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7화. 불난 집에 불을 끄려면? (2)
“일단 대표님한테 보고는 했는데 우리 매니지먼트팀이 너희 이야기 듣고 다시 말하자고 하시네.”
그래도 내 사전보고 때문인지 이진성 실장의 얼굴이 아까보다는 나아진 것 같았다.
“저희 이야기요?”
“저희가 이야기할 게 있나요?”
“음, 말을 잘못한 거 같네. 이 기회에 제대로 이야기하자는 거야. 우리가 사생활에는 크게 간섭을 안 했는데 이렇게 터졌으니까.”
자신들이 딱히 이야기할 건 없다고 생각했는지 이나라와 유미소의 눈이 동그랗게 떠지며 의아하게 말을 내뱉었다.
이진성 실정은 그런 둘에게 담담하게 다시 이야기했다.
“다른 건 아니고 너희도 각자 소속사가 있는데 우리가 위탁해서 맡은 거잖아? 위탁이긴 해도 어찌 되었든 우리 소속이고. 우리 소속으로서 우리가 최대한 케어는 해주지만 직접적으로 터치를 한 건 아니었거든.”
애들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경청하고 있었다.
그런 애들을 보며 이진성 실장이 들고 온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근데 이번에 이렇게 터지기도 했고 말 나온 김에 너희를 좀 더 알아놔야 무사히 마무리까지 끌고 갈 수 있을 것 같더라고. 그래야 대응도 하기 쉽고.”
이어진 이진성 실장의 말에 애들의 안색이 급격히 굳어진 거 보니 애들 생각은 이제 사생활까지 회사가 침투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이돌의 사생활까지 통제하는 기획사는 많다.
대표적으로 생각나는 기획사는 군대 문화가 많이 깃든 하늘 기획사 정도였다.
헥사곤은 의외로 소속된 연예인들에 대한 사생활 통제가 많지 않았다. 소속 연예인을 관리만 할 뿐 통제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통제를 빡빡하게 했으면 어제 애들이 술 마시는 일도 없었겠지.
이건 정인수 대표의 철학인지 연예인들의 사생활은 생각보다 자유로운 편이었다. 그렇게 해도 아직까진 사고가 없는 편이었기도 했다.
오히려 강하게 통제하면 반발 심리로 더 엇나가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어비스도 지금까지 구설에 오른 적이 없었다.
“어… 그러면 저희 숙소에도 이제 매니저 한 분 들어와서 생활하고 막 그런가요?”
“아니 그러지는 않을 거고, 우리 회사가 조금 프리하지? 대표님의 회사 방침이 신뢰와 존중이거든. 나는 개인적으로 숙소에 매니저가 같이 생활하는 건 찬성 하는 쪽인데 회사마다 방침이 있고 그것도 장단점이 있으니까. 지금은 그냥 너희에 대해 조금 더 알려고 하는 것뿐이야.”
이나라가 애들을 대표해서 의문점을 계속 물어보고 이진성 실장이 대답하는 쪽이었다.
“어떻게요?”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역시 타 아이돌과의 관계겠지? 지금처럼 구설수에 오를 만한 인물이 있는지, 누구랑 친한지, 연락하는 인물은 있는지, 이런 것들?”
잠시 고민하던 이진성 실장이 말을 이었다.
“혹은 과거에 문제가 될 일을 했는지. 우리도 사전에 너희 기획사로부터 정보는 전달받았는데 그런 거까지는 못 받았으니까.”
이어지는 이진성 실장의 말에 애들도 생각에 잠겼다.
“나랑 현진이가 너희와 짧은 시간 동안에 꽤 친해지고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오늘 열애설 터지니까 나나 현진이 둘 다 모르고 있으니 답답하더라고.”
남진수가 말하자 애들의 눈이 일제히 남진수한테 향했다.
“갑자기 그렇게 한 번에 보니까 부담스러운데? 아무튼 그래.”
“뭐 먼저 이야기해 드릴까요?”
“누구랑 만나고 누구랑 연락하고 그런 걸 일일이 캐는 건 아니고 실장님이 말했던 것처럼 이성 관계라던가 과거에 문제가 될 일이 있었다던가 그런 걸 솔직하게 말해줬으면 좋겠어. 그래야 대응도 빠르게 하니까.”
그런 이나라에게 남진수가 회사의 스탠스를 다시 말해주었다.
“음…. 어제 저희끼리 이야기한 것도 있는데요. 이렇게 된 거 이야기할게요. 괜찮지?”
이나라의 말에 스타즈 전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지금 연애 중인 멤버는 없어요. 어제 서로 핸드폰 돌려가면서 확인했거든요. 또 아직 저희에게 대시 해온 남자 아이돌도 없고요. 다들 연습생 때 친했던 선배들은 몇몇 있긴 한데 다들 딱히 연락은 안 한다고 했어요. 저희도 신인이라 조심하자고 항상 이야기했거든요.”
핸드폰을 남에게 보여준다는 것 자체가 자신이 정말 신뢰할 때나 가능한 행동이라 생각한다.
이나라의 말을 계속 들어보니 애들이 생각보다 더 철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결속력도 생각보다 좋다는 것도.
“과거는… 일단 저는 연습생 시절에 연애했었고요. 헤어진 지는 꽤 됐어요. 한 4년 된 것 같아요. 그 이후에 없는 건 연습생 시절이 길어지니까 너무 불안해서 연습만 했어요. 린이랑 유코는 연애 경험 없다고 했고 미소는 중학생 때 잠깐… 했는데 연습생 들어가기 전이었다고 했고요. 그리고….”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지 이나라가 말을 끊었다.
이내 생각이 정리되었는지 다시 속사포처럼 말하기 시작했다.
“혜연이도 연애 경험 없다고 했고 지영이가 제일 최근인 것 같은데 2년 전? 희진이는 없다고 했어요.”
“희진이는 왜 없어?”
“몰라요.”
“킥킥.”
신희진이 연애 경험이 없는 건 조금 신기했다.
남진수가 무심코 던진 말에 신희진의 얼굴이 터질 것처럼 붉어지더니 이내 얼굴을 숙이며 토라졌다.
“박혜연, 유코, 린 너네는 웃으면 안 되지! 너네도 나랑 똑같다고!”
“에이, 그래도 언니보다는 빨리 연애할 듯.”
“마자 마자.”
“말 아낄래.”
신희진이 자기랑 같은 신세인 세 명을 공격했으나 박혜연, 유코, 린 순서대로 아무렇지 않게 받아쳤다.
“아무튼! 저희 연애사는 이렇고요. 과거는… 저희 모두 그냥 평범해요. 그 흔히들 말하는 학교 일진이었던 친구도 없고요.”
“확실해? 과거에 누구 때렸다거나 그런 거 없어?”
“그건 지영이가 가장 유력해 보이긴 하는데 아니래요.”
“언니!”
이나라가 민감한 주제인 학교 폭력에 관한 이야기도 했다. 이진성 실장이 이나라에게 재차 물었으나 답변은 가만히 쭈그려 있던 신희진이 대신 대답했다.
이에 반발하는 서지영이 조금 전 신희진의 모습과 판박이였다.
“알았다. 오픈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말해줘서 고맙다.”
“아니에요. 아는 편이 확실히 좋죠.”
자칫하면 분위기가 무거워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애들이 유쾌하게 말해주어서 분위기는 훈훈했다.
“너희가 이야기한 토대로 앞으로 대응 방침을 정할 거야. 그리고 지금은 회사도 입장 정해서 정리해야 하니까 잠깐 여기 있어. 나랑 진수는 회의하고 올게.”
이진성 실장이 이제 회의하러 가려고 애들에게 이야기했다.
“실장님, 저는요?”
그런데 남진수만 언급하고 회의하러 가려고 하길래 내가 급하게 물어봤다.
“너는 여기에서 애들이랑 같이 있어.”
“알겠습니다.”
이번 회의에는 내가 있을 장소가 아니었던 듯싶다.
남진수와 이진성 실장이 회의실에서 빠져나가고 나와 스타즈만 남은 회의실이 다시 적막감에 휩싸였다.
“저희 연애사도 오픈했으니까 오빠도 오픈하시죠.”
“나?”
“네.”
어색한 분위기가 싫었는지 이나라가 나에게 장난스레 물어왔다.
어째서 타깃이 내가 된 거지.
* * *
“모두 오셨죠?”
“네.”
“매니지먼트팀 이야기 듣고 회의 진행하겠습니다.”
“매니지먼트 4팀 이진성입니다. 일단 애들에게 이야기를 들은 결과 연애사랑 과거사 깨끗했고요. 딱히 문제 될 일은 없을 듯합니다.”
기획팀의 인물이 회의를 주도하여 진행하기 시작했다.
“확실한가요?”
“저희가 애들한테 물어보는 것 말고는 더 조사하기가 힘듭니다. 애들이 작정하고 숨기면 어쩔 수 없죠. 오픈된 정보로는 순수한 아이들이었습니다.”
“하긴, 그렇긴 하죠. 그리고 요즘 애들은 어릴 때부터 연습생 생활하다 보니까 예전보다 과거가 더 낫긴 해요.”
사실 확인을 요구하는 기획팀의 말에 이진성 실장은 좀 전에 들었던 스타즈의 말을 그대로 전했고 기획팀 인원들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어떻게 대응할까요?”
“Bel.v의 박민우랑은 아무 사이 없는 건 확실하고요?”
회의실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마케팅팀 인물과 기획팀이 재차 이진성 실장에게 물었다.
“네, 그냥 학원에서 알던 사이여서 같이 이야기 나눈 게 전부랍니다.”
“그럼 그냥 자극적인 이슈 터트리는 게 목적인가….”
“아무래도 거기 언론사가 이런 거로 장난질 몇 번 친 언론사 아닙니까? 이번에도 같은 거 같은데요.”
“이렇게 찔렀다가 건진 게 몇 번 있으니까 이러는 듯하네요.”
“그래도 대응은 혹시 모르니까 PM이랑 말 맞춰서 진행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이진성 실장의 말에 기획팀과 마케팅팀 인원들이 현 상황에 대해 회의하기 시작했다. 얼추 정리가 끝나자 매니지먼트팀에게 이야기하는 기획팀이었다.
“PM은 아직도 사실 확인하고 있나요?”
“네, 아직도 그 입장 그대로 고수 중이에요.”
남진수 팀장이 옆에 있던 마케팅팀 직원에게 물었다.
회의실의 상황은 이제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가는 듯했다.
현재 이슈에 대해 정리가 되어가는 분위기 속에서 회의실의 문이 열리고 정인수 대표가 회의실로 들어왔다.
회의실에 앉아서 회의하던 인원들은 정인수 대표가 들어온 모습을 보자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이 보였다.
“앉아요. 일어날 필요는 없고. 회의 진행은 어떻게 돼가고 있습니까?”
“스타즈 애들이랑 면담을 진행해서 더 알아본 결과 애들 자체는 깨끗했습니다. 또 이번 사건은 언론사에서 이슈 몰이하려고 자극적으로 터트린 것 같습니다. 열애 당사자인 유미소와 박민우의 관계가 깊은 관계가 아니고 어릴 때 학원 같이 다녔던 사이라고 합니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정인수 대표는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스타즈 매니저 중에 한 명이 안 보이는 것 같은데?”
“김현진 매니저는 애들이랑 같이 뒀습니다. 아무래도 애들끼리 있으면 불안해할 듯싶어서요.”
“그래요? 그렇군. 그럼 대응은 어떻게 하기로 정했습니까?”
“대응은 PM과 같이 연계하는 방향으로 가려고 합니다. 예전에 말 안 맞췄다가 물먹은 여자 아이돌도 있어서 조심스럽게 가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PM에서 아직 연락은 없고?”
“네.”
기획팀은 회의에서 잡힌 방향을 정인수 대표에게 브리핑했다.
보고를 받는 정인수 대표는 한두 번 겪은 일이 아닌지 여유로움이 묻어나왔다.
“이거 참 손해 볼 게 없다 이건가…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양아치다운 행동이네. 이건 내가 따로 연락 한번 넣어보지.”
PM의 행동에 불쾌한 듯 정인수 대표가 얼굴을 찌푸렸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그럼 얼추 정해진 것 같으니 움직여 봅시다.”
“네.”
더 회의에 있을 필요를 못 느낀 정인수 대표가 회의를 마무리 지었다.
* * *
남진수가 회의를 끝내고 우리에게 돌아왔다. 이진성 실장은 따로 할 일이 있는지 오지 않았다.
회의실에서 서로 뻘쭘하게 아무 말 없이 있으려니 생각보다 힘들었다.
이런 분위기가 참을 수 없었는지 적막을 깨고 서지영이 말을 꺼냈다.
“저희 활동 올 스톱 돼요?”
“아니, 진짜 열애설인 게 아니잖아. 해프닝으로 끝나겠지.”
“그럼 그냥 우리가 먼저 발표하면 안 돼요?”
“우리야 그러고 싶은데, 회사끼리 말 안 맞췄다가 상대가 호감이 있고 알아가는 단계라고 말하면?”
“그 오빠가 그럴 리가 없는데….”
서지영이 말문을 열자 열애설 당사자인 유미소도 답답했는지 남진수에게 말했다.
그러나 남진수도 답답한 건 마찬가지였는지 유미소에게 상황을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너희는 그렇게 이야기해도 회사가 얽히면 이게 또 비즈니스 들어가면 이야기가 또 다르거든.”
“그리고 열애설 터져서 팬들이 흔들리는 건 아무래도 걸그룹이 더 심하니까.”
“왜 저번에 여자 쪽에서 열애 인정했는데 남자 쪽에서 아니라고 발표한 적 있었지?”
돌아가는 모양새가 남진수가 애들에게 강의하고 있는 모양새였다.
“아! 맞아요! 기억나요.”
“보통 그런 경우는 거의 없거든.”
“체급이 맞는 기획사와 아이돌이었으면 하늘도 그렇게 대응 안 했을 텐데. 아니면 상대 회사가 너무 안일하게 대응했지.”
“그때 그 선배님 되게 안타까웠는데….”
“너도 그렇게 될 수도 있으니까 이러는 거야. 답답해도 참아.”
수강생들은 묵묵히 열심히 듣고 있었고 가장 학구열에 불타는 건 열애설 당사자인 유미소였다.
나도 남진수의 강의를 듣고 PM 기획사도 하늘 기획사 못지않은 양아치다운 기질이 있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확인이 뭐가 이렇게 오래 걸리는지 당최 모르겠다.
아니면 뭐가 이득인지 간 보고 있다거나.
이렇게 손 놓고 기다리는 건 내 성미에 맞지 않다.
그렇게 나오면 나도 다 생각이 있다.
한번 판을 키워보자.
누구 집 불이 더 큰지 한번 해보는 거다.
방화범이 되기는 싫었는데 상황이 그렇게 흘러갔다.
남진수의 열렬한 강의 후 쉬는 시간이었는지 다시 적막한 분위기만 감돌고 있을 때 내가 말을 꺼냈다.
“팀장님 그거 쓰면 안 될까요?”
“그거? 그거가 뭔데?”
“저희가 아육대에서 확인한 연애요. Bel.v에 하나 더 있잖아요.”
“왜? 한 방 맞았다고 갚아주게? 그래도 증거가 없잖아. 증거가.”
“아뇨. 증거 있어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열애설에는 열애설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