.

더 당하면 정신이 아찔해질 것 같아 표정을 가다듬고 애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이제 앨범 녹음하니까 한동안 안 썼던 몸도 슬슬 풀고 체중 관리도 하고 놀 생각은 이제 그만하고.”

“잔소리 봐. 팀장님인 줄.”

애국가 4절까지 부를 기세로 끊임없이 갈구길래 내가 정색하면서 말하니 그제야 툴툴대면서 그만뒀다.

“현진아. 고생 많았다. 거기 가서도 열심히 해.”

“네, 알겠습니다.”

남진수까지 애들 장단에 맞춰주는 모습을 보고 나도 자포자기했다.

“가긴 어딜 가?”

“희진이가 말이 좀 짧다?”

“앗, 죄송!”

내가 으르렁대자 신희진은 오히려 혀만 빼꼼 내밀고 물러났다.

“자자. 이제, 그만 놀고 연습실 가서 연습해야지? 이번에 한 쌤이 숙제 내줬다면서?”

“컨셉에 맞춰서 안무 하나 그럴싸하게 짜보라는데 노래가 나와야 짜는 거 아니에요?”

남진수가 나서서 교통정리를 해줬다.

남진수의 말에 유미소가 자못 진지하게 질문했다.

“시간이 애매하게 남아서 그 기간 동안 뭐라도 해보라고 하는 거지. 거기서 다음 앨범에 쓰일 좋은 안무가 나올지 어떻게 알어?”

“너무 머리 아파서요.”

“나라는 재밌다고 열심히인 것 같은데?”

남진수가 말하자 서지영이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런 서지영을 보고 남진수가 재차 말했다.

“그건 나라 언니가 특이한 거고요. 저도 나라 언니만큼 춤 잘 추면 재밌게 할 듯요.”

“근데 레트로는 어떻게 짜야 할지 잘 모르겠어. 트로피컬 하우스 장르는 쉬운데.”

남진수의 말에 조용히 투덜대면서 이나라를 띄워주는 서지영이었지만, 이나라도 손사래를 치며 서지영의 말을 받았다.

장난스러운 분위기에서 갑자기 진지한 토론의 장으로 바뀌었다.

“근데, 레트로가 머야?”

“그것도. 몰라? 복고잖아. 바보.”

유코는 모르는 단어였는지 박혜연에게 물어보았는데 옆에 있던 린이 대신 대답해줬다.

이번 컨셉은 의견이 두 가지로 갈렸다.

하나는 복고풍 컨셉의 곡.

하나는 일반적인 트로피컬 하우스 장르의 곡.

예전에는 트로피컬 하우스 장르의 곡으로 갔었다.

노래가 별로여서인지, 아니면 그룹 자체의 힘이 떨어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잘 되지 않았다. 이번에는 조금 다르지 않을까.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배신하던데….”

“그건 죽을 만큼 노력 안 해서 그런 거야.”

“죽을 만큼 하면 죽지 않을까요?”

“희진아….”

“넹! 조용히 할게요.”

남진수의 말에 조용히 읊조리는 신희진의 말이 생각보다 웃겼다.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닌지 애들도 쿡쿡대며 웃고 있었다.

“A&R 팀에서 노래 기획하면서 짜고 있으니까 넘어오면 바로 녹음할 거야. 늦어도 3월에는 들어갈 거야.”

남진수가 어느 시기에 녹음이 들어갈지 말해주니 애들도 그제야 실감 나는 듯했다.

“와, 우리 벌써 두 번째 앨범 내는구나. 데뷔가 엊그제 같은데.”

“싱기해.”

박혜연이 조용히 혼잣말로 말했지만, 유코는 폴짝폴짝 뛰어다니면서 좋아했다.

“그러니까 연습 또 연습만이 살길이다. 이제 연습실로 가.”

“네!’

남진수의 말에 애들이 우르르 빠져나갔다.

“현진이는 내가 메일로 업무 보냈으니까 그거 처리하고.”

“네.”

남진수도 그렇게 말하고 바깥으로 나갔다.

태풍이 한차례 휩싸이고 지나간 듯한 고요함이었다.

나도 일하러 가야지.

* * *

차태수 팀장이 나에게 말한 지 이틀도 안 된 시점에서 콜이 왔다.

이렇게 빨리 부를 줄 몰랐는데 괜히 긴장됐다.

홍승기를 맡았을 때는 그래도 아는 사람이기도 해서 긴장되지 않았는데, 연차가 되는 배우의 하루 매니저가 된다고 하니 꽤 긴장됐다.

스케줄은 건네받았고, 남은 건 이제 기다리는 일뿐인가?

얼마 지나지 않자 이예진이 오는 게 보였다.

이예진이 오는 타이밍에 맞춰 차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그때 같이 술 먹은 뒤로는 처음이죠?”

“네.”

메이크업을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이예진은 이예진이었다.

역시 배우는 배우다.

“오늘 하루 잘 부탁해요. 차 실장님 일 있으시다고요?”

“네. 스타즈 애들 컴백 전까진 제가 종종 맡게 될 것 같습니다.”

“그래요.”

“미스터 박 샵으로 가면 될까요?”

“네.”

목적지를 정하고 나서 나와 이예진 사이에 대화가 끊겼다. 백미러로 살펴보니 오늘 대본을 보고 있는 듯했다.

유심히 살펴보니 대본이 두 개였는데 하나는 본인이 분석한 대본이었고 하나는 아주 깨끗한 대본이었다.

혹시라도 방해될까 싶어서 조용히 차를 몰아 목적지로 향했다.

“드라마 촬영 현장은 처음인가요?”

“네.”

“현장은 영화만?”

“네, 알바로 뮤비나 광고는 몇 번 해봤지만요.”

조용히 달리는 차 안이 심심했는지 이예진이 먼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다음 주에 첫 방이시죠?”

“네, 벌써 그렇게 됐네요.”

“몇 화까지 찍은 건가요?”

왠지 모르게 나도 무언가 이야기를 해야 할 듯싶어 조심스럽게 드라마 이야기를 꺼냈다.

“지금 8화 찍었고 9화 찍고 있네요.”

“드라마 악명은 많이 들었는데… 그래도 사전제작으로 몇 회 찍고 시작하는 게 더 편하겠죠?”

“그럼요. 배우들도 스트레스 덜 받고 작가도 덜 받고 모두가 좋은데 단점은 시청률이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는 거죠.”

“잘될 겁니다.”

드라마는 영화랑 다르다.

영화는 시나리오를 가지고 끝까지 가지만 드라마의 경우 시청률에 따라서 작가와 PD가 협의해 씬을 도려내거나 바꾸거나 하는 경향이 잦다.

그래서 그 유명한 쪽대본이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쪽대본도 장점은 있지만, 단점은 사람 피를 말리면서 현장이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간다는 점이다.

“잘 안 되면 이신형 감독님이랑 승우 오빠랑 이진철 조감독이랑 현진 씨는 곱게는 못 죽어요. 제가 저주할 거라.”

“하하하, 이거 대박 터지길 물 뜨고 기도해야겠네요.”

웃으면서 말하는 이예진의 말이 조금 섬뜩했다.

내 말을 끝으로 생각에 잠긴 듯 이예진이 눈을 감았다.

“도착했습니다.”

생각보다 이예진의 집에서 메이크업 장소가 가까워 일찍 도착했다.

메이크업은 간단한 기본 메이크업만 받고 나왔다.

어차피 현장에 가면 헤어스타일이나 메이크업이나 의상이나 드라마 분위기에 맞게끔 다시 세팅이 되다 보니 빡빡하게 할 필요는 없었다.

다시 이예진과 함께 오늘 찍을 장소인 담연 센터로 향했다.

촬영 현장에 이예진과 도착하니 여기저기서 이예진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왔다.

스타즈 애들과 있을 때는 먼저 인사하기 바빴는데 상당한 갭 차이가 느껴졌다.

역시 연차가 깡패다.

그리고 감독 또한 이예진에게 인사를 하러 왔다.

“아, 오셨어요?”

“안녕하세요, 감독님.”

“아직 찍어야 할 컷이 조금 남아서 기다리셔야 하는데 괜찮으시면 대기실에서 쉬고 계시면 준비가 다 됐을 때 막내 보내겠습니다.”

“아니에요. 그냥 현장에서 감 좀 익히면서 보고 있을게요.”

시간에 맞춰 왔다고 생각했는데 조금 일찍 온 듯했다.

이예진과 감독은 아직 서로 그렇게 친해지지 않은 건지 아니면 이예진의 특유 벽이 쳐진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일단 둘 사이는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냥 비즈니스적으로 서로 존중해주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네, 알겠습니다. 막내야! 여기 의자 좀 가져다드려라.”

“네!”

“저한테 시간 쓰지 마시고 얼른 촬영 들어가세요.”

“네, 그럼.”

감독 또한 별일 아닌 듯 자연스럽게 이예진을 대했다.

한두 번 있던 일이 아닌 듯했다.

스태프가 의자를 가져다주자 이예진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다시 슛 들어가겠습니다! 자기 위치로 가주세요!”

현장에 있는 조연출의 말에 다들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도 다들 표정이 밝은 거 보니 엄청 힘든 드라마 현장은 아닌 듯했다.

잠도 못 자게 하고 사람 갈리는 현장이 한둘이어야지.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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