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3화. 7자매 육아일기 (2)
“괜찮겠어?”
“에이 한두 시간도 아니고 30분이면 충분히 가능하죠.”
“음, 그럼 잠시만 기다려. 조율 좀 해보고 올게.”
“네.”
내가 걱정하여 묻자 이나라는 자신 있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그런 이나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는 스타즈가 보였다.
갑작스러운 상황이지만 태연한 애들을 보니 확실히 프로는 프로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수선한 스타즈 애들을 뒤로하고 행사장 관계자에게로 다가갔다.
“애들도 동의는 했으니 하기는 하겠는데 무료로 해드릴 수는 없는 거 아시죠?”
“네, 기존 페이에 두 배로 얹고 나중에 광고 기획할 때 1순위로 염두 하고 진행하겠습니다. 일반 행사면 상관없는데 오늘 행사에 부회장님도 와 계셔서 일정에 차질을 빚으면 안 되거든요. 정말 감사합니다.”
“좋습니다. 그럼 저도 애들이랑 큐시트를 다시 손 좀 보겠습니다.”
“네, 정말 감사합니다.”
처음에는 불안해하며 안절부절못하던 행사장 관계자는 안도했다.
그리고 관계자랑 비즈니스적으로도 이야기가 끝났다.
원래라면 내게 이런 권한은 없다.
하지만 오늘은 나 혼자 애들을 담당했기 때문에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은 전적으로 내게 다 위임한다고 했다.
안 좋은 것도 아니고 좋게좋게 일이 풀렸으니까.
일단 상황이 정리되고 한숨 좀 돌렸을 때 전화해야겠다.
관계자는 나와 이야기하고 바람처럼 사라졌고 나는 다시 스타즈 애들에게 돌아갔다.
“음, 30분이면 뭘 더 해야 하지?”
“일단 우리가 Lovely랑 Bomb Bomb 잡혀 있었는데 여기서 30분 더해야 하니까….”
“느린 템포의 ‘지금, 이 순간’은 안 되겠지?”
“응, 그건 너무 쳐져. 좀 신나는 거로 해야 할 것 같은데.”
애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어떻게 시간을 구성해서 무대를 짤지 회의하고 있었다.
내가 다가오는 것도 모른 채 대화에 집중하는 스타즈 멤버들의 모습이 보였다.
더 가까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회의에 열중이었다.
“앞에 무대 보니까 앵콜 무대 이야기 나올 테니까 그거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이랑 우리가 이야기하는 시간 합하면….”
“한 세 곡 정도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원래 하려는 거보다 더 많이 하게 되네.”
애들이 회의에 집중하는 모습에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애들도 지금 상황을 알아야 했기에 급히 끼어들었다.
“얘들아, 일단 관계자 측이랑 합의 보고 왔어. 행사 페이 두 배에 나중에 광고 기획 1순위로.”
“아싸! 우리 그럼 광고 찍는 건가?”
내가 차분하게 이야기하자 광고라는 이야기에 유미소가 환호했다.
“너희가 지금 잘하면 힘 많이 써주시겠지?”
“오빠 근데 우리 뭐 해요? 애들이랑 이야기해 봤는데 Lovely랑 Bomb Bomb 말고 딱히 이야기가 안 나와서요.”
유미소를 비롯해 애들이 기뻐하길래 애들에게 웃으며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나라는 무대 구성에 여념이 없었다.
기뻐하는 애들과 다르게 현재의 문제인 무대를 어떻게 해서 시간을 풀어갈 건지 내게 물어왔다.
“나도 너희 이야기하는 거 중간에 들었는데 우리 트랙 중에서 신나는 건 경연곡으로 몇 곡 넘겨야 할 것 같은데?”
“아! 그게 있네. 근데 그래도 두 곡인데요?”
“음… ‘지금, 이 순간’보다는 일기장이 더 템포가 빠르지?”
“네.”
어쩔 수 없이 템포가 느리더라도 쉬어가는 느낌으로 한 곡 줘야 할 듯싶었다.
“그럼 일기장을 중간에 넣자. 그리고 맨 첫 순서로 Bomb Bomb, 두 번째는 경연곡인 Main bubble, 세 번째로 일기장, 네 번째로 하늘에서 낙엽이, 다섯 번째로 Lovely로 끝내면 괜찮을 것 같은데.”
“네! 그렇게 해요!”
내 의견이 나쁜 의견은 아니었는지 스타즈 모두 갸우뚱하지 않고 납득하는 표정이었다.
“일단 다른 곡들은 숙지는 돼?”
“안무는 얼추요. 근데 라이브는 조금 힘들 것 같아요.”
내 말에 이나라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차피 Bomb Bomb이랑 Lovely 말고는 AR이야. 저거 두 개만 Live MR로 가면 돼. 음방했을 때처럼.”
“네!”
곡들의 안무 숙지는 어느 정도 되는 것 같았다.
무대에서 Live를 하는 편이 좋긴 했으나 지금은 익숙한 두 곡 말고는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럼 우리 잠깐 안무 좀 다시 맞춰보자.”
“그럼 난 트랙 CD 좀 가지러 갔다 올게.”
“네!”
애들은 급하게 무대에 오를 안무 동선을 점검하기 시작했고 나는 트랙이 담긴 CD를 찾으러 차량으로 향했다.
CD를 찾아 행사장 관계자에게 건네주고 다시 스타즈가 있는 대기실로 돌아왔을 때도 애들은 안무 맞추는 것에 한창이었다.
“쏴리~”
“야! 간만에 해도 그렇지. 다 까먹었어?”
“하다 보면 물 흐르듯 몸이 기억할 거야. 걱정하지 마!”
“말은 청산유수야 완전.”
행사로 자주 쓰는 두 곡은 문제가 없는 듯싶은데 이나라와 유미소의 대화를 들어보니 경연곡이 문제였던 듯싶다.
하긴 그 곡들은 안 쓴 지 좀 됐으니까 이해는 된다.
“스탠바이 해주세요! 5분 뒤에 스타즈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들었지?”
관계자가 곧 스타즈의 차례임을 알려왔고 혹시 몰라서 나는 애들에게 전달했다.
그러나 내 말은 공허한 메아리였다.
“야! 유미소! 너 나중에 연습실에서 보자.”
“아~ 또 잔소리 폭격!”
“안무 최대 구멍인 희진이도 잘하는데 갑자기 네가 그러면 어떻게 해!”
애들은 안무 점검에 바빠 다가오는 시간을 신경 쓸 겨를이 없는 듯했다.
이나라가 유미소한테 잔소리를 하다가 타깃을 신희진으로 바꾸어 말하고 있었다.
가만히 있던 신희진은 움찔하더니 양손과 어깨를 으쓱해 하는 포즈를 취하며 이나라의 말에 화답했다.
“가만히 있는 나는 때리지 말아줘.”
“언니가. 항상. 구멍이었으니까.”
신희진은 억울하다는 듯 이야기했지만 옆에 있던 린이 조용히 사실로 신희진을 두드렸다.
“혜여나, 혜여나. 바나나 우유가 우스면 머개?”
“언니 또 이상한 소리 하려고 그러지?”
“아니야, 아니야. 바나나 우유가 우스면 머개?”
“으음…. 바나나? 바나나가 휘어 있잖아.”
“땡! 답은 빙그레야. 킥킥.”
“으으. 언니만 아니었어도 내가….”
유코의 개그를 듣고 부들부들 떠는 박혜연의 모습이 애처로웠다.
자유로운 상황을 보니 애들은 무대를 앞두고 별로 긴장하지 않는 듯싶었다.
말은 이렇게 해도 하는 모습을 보니 큰 무리는 없어 보였다.
“무대 올라갈 준비 하자.”
“네!”
나는 애들에게 이제는 무대에 올라가야 할 것 같아 애들을 데리고 무대 뒤편으로 나왔다.
앞선 무대에서는 청량한 목소리로 유명한 B.B가 노래를 열창하고 있었다.
“와, 진짜 노래 너무너무 좋아.”
“난 왜 저렇게 못 부를까.”
“네가 부르려면 다시 태어나는 게 빠를 듯.”
서지영과 박혜연은 여지없이 서로 으르렁댔다.
우리 다음에 엔딩을 장식할 PumKin 그룹이 아직 오지 않아서 시간을 끌어야 하는 난감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아이들이었다.
B.B가 노래를 끝내고 무대 뒤로 내려왔다.
“고생하셨습니다!”
“다음이 너희들이니? 열심히 해.”
“네! 감사합니다. 선배님!”
사람 좋기로 유명한 B.B가 애들에게 인사하고 스태프들에게 꾸벅 인사를 한 뒤 사라졌다.
“갔다 올게요!”
“어, 그래.”
무대로 올라가는 애들을 배웅하고 나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기 시작했다.
상황이 너무 급해서 주위를 둘러볼 정신이 없었는데 애들이 무대 위로 올라가자 정신이 조금 돌아왔다.
그러다 보니 문득 생각난 것은 지금 촬영 중이라는 생각이었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보니 열심히 나를 찍고 있는 카메라 감독님들과 관객석 쪽에서 애들을 잡는 카메라 감독님들이 보였다.
그제야 실감이 났다.
지금 촬영 중이지…. 우리.
애들은 아까 이야기하던 큐시트대로 먼저 Bomb Bomb 무대를 깔끔하게 선보였다.
그 후 무대 인사로 간단히 시간을 벌고 다음 무대인 Main bubble을 시작했다.
이제 15분 정도만 버티면 약속했던 시간이 끝이 난다.
행사는 담연 자회사가 여는 자선 콘서트 형식이라 여러 가수가 행사를 뛰러 왔다.
그렇기 때문에 주최 측도 그냥 대학가 축제 같은 느낌으로 운영하면서 별 탈 없겠지 한 게 화근이었던 듯싶다.
남은 곡은 세 곡.
두 번째 무대가 끝나고 서지영이 마이크를 잡았다.
그리고 오늘 있는 콘서트의 성격에 관해 설명하면서 시간을 조금 끌다가 자연스럽게 세 번째 곡인 일기장으로 넘어갔다.
일기장은 항상 들어도 애들의 마음이 잘 나타낸 곡이라 묘하게 감정 이입하기가 좋았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일기장 노래가 다 끝나고 계획대로 애들이 무대 뒤편으로 일단 들어왔다.
“앙코르 안 나오면 어떻게 해요?”
“해줄 거야. 걱정 마.”
박혜연이 뚱한 얼굴로 걱정하길래 나는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 주었다.
앵콜! 앵콜!
관객들이 앙코르를 안 외치면 조금 웃긴 상황이 될 것 같았는데, 앞선 무대들도 가수들이 다 떠나기 전에 관객들이 앙코르 무대를 외쳐줬듯이 이번에도 다행히도 외쳐줬다.
스타즈 애들은 다시 무대로 나가서 자연스럽게 관객 호응을 받아내어 네 번째 무대를 시작했다.
지금까지 스타즈 무대는 순조로웠다.
마지막 곡 들어가기 전에 PumKin이 오기만 하면 될 텐데….
내가 걱정하는 건 기우라도 된 듯 무대 뒤편이 갑자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지나가겠습니다!”
“아우, 진짜. 이번 로드는 진짜 왜 이래?”
“형, 저희가 편하게 해드린다고 형이 이러면 안 되죠.”
“아, 그게…. 미안하다.”
“말은 똑바로 해야지. 늦은 건 너희 때문이잖아.”
“그럼 우리를 잘 컨트롤 해야지.”
시종일관 쩔쩔매는 매니저와 그런 매니저를 비웃는 PumKin 애들을 보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는 PumKin 그룹이 대형에 속하는 PM기획사 소속이기 때문에, 늦는 것도 기획사의 힘을 보여주려는 건가 싶었다.
근데 매니저에게 대하는 태도와 말을 들어보니 PumKin 애들 때문에 늦은 듯싶었다.
“그래도 앞에 귀염둥이들이 시간 잘 끌어줬네.”
“근데 카메라가 왜 이렇게 많아?”
카메라를 보고 의아해하길래 상황 설명을 위해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스타즈 매니저 김현진입니다. 카메라가 많은 건 저희 쪽에서 ‘지금 뭐 해?’ 촬영이 있어서요.”
“아, 그래요?”
“얘들아! 지금 방송 찍고 있대.”
“방송이라고?”
방송이라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껄렁거리던 태도를 버리고 조금 반듯한 태도로 돌아왔다.
“안녕하세요? PumKin 진우입니다.”
“아, 네.”
“저희가 조금 늦었죠? 저희 매니저 형이 길이 낯설다고 길을 잘못 들어서요. 죄송합니다.”
PumKin의 리더라고 소개한 진우라는 인물이 나에게 늦은 정황을 설명하면서 양해를 구했다.
그러나 앞서 말했던 대화를 곱씹어보면 저 이유는 아닌 것 같았다.
단지 지금 방송 촬영을 위해 카메라가 돌고 있으니 둘러대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아닙니다. 곧 마지막 곡 끝나고 내려오니 준비하시면 될 것 같아요.”
“네. 알겠습니다! 촬영 파이팅하세요!”
갑자기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PumKin의 리더인 진우와 인사를 끝맺었다.
그러고 나서 무대를 보니 애들은 Lovely 무대를 거의 다 마치고 있었다.
그렇게 무대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PumKin 매니저가 나에게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PumKin 매니저 홍영수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스타즈 매니저 김현진입니다.”
“이야기 들어보니 촬영 중이라고 하셨는데 작가님이나 PD님 어디 계신지 알 수 있을까요?”
몹시 피로에 찌든 표정과 목소리로 한명수가 말했다.
“아, 저기 저분이에요.”
“감사합니다.”
홍영수는 나에게 정보만 빠르게 습득하고 ‘지금 뭐 해?’ 작가와 PD에게 다가가 무언가 열심히 말했다.
아마 방송에 나가기 부적절한 걸 내보내지 말아 달라고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얘네와 우리 스타즈를 비교하니 우리 애들은 천사였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다루기가 조금 힘들긴 하지만.
이어서 스타즈도 마지막 무대인 Lovely를 끝내고 내려왔다.
“와! 끝났다!”
“안녕하세요!”
“안녕?”
스타즈 멤버들은 무대에서 내려와 PumKin 애들이랑 인사하고 내 곁으로 다가왔다.
“오빠, 밥 먹으러 가요. 배고파요.”
“어, 고생했어.”
“일한 뒤 먹는 밥맛은 꿀맛. 개꿀맛일 듯.”
“오면서 여기 맛집 검색했다구? 렛츠고!”
이렇게 보니 정말 PumKin 애들이랑 비교되었다.
PumKin 애들도 초기에는 스타즈와 비슷했을까?
그럼 우리 애들도 나중 가면 저렇게 변할까?
무엇이 연예인들을 저렇게 바꾸는 걸까.
“그래. 밥 먹으러 가자.”
중요한 건 지금 일이 끝났고 우리는 밥 먹으러 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애들을 이끌고 빠르게 행사장을 나와 밥집으로 향했다.
* * *
밥 먹을 때만 해도 굉장히 왕성하고 활발한 애들이었는데 차에 타자마자 귀신같이 조용해졌다.
아마 미니 콘서트에 육박한 행사를 해서 그런지 밥을 먹고 몸에 긴장이 풀려 피곤해진 듯싶었다.
많이 피곤했는지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전부 다 잠들어 있었다.
오늘 생각보다 다사다난했던 것 같다.
오는 길부터 해서 휴게소, 그리고 행사까지.
리얼리티 할 때마다 다사다난한 것 같은데 착각인가.
방송에 쓸 자료는 많아서 ‘지금 뭐 해?’팀은 행복해 죽으려고 할 것 같지만.
아직 내일도 촬영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허탈했다.
내일은 도대체 어떤 일이 나를 기다릴까.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