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1화. Do you know chicken? (2)
“무슨 일 있어요?”
“아, 저… 죄송한데….”
감독이 물어보자 신희진이 다시 한번 머뭇머뭇하며 대답했다.
“네. 말씀하세요.”
“화장실 좀 갔다 오면 안 될까요?”
갑자기 튀긴 걸 먹어서 배가 아팠는지 촬영하기에는 조금 힘들다고 생각한 듯싶었다.
“쟤가 미쳤나 봐.”
카메라 밖에 나와 있던 이나라가 부끄러운지 조용히 읊조렸다.
“아, 네. 다녀오세요.”
“음, 그게….”
감독이 갔다 오라고 이야기하자 그래도 할 말이 있는지 머뭇거리는 신희진을 보고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었다.
“팀장님. 쟤 표정 보니까 아무래도 화장실 오래 있을 것 같은데 다른 사람 먼저 찍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래 보이긴 하네. 잠시만.”
내가 남진수에게 이야기하자 남진수도 내 말에 동의하는지 감독에게 다가갔다.
“감독님. 희진이 말고 다른 사람 먼저 촬영 가능할까요?”
“음, 알겠습니다. 희수야. 다음 차례 누구냐?”
남진수가 감독에게 다음 사람 먼저 찍자 이야기하니까 감독도 기다렸다는 듯이 흔쾌히 말했다.
“다음 차례 서지영 씨입니다.”
“서지영 씨 준비해 주세요!”
“네!”
감독 곁에 있던 조감독이 바로 다음 차례를 알려주었고 서지영은 크게 대답을 외치며 신희진과 교대하여 들어갔다. 신희진은 나와서 나와 남진수가 있는 곳으로 왔다.
“어디 아파?”
“아, 다른 게 아니고요. 배가 아파서요. 화장실 갔다 오면 될 것 같아요.”
“음, 알았어. 현진아, 애 데리고 갔다 와.”
“네. 알겠습니다.”
“혼자 갈 수 있는데….”
“혹시 모르니까 같이 가.”
“네.”
남진수가 급격히 안색이 어두워진 신희진을 걱정하여 물었지만 신희진은 그냥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나에게 신희진을 맡겼다.
근처 스태프에게 물어 화장실의 위치를 파악한 뒤에 신희진과 같이 화장실로 향했다.
“많이 아파?”
“으, 이상해요. 이런 적 한 번도 없었는데.”
“먹는 걸 줄이는 게 어때?”
“병원 갈지언정 그건 사양하겠습니다!”
“멀쩡하네.”
어느새 신희진과 투덕거리면서 걷다 보니 스태프가 알려준 화장실 위치로 오게 되었다.
“무슨 일 있으면 비명 지르고.”
“핸드폰 있거든요.”
“아. 그렇지.”
내 말에 얼굴을 찡그리는 신희진의 모습이 굉장히 웃겼다. 그런 나의 모습에 뭐라 할 것처럼 톡 쏘아보더니 화장실 안으로 사라졌다.
기약 없이 핸드폰을 하면서 기다리고 있는데 화장실 안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얼마 후 신희진이 개선장군처럼 당당한 모습으로 화장실에서 나왔다.
“가요.”
“괜찮아?”
“네. 그럼요.”
말하는 신희진의 모습은 비장함이 깃든 모습이었다. 신희진과 같이 촬영장에 다시 도착하니 서지영의 촬영이 한창이었다.
“갔다 왔습니다.”
“괜찮아?”
“네.”
남진수에게 신희진을 데리고 다가가 이상 없음을 알렸다.
“혹시 또 아프면 이야기하고.”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남진수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야기하자 신희진은 별일 아니라는 듯 새침하게 이야기했다.
이내 신희진은 멤버들이 뭉쳐 있는 장소로 갔다. 신희진이 멤버들한테 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서지영의 촬영이 끝났고 다시 신희진이 촬영에 들어갔다.
“컷! 아주 좋아요. 이번엔 다르게 가볼게요.”
앞서 유미소와는 달리 서너 번 반복되는 촬영에도 신희진은 단 한 번도 뱉지 않았다.
“배 아파서 화장실 간 거 같은데 괜찮으려나?”
“혹시 배가 아파서 간 게 아니라 먹기 전에 비우려고 간 거 아닐까요?”
“그것도 일리가 있네.”
“그렇죠?”
남진수와 나는 어처구니없어 하는 표정으로 서로를 보다가 촬영하고 있는 신희진의 모습을 봤다.
행복한 표정으로 촬영하는 신희진의 모습을 보니 배가 아파서 간 게 아니라 더 많이 먹기 위해 준비태세를 하려고 간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신희진의 단독 컷이 끝나자 감독은 만족스러운 얼굴과 함께 다음 차례를 불렀고 다른 멤버들도 똑같이 촬영에 들어갔다.
촬영이 끝났을 때 뭔가 아쉬워하는 표정의 신희진이었으나 먹어야 할 일이 끝이 난 건 아니다.
이다음이 마지막 컷인데 이것도 먹고 대사를 해야 했다.
이 이후로도 무난하게 촬영은 진행되었지만 신희진 말고는 죄다 뱉기 시작했다. 배가 차서 뱉는다기보단 배가 찰까 봐 걱정해서 뱉는 것 같았다.
“고생하셨습니다! 잠깐 쉬고 다시 가겠습니다!”
“네!”
마지막 촬영 주자였던 린의 차례가 끝나고 잠깐의 브레이크타임이 걸렸다.
“한동안 치킨 못 먹을 것 같은데.”
“나두.”
“다들 왜 그래. 치킨은 치킨이라고!”
“희진이 빼고 장렬하게 전사했네.”
박혜연이 치킨이 물리는 듯 혀를 내두르며 말하자 곁에 있던 유코가 깊이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그러나 신희진은 아니었나 보다.
그 광경을 보고 남진수가 웃으며 애들에게 대꾸해줬다.
“어 이게 무슨 냄새지?”
“킁킁. 떡볶이 냄새 같은데?”
촬영장 안에서 매콤한 향이 돌자 이나라가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먹보는 벌써 센서를 돌리고 있었다.
광고 촬영장은 간식이 생각 외로 많다.
지금 같은 경우 애들이 먹다가 식은 치킨은 다 간식 쪽으로 빼놨고 떡볶이를 쉬는 시간 틈에 내놓은 것 같았다.
냄새의 근원지로 가보니 떡볶이가 컵에 우수수 담겨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보온정수기가 있었는데 오뎅 국물이라고 적혀 있는 A4용지가 붙어 있었다.
“와. 간식 디따 많다.”
“이거 먹어도 돼요?”
“되긴 하는데…. 또 먹어야 하잖아.”
새로운 간식에 애들이 갑자기 눈이 돌아갔다. 애들은 이 모습은 처음 본 듯했다.
서지영이 감탄하면서 말하자 옆에 있던 이나라가 나에게 물어왔다.
그러나 내가 인상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튀긴 거만 계속 먹다 보니까 느글거려요.”
“단짠단짠!”
“먹는 건 밸런스죠.”
내가 안 된다는 뉘앙스를 펼쳤는데도 애들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서지영은 논리적으로 나에게 말했고 유코가 어디서 배운 단어인지는 몰라도 서지영의 말을 맞받아쳤다. 그리고 도도하게 배를 내밀며 말하는 신희진의 모습도 같이 보였다.
“…조금만 먹어.”
냠냠
“아싸!”
간식이 있는 장소로 오면서 남진수가 잠깐 밖에 나가 있기에 현재 최종 결정권자는 나였다.
잠시간 고민했지만, 조금이면 괜찮다 싶어 허락했다.
그러자 바로 떡볶이를 집는 스타즈였는데 신희진은 내가 조금만이라고 말할 때부터 이미 집고 먹고 있었다.
“5분 뒤에 촬영 들어가겠습니다!”
먹고 있는 사이 멀리서 조감독의 촬영 신호가 들려왔다.
나만 들은 게 아닌지 애들의 먹는 속도 또한 급히 빨라졌다.
조금만이라고 했는데 다 한 컵씩 사이좋게 먹고 있네.
눈 녹듯 빠르게 떡볶이를 비우자 귀신같이 촬영시간이 다가왔다.
애들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다시 촬영에 임하러 갔다.
“쟤네 무슨 일 있었어?”
“떡볶이 먹더니 저러네요.”
“아, 간식?”
“네.”
남진수가 어느새 다가와 나에게 애들의 이상한 텐션 업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며 물어왔다.
나는 조금 찔리긴 했지만 성실하게 대답했다.
남진수도 다행히 크게 개의치 않아 하는 모습이었다.
“이번 대사는 신희진 씨가 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네!”
“그럼 가겠습니다.”
“레디! 액션!”
어느새 촬영 구도와 어떻게 찍을지 이야기가 끝났는지 바로 촬영에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매콤달콤한 게 매콤달콤 치킨이지!”
“컷! 일단 이걸로 오케이 하고 표정 한 두어 개만 더 찍어볼게요.”
“네!”
감독은 이번 장면은 본인이 생각한 그림이 빨리 나왔는지 대번에 오케이를 외쳤다. 그러고는 다른 표정의 컷도 마찬가지로 만족스러운 얼굴로 찍었다.
감독이 대번에 오케이 한 게 이해되는 게, 신희진은 정말 맛있게 먹는 표정이었기 때문이다. 연기라기보단 진짜 그대로 나타낸 것 같았다.
그 뒤로 순탄하게 촬영이 진행되었고 다음으로는 지금 있는 치킨집 배경으로 간단한 스냅샷을 찍어 남기고 이번 CF의 촬영이 끝나게 되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수고하셨어요.”
“고생하셨습니다!”
역시 촬영이 끝나자마자 여기저기 울리는 아름다운 소리다.
“감독님. 잘 부탁드립니다.”
“잘 나올 거예요. 다 잘하더라고요.”
남진수와 감독이 하하 웃으며 훈훈하게 덕담을 나누고 인사하고 헤어졌다.
“팀장님. 광고주님은요?”
“아까 쉬는 시간에 가셨어.”
“아하.”
“애들 데리고 와. 가자.”
“네.”
남진수가 광고주를 깜빡한 것 같아 언급했던 것이었는데 쉬는 시간에 잠깐 빠진 게 광고주 마중이었던 듯싶다.
이내 나는 애들을 챙겨 바깥으로 나와 차로 향했다.
“오늘 고생했고 앞으론 치킨 안 먹을 거지?”
“아뇨. 먹을 건데요.”
“재미있긴 했는데 생각보다 괴롭기도 했어요.”
단 한 번을 지려 하지 않는 서지영을 놔두고 박혜연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자. 오늘 고생했고. 조금 있다가 집구석 Live 모니터링만 하고 오늘 일정은 끝이야. 고생했어.”
“네!”
그러고 보니 오늘 일정 중에는 집구석 Live 모니터링도 있었다.
어떻게 나왔을까?
* * *
- …또한, 미니 버거 안에 들어 있는 싱싱한 채소와 담백하고 깔끔한 고기의 육즙이 일품이었습니다. 이를 감싸주는 빵도 퍼펙트! 마늘 바게트와 크림 파스타 소스의 궁합은 언제나 옳군요. 감탄했습니다.
CF가 다 끝나고 넓은 회의실에서 모두 모여 첫 예능인 집구석 Live 모니터링을 했다. 남진수는 열심히 일하는 중이었다. 이럴 땐 내가 막내인 점이 좋았다.
“저때 PD님 표현에 감탄했잖아.”
“나도. 그에 반해서 우리 매니저님은….”
TV를 보던 서지영이 한마디 하자 박혜연이 곧바로 그때의 상황을 떠올리며 섭섭함을 표시했다.
“야. 나도 할 말 있다. 저 표현 어떻게 이기냐? 다 내가 너희를 위해서 짧게 한 거야.”
“짧은 건. 문제 안 돼. 성의가 없었어.”
내가 변명하자 린이 나직하게 말했다.
“크흠!”
생각보다 조용히 말하는 린의 말이 가슴을 찔러왔다.
그렇게 집구석 Live 방송이 끝났다.
모니터링을 하다 보니 방송에 나오는 내 모습이 어색하기만 했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메인 아닌 메인이 되어 방송을 찍는 상황이 온 게 황당하기도 했다.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네.
“아 재미써따.”
“빨리 그 촬영 하고 싶다.”
유코가 만족감을 나타내며 회의실 테이블에 엎드렸다. 그리고 다가올 촬영을 기대하는 유미소의 한마디가 나를 움찔하게 했다.
“너는 뭐해? 촬영이 2일이라고 했죠?”
“어.”
“촬영 하루는 우리가 지방행사 잡혀 있는 날에 찍고. 하루는 오빠 집에서? 촬영하고 끝이에요?”
유미소의 말이 기폭제가 된 듯 이나라가 촬영에 대한 정보를 속속 물어오기 시작했다.
“일단은 그런 계획인데 이후 일정은 프리라고 해서….”
“어! 그럼 놀러 가요!”
이후 일정은 프리라고 말하자 신희진이 눈에 쌍심지를 켜며 말했다.
“그건 안 된대.”
“아, 왜요.”
“그건 프로그램 취지랑 안 맞잖아. 시도 때도 없이 놀려고 하네.”
“노는 게. 좋은데.”
내가 단호히 안 된다고 하자 신희진과 린은 풀이 죽어 칭얼댔다.
“그럼 장 보고 저녁 먹고 끝내요!”
“엉?”
“다 같이 장 보러 가서 지금 비어 있는 냉장고도 좀 채우고 다 같이 저녁 먹고 끝내면 되지 않을까요?”
“오! 그게 좋겠다!”
다른 애들도 축 처져 있다가 이나라가 장을 보자는 소리에 귀가 쫑긋쫑긋 올라가는 모습이 보였다.
“저녁은 오빠가 만들어준 요리 먹는 거로~”
“엥? 내가?”
그런데 상황이 묘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찬성요!”
“찬성!”
“반대 금지!”
“2일 차 컨셉이 나 고생한다고 우렁각시 해주는 게 아니었어?”
우후죽순 한마음으로 말하고 있었다. 이렇게 한마음으로 진행된 적은 드문데.
그리고 분명 2일 차 컨셉은 고생하는 매니저를 위한 7인의 우렁각시였다.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는 법이죠.”
“어, 음….”
기회를 포착하고 먹이를 탐한 하이에나처럼 박혜연이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꺄르륵 웃고 있는 애들 속에 혼자 웃고 있지 않은 나를 발견했다.
뭔가 말린 거 같은데.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