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2화. 7자매 육아일기 (1)
“악덕 회사는 물러가라. 물러가라.”
“사람이 밥은 먹고 살아야죠.”
방송이라고 아주 신이 났다.
아마 얘네는 자는 것보다 먹는 게 더 중요할 거다.
“밥은 휴게소 음식 간단히 먹자. 일정이 빠듯해서 그래.”
“우리가 한발 양보해 주자.”
“이번만이에요.”
“나 소떡소떡 머글래.”
언제나 활발했던 스타즈였지만 오늘은 유독 더 했다.
특히 서지영의 텐션은 미쳤다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그나마 얌전히 봐준다고 하는 박혜연과 조용히 휴게소 음식을 먹고 싶다고 한 유코가 정말 고마웠다.
지금 육아일기를 찍는 건지 매니저 일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게다가 오늘은 남진수도 없다.
오전에 샵에서 메이크업을 끝내고 지금은 지방 행사차 내려가는 길이다.
그리고 우리 뒤로는 ‘너는 뭐해?’ 의 방송팀이 따라오고 있었다. 물론 차 안에도 카메라가 다섯 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소리 질러~!”
“예!”
“DJ 린! Drop the beat!”
서지영이 주도적으로 나서서 분위기를 돋우고 있었다.
왜 이 밴은 방음 칸막이가 없는 걸까.
가끔 행사를 위해 장거리 운전을 하다 보면 애들의 텐션이 기형적으로 올라갈 때가 있다. 지금처럼.
방송이라 더 텐션을 높이는 걸 수도 있다는 생각은 문득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어휴.”
“어? 방금 오빠 한숨 쉬었죠?”
“한숨 쉬었어?”
“한숨 쉬었어?”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쉬었는데 그걸 들은 듯했다. 평소라면 넘어갔을 텐데.
이나라의 말에 다른 애들이 한목소리로 두 번씩 말했다.
“아니야. 좀 졸려서 그래. 어우, 어제 잠을 못 잤나?”
“운전하는데 졸면 안 되죠! 그럼 우리 따라 해봐요! 잠 깨워 드릴게요.”
오늘의 최대 하이텐션인 서지영이 무언가를 하려는지 기세등등하게 나를 보며 말하고 있었다.
“하나 둘 셋 야!”
“하나 둘 셋 야!”
“…….”
저건 언제 만든 걸까. 백미러로 뒤를 보니 애들이 숫자를 외치고 그다음에 오는 단어에 맞춰 깜찍한 포즈를 하고 있었다.
나보고 하라고? 너무 수치스러운데.
“안 하네~?”
“안 하네~?”
멘탈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얘네들이 말할 때 메아리치듯 이야기하는 이 화법은 정말 버티기 힘들다.
“얘들아. 나 운전해야 하거든?”
“해주면 안 괴롭힐게요.”
“다시 한번 더!”
운전해야 한다고 불쌍하게 말해보았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내 말에 이어 대답한 신희진의 말에 멘탈이 와장창 깨져버렸다.
그리고 서지영이 선창했다.
“하나 둘 셋 야!”
“하나 둘 셋 야!”
“…하나 둘 셋… 야….”
이 시간이 영겁도록 끝나지 않을 것 같아 소심하게 윙크만 해보았다.
“약해요, 약해. 다시!”
“하나 둘 셋 야!”
눈 딱 감고, 아니 운전 중이라 눈을 감을 수는 없었지만 한 손으로 브이 자를 하며 눈 쪽에 갖다 대고 깜찍한 표정을 지었다.
꺄하하.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표정 관리, 스마일, 스마일… 방송하고 있다는 걸 잊지 말자.
정말 안전제일이 아니었다면 분노의 질주를 했을 텐데.
그래도 운전 중인 걸 고려했는지 휴게소에 도착할 때까지 정말 적당히 괴롭혀줬다. 적당히. 방송 분량이 나올 만큼만.
“배고프지? 가는 거리가 좀 있어서 여기서 먹고 가긴 해야 해. 어떻게 차에서 먹을래? 밖에서 먹을까?”
“차는 답답해요.”
“나가서 먹어요.”
애들의 의견을 물었더니 차 안은 별로인 듯했다.
차에서 먹자파가 없었다.
평소에는 차에서 먹으니 나가서 먹고 싶을 만도 했다.
“어차피 저녁에 지방 맛집 가기로 했으니까 여기선 간단하게 휴게소 별미만 먹죠?”
“그래, 그러자.”
이나라가 상황을 보고 정리하고 나에게 말해주었다. 나도 이내 동의하고 차에서 내렸다.
“으~그~억”
“무슨 소리야 이건 또.”
“기지개 켜는. 소리.”
좁은 차 안에서 장시간 있던 탓인지 나오자마자 하나둘 이상한 소리를 내며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휴게소에 사람이 없는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하려나.
우리가 내리자 우리를 따라오던 방송팀도 내려 우리를 찍기 시작했다.
나한테 전담 카메라가 셋이나 붙으니까 조금 어색했다.
“뭐 먹을 거야?”
“저 소떡소떡요!”
“저는 알감자요.”
소떡소떡파와 알감자파 두 파벌로 나뉘었는데 어차피 자기들끼리 알아서 나눠 먹을 게 분명해 파벌이 무의미했다.
휴게소 안쪽으로 애들을 데리고 가면서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예전 같으면 알아보고 사인하러 오거나 그럴 것 같았는데 지금은 카메라가 돌아서 그런지 섣불리 다가오지 않았다.
마치 동물원에 있는 동물이 된 기분이다.
연예인들은 항상 이런 기분을 느끼는구나.
나와 스타즈 그리고 촬영팀까지 합해서 대략 20명이 넘는 인원이 움직이다 보니 눈에 안 띌 수가 없었다.
“근처에 자리 잡아서 앉아 있어. 가지고 올게.”
“네!”
휴게소 안으로 들어와 쉼터에 대충 자리 잡고 나는 음식을 사러 찾아갔다.
“소떡소떡 여덟 개랑 알 감자 다섯 개 주세요.”
나도 먹어야 하니 좀 넉넉하게 사야겠다.
‘너는 뭐해?’팀에서 자기네는 신경 쓰지 말고 평소대로 우리만 신경 쓰라고 하는데 촬영팀들은 언제 먹지? 교대로 해서 먹으려나.
조금 기다리자 주문한 음식들이 나왔다.
“여기 있슈.”
“감사합니다.”
감칠맛 나 보이는 소떡소떡에 소스를 칠하고 알감자에 이쑤시개를 넉넉하게 꼽았다.
그리고 가게에서 담아갈 판을 줘서 여기에다 담아가 애들에게로 갔다.
“와! 냄새 봐.”
“오우, 소떡소떡 좀 먹어 보셨나 보네요. 소스 제대로 뿌려오셨네.”
“자, 먹자.”
음식을 가지고 오니 냄새에 취한 신희진과 내가 뿌려온 소스에 고개를 끄덕이는 서지영이었다.
“소떡소떡은 왜 이리 많이 사오셨어요?”
“어차피 많이 사와도 다 먹을 거잖아. 그리고 먹다 보면 뺏어 먹을 거 같아서 그냥 넉넉하게 사왔어.”
이나라가 그렇게 물어보고 내 대답을 듣고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내게 엄지를 척하고 내보였다.
“유코야. 하나하나 먹는 게 아니고 같이 물어서 먹어. 그게 맛있어.”
“그게 마시써?”
“린이 봐. 안 알려줘도 알아서 잘 먹네.”
서지영이 소떡소떡 먹는 법에 대해 유코에게 강의에 들어갔다.
신희진이 할 줄 알았는데 의외다.
애들이 생각보다 배가 고팠는지 전투적으로 먹었다.
그러다 보니 방송 중임에도 불구하고 오디오가 조금 비긴 했으나 워낙 빨리 먹어 괜찮을 듯했다.
어느새 알감자 2컵 분량을 제외하곤 다 먹어치웠다.
“다 먹었지? 남은 건 차 안에서 해결하고 화장실 갈 사람 갔다 오고 나머진 차로 가자.”
“네!”
애들을 데리고 차로 돌아왔다.
화장실은 내가 음식 사러 갔을 때 다 다녀왔는지 박혜연 빼고는 있었다.
차 안에서 뜨뜻하게 히터를 틀어놓고 기다리고 있는데 생각보다 너무 안 왔다.
“혜연이가 왜 이리 안 오지?”
“큰 거 싸나?”
“근데 혜연이 화장실 오래 보는 타입 아닌데?”
“우리 보고 먼저 가라더니 이럴까 봐 먼저 가라고 했었네.”
내가 의아해하며 박혜연의 행보를 걱정하자 애들도 하나둘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야?”
“전화 한번 해봐.”
린이 걱정하며 말하자 이나라가 서지영보고 전화 한번 해보라며 서지영에게 이야기했다.
징. 지잉. 징.
“얘 핸드폰 두고 간 거 같은데요?”
“그러네. 여기 있네.”
“서지영 출동!”
“또 나예요?”
서지영이 박혜연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으나 소리는 안타깝게도 차 안에서 울렸다.
이나라가 그 모습을 보고 말하자 나는 서지영의 출동을 이야기했다.
“동갑내기 친구 챙겨야지. 그리고 화장실은 내가 못 들어가.”
“쳇, 손이 많이 가는 친구구먼.”
내가 논리적으로 이야기하자 인상을 팍 찡그렸지만 이해하는 서지영이었다.
서지영은 투덜거리면서 차에서 내려 화장실로 향했다.
근데 혜연이는 무슨 일 있나? 조금 걱정되는데.
* * *
“아, 어떡하지….”
박혜연이 조용히 읊조렸다.
사건의 전황은 간단했다.
급히 화장실 안에 들어와 볼일을 본 것은 좋았으나 가장 중요한 뒤처리를 할 휴지가 없다는 걸 확인 못 했다.
“아, 진짜 어떡해….”
박혜연은 안절부절못했다.
“킁킁. 여기 냄새 장난 아니다.”
“야, 너도 이 정도는 되거든?”
“미쳤냐?”
밖에서 들린 소리에 박혜연의 얼굴이 급격하게 붉어졌다.
“박혜연 여 안에 있나!”
그렇게 숨죽여 화장실 안에 있던 박혜연에게 구세주와 같이 서지영이 등장했다.
“나 여기!”
소심하게 대답하던 전과 달리 큰 목소리로 대답하는 박혜연이었다.
“왜 안 나오고 있어?”
“지영아. 미안한데 나 휴지 좀… 줄래?”
서지영이 박혜연이 있는 칸에 와 의아하게 묻자 박혜연은 자신의 상황을 서지영에게 말했다.
“그냥 지나가는 사람한테 부탁하지.”
“아니, 일단 휴지 좀 구해다 줘.”
“알았어. 잠시만.”
서지영은 박혜연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으나, 박혜연의 간절한 목소리에 더는 묻지 않고 휴지를 구해 왔다.
“여기.”
“땡큐.”
뒤처리를 다 하자 박혜연의 표정이 개운해 보였다.
“근데 지영아, 혹시 밖에 사람 많아?”
“아니, 없는데. 왜?”
딸칵.
“아냐. 가자.”
조심스럽게 밖의 상황을 묻는 박혜연이었지만 서지영은 얘가 왜 그러나 싶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서지영의 대답을 들은 박혜연은 곧바로 나와 세면대로 가서 손을 씻고 서지영을 데리고 화장실에서 나왔다.
* * *
“다녀왔습니다!”
“왜 늦은 거야?”
“화장실에 휴지가 없었던 것 같은데 지나가는 사람한테 부탁하면 될 걸 그냥 끙끙 앓고 있더라고요.”
쾌활하게 말하는 서지영에게 늦은 이유를 물었는데 몸이 아프거나 하는 이유는 아니었다.
“아니… 부탁하고 싶었는데 냄새가… 냄새가 너무 심했어. 걸그룹 체면이 있지 어떻게 그래.”
“음….”
그런 서지영의 말에 박혜연이 얼굴을 붉히며 다소 장황하게 이야기했다.
“그러게 왜 냄새나는 똥을 쌌어!”
“그게 내가 조절되냐! 이 멍충아!”
“조절할 줄 알았어야지!”
서지영과 박혜연의 티키타카를 보고 있다가 더 지체되면 시간에 늦을 것 같아 출발한다고 이야기를 꺼냈다.
“일단 출발할게, 얘들아.”
“네!”
생각보다 별일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박혜연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부탁하기에는 조금 창피했던 듯싶었다.
나로서는 이해가 되는 상황은 아니었으나 연예인만의 사정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조용히 운전하기 시작했다.
* * *
행사장에 오기 전까지는 애들은 얌전히 잠만 잤다.
휴게소 도착 전에 에너지를 잔뜩 쓴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해 잠만 잔 것이 아닐까.
게다가 방송 분량으로는 그 정도면 충분할 듯싶다. 그리고 휴게소에서 벌어졌던 에피소드들도 있으니 PD가 생각이 있다면 잘 버무려 줄 거다.
“언니 쫌 더! 쫌 더 하면 돼!”
“말 걸지 말아줄래? 집중해야 하니까.”
유미소가 무서운 표정으로 핸드폰 게임에 집중하자 서지영이 옆에 붙어 구경했다.
차 안에서 푹 쉬어서 그런지 애들이 다소 활발했다.
앞 팀의 순서를 기다리며 놀고 있는 애들을 흐뭇하게 보다가 오늘의 큐시트를 다시 한번 살펴보고 있었다.
그런데 대기실 문이 열리더니 행사장 스태프가 나에게 안 좋은 얼굴로 다가왔다.
“저, 죄송한데요. 혹시 몇 곡 더 가능할까요?”
“네? 무슨 말씀이시죠?”
“지금쯤이면 스타즈 뒤 순서인 PumKin 그룹이 와야 하는데 안 와서 연락해보니 오는 데 30분 정도 걸릴 것 같다고 해서요.”
상황을 보니 우리 뒤 순서가 문제가 생긴 듯했다.
그러나 딱하고 다급한 행사장의 사정은 알겠지만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다.
“그렇게 갑자기 이야기하셔도….”
“어떻게 안 될까요?”
내가 부정적이자 스태프는 더욱 사색이 되었다.
그런 나와 스태프 옆으로 인기척이 들렸다.
“해봐요. 우리.”
“어?”
“다들 저렇게 신나 하시는데 흐름 끊을 수는 없잖아요.”
이나라가 자신 있게 말했다.
그리고 그렇게 말한 이나라를 보니 어느새 내 주위로 스타즈 멤버들이 다 모여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