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도 다시 매니저!-62화 (62/200)

제62화. 마녀의 먹잇감 (3)

오랜만에 듣는 타이틀이었다.

떡값은 내가 군대를 제대한 후 학교에 복학해서 찍은 마지막 영화다.

이예진은 어떻게 그 작품을 안 걸까.

“찍은 지 거의 3년은 돼가는 작품인데… 기억하고 계신 분이 있다는 게 신기하네요.”

“그거, 인상 깊게 봤었거든요. 자꾸 어디서 본 것 같은 얼굴이더라니.”

떡값은 영화제에 출품도 했었고 상도 받았었다. 특별심사위원상.

“시상식장에 오셨어요?”

“아트 미장센 영화제는 거의 매년 꼬박꼬박 관객으로 가서 작품 보거든요.”

“아….”

그래도 이예진 정도의 네임밸류면 내가 현장에서 알았을 텐데 왜 몰랐을까.

“선배님이 오셨다면 당연히 화제가 돼서 알았을 텐데 제 기억에는 없네요.”

“당연히 기억에 없죠. 알리지 않고 그냥 관객으로 갔는데.”

홍보차 언론에 뿌리고 나 여기 있소! 하는 연예인도 많은데 이예진은 꽤 독특했다.

“근데… 좀 아이러니하네요?”

“네?”

“영화에 담긴 메시지가 괜한 오지랖은 부리지 말자 아닌가요?”

이예진이 내 작품에 대해 물어왔다.

좋게 봐주었고 영화계 선배라고는 하나 어찌 되었건 영화 관람객 1이다.

나는 관객이 내 작품에 관해 물어오면 조금 부끄러웠다.

이예진의 눈을 조금 피하면서 대답했다.

“해석은 관객의 마음이죠. 제가 짚어주는 게 아니라.”

“좋아요. 그럼 제 나름의 해석이 맞았다면 왜 매니저를 하고 있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재차 물어온 이예진의 말에 다시 이예진의 눈을 똑바로 보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냥요. 이유가 필요한가요? 선배님은 왜 배우가 되셨어요?”

“음,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은데…. 회식 자리는 시답지 않아서 일찍 나왔는데 오히려 지금이 더 재밌네요.”

“네?”

이예진이 종잡을 수 없는 말을 해서 되물었는데 예상외의 대답을 들었다.

“술 한잔할래요?”

환하게 웃으며 말하는 이예진의 말이 오늘 제작발표회에서 봤던 술 한잔할래요? 대사를 할 때와 겹쳐 보였다.

그리고 찬바람이 불어오는데도 내 얼굴이 화끈거리는 게 느껴졌다.

* * *

“다 골랐어요?”

“네, 선배님.”

이예진과 함께 온 장소는 편의점이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죠?”

“충분하고도 남죠. 오히려 남을 거 같은데요.”

두둑하게 사서 카운터로 향했다.

“근데 어디서 먹죠? 내 집으로 가야 하나?”

“어… 잠시만요. 계산할 때 물어볼게요.”

이예진의 물음에 곤혹스러웠다. 이예진은 상관없다는 듯 말했지만, 집에 들어가기에는 조금 꺼려졌다.

“28,400원입니다.”

“이걸로 계산해 주세요.”

“선배님, 제가 사겠습니다.”

“법카 못 쓰잖아요. 됐어요. 게다가 매니저면 박봉인데.”

사려고 한 물건을 카운터에 놓고 나서 내가 계산을 하려고 했는데 이예진이 먼저 선수 쳐서 계산했다.

“혹시 여기 안에서 조용히 술 잠깐 마시다 갈 수 있을까요? 한 30분 정도면 될 거 같은데.”

“네? 워, 원래는 안 되는데… 어, 사람도 안 와서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알겠습니다. 그러면 제가 이예진 배우님 팬이라 그런데 혹시 사인 가능할까요?”

“그럼요. 편의도 봐주시는데요, 뭘.”

다행히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던 직원이 망설이다가 허락해줬다.

말하는 걸 보니 이예진의 팬이기도 했나 보다.

원래는 편의점에서 술을 마시는 건 안 된다.

단지 단속이나 사회 풍토상 불법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뿐.

이렇게 된다면 편의점에서 술 먹는 건 오랜만이다.

학교 다닐 때는 학교 근처 편의점에서 노상하면서 자주 먹었는데.

“이렇게 공개된 장소에서 먹어도 괜찮을까요?”

“왜요? 스캔들 날까 봐요?”

“…네.”

내가 걱정된다고 말하자 이예진이 직설적으로 말했다.

내가 이예진과 스캔들이 날 리는 없으나 그래도 이렇게 남녀 단둘이 있는 건 연예인에게 좋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는데 그걸 정확히 짚었다.

“오히려 숨는 게 더 빌미 주기 쉬워요. 그리고 제 성격 아는 기자면 쉽게 스캔들 기사 못 낼 텐데….”

“네?”

“한 성격 하거든요. 제가.”

지금까지 내가 본 이예진은 성격이 있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내가 본 이예진은 오히려 차분했고 이성적이었다.

“저는 솔직히 잘 모르겠던데요. 저한테는 항상 잘 대해주셔서.”

“업계 사람이니까요. 그리고 저는 제 영역에 있는 사람이 아니면 어느 정도 선을 긋고 하거든요. 배우 한 적 없죠?”

“네.”

“그러면 제 성격 볼 일 없을 거예요.”

철저하게 구분을 짓는 것 같다. 그러면 연기자한테 대하는 이예진은 어떤 사람일까.

예전에 홍승기가 나에게 했던 미친년이라는 말이 뇌리에 스쳐 지나갔다.

“자, 짠이나 하죠.”

“네.”

이예진과 서로 맥주캔을 부딪치며 술을 마셨다.

“그러면 아까 이야기나 다시 해볼까요? 왜 배우가 되었냐고 했죠?”

“네.”

“그냥 연기가 좋았어요. 저는. 인터뷰 때도 항상 하는 말이지만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된다는 게 매력적이라 생각했거든요.”

“연기할 때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게 힘들지 않으세요? 쿨다운 못 하는 사람도 꽤 될 텐데.”

이 바닥은 좋아서 남는 게 아니면 사람이 할 짓이 못 된다.

돈 보고 일 시작했으면 절대 끝까지 못 살아남는다. 다 좋아서 하는 거다.

“정신적으로 지치기는 하죠. 너무 몰입하게 되면. 근데 그래도 재미있으니 하는 거겠죠? 현진 씨도 똑같지 않아요?”

“뭐 그렇긴 하죠. 흥미나 재미가 없으면 여기로 안 넘어왔겠죠. 힘드니까요.”

“그렇죠? 여기에서 쭉 살아남는 사람들은 다 똑같아요. 그래서 매니저가 되기로 한 이유는요?”

이예진이 이번에는 아까 편의점 오기 전에 질문했던 질문을 다시 물어왔다.

이번엔 회피할 수도 없었고 내 솔직한 심정을 말했다.

“연출도 연출이지만 누군가를 기획하고 만든다는 것도 매력적이라 생각해서 틀었어요. 아니면 매니저가 되기 전까지 질리도록 영화를 해서 그런 걸 수도 있고요.”

“흐응, 그래요? 그럼 언젠가 다시 연출할 수도 있겠네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지금은 매니저 일에 집중해야죠.”

내 대답을 듣더니 이예진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그런 눈빛이 조금 부담스러워 머리를 긁적였다.

“그럼 내 매니저를 해볼 생각은 없어요?”

이예진의 말에 잠깐 멈칫했다.

“저를 좋게 봐주셔서 말해주신 건 감사드리나 지금은 스타즈 애들에게 집중하고 싶어요. 대표님도 배우 매니저 해볼 생각 없냐고 물어보셨을 때도 똑같이 대답했거든요.”

“그럼 걔네들 끝나고 나서는요?”

“그건 그때 가봐야 알 것 같아요. 지금은 확답을 못 드리겠어요.”

지금은 스타즈에게 집중할 때다.

다른 사람이 끼어들 자리는 없다.

“꽤 비싸네요?”

“비싸다뇨. 회사에서 까라고 하면 까는 일개 월급쟁이인데요.”

“핫! 월급쟁이 같지는 않은데요?”

“제 의사를 물어보셔서 그렇게 대답했던 거였죠. 그리고 억지로 한다고 하면 하겠지만 영화도 그렇고 최대한 할 수 있으면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서요. 선배님은 안 그러셨어요?”

자기 능력 안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맞지 않을까.

“맞아요. 저도 제가 하고 싶은 것만 했죠. 그래서 아직 흥행작이 없던 걸까?”

“흥행작이 없다고 하시니 뭔가 이상하네요. 그래도 다 흥행하지 않았나요?”

“말은 똑바로 해야죠. 흥행이 아니라 ‘평균은 했다’겠죠? 제대로 흥행한 건 없죠. 12년이 되도록.”

이예진이 우울한 듯 침울한 표정으로 본인의 작품을 이야기해서 그런지 나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그러나 이예진은 조금 냉소적이었다.

“이번 작품은 제가 볼 때는 느낌 좋은 것 같던데요. 동 시간대 경쟁작이 있다고 하나 잡아먹을 것 같고요.”

“그렇게 봐주면 고맙네요. 저도 이번에는 느낌이 괜찮거든요. 스태프들도 그렇고, 배우들도 그렇고. 만족해요.”

내가 마녀는 흥행한다고 말하자 이예진도 한시름 놨다는 듯 현장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러고 나서 남아 있는 맥주를 한 번에 다 마셨다.

“일어날까요?”

“네, 쓰레기는 제가 치울게요.”

“그래요.”

이예진이 먼저 일어나고 내가 뒤처리를 하고 나갈 준비를 했다.

“잘 먹고 가요. 고마워요.”

“아니에요. 이번에 마녀 파이팅입니다! 본방송 사수할게요!”

“고생하세요.”

이예진이 카운터에 있는 편의점 직원에게 인사하자 직원도 이예진에게 답해줬다.

그렇게 편의점에서 나와서 이예진과 같이 이예진 집 앞으로 왔다.

“가보겠습니다. 선배님, 오늘 하루 고생하셨습니다.”

“고생했어요. 차 실장님이 일만 없었으면 이렇게 고생 안 했을 텐데.”

“아닙니다. 선배님이랑 이야기도 나누고 좋았습니다.”

“그럼 다행이구요. 그리고 매니저 제의한 건 빈말 아니니까 진지하게 고민 해봐요.”

“아, 네. 알겠습니다. 쉬세요.”

“다음에 봐요.”

이예진과 작별인사 끝에 오늘의 일정이 끝났다.

생각보다 스펙타클한 하루였다.

마지막에 이예진의 말이 내 마음에 걸렸으나 지금 생각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집에나 가야지.

* * *

저번 마녀 제작발표회를 다녀온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내 일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애들이 앨범 준비하는 휴식기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스타즈 애들이 왕성히 활동하는 활동기도 아니어서 들어와 있던 기업 행사 두 개와 게임 CF 정도 찍는 일이 있던 정도.

지금은 차기 앨범에 대한 애들의 의견을 물어보는 중이었다.

“이번 앨범 컨셉은 저번과 비슷하지만, 또 다른 컨셉이야.”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저번 앨범은 사랑스러움이었다면 이번에는 조금 줄이고 대중성 있게 간다고 해야 하려나? 그렇게 진행할 거라고 하던데. 좋은 의견 있는 사람?”

남진수의 말에 애들이 알쏭달쏭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직은 말만 들어서는 잘 모르겠어요.”

“그래? 정확하게 나오면 다시 알려줄게.”

“네.”

남진수는 더는 할 말이 없는지 손뼉을 치며 회의를 끝냈다.

“현진이는 오늘 할 거 애들한테 알려주고.”

“네, 알겠습니다.”

남진수가 나에게 말을 하고 나가자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오빠! 오늘 뭐 해요!?”

이상하리만큼 박혜연의 텐션이 올라가 있었다.

“이제 다시 앨범 준비해야 하니까 꾸준히 몸 풀고 연습해야지 뭘.”

“오늘 저녁에 그건 같이 안 봐요?”

“아, 저녁에 우리 매니저팀이랑 너희랑 같이 모니터링하긴 할 거야.”

“그럼 지금은 그때까지 연습해요?”

“어. 팀장님이 일단 그렇게 하라는데.”

“네! 저는 먼저! 내려가 보겠습니다!”

박혜연이 어색하게 말하고 묘한 웃음을 지으며 먼저 나갔다.

“아주 신났네, 신났어.”

“그러게.”

“왜, 무슨 일 있어?”

내가 묻자 애들의 표정이 묘했다.

“뭐야, 모르고 있던 눈치 같은데.”

“오빠 오늘 혜연이 생일인 거 몰라요?”

서지영이 눈을 흘기며 나를 보면서 말했고 이어서 이나라가 성큼 다가와서 묻는 말에 당황했다.

“아니, 모르긴 뭘. 모른 척 한 거지. 하하하.”

오늘이 혜연이 생일이구나.

예전에 회사에서 멤버별로 생일 이야기가 나왔는데 회사에서 크게 챙기지는 않고 팬과 소통 방송 정도만 지원하는 거로 이야기했었다.

회사에서는 딱히 크게 준비한 이벤트나 선물 같은 건 없을 거다.

그냥 소소하게 진행하려고 하다 보니 남진수가 오늘 할 일에서 이건 깜빡하고 전달을 못 한 듯싶었다.

그게 오늘일 줄이야.

“이상한데.”

“이상해.”

“어? 이가 상하며는….”

온 힘을 다해 아는 척 태연한 척 연기했다.

그러나 유미소와 신희진은 이상함을 느끼고 눈을 흘기며 나를 압박했다.

다행히 유코는 다른 포인트에 관심이 쏠린 듯했다.

유코야 그거 예전에 린이가 써먹었던 거야.

“회사가 그런 거 하나 모르겠어? 준비하긴 했지.”

“아뇨, 회사 말고 오빠요. 혜연이 선물 따로 준비한 건 없어요?”

“어?”

선물은 나도 딱히 준비하지 않았는데….

“회사랑 같이 묶으시려는 거예요? 우리 사이가 그거밖에 안 됐나?”

“아니, 당연히 있지. 왜 이렇게 몰아가?”

“그럼 다행이고요.”

이나라가 내심 실망했다는 듯 몰아가자 나는 급히 자기변호를 했다.

애들 눈치로 보니 회사에서 선물을 준다고 기대한 것 같지는 않고, 나는 당연히 선물을 따로 줄 거라고 생각한 것 같다.

“어쨌든 준비한 건 같이 진행해요. 숙소에서 따로 생일파티 하기 귀찮으니까.”

“어, 그래. 알았어.”

어쩌지. 나도 크게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위기는 항상 불현듯 찾아온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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