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9화. 불난 집에 불을 끄려면? (4)
[단독- 우리는 지금 연애 중♥]
연예란을 클릭하자마자 보이는 뉴스가 있었다.
딱 봐도 열애 기사다.
옆에 있는 언론사를 보니 미스매치다. 그럼 내가 기대하고 있던 그 기사를 터트린 걸까?
[Bel.v는 연애 중이다. Bel.v의 리더 한명수와 티어즈의 막내 소진. 이 둘은 작년부터 연애를 시작했다.]
내 자료와 더불어 본인들이 준비하고 있던 기획기사를 내보낸 것 같았다.
사실 내가 보낸 자료는 이들이 준비하던 자료와 동일했다. 내가 얻어낸 정보가 이들의 기획기사에서 얻어낸 정보였으니까.
“기사 뭐야?”
“Bel.v에 한명수랑 티어즈 소진 열애설 기사요.”
남진수의 말에 본 대로 대답했다.
“크, 빨리 터트렸네. 이걸로 한시름 놓을 수 있겠다.”
남의 집 불구경은 나만 재밌는 게 아니었다. 남진수의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그러고는 내 곁으로 와 기사를 확인하며 통쾌하다는 듯 웃었다.
“전화는 어디에서 온 거였어요?”
“마케팅팀. 기사 나오면서 확인하고 바로 연락 준거 같아.”
“근데 이렇게 또 터졌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네요?”
“불의의 일격인데 상황 파악하느라 정신없겠지. 지금 걔네 전화기 불나고 있을걸?”
한 그룹에서 동시에 두 명이 열애설이 터진다면? PM 입장에서는 돌겠지.
“저희도 아침에 불났었죠?”
“불난 거 진압하느라 애먹었지. 이제 우리 집 불은 옆집으로 옮겨갔으니 어떻게 끄나 잘 보자고. 뭐 다른 기사는 없어?”
남진수의 말에 연예란 뉴스를 살펴보았다. 아직 뜬 기사는 없었는데 혹시나 해 새로고침을 하니 신규 기사가 떠 있었다.
[박민우와 유미소는 루머. 강경 대응]
[PM – 한명수는 사실 확인 중 박민우는 아니다.]
“저희 쪽 기사는 아직 없고 기사 터지자마자 PM에서 미소랑 박민우 입장 내놨네요. 한명수는 사실 확인 들어간 거 같아요.”
“우리 기사는 없어?”
“아직 없는 것 같은데요.”
PM도 입장 발표를 했는데 우리 기사가 없을 리가 없는데 이상했다.
남진수의 말에 혹시나 해 속보란으로 가보니 우리 쪽 기사도 있었다.
[헥사곤 공식 입장 – 박민우와는 예전에 알던 사이. 지금은 연락처도 몰라 반가워 인사한 것.]
“저희 기사도 있어요.”
“이제 관심도 없을걸? 다른 거에 관심에 쏠리겠지.”
남진수가 한결 여유로운 웃음을 지었다.
“미소랑 박명우 열애설의 경우에는 그냥 시간 끌면서 간만 본 거였지만, 저건 대응을 빨리 안 할 수가 없지. 꼴좋네.”
남진수는 고소하다는 듯 아까부터 연신 실실 웃고 있었는데 나도 다르지 않았다.
“시원하네요. 이제 팝콘 먹으면서 구경하면 되겠죠?”
“어, 근데 얘네 다시 봐도 간도 크네. 하긴 촬영하면서부터 꿀이 떨어지더라.”
“맞아요. 그거 때문에 제가 혹시나 해서 SNS 한번 뒤적여봤거든요. 근데 아이돌을 업으로 삼았으면 연애는 지양할 만도 할 텐데….”
“아이돌이면 20대에서 가장 이쁘고 잘난 놈들인데 연애 한 번 안 하겠냐. 안 걸리는 거뿐이지. 뭐 회사에서 기자들 입단속 하는 것도 있고. 근데 이번에도 미스매치가 가장 빠르게 터트렸네.”
“꽤 유명한 언론사잖아요. 한번 물면 안 놓치는….”
얘네가 진짜 독종이다. 연예계 스캔들 반은 얘네가 내는 걸 거다.
“근데 기사 퀄리티가 우리가 준 소스로만 터트린 게 아니었나 본데? 네가 전달해준 거 말고도 다른 게 좀 섞여 있는 것 같다?”
남진수가 슬쩍 모니터에 뜬 기사 자료를 보더니 내게 말했다.
“그러게요. 하도 티가 나서 미스매치도 준비하고 있던 걸까요?”
미스매치가 이미 같은 소스로 준비하고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척 시치미를 뗐다.
그리고 화제를 돌리기 위해 남진수에게 다른 말을 건넸다.
“이슈는 이슈로 덮는 게 최고인 것 같아요.”
가짜 이슈가 진짜 이슈에 묻히고 있는 게 새로 고침 한번 누를 때마다 보였다.
“그렇긴 해. 우스갯소리로 정치권이나 재계권에서 큰 사건 터지면 기자들 연락 돌려서 연예 뉴스 터트린다고도 말 많이 하니까. 뭐 없는 이야기도 아니고.”
“눈 돌리기엔 연예 뉴스만 한 게 없긴 한 것 같아요.”
“근데 이번 건 연애 스캔들을 연애로 덮는 거라. 좀 특이하긴 해.”
“왜요?”
남진수의 말을 가만히 듣다가 남진수의 말에 의아함을 느꼈다.
특이 케이스인가? 별다른 건 없다고 생각했는데.
“보통은 다른 회사나 배우 쪽 열애설이 터지지. 같은 회사 같은 그룹이 터지진 않거든. 너 아니었으면 이런 기이한 일도 없었을걸?”
“하하….”
어차피 터질 거 내가 좀 더 빠르게 당긴 거뿐이다.
유미소가 안 엮였다면 내가 나서서 이걸 뿌리는 일도 없었겠지.
그게 아니면 대응이라도 빨리해줬다던가.
어색하게 웃으면서 기사 모니터링을 하는데 미스매치의 후속 기사가 보였다.
“어? 팀장님. 후속 기사 떴는데요?”
“누구? 한명수랑 소진?”
“네, 걔네요. PM에서 아니라고 대응하기도 전에 종합해서 또 냈는데요.”
“후속 기사 낼 게 있었다고?”
남진수가 내 쪽으로 다가와 기사를 확인했다.
“뭐야, 얘네는 확실하게 준비하고 있었나본데?”
“그러게요. 정보가 다른데요?”
역시나 기사는 준비해 놓고 언제 터트릴지 준비만 하고 있던 듯했다.
예전에는 간 보면서 하나씩 풀었는데 이번에는 다른 언론사들이 따라서 후속 보도를 시작하자마자 바로 다시 단독으로 후속 기사를 내버렸다.
보니까 예전 퀄리티 그대로인 것 같았다. 누가 봐도 연애 중이구나 하는.
“애들 아직 연습실에 있던가? 애들한테 알려주고 와.”
“네.”
걱정하고 있을 애들에게 좋은 소식을 들려주러 애들이 있는 연습실로 향했다.
* * *
연습실에 들어가니 애들이 원 모양으로 빙 둥글게 앉아 있었다.
장난이라도 한번 쳐볼까?
“뭐 하고 있어?”
“그냥 있는데요.”
“마피아 했어요.”
스캔들 터진 그룹이라고는 생각도 못 할 태평함이었다.
“연습은 안 해?”
“연습할 게 뭐가 있는데요!”
“이 상황에. 할 게 없는데.”
말을 내뱉고 서지영과 린의 말에 나도 아차 싶었다. 새로 앨범 준비하는 것도 아니고 연습할 일이 뭐가 있겠나.
“오빠 왜 오셨어요? 할 말 있으셔서 오신 거 아니에요?”
“아 그게, 미소야. 너 박민우랑 아무 사이 아닌 거 맞아?”
“네? 맞다니까요!”
이나라가 교통정리를 하고 용건을 물어왔다.
나는 이나라의 말에 유미소를 보며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박민우는 호감 품고 만나는 중이라는데?”
“미친놈인가?”
유미소는 아까 회의실에서 본 모습보다 더 격앙된 표정과 몸짓으로 흥분했다.
생각보다 반응이 격렬해 나는 빠르게 이실직고했다.
“진정하고. 사실은 미소랑 박민우는 사실무근이라고 양측 기획사에서 대응했고, 새롭게 열애설이 하나 터졌어. 이거 알려주려고 왔어.”
“때려도 돼요? 진심 때리고 싶은데.”
“네? 또요? 누구랑요?”
내 이야기를 듣자마자 멍 때리던 유미소는 내 장난에 분한 듯 위협적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그런 유미소를 무시하고 이나라의 말에 대답해줬다.
“Bel.v 리더 한명수랑 티어즈 소진이랑 연애한다고.”
“한 대만 맞아줘요! 쫌!”
“아~ 어쩐지. 둘이 좀 티 났는데.”
유미소가 정말로 때리려 하길래 웃으면서 요리조리 피했다.
한명수와 소진의 관계는 이나라는 대충 눈치를 챈 정보였던 듯싶다.
“티났어? 왜 난 몰랐지?”
“모쏠이라 그래.”
“하, 이 언니가 진짜.”
신희진이 신기하다는 듯 의아하게 말했지만 이나라의 말에 바로 분개했다.
“미소가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아까….”
결국, 나에게 한 방도 맞추지 못하고 애들 뒤로 가서 씩씩대는 유미소를 보고 말했다.
그러나 내가 운 것을 언급하려고 한 것을 느꼈는지 유미소가 말하지 말라며 자신의 목을 긋는 제스처를 취하며 협박했다.
“아까 뭐요?”
“아까 되게 시무룩했는데 다행이라고. 원래의 유미소네.”
내가 자연스럽게 말 돌리며 말하자 애들도 다행이라는 듯 웃었다.
“저 언니는 연습실 와서도 태평했는데.”
“야! 박혜연!”
“저희 그럼 이제 핸드폰 봐도 되죠?”
“음, 될 것 같긴 한데. 잠시만.”
유미소는 나에게 못한 화풀이를 박혜연에게 했다.
아웅다웅하는 둘을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던 이나라가 핸드폰을 찾았다.
역시 핸드폰 중독자 이나라.
이나라의 말에 나도 핸드폰을 꺼내 남진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팀장님 통화 가능하세요?”
- 어, 왜?
“애들한테 이야기는 해줬는데 핸드폰 봐도 되냐고 묻는데요?”
- 상황 정리돼 가고 있으니까 갖고 가라고 해.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최대한 기사 보지 말라고 하고.
“네. 알겠습니다.”
- 애들 데리고 핸드폰 주고 사무실로 와.
“네.”
남진수와의 통화를 간략하게 마쳤다.
“회의실로 가자.”
“휴, 답답했는데.”
“악.”
“정의는 승리한다!”
애들에게 말하고 돌아서자마자 유미소가 몸통박치기로 나를 덮쳤다. 감정이 실렸는지 생각보다 아팠다.
놀린 대가치고는 싼 건가?
* * *
“애들은 다시 연습실로 보냈어요.”
“어, 그래. 근데 뭐 할 게 없긴 할 텐데 알아서 하겠지.”
꼬르륵.
“너 밥 안 먹었냐?”
“하하하, 밥 생각이 없어서 안 먹었는데 배에서 알람이 울렸네요.”
“밥이나 먹자. 나도 안 먹었어.”
“팀장님도요?”
“계속 전화 돌리면서 상황 파악하느라 못 먹었지. 대충 상황 끝나가는 거 같으니까 밥이나 먹자.”
“네.”
남진수와 사내 식당으로 가 맛있게 밥을 먹고 있는데 남진수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생각해보면 참 바쁜 위치다.
영업도 해야지. 담당 돌봐야지.
제일 스트레스 많이 받는 직책은 중간 자리라더니 딱 그 꼴이다.
“네, 알겠습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바쁘시네요. 또 어디 가세요?”
통화를 엿들어보니 또 어디론가 가는 듯했다.
막내가 참 좋다니까.
“어, 근데 나만 가는 건 아냐.”
“실장님도 같이 가세요?”
“아니. 너랑 나랑.”
“네?”
“대표실로 가자.”
전화가 대표실로 오라는 호출이었나? 근데 갑자기 웬 대표실이야. 게다가 나까지?
* * *
“안녕하십니까!”
“왔나? 여기로 앉지.”
대표실에 두 번째로 오는 거지만 여기 올 때마다 심장이 떨렸다.
분위기에 압도돼서 그런가 싶다.
“네. 대표님.”
“애들은 어때?”
남진수가 대표로 인사하고 소파로 가 앉았다. 대표는 중앙에 앉아 있었고 이진성 실장이 옆에 앉아 있었다. 우리는 그 맞은편으로 가 앉았다.
“아무 일 없다는 듯 활기찹니다.”
“그래? 그럼 다행이고. 활동 도와주면서 불편한 건 없고?”
“네.”
앉자마자 정인수 대표가 근황을 물어왔다.
나는 입을 다물고 조용히 듣기만 했다.
그러나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을 수 없는 상황이 왔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예능 촬영도 했다면서?”
“네, 어제 끝났습니다.”
“잘했나?”
정인수 대표와 눈을 마주 보면서 내 근황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정인수 대표와 별다른 대화한 것도 없는데 심장이 쿵쾅거렸다.
“네, 별 탈 없이 잘 끝났습니다.”
“행사 갔을 때 딜레이 걸려서 좀 더 했다면서?”
“아, 네. 다행히 잘 풀렸습니다.”
내가 하는 말은 앵무새처럼 잘되었다는 말뿐이었다.
그 말에 흡족했는지 정인수 대표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건 아니고 이번에 PM한테 스트레이트 날린 게 너라면서?”
“그렇게 되려나요?”
“거기 하는 행동이 너무 마음에 안 들었는데 꼴이 좋아.”
정인수 대표가 아무래도 이번 스캔들 건으로 우리를 부른 듯했다.
게다가 PM의 대응이 미적지근한 게 정인수 대표도 불쾌했던 것 같았다.
“잘했어. 맞으면 갚아주는 게 이 바닥 룰이야. 그건 그렇고 이 실장도 이제 슬슬 손 놓고 진수, 네가 컨트롤 한다면서?”
정인수 대표가 손으로 턱을 쓰다듬으면서 기분 좋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네, 근데 현진이가 잘 해줘서 저도 슬슬 넘길까 합니다.”
“그래?”
화제가 나에서부터 다른 사람으로 옮겨지는가 싶었더니, 남진수가 갑자기 나를 띄워줬다.
“아닙니다. 아직 부족합니다.”
“입사 1년 차치고 너무 잘해서요.”
“그래. 그런 거 같어. 프로그램 물어오는 솜씨나, 인맥이나, 이번에 방송도 타고 말이야. 이번 사건까지. 어디서 이런 놈이 튀어 나왔을까?”
“…….”
정인수 대표의 말에 대답하기가 난감해 나는 일단 침묵을 지켰다.
너무 눈에 띄게 행동했나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너무 나댔나?
내가 아무 말 없자 정인수 대표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가봐. 애들 케어 잘 해주고.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조치하고.”
“네.”
생각지도 못하게 대표와 이야기를 나눴다. 저번 김민재 건 이후로 본 적이 없었는데 또 이렇게 보다니, 스캔들 터질 때마다 한 번씩 보는 것 같다.
“아 참, 진성이한테 이야기는 해놨는데 이번 거 처리하는 방식이 내 마음에 들어서 말이야. 회식 좀 하라고 했어. 비싼 곳에서.”
정인수 대표의 말에 남진수와 내가 어버버했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정인수 대표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감사 인사를 받은 정인수 대표가 나가보라고 손짓했다.
정인수 대표에게 인사를 하고 대표실을 빠져나왔다.
* * *
사람들이 나가고 대표실에는 적막감이 감돌았다.
가만히 소파에 앉아 있던 정인수 대표가 슬며시 일어났다.
그러고는 핸드폰을 꺼내 들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박 편집장님 잘 지내셨습니까? 안부 차 연락드렸습니다. 다른 게 아니라 이번에 열애설 하나 터트리셨잖아요.”
“네, 아… 원래 준비하던 거였다고요?”
“네, 다음에 좋은 소스 있으면 먼저 알려드리겠습니다.”
“네, 한번 홀 돌아야죠.”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정인수 대표가 통화를 끝내고 대표 책상 의자에 앉았다.
앉고 나서 아무 행동도 안 하던 정인수 대표가 한 손으로 책상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재밌네. 재밌어.”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