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3화. 조금씩 달라지는 (1)
애들과 헤어지고 나서 우리 4팀 매니저팀 사무실로 돌아와 남진수를 찾았다.
“팀장님. 혹시 오늘 혜연이 생일 Y앱이 잡혀 있나요?”
“아, 맞네. 깜빡하고 말을 안 해줬다.”
역시 남진수가 깜빡 잊었던 게 맞았다.
“애들이 오늘 혜연이 생일이라고 해서 저도 지금 알았는데….”
“내가 저번 주에 말 안 했나?”
“네, 그럼 오늘 일정이…?”
“있다가 오후에 잠깐 Y앱 켜서 팬들이랑 소통 방송 하고 끝나면 잠깐 쉬었다가 저녁에 너 나오는 거 모니터링 다 같이 치킨 뜯으면서 보는 게 끝이야. Y앱 일정만 추가된 거야.”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단지 오후 일정이 조금 추가된 정도다.
“애들한테는 예전에 회의에서 정했던 것처럼 회사에서 따로 크게 준비한 건 없다고 이야기했어요. 근데 생일파티 숙소에서 또 하기 귀찮다고 회사에서 준비한 거 있으면 그냥 같이 진행하겠다고 하네요.”
“뭐 생일파티 하는 건 걔네 마음이니까.”
“따로 또 준비할 게 있나요?”
있어라. 있어야 해.
“이따가 점심 먹고 물품 좀 사러 갔다 와.”
“네! 알겠습니다!”
다행히 회사에서 따로 준비하지는 않았고 오늘 나한테 시키려고 했던 것 같다. 평소라면 일 처리에 투덜댔겠지만, 오늘은 구원 투수였다.
“깜짝이야. 왜 이렇게 기뻐해?”
“오늘 방송 나온다니까 갑자기 텐션이 올라갔나 봐요. 하하하.”
“오전 업무는 다 처리했고?”
“하고 있는데 점심 전에는 끝날 것 같아요.”
“그래. 알았다.”
업무 볼 것도 오전이면 다 끝나니까 크게 무리는 없을 것 같다.
“다음 스케줄은 뭐 없나요?”
“다른 건 없는데… 아, 맞다. 이번 설 연휴에 하루 쉬는 거 알지? 설날 당일만.”
“네, 그건 저번에 이야기해 주셨어요.”
생각보다 쉬는 날이 많은 우리 회사였다.
일도 일이지만 휴식도 중요하지. 암, 그렇고말고.
“애들은 알아?”
“아직요. 그때 확정은 아니라고 하셨던 것 같아서….”
“그것도 알려주고.”
“네.”
“뭐 더 없지?”
일정을 나한테 물어봐도 내가 모르는데 어떻게 대답하나.
“네.”
“고생해. 난 미팅 있어서 잠깐 나갔다가 오후에 올 테니까.”
“알겠습니다.”
오전 업무를 빠르게 처리하고 남는 시간에 뭐 살지 생각 좀 해야겠다.
* * *
사내 식당에서 밥을 먹고 바로 회사에서 빠져나왔다.
다행히 오전 업무는 초인적인 정신집중을 해서 금방 끝냈다.
남는 시간에 뭘 줘야 할지 정말 열심히 찾은 것 같다.
예전에 첫 생일 자가 나올 때인 이쯤에는 애들과 그렇게 친하지도 않았었고 애들 또한 기대도 안 했었다.
애들과 친해질 때 즈음에는 챙겨주려 했으나 안 챙긴 인원들이 꽤 되어서 오히려 애들이 사양했다.
지금은 일단 케이크와 함께 생일파티용 용품을 사러 갔다.
근처에는 따로 물품을 살 곳이 없어 미리 알아보고 찾아갔다.
물품을 차에다 실은 뒤에 차에 타고 잠시간의 고민을 했다.
무안함과 쪽팔림은 순간이다.
- 여보세요?
“누나. 오랜만이야.”
- 웬일로 전화했냐? 매니저 일 바쁘다면서.
“뭐, 그냥저냥 조금?”
전화하자마자 내 동기이자 두 살 연상인 정아영이 피로에 찌든 목소리로 대답했다.
- 그래, 용건이 뭔데?
이 누나도 정말 직설적이라니까.
“어, 다른 게 아니라…. 내가 맡은 애들이 걸그룹 애들인데 생각보다 많이 친해졌거든? 근데 생일을 챙겨줘야 할 거 같은데 뭐 선물해야 해?”
- 니가 웬일로 선물을 챙기냐? 걸그룹? 아이돌이네? 어차피 걔네 생일에 팬들이 서포트해서 많이 받잖아.
용건을 말하자 핸드폰 너머에서 어이없어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건 나도 아는데 나한테 직접 받고 싶어 하는 눈치더라고.”
- 웬만한 건 팬들이 주는 거에 다 있을 텐데. 그건 나한테 물어보는 것보단 네가 더 잘 알지 않을까?
알면 내가 왜 전화했을까. 모르니까 헬프 요청한 거지.
“아니 이런 건 모르겠어서. 인터넷 찾아도 향수나 시계 이런 거만 나오니까.”
- 그냥 평소에 끼고 다니는 물건이라던가 그런 거 없어? 걔가 평소에 자주 쓰는 것들 위주가 가장 괜찮지.
자주 쓰는 게 뭐가 있지….
“아! 떠오른 게 하나 있긴 하네. 근데 괜찮으려나 모르겠네.”
- 뭔데?
“그 애가 잘 때 뭐 껴안고 자는 버릇이 있어서… 좀 큰 인형 같은 거주면 괜찮지 않을까?”
예전에 팬이 사람 크기만 한 인형을 선물해줘서 숙소에 그거 끼고 잔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지금은 아니고 좀 지나고 나서 받은 거로 기억한다.
- 미쳤어, 너?
“아닌가?”
- 에휴.
말했다가 본전도 못 찾았다. 생각나는 게 없는데 어떻게 하나.
“아니면 죽부인은 어때?”
- 죽부인? 웬 죽부인이야.
“왜 시원하고 좋잖아. 딱히 떠오르는 게 없는데. 돈 주는 것도 좀 아닌 것 같고. 화장품은 뭐 쓰는지 모르고.”
- 맘대로 해라. 혼자 알아서 정한 거 같은데.
너무 답정너였나.
근데 생각해보니 괜찮은 것 같았다. 특색도 있고. 계속 생각하니 괜찮은 듯싶어 만족스러운 미소가 자연스럽게 지어졌다.
“알았어. 땡큐. 혼자 고민하는 것보다 그냥 말하면서 떠오르는 게 낫네. 그런데 우리 언제 봐?”
- 니가 현장 오면 볼 수 있겠지.
“그럼 기약이 없네.”
- 아니면 나중에 동기들끼리 모일 때 보던가. 저번에 모였었잖아. 1월 11일 날. 너 바쁘다고 안 왔다면서?
동기에게 연락이 오긴 했었으나 스케줄이 안 맞아 거절했었다. 그 날짜에는 애들이랑 같이 행사 뛰고 있었던가 싶다.
“스케줄 안 맞으면 못 가는 거지 뭘. 알았어, 고생해.”
- 오냐~
정아영과의 통화에서 출구를 찾은 듯했다.
그래. 죽부인을 사자. 독특하기도 하고 사주면 알아서 쓰겠지.
이제 케이크만 사서 회사로 돌아가면 된다.
한시름 놨네. 놨나?
* * *
가지고 온 물건들을 선물만 빼고 몽땅 가지고 회의실로 왔다.
여기에다가 물품들 꾸미고 Y앱 세팅을 하면 될 듯싶었다.
요즘 아이돌에게 가장 중요한 건 아무래도 팬들과의 소통이다 보니 Y앱의 비중도 한껏 높아졌다.
방송 출연만 조금 조심하는 편이었고 꾸준히 팬들에게 노출은 하고 있었다.
아이돌은 대중도 대중이지만 팬들에게 잊히는 게 가장 안 좋다.
그래서 우리 애들도 꽤 자주 켜서 소통하는 편이기도 했다.
정신없이 회의실을 그럴싸하게 꾸미다 보니 곧 Y앱 할 시간이 다 됐다.
시간에 맞춰서 올라오라고 연락했는데 언제 오려나.
회의실에 멍하니 앉아서 숨 돌리고 있는데 문이 열리고 애들이 들어왔다.
“오! 괜찮은데요?”
“난 이거보다 더 이쁘게 해줘요.”
“전 언니보다 더 이쁘게요.”
“시꺼. 위아래가 있지.”
이나라가 회의실 안을 보고 괜찮다고 하는 말 말고는 다들 본인의 욕심만 채우고 있었다.
은근히 자신들의 생일에는 더 신경 써달라고 하는 유미소와 서지영을 보니 차라리 덜 친하고 안 챙겼던 예전이 더 좋았던 것 같기도 했다.
이걸 여섯 번을 더해야 한다니.
“그럼 린이가 제일 퀄리티 있게 파티 하겠네.”
“어떻게 이야기가 그렇게 흐르지?”
신희진이 나직이 말하자 유미소가 황당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자마자 애들이 참 시끌벅적했다.
“혜연이는?”
“조금 있다가 지영이가 데리러 가기로 했어요.”
아웅다웅하는 유미소와 서지영을 놔두고 이나라에게 물어봤다.
“린이랑 유코는?”
“당연히 혜연이 마크하고 있죠.”
“너네 너무 뻔한 거 아냐?”
“사실 마크하는 것도 아니에요. 파티 준비한다고 대놓고 이야기했었거든요. 먼저 올라가서 상황보고 우리가 부르면 오라고.”
“허어….”
“애초에 깜짝 생일파티 열어줄 거였으면 같이 하자고도 안 했어요. 하려면 숙소에서 했지.”
이나라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그거 먹으면 안 된다.”
“아, 먹고 싶은데….”
“생일 자가 촛불은 붙어야지.”
케이크를 보고 탐내는 신희진을 보며 내가 말했다.
“그럼 지금 불러오면 되는 거죠?”
“어.”
서지영이 나에게 물어보고는 연습실에 남아 있는 셋을 부르러 냅다 사라졌다.
“그냥 핸드폰으로 연락하면 될 걸 굳이?”
“쟤도 깜빡했을걸요.”
“쟤는 생각하는 거보다 몸이 움직이는 게 더 빠를걸. 바보야, 바보.”
굳이 연습실까지 가는 서지영을 보고 말했으나 이나라는 평소에도 자주 있는 일인 듯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뒤이어 말한 유미소의 말을 들어 보니 생각보다는 먼저 몸이 움직이는 듯했다.
서지영의 성격을 보면 그럴 만했다.
“그 이야기 그대로 지영이한테 말해야겠다.”
“앗. 지송.”
신희진이 킥킥대며 말하자 유미소가 장난스럽게 대꾸했다.
“이럴 시간 없어. Y앱 일단 키고 준비하자.”
“네.”
내 말에 회의실에 남아 있는 인원들이 불을 끄고 케이크에 꽂혀 있는 초에 불을 붙이고 카메라 앞에 섰다.
애들에게 연락했을 때 Y앱 사전 컨셉은 정했었다.
컨셉은 Y앱을 켠 후 박혜연이 들어오면 축하해주고 팬들과 조금 소통하고 끄기로 이야기했다.
“킨다?”
“네.”
애들에게 준비가 됐는지 확인하고 Y앱을 켰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 무슨 날인지 아시죠?”
“짜자잔! 바로 박혜연 양의 생일입니다!”
“와! 생일! 와! 케이크!”
보통은 서지영이 진행을 봤을 텐데 이번에는 이나라와 유미소가 진행했다.
그리고 옆에서 신희진이 추임새를 조금 남다르게 넣었다.
“곧 혜연이가 여기로 올 건데요. 여러분들도 같이 축하해 주세요!”
“왔어요!”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타이밍 좋게 서지영이 애들을 데리고 왔다.
“Happy birthday to you~”
오자마자 애들의 생일 축하가 이어졌고 박혜연은 조용히 두 손을 모으고 노래를 같이 따라 불렀다.
“사랑하는 우리 박혜연~ 생일 축하 합니다!”
“후우! 앗, 하지 마!”
노래가 끝나고 박혜연이 촛불을 끄자마자, 유미소와 서지영이 케이크에 있는 생크림으로 박혜연의 얼굴에 덕지덕지 발랐다.
“혜연나라사랑 님 원래는 케이크를 얼굴에 덮어야 한다고요? 먹을 거로 장난하면 불곰으로 변하는 멤버가 있어서요.”
“야! 아까워! 그만해!”
이나라도 같이 장난칠 법도 한데 꿋꿋하게 진행하고 있었다.
이나라가 말한 불곰은 당연히 신희진이었다.
조금 상황이 진정되자 팬들과 소소하게 근황 토크를 진행했다.
토크를 진행하다 보니 빠르게 원래 진행하려고 했던 시간이 다 되어서 박혜연의 생일파티가 막을 내렸다.
“내가 미쳐부러. 얼굴 우짤거여.”
“세수 한번 하면 되지 뭘.”
“그래. 다음 타자 두고 봐 진짜.”
Y앱이 끝나자마자 박혜연이 구수하게 말하며 서지영을 얄미운 듯 노려봤다.
소란스러운 회의실 안에서 신희진이 다가와 나를 툭툭 건드렸다.
“근데 삼촌. 선물은요?”
“내 건 나중에 숙소 갈 때 주려고. 차에 있어.”
“차라리 이 타이밍에 줘야 기대감이 없는데. 나중에 준다고 하면 기대감이 올라간다고요?”
입꼬리가 올라가며 얄밉게 말하는 신희진의 말에 잠깐 움찔했다.
지금 줄걸. 괜히 번거로울 거 같아서 두고 왔는데… 조금 후회됐다.
“자! 빨리 정리하자. 이따가 모니터링 있는 거 알지?”
“네!”
애들이 내부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 머릿속에는 신희진의 말이 계속 맴돌았다.
위기는 아직도 진행 중인 건가.
* * *
박혜연의 Y앱 생일파티가 끝나고 그 뒤로는 평탄한 시간이 흘러갔다.
그리고 대망의 ‘지금 뭐 해?’의 방송시간이 다가왔다.
회의실에 스타즈를 관리하는 매니저팀이랑 스타즈 애들이 다 같이 있었다.
이렇게 보니 회의실이 꽉 차 보였다.
그 와중에 옆에 있던 남진수가 방송 내용이 궁금한지 물어왔다.
“어땠어?”
“죽을 맛이었는데요. 상황도 여러 가지가 겹쳐서… 차라리 2일 차는 좀 할 만했어요. 방송은 볼만할 거예요.”
“행사 시간 끈 거 말고도 더 있어?”
이진성 실장도 궁금한지 보고 받은 내용 말고 더 있는지 물어왔다.
“그게 컸죠. 그리고 뭐 휴게소에서 소소한 일들도 있었고요.”
남진수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화면에서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 오늘은 대세 걸그룹 두 분을 모셨는데요. 환영합니다!
- 안녕하세요. 반짝반짝 빛나는 무지갯빛 스타즈입니다!
MC의 소개에 서지영과 유미소가 같이 그룹 인사를 했다.
예능감 좋은 서지영이랑 화제성 좋은 유미소를 내보냈는데 녹화는 만족스럽게 잘했다.
유미소가 열애설 터지고 난 후에 녹화라 걱정되었으나 걱정은 걱정으로만 끝났다.
- 무지개인데 왜 두 명뿐이에요?
- 스튜디오가 좁다고 두 명만 나오라던데요?
- 제작진이 잘못했네. 더 큰 스튜디오로 준비했어야지.
MC의 질문에 서지영이 잘 살려서 대답해주니 첫 스타트는 좋게 시작했다.
저 녹화를 할 때 서지영이 정말 잘 받아줘서 MC들도 서지영한테 예능감 좋다고 칭찬을 많이 했었다.
그리고 서지영에게 묻히긴 했지만 유미소도 꽤 괜찮았다고 생각했는데 서지영이 너무 월등했다.
“어! 시작한다!”
공개 처형식이 시작됐다. 예전에 프로그램 모니터링했을 때는 별의별 게 다 나오던데 과연 제작진이 어떻게 만들었을까 궁금했다.
- 완전 애들이죠. 같이 있으면 기가 빨린다고 할까… 자식 키우는 부모님 마음을 알겠더라고요.
혼자 다 하려니 정말 힘들었다. 남진수가 있고 없고 차이를 다시금 느낀 2일이었다.
차라리 카메라가 안 돌았으면 덜 힘들었을 텐데 카메라가 돌다 보니 애들의 텐션이 보통보다 올라갔다.
- 일곱 명 중에 누가 가장 좋냐고요?
“오, 현진이가 무슨 말을 했을까?”
나를 곤혹스럽게 하는 질문이었는데 역시나 방송에 써먹었다.
방송에서 나온 내 말에 키득키득 웃으며 호기심 묻은 목소리로 말한 남진수의 말에 스타즈 일곱 명의 눈빛이 일제히 나를 향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