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5화. 7자매 육아일기 (4)
“오빠 요리 잘해요?”
“나? 그냥저냥?”
“오! 요리 좀 하나 봐요? 못하면 그런 말도 안 하던데.”
“사람이 먹을 수 있을 정도는 해.”
장을 다 보고 밴에 애들과 장 본 물건을 싣고 애들 숙소로 향하는 도중, 박혜연이 나에게 요리 실력에 대해 물어왔다.
요리는 자취하면서 조금 늘긴 했다. 거의 배달 음식이나 나가서 먹긴 했으나 가끔 이상하게 요리하고 싶을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인터넷 찾아가면서 조금씩 해봐서 그래도 사람 먹을 수 있는 수준은 되었다.
“그럼 이따가 기대해도 되죠?”
“아니. 기대는 말고….”
“기대만빵 할게요!”
어쩌다가 내가 얘네들한테 요리를 해줘야 하는 지경까지 오게 된 건지 의문이다.
내가 매니저인지 육아일기를 찍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 맞다! 우리 숙소에 휴지 없지 않아?”
“이미 차는 떠나서 숙소로 가고 있는데 왜 뒷북?”
확실히 쓰잘데기 없는 소리도 하는 거 보면 방송을 의식하고 있는 듯했다.
서지영이 저렇게 세세한 걸 챙길 위인이 아니다.
“너희 숙소 정리는 했어?”
“당연히 대청소 했….”
“야!”
숙소가 더러울 걸 예상해 질문했으나 당당하게 말하는 유미소에게 이나라가 큰 소리로 유미소의 말을 끊었다.
“요건 편집요.”
신희진이 손으로 가위질을 하며 웃으며 이야기했다.
“저희는 평상시에도 깨끗하게 사는데요.”
“에휴.”
신희진의 행동이 끝나자 유미소는 능청스럽게 다시 이야기했다.
한숨 쉬는 이나라를 보니 남 일 같지가 않았다.
리더란 자리가 고생이 많아.
애들과 티격태격 아웅다웅하면서 스타즈 숙소에 도착했다.
“도착했다. 빨리 올라가서 숨길 수 있는 건 숨기고.”
“뭘 숨겨요! 그리고 카메라 설치는 어제 끝났거든요!”
“그래, 그래. 난 주차하고 올라갈 테니 장 본 거 풀고 있어.”
“네!”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별로 한 게 없는 거 같은데 벌써 진이 다 빠졌다.
이대로 촬영 끝내면 안 되나.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주차를 하고 스타즈 숙소로 올라갔다.
“금남의 구역. 스타즈의 숙소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금남은 무슨. 남진수나 나나 일주일에 한 번은 여기 들리는데.
서지영의 열띤 환호를 받으며 스타즈 숙소에 입성했다.
과연 저번에 왔을 때보다 상당히 깨끗했다. 이 정도만 상시 유지하면 정말 좋으련만.
“실례하겠습니다.”
“웨르컴, 웨르컴!”
서지영은 문을 열고 주방으로 사라졌고 유코가 나를 마중 나왔다.
“유코야, 우리 평상시에도 이 정도만. 오케이?”
“네, 헤헤. 노력해 보게요.”
“집이 더러우면 너네 건강도 나빠져.”
“우우! 잔소리는 이제 그만.”
유코도 유미소나 서지영에게 물들었는지 요즘 부쩍 반문이 많아졌다.
역시 한곳에 모아두면 다 닮는다니까.
나는 숙소를 한번 슥 훑고 주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주방에는 장을 본 물건들을 정리하고 있는 애들이 보였다.
“언니! 이거 어디다 놔?”
“그거 냉동실.”
“언니! 이거 오늘 쓰나?”
“쓸 거 같은데?”
“언니!”
“너희가 알아서 좀 해!”
이나라가 바쁘게 진두지휘하며 주방을 통솔하고 있었다.
그러게 왜 그렇게 많이 샀어.
“오빠! 오늘 요리할 거만 빼놓으면 되죠?”
“어, 어차피 지금부터 하면 될 것 같아. 희진아, 그거 지금 먹는 거 아니야.”
전쟁 나간 군인처럼 전투적으로 정리하다 보니 이나라가 새삼 존경스러워졌다. 얘네 데리고 어떻게 숙소 생활을 할까.
장 본 물건들을 냉장고에 넣고 당장 안 쓰는 물건들은 서랍 속에 넣었다.
주방이 얼추 정리된 것 같아 팔을 걷어붙이고 오늘의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오늘의 요리는 닭볶음탕이다.
“근데 삼촌. 요리할 줄 아는 거 맞죠?”
“넌 오늘 식탁에서 제외야.”
“취소! 취소!”
서지영이 까불길래 식사 금지령을 내리니 꼬리를 내렸다.
어제 오늘만큼 포식하는 날도 없을 거다.
식단조절 하는 애들의 사정을 알기에 어제 오늘은 양껏 먹였다.
체중이야 자기들이 알아서 잘 해왔으니까.
“뭐 도와드릴 거 없어요?”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야. 아니다. 잠깐만.”
애들에게 말하고 주방 구석에 먼지 쌓인 밥솥을 보고 생각했다.
먼지가 쌓일 정도면 어지간히도 안 해 먹었구나.
보통 밥은 회사에서 먹으니까 숙소 와서는 잘 안 해 먹는 듯싶었다.
“밥은 할 줄 알지? 밥만 해줘.”
“네! 다른 건요?”
“됐어.”
예전에 집구석 Live 때 요리하는 걸 보니 도움이 안 되지는 않겠지만 호흡 안 맞는 사람이 요리를 도와주는 것보다 혼자 하는 게 마음 편하다.
본격적으로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요리 재료를 손쉽게 찾기 위해 부엌에다가 쭉 깔아놨다.
나 혼자 먹을 때는 이렇게 할 필요가 없었는데 인원수가 많아 요리해야 할 양이 많아져 풍성해 보였다.
재료를 찾아가면서 요리를 하다가 거실에서 애들 뭐하나 살펴보니, 자기들끼리 이야기 나누며 알아서 방송 분량을 챙기고 있었다.
이나라가 그런 나의 시선이 느껴졌는지 주방으로 다가왔다.
“혼자 하기 힘드시죠? 저라도 도와드릴까요?”
“음, 그래 줄래?”
“뭐부터 하면 돼요?”
“채소 헹구고 썰어줘.”
“네.”
이나라가 와서 요리 속도에 탄력이 붙었다. 처음부터 도와달라고 할 걸 그랬나 싶을 정도로 속도에 탄력이 붙었다. 괜한 자존심에 거부한 듯했다.
메인 요리인 닭볶음탕은 어느새 다 되었고 냉장고를 열어 밑반찬 세팅을 하기 시작했다.
밑반찬까지 다 하기에는 너무 가혹해 간단한 종류의 밑반찬류는 그냥 마트에서 사왔다.
이렇게 요리를 하다 보니 문득 느낀 것은 누군가에게 요리해준 게 MT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그러고 보니 펜션에 놀러 와서 요리하는 느낌도 났다.
애들에겐 숙소지만 나는 아니니까.
이나라의 도움에 어느 정도 저녁 식사가 얼추 완성되었다.
“야, 너네들 그만 놀고 요리 좀 날라.”
“네~”
이나라가 애들을 불러 모아 저녁 세팅을 하기 시작했다.
“얼마 만에 숙소에서 먹어보는 집밥이야?”
“우리가 요리한다고 까불던 12월 이후로 처음 아닌가?”
“그치?”
가까이 와서도 장난치며 말하는 박혜연과 서지영이었다.
“언니. 너무 많은 거. 아냐?”
“아냐, 이 정도는 먹어야지.”
린이랑 신희진은 밥을 푸고 있었는데 밥이 볼록하게 솟아오른 밥그릇이 하나 보였다.
아마도 저건 본인 밥그릇이지 싶다.
애들의 도움을 받아 거실에 그럴싸한 저녁 밥상이 완성되었다.
“오늘 저녁 요리를 해준 오빠에게 박수!”
짝짝짝!
“어쩌다 보니 내가 우렁각시가 되었는데 맛있게 먹어라.”
“네!”
이나라가 식사를 하기 전에 멍석을 깔아주니 조금 민망했다.
평소에는 애들의 눈을 마주치며 대화를 했지만, 오늘은 왠지 쑥스러워 눈을 피하며 말했다.
먹을 거 앞이라 그런지 애들의 눈이 너무 반짝반짝 빛나서 부담스러웠다.
“오? 기대 안 했는데 생각보다 괜찮네요.”
“나도 너네 요리할 때 기대 안 했는데 생각보다 괜찮더라고.”
“에이, 그때 얼마나 맛있었는데요.”
유미소가 내가 만든 닭볶음탕을 한 숟가락 뜨고 먹더니 하는 말이었다.
나도 처음 애들이 요리한 걸 먹었을 때 저렇게 느꼈었다.
그때 그 요리들은 기대도 안 했는데 생각보다 먹을 만했다.
그러나 서지영은 그때 자신이 한 요리에 자부심을 가진 듯싶었다.
“말은 바로 하자. 먹을 만했지 맛은….”
이나라가 고개를 절레절레 지으면서 사실 확인에 들어갔다.
“언니! 언니는 우리 편이어야지!”
“바보.”
“솔지키 그때보다 지금이 더 마싯다.”
서지영은 이나라가 그렇게 말하니 내심 찔리는 듯 반발했으나 린과 유코의 한마디에 무너졌다.
“유코 언니도 그렇고 린도 그렇고 내 편은 없는 거야?”
“그렇게 떠들 때 얼른 먹는 게 낫지 않을까?”
“희진 언니 스톱! 그거 내가 먹으려고 남겨 둔 거란 말이야.”
“먼저 먹는 사람이 임자지. 넌 눈으로 먹을 거 찜해 두냐?”
서지영이 과장되게 토라진 포즈를 취했다.
그러나 신희진의 손에 점점 사라지는 닭들을 보고는 박혜연이 한마디 하자 서지영은 다시 전투적으로 먹기 시작했다.
시끌벅적한 밥상을 보니 생각보다 기분이 묘했다.
제법 오랫동안 자취를 해서 나는 혼자 밥을 먹는 게 익숙했다. 그럼에도 가끔 혼자 밥을 먹다보면 이유 없이 외로워질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러면 집에서 가족과 함께 밥 먹던 시간이 그리워지곤 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숙소 생활도 나름 괜찮은 것 같다.
이렇게 시끌벅적하게 식사하는 모습을 보니 숙소 생활을 하면 식사할 때 외로울 일은 없겠지.
이건 조금 부럽다.
“잘 먹었습니다!”
“잘 먹었어요.”
“그래.”
“설거지는 저희가 할게요.”
“그럴래?”
이나라가 설거지는 자기들이 한다고 나섰다.
나도 내심 반가웠다.
“여기에서는 설거지도 자기가 한다고 해야 진짜 진짜 멋있는 사람이 되는데.”
“나도 설거지는 귀찮아. 나도 사람이야.”
서지영의 오늘 컨셉은 사사건건 트집 잡는 컨셉인 듯했다.
평소보다 심하게 태클이 걸려오네.
“지영이는 진자 나빳다.”
“오늘 내 편은 진짜 없네. 너무해.”
다른 애들은 모두 내 편이었다.
유코가 한마디 하자 서지영이 다시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우쭈쭈, 우리 지영이 삐졌어요?”
“혜연아, 손 내려라. 확 마!”
박혜연이 강아지 턱을 쓰다듬듯 서지영을 쓰다듬었다.
그러나 서지영이 으르렁거리자 박혜연이 깨갱 했다.
“잘 먹었으니 난 먼저 가볼게. 오늘 일정은 여기서 끝!”
“벌써 가요?”
“가야지. 여기에서 자고 가겠냐. 우리 집 와서 청소 아닌 청소 하느라 고생했어.”
“마치 아무것도 안 했다는 듯 말 하시는데요?”
“사실이 그렇잖아.”
식사 자리도 끝났고 이제 가봐야 하지 싶다. 제작진이랑 사전에 맞춘 것도 먹고 끝내는 거로 이야기했었다.
“오늘 고생하셨어요! 닭볶음탕은 진짜 맛있었구요!”
“맛있었어요.”
유미소도 흡족한 표정으로 내게 오늘 먹은 식사의 만족스러움을 한껏 뽐내며 감사 인사를 했다.
린도 나직하게 말해주었고.
맛있게 먹어줬다니 뭐, 요리해준 입장에서는 그게 최고지.
“설거지 미루지 말고 오늘 끝내고.”
“그럼요.”
이나라가 제일 듬직하고 믿음직했다.
서지영이 이나라 반만 닮았으면 좋겠다.
“내일 보자.”
“네! 내일 봬요!”
“아 참, 내일은 조금 늦게 올 거야. 오늘까지 촬영이라고 특별히 내일은 좀 늦게 나와도 된다더라.”
조금 늦게 온다고 말하니 한껏 기뻐하는 애들이었다.
“아싸! 늦잠 잘 수 있겠다.”
“우리 미소는 언제는 안 잔 거처럼 말하네?”
“일어나는 게 제일 느렸을 뿐이지 늦잠 잔 적은 없거든요.”
“어련하시겠어.”
실없이 농담하면서 티격태격하는 애들을 두고 현관까지 나왔다.
그런 나를 마중하러 스타즈 애들도 다 나와서 마중해줬다.
“간다.”
“네, 들어가세요!”
생각보다 힘든 하루지만 뿌듯하기도 했다.
물론, 혼자 일곱 명을 감당하려니 진이 다 빨렸다.
팀장님이 있고 없고 차이가 크구나.
2일간의 육아일기가 막을 내렸다.
* * *
아침에 눈을 떠보니 여기저기 있는 카메라가 낯설기만 했다. 회수는 오늘 한다고 했던 것 같다.
솔직히 2일간의 촬영에서 얼마만큼이나 방송 소스가 나올지는 모르겠다만 잘 나왔으면 좋겠다.
어제까지의 촬영 여파로 특별히 오늘은 느긋하게 출근할 수 있게 회사에서 배려해 주었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느긋하게 출근 준비를 하고 집을 나왔다.
집을 구하고 회사가 가까워지긴 했으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직장인이기에 이번에도 여지없이 지하철을 이용했다.
다행히 출근시간대는 빗겨나간 시간이라 지옥철을 겪지 않고 정말 쾌적하게 회사에 도착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좋은 아침?”
나는 그 어느 날보다 기분 좋게 목소리를 내며 우리 사무실인 매니지먼트 4팀에 들어갔다.
그러나 내가 예상했던 반응이 아닌 싸늘한 반응이 튀어나왔다.
특히 이진성 실장이 고민이 많은 표정을 보니 무언가 일이 터진 듯싶었다.
그 옆에 남진수는 열심히 전화기를 붙잡고 있었고.
“무슨 일 있어요?”
“열애설 터졌어.”
“열애설이요?”
“넌 기사 확인도 안 하고 사냐. 톡방 확인 안 했어? 아니다. 기사 올라 간 지 5분도 안 됐으니까.”
지금 시기에 우리 회사소속 연예인이 열애설 터진 게 없던 거로 기억하는데 누가 터진 거지?
“아, 혹시 PM이랑 한울 거기인가요? 저번 체육 대회 녹화 때도 티 엄청나게 내더니 결국 터졌나 보네요. 제가 지나가다가 걔네가 뜨거운 애정행각 벌이는 걸 스치듯 봤거든요, 하하하.”
우리 회사는 아닐 거고, 그럼 결국 그때 봤던 그 커플인 듯싶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지금 그 커플이 터진 건 조금 이르지만, 이 시기에 둘의 열애설이 크게 터졌으니까.
조금 앞당겨진 건가?
강 건너 불구경하면서 팝콘 먹으면 될 것 같다.
“무슨 소리야? 터진 건 우린데.”
“네?”
웃으며 말한 나에게 이진성 실장이 의외의 말을 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내 표정 또한 싸늘하게 식어갔다.
“너 미소랑 Bel.v에 걔 누구냐. 박민우? 걔랑 뭐 엮이는 거 본 적 없어?”
“네?”
“정신 못 차리네. ‘네?’는 무슨 ‘네?’야? 본 적 있냐고. 얘네 지금 연락을 안 받던데 어제 뭐 했어?”
이진성 실장이 어이없다는 듯 나에게 재차 물어왔다.
그런 이진성 실장에게 나는 어벙한 대답밖에 할 수 없었다.
다른 집이 불난다고 해서 구경하려고 했는데….
근데 우리 집이 불나고 있던 거였어?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