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도 다시 매니저!-61화 (61/200)

제61화. 마녀의 먹잇감 (2)

또 얼결에 회식 자리에 왔다.

차태수 팀장은 배우팀을 맡은 사람이라 그런지 술을 아주 좋아했다.

이진성 실장도 술을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오래간만에 고삐 풀고 먹을 수 있겠구나.”

“술 마실 기회는 많지 않아요?”

“많기는 한데 편하게 못 마시잖아. 다 접대니까. 오늘은 그런 날도 아니고 예진 씨가 대리 부르라고 하기도 했고. 이런 날은 죽어라 마시는 거야.”

싱글벙글 웃는 차태수 팀장의 모습이 정말 기쁜 듯했다.

차태수 팀장의 모습에서 홍승기가 겹쳐 보였다.

둘이 죽이 잘 맞을 것 같았다.

“마녀팀은 평소에 회식 잘 안 하나 봐요?”

“드라마 판이 원래 바쁘잖냐. 바쁜 것도 있고 스케줄이 안 나오긴 했어. 오늘은 제작발표회에 주요 인원들이 다 모였잖아? 그래서 예전부터 잡아둔 일정이었지.”

내 말에 답을 하고는 차태수 팀장이 테이블에 있는 술잔에 담긴 술을 비웠다.

“근데 넌 왜 안 마시냐?”

“팀장님만큼 마실 자신이 없어서요.”

회식 시작하자마자 글라스에 반 따라서 원샷 하는 걸 보고 이 사람도 어지간히 술 먹겠구나 싶었다.

지금도 혼자 연거푸 마시고 나에게 권하고 있었다.

“어이! 여기에요. 여기!”

차태수 팀장이 아는 매니저들 하나둘 불러 모으더니 어느새 매니저끼리 있는 회식 자리가 성사되었다.

“안 마셔요? 다들?”

“저는 형이랑 있을 때는 안 마셔요.”

“저도 담당 연예인 있을 때는 잘 안 마십니다.”

“뭐야, 나만 먹겠는데 이거.”

착석하자마자 술을 거부하는 몇몇 인원들을 보자 차태수 팀장은 김이 샜다는 듯 말했다.

“저는 먹어도 괜찮습니다. 허락받았어요.”

“근데 여기 이분은 누구신지?”

자리에 앉은 매니저 한 명이 나를 보고 물어왔다.

“안녕하세요. 스타즈 매니저 김현진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이예진 선배님 초청으로 잠깐 왔는데 여기까지 참석하게 됐습니다. 조금 민망하네요.”

“아! 아까 이예진 선배님이 말씀하신 매니저분이시구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근데 어떻게 하다 마녀 대본 얻게 되셨어요? 아까 얻게 된 과정은 이야기 안 하신 것 같은데.”

“아, 제가 스타즈 애들 영업하러 방송국 갔다가 얻게 됐어요. 제작 PD님이 편성 까이고 돌아가시다가 얼결에 엎어지셨는데 그때 도와드리다가 연이 닿았죠.”

또 다른 매니저 한 명이 제작발표회에서 이예진이 했던 말에 궁금함이 있었는지 나에게 배경을 다시 물어왔다.

“아, 그러시구나. 저는 종수 형 매니저 백진하입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김진형 선배님 매니저 안종석입니다.”

“저는 송민희 매니저 김명성이에요. 반가워요.”

백진하의 말에 하나둘 자기소개하기 시작했다.

“아이돌 매니저는 할 만한가요? 전 아이돌 맡아본 적이 없어서요.”

“저도요.”

“제가 입사한 지 아직 1년도 안 돼서요. 지금 맡은 애들이 처음이라 배우 매니저와 비교해서 할 만한지 안 한지는 잘 모르겠어요. 일단 저는 지금 매니저 생활은 할 만한 것 같아요.”

내가 아이돌 매니저라고 하자 매니저들이 호기심을 띠었다.

궁금해하는 표정들을 보니 다들 배우 매니저만 했던 듯했다.

“얘가 운이 좋은 케이스예요. 아이돌 매니저 스케줄은 원래 지옥도인데 애들 인성도 괜찮고, 그룹도 다른 기획사처럼 뽕 뽑으려고 쉴 틈 없이 굴리는 것도 아니니까.”

“저도 민희가 처음이어서 그런지 할 만한 것 같아요.”

차태수 팀장도 내 말에 자기의 생각을 담담히 이야기했다.

송민희 매니저 김명성 또한, 나처럼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민희 씨도 성격 엄청 좋아 보이던데.”

“마녀 팀 배우들은 괜찮은 편이죠. 어깨 힘 들어간 배우도 없고.”

“이예진 선배님 있으셔서 그래요. 짬도 있으시고 성격도 있으신 편이니까.”

차태수 팀장이 넌지시 한마디 하자 안종석과 백진하가 각자 자기 생각을 이야기했다.

마지막에 백진하가 말한 이예진에 대한 말은 나와 차태수 팀장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예진 씨가 성격이 있던가? 아직 한 번도 못 봐서.”

“모르셨어요? 예전에 신인 배우가 연기 더럽게 못 해서 그따위로 할 거면 때려치우라고 소리 지르신 거 유명한데.”

“제가 예진 씨 맡은 지는 1년 안 되어서요.”

“새 둥지 튼 지 오래되신 게 아니었죠. 참.”

백진하의 경우에는 짬이 조금 되었는지 배우들에 대한 정보가 빠삭한 것 같았다.

차태수 팀장이 짬이 밀리는 건 아닐 텐데 받는 정보가 조금 느린가 싶었다.

그래도 명색이 자기가 맡은 배우는 여러 루트를 통해 알아보지 않나?

“마녀 배우팀들은 그래도 다 연기력이 괜찮아서 별말 없으신 거 같아요. 작품 활동 같이하다가 연기가 별로거나 촬영장 분위기 해치거나 하면 선후배 구분 없이 들이박으시는 게 이예진 선배님이거든요.”

백진하가 잠깐 말을 끊더니 물 한 모금을 마셨다.

그런 백진하를 나와 차태수 팀장은 눈을 빛내서 보며 경청했다.

“그래서 이예진 선배님 작품 들어갔다 하면 연기 자신 없는 친구들은 안 들어와요. 게다가 이예진 선배님이 배역에 맞게 잘 스며드시잖아요? 그래서 연기로 뭐라 해도 아무 말도 안 하는 편이기도 하고요.”

백진하가 조금씩 정보를 풀었는데 꽤 흥미진진했다.

“항상 대본을 끼고 사시더라고요. 예진 씨 대본 보면 항상 너덜너덜해져 있거나 뭔가 빼곡히 분석되어 있다거나. 대본도 두 개씩 들고 다니시니까.”

“연기 잘하는 건 이유가 있는 법이긴 하죠. 노력 없이 재능만으로 잘하는 친구들은 드물고요.”

차태수 팀장도 백진하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이예진의 평소 연기에 대한 태도를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안종석도 같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가끔 그런 괴물이 있긴 해요. 노력 없이 그냥 월등히 잘하는 친구들.”

“규격 외죠. 그런 사람들은.”

백진하가 안종석의 말에 이어서 질린다는 듯 몸서리치며 말했고 차태수 팀장도 그 말에 동조해 주었다.

“모두 잔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감독님이 건배사 하시려나 보네요.”

매니저끼리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을 때 안쪽에서 큰 목소리로 모두의 주의를 끌어 잔을 들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내 우리도 모두 잔을 채우고 감독의 말을 기다렸다.

“안녕하세요. 마녀 감독 이서진입니다. 지금까지 스케줄 핑계로 공식적인 회식 자리는 이번이 처음인 것 같은데 길게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남은 일정 잘 소화해서 좋은 작품 만들어 봅시다. 마녀를 위하여.”

이서진 감독이 나직하게 말하면서 마지막에 잔을 원샷하고 머리에 터는 거로 건배사가 끝났다.

그리고 모두 다 같이 한목소리로 외쳤다.

“위하여!”

우리 테이블 또한 각자 잔에 있는 액체를 비우고 식사와 이야기를 다시 시작했다.

“오늘 회식이 길어지려나요?”

“첫 회식이라 감이 안 잡히긴 하네요.”

“아무래도 내일 촬영이 있다 보니까 오래 할 것 같지는 않긴 해요.”

드라마는 종영까지 촬영의 연속이다.

그래서 나는 영화가 차라리 더 나은 것 같았다.

정해진 스케줄도 있고 드라마보다는 시간에 덜 쫓기고 조금 더 마음 편하게 할 수 있으니까.

드라마는 방영이 시작되면 빠꾸가 없다. 그냥 앞만 보고 전진이다.

“저는 내일 스케줄이 없어서 다행이네요.”

“내일은 이예진 선배님 제외하고 다 있던가요?”

“그럴걸요.”

어쩐지 차태수 팀장이 속 편한 소리를 한다 했더니 내일 스케줄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어쩌다 보니 짬 좀 되는 매니저끼리만 이야기하고 나랑 송민희 매니저 김명성은 눈치만 보면서 열심히 듣고 있었다.

나나 김명성의 경우에는 딱히 할 말도 없고 지금 말하는 사람들처럼 뭔가 나서서 말하기에는 연차가 낮았으니까.

원래 이런 자리는 잘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반 이상 먹고 들어간다.

한창 고기를 구워가면서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차태수 팀장의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잠시만요.”

매니저에게 연락이 잦은 건 흔한 일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현진 씨는 그러면 배우 맡을 생각은 없어요?”

“지금 애들 끝나면 아마 그쪽으로 넘어가지 않을까요? 지금은 애들에게 집중하고 싶어서요.”

“집중한다고 해도 회사에서 딴 곳으로 옮기라 하면 옮기는 거 아닌가?”

시간이 좀 지나자 나도 그렇고 김명성도 말이 좀 트여서 이야기를 나눴다.

백진하도 흥미가 돋았는지 내 말에 의문을 던졌다.

“저도 그럴 거라 생각했는데 대표님이 제 의견을 존중해 주시더라고요. 애들 끝날 때까지는 알았다면서.”

“크, 그런 사람 진짜 몇 없는데. 좋은 분이네요.”

백진하의 말에 내가 답하자 안종석도 부럽다며 감탄했다.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이에 안쪽에서부터 차태수 팀장이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언제 안쪽까지 간 거지?

안에서 나오는 것 보니 통화가 이예진과 관련된 이야기였던 듯했다.

하긴 매니저가 전화 받을 일은 대부분이 담당 연예인 관련이니까.

“현진아. 내가 급히 미팅이 잡혀서 가봐야 할 것 같거든? 예진 씨 좀 부탁할게. 예진 씨한테는 내가 말해뒀어.”

“네?”

내 의사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 차태수 팀장이 앉아 있는 내 어깨를 두드렸다.

“그럼 먼저 간다. 먼저 일이 생겨서 가보겠습니다. 식사 맛있게들 하세요.”

“아, 네. 고생하세요. 다음에 현장에서 뵙겠습니다.”

“고생하세요.”

“어…. 실장님?”

차태수 팀장이 빠르게 말을 내뱉고 다른 매니저들의 인사도 흘겨 받다시피 하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나는 그 모습에 어버버하며 아무 이야기도 하지 못했다.

“짬 때리는 솜씨가 일품이시네. 크으, 부럽다.”

“하하….”

백진하의 말에 멋쩍은 웃음으로 답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면 마음 편하게 먹을 수가 없는데.

신경 써야 할 사람이 있다는 것과 없는 것은 천지 차이다.

그래도 배우나 감독들과 합석해서 먹었던 저번 가을동화 회식 때보다는 나았다.

그때는 죄다 상전이었기 때문에 긴장하고 먹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같은 테이블에 있는 사람들은 업계 선배이긴 해도 조금 편하긴 했다.

차태수 팀장이 간 뒤로도 대화는 사는 이야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하나둘 자리에서 떠나기 시작했다.

마지막에 남은 건 나와 백진하, 김명성 셋이었다.

그렇게 셋이 남아 시시콜콜 이야기를 나누던 찰나에 나를 찾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예진 선배님 매니저 계십니까?”

“네! 여기 있습니다.”

“이예진 선배님이 찾으세요.”

“네, 갈게요. 저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그러세요.”

“네.”

테이블에 앉아 있는 두 명에게 양해를 구한 뒤 이예진이 있는 안쪽으로 들어갔다.

“아, 왔어요? 곧 나가려고요.”

“네, 알겠습니다.”

가을동화 회식 때는 이렇게 일찍 일어나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자리에서 빨리 일어나는 이예진이었다.

그러면서 머리가 아픈 듯 이마를 감싸며 인상을 찌푸렸다.

“먼저 가보겠습니다. 식사 맛있게들 하세요.”

“들어가세요.”

몸이 안 좋아 먼저 일어나려는 건가?

그때 술 먹는 양을 봐서는 지금 일어날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선배님. 저도 잠시 같이 테이블에 있던 사람들에게 인사하고 오겠습니다.”

“그러세요.”

이예진에게 양해를 구한 뒤 원래 있던 테이블로 돌아가 가봐야겠다고 인사하고 이예진과 같이 회식 장소에서 빠져나왔다.

* * *

회식이 끝나고 우여곡절 끝에 이예진과 같이 이예진 집 앞까지 왔다.

“고생하셨어요. 여기 대리비입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여기 명함인데 다음에 언제라도 불러주십쇼.”

“네, 알겠습니다.”

나도 술을 마셨기 때문에 내가 운전을 할 수는 없었고 대리를 불러서 같이 왔다.

대리운전해준 기사는 이예진을 흘끔 보더니 이내 사라졌다.

“하, 춥네요.”

“얼른 들어가시죠. 감기라도 걸리시면 큰일이시잖아요.”

“추워도 그 정도까지는 아니네요.”

이예진이 차에서 나오자마자 한마디 했다.

새벽이라 그런지 입김도 나오고 확실히 조금 춥긴 했다.

이내 이예진과 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돌았다.

침묵을 깬 것은 이예진이었다.

“고마워요. 현진 씨.”

“네? 제가요?”

“좋은 드라마 할 수 있게 해줬잖아요.”

“아직 결과도 안 나왔는데 감사 인사받기에는 이른 것 같습니다. 선배님.”

뜬금없어서 이예진의 얼굴을 보았는데 얼굴은 조금 붉었지만 취하지는 않은 듯 말이 또렷했다.

“저는 느낌 좋던데, 아닌가요?”

“저도 오늘 제작발표회랑 회식 자리 보고 잘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좋네요.”

다시 또 이예진과 나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딱히 나와 크게 접점이 있는 것도 아니고 대화할 이유도 없었기 때문에 더 그런 듯했다.

“차는 여기 두고 가시면 돼요.”

“네. 알겠습니다, 선배님. 들어가세요.”

이예진도 나와 비슷한 걸 느꼈는지 용건을 말했다.

이예진에게 인사를 건넨 후 돌아가려던 찰나 이예진이 자신의 손을 탁하고 치며 나를 붙잡았다.

“아! 기억났다.”

“네?”

“떡값… 떡값 감독님이죠? 맞죠?”

거기서 그게 왜 나와?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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