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도 다시 매니저!-49화 (49/200)

제49화. 체육 대회인가 만남의 장인가 (3)

“달려라. 달려!”

“어? 이거 잘하면…?”

와아아!

사람들의 함성이 오늘 듣던 것 중 가장 커졌다.

계주는 정말 모든 사람이 홀린 듯 볼 수 있는 체육 대회의 별미라 생각한다.

게다가 각본 없는 스토리가 자주 일어나기 때문에 더 흥미진진하다.

“오! 떨어졌다!”

가령 지금처럼 말이다.

남의 불행을 기뻐하면 안 되지만 어쩔 수 없다.

우리 앞에 가던 주자가 다음 주자에게 바통을 줄 때 바통을 떨어트려 우리가 치고 나가게 되었다.

“빨리! 더! 더!”

나보다 더 몰입하는 남진수를 보니 웃음이 나왔다.

나도 이내 경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서지영이 앞만 보고 열심히 뛰었다. 바로 앞에서 바통만 안 떨어트렸어도 지금 2위로 달렸을 텐데.

선두주자가 바통을 떨어트린 이후로 우리 애들의 독주였다.

서지영이 선두를 유지하면서 마지막 주자인 유미소에게로 바통이 넘어갔다.

“이대로면 우승할지도?”

“어어?”

“따라붙는다!”

남진수와 내가 기대감을 한껏 고조시키면서 계주를 보는데 승산이 있어 보였다.

바로 뒤 주자와 차이가 조금 났었다.

예전에는 바통을 떨구는 일이 없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때는 무난하게 체리베리가 우승했었다.

지금 경기는 우리가 앞서 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유미소가 열심히 달리고 있는데도 체리베리의 마지막 주자가 빠르게 유미소 뒤를 쫓아가고 있었다.

“좀 위험한데요?”

“아냐. 지금 속도면 우리가 1등으로 들어올 거 같다.”

체리베리의 마지막 주자가 정말 빠르게 뛰어서 심장이 조마조마했는데 남진수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는지 유미소가 1등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그 뒤를 이어 체리베리의 마지막 주자가 1초 차이로 들어왔다.

“오! 나이스!”

1등으로 들어간 걸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소리 질렀다.

정말 바통만 안 놓쳤어도 체리베리가 금메달을 따갔을 텐데.

전직 육상선수인지 전부 다 달리기가 빨랐다.

그래도 어찌 되었든 금메달은 우리 것이 되었다.

경기장 상황을 보니 유미소가 결승선을 통과하자마자 모든 멤버들이 유미소에게 달려 붙어 축하하고 있었다.

“이야, 그래도 메달 하나 따가네.”

“그러게요. 운이 너무 좋았네요.”

“우승권 주자가 바통 놓칠 거라고 상상도 못 했는데.”

금메달 하나라도 땄으니 그래도 몇 번 얼굴이라도 비추긴 할 것 같다.

이 영광을 바통을 놓친 체리베리에게 돌립니다.

응원하는 팀이 좋은 성적을 내는 걸 보는 게 가장 짜릿하다.

“우리도 이제 슬슬 정리하자.”

“네. 전 그럼 팬들한테 갔다 오겠습니다.”

계주를 끝으로 MC들이 나와서 아육대 마무리 진행을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녹화가 끝났는데도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정말 맙소사다.

* * *

“오늘 정말 고생들 하셨습니다.”

“고생하셨어요.”

팬들의 얼굴에 잔뜩 피로감이 올라와 있었다.

“중간에 가신 분들도 몇 계시네요.”

굿즈 수량을 정확하게 갖고 왔기 때문에 굿즈가 남는다는 건 중간 이탈자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너무 힘들기도 하고 지루하다 보니까….”

“그래도 이 정도면 이탈률 적은 편이에요.”

“나눠 드린 건 다 받으셨죠?”

“네.”

팬심이 아니었다면 새벽 6시부터 0시까지 있었을 리가 없다.

18시간 꼬박 앉아서 기다리며 응원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경기 사이사이 대기시간이 매우 길었기 때문에 응원 와준 팬들에겐 항상 감사한 마음뿐이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아닙니다. 애들 잘 봐주세요.”

“당연하죠.”

아마 여기서 갈 사람은 가고 마지막으로 애들 얼굴이라도 한 번 더 보려고 애들 퇴근길을 기다리는 팬들도 있을 거다.

바로 안 떠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발걸음을 옮겨 경기장 안으로 들어왔다.

웅성거림이 잦은 걸 보니 서로 인사하고 헤어지는 순서인 듯싶었다.

“…끝나고 언제 와?”

“아마도 다음 주면 올 거야.”

복도를 지나가는데 남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발걸음이 옮겨졌다.

“기다리고 있을게.”

“나도 빨리 가려고 노력할게.”

“응.”

오우. 이게 밀회의 현장인가.

진한 키스 소리까지 들리는 거 보면 정말 대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지 얼굴을 보고 싶었으나 위치상 내가 보게 되면 상대도 나를 보게 되는 위치라 그만뒀다.

들리는 소리에 감탄만 나왔다.

“늦었다. 화장실 간다고 나온 거라 가야 해.”

“나도.”

내 위치가 화장실과 가까운 위치였는데 둘이 내 쪽으로 올 기세여서 나는 바로 옆에 있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로 들어와 세면대에서 손을 씻고 있는데 화장실로 들어오는 인기척이 들렸다.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들어와서 나에게 인사하길래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인사한 사람을 봤더니 Bel.v의 리더인 한명수였다.

이렇게 티내고 다녔으니 걸릴 만했네.

자기들 딴에는 조심조심 했었다고 생각하겠지만 사랑 앞에서는 눈에 뵈는 게 없다는 말이 정말 맞는 말인 듯했다.

그렇게 한명수와 화장실에서 짧게 인사를 나누고 우리 애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어디 갔다 오셨어요?”

“팬들한테 갔다 왔어. 굿즈 드리려고.”

도착하자마자 이나라가 잠깐 사라졌던 나의 행방을 물었다.

“와, 중간중간 우리 팬들 보는데 눈물이 다 날 것 같더라.”

“그래도 너네가 팬서비스 열심히 해줘서 만족 하시는 것 같던데?”

팬 이야기를 하자 유미소는 초췌한 얼굴로 팬에 대해 이야기했다.

본인들도 엄청 힘들었는지 유미소의 말에 애들이 몸서리치며 공감했다.

“그럼 다행이구요.”

“말로만 들었던 장시간 녹화였는데 정말 장난 아니네요.”

“진이 다 빠져.”

“한 것도 업는데 너무 힘드러.”

유미소와 유코를 필두로 해서 멤버들이 하나둘 녹화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요. 중간에 누구 응원했어요?”

“어?”

서지영이 도끼눈을 뜨고 나에게 물어왔다.

“중간에 우리 말고 다른 그룹 응원하던데요.”

“아니야. 무슨 소리야.”

나는 찔리는 건 있었지만 오리발부터 내밀었다.

“어. 우리가 봤는데. 팀장님이랑 같이 딴 그룹 응원하는 거.”

“내가 다른 그룹을 왜 응원해. 너네만 봤지.”

내가 계속 아니라고 하자 박혜연도 같이 합세해 나를 몰아쳤다.

“마지막으로 물어볼게요. 누구예요?”

서지영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아냐. 증거 있어? 내가 아니라는데 왜 그래?”

“증거야 있죠.”

애들이 내게 핸드폰을 들이밀었다.

핸드폰 속에서는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는데 열심히 환호하는 나와 남진수가 보였다.

“음….”

“마지막으로 할 말은요?”

“으음.”

눈앞에서 영상이 증거로 재생되자 할 말이 없었다.

“사실 아무 생각 없이 계속 보기에는 너무 힘들어서 응원이라도 하면 괜찮아질까 싶어서 그랬지. 너희도 종종 다른 그룹 응원했잖아.”

내 말이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는지 애들이 움찔했다.

“좋아요. 한번 봐드렸어요.”

신희진이 기세등등하게 말했다.

애들 기가 너무 세졌다.

원래 이렇게까지 벅찬 애들이 아니었던 거 같은데.

“아무튼! 오늘 고생했다.”

구석에서 가만히 비를 피하던 남진수가 다가와 고생했다고 말했다.

저런 처세술을 배워야 하는데.

“금메달 축하하고. 그거 진짜 금이야?”

“아까 깨물어봤는데 아니던데요. 조금 벗겨졌어요.”

내가 금메달이 진짜 금인지, 여부를 묻자 박혜연이 대답해줬다.

“어? 언제. 깨물었어?”

“받자마자 바로.”

린이 의아한 목소리로 박혜연에게 물었다.

“진짜 금으로 해서 주겠냐?”

“그렇겠죠?”

남진수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애들에게 말했다.

“그래도 메달 하나 따가서 기쁘다. 히히.”

“반송 분량 확보도 좀 한 것 가타.”

박혜연이 금메달을 살펴보면서 기뻐했다.

유코는 그 와중에 방송 분량 걱정을 했는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 양궁만 잘했으면!”

“내가 대역 죄인이다. 대역 죄인이야.”

서지영의 말에 신희진이 털썩 주저앉아 통곡하는 척했다.

“아냐, 그럴 수 있지 뭐! 아쉬워서 그래. 아쉬워서!”

서지영이 장난기 다분한 목소리로 신희진을 갈궜다.

“내가 죄인이라고 했지!”

“아하하, 미안. 아~! 그만! 간지럽혀!”

신희진이 벌떡 일어나 서지영의 옆구리를 공격하면서 간지럽혔다.

서지영은 간지럽히는 거에 특히 약했다.

“금메달도 따고. 치킨 CF도 따고.”

“어? 저희 CF 들어왔어요?”

남진수의 말에 애들 눈빛이 싸악 바뀌었다.

추진 중이라고는 들었는데 성사가 된 모양이었다.

연예계의 불문율 중 하나는 들어온 CF는 사인하기 전까지 모르기 때문에 입 밖으로 내보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있다.

광고뿐만 아니라 괜히 설레발치다가 엎어진 CF나 드라마, 예능 등이 다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신 같지만, 설레발치면 정말 귀신같이 파토난다.

“치킨!”

“치킨이다!”

“조용, 조용. 시끄러워.”

세상 떠나갈 목소리로 치킨을 목 놓아 외치는 애들한테 남진수가 귀를 막으며 제지했다.

어디서 나오는 목소리야. 이거.

이미 피곤해서 짜낼 목소리도 없었을 텐데 CF가 좋은 건지 치킨이 좋은 건지.

“어디 치킨이에요?”

“매콤달콤 치킨.”

“아~ 거기도 맛있죠. 제 최애 치킨 3순위 안에 들어요!”

입술에 침 바르면서 남진수에게 치킨 브랜드를 묻길래 남진수가 대답해줬다.

스타즈 자타공인 치킨 전문가 신희진이 브랜드명을 듣자마자 침을 삼키며 말했다.

“희진 언니가 치킨박사예요. 눈감고도 어디 브랜드인지 맞추던데.”

“나 그때 소름 돋았어.”

“진짜 맞출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서지영과 박혜연이 신희진의 치킨학개론에 감탄하며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정말 먹을 거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신희진이라는 생각을 했다.

신희진은 예전보다도 더 독특하다고 느껴졌다.

“자, 얼른 집에 가자. 늦었어.”

“네!”

남진수가 애들을 얼른 차에 태웠다.

나도 차에 타 운전대를 잡았다.

“오늘 하루 정말 고생 많았고, 나가면서 팬들 있으면 손이라도 한번 흔들어줘.”

“네!”

시동을 걸고 슬금슬금 움직여 나갔다.

나가는 길에는 우리 말고도 다른 아이돌 팬들도 상당수 있었다.

그래도 각 팬덤별로 플래카드를 들고 있어서 우리 팬인지 아닌지는 찾기가 쉬웠다.

“감사합니다!”

“고생하셨어요!”

“안녕!”

백미러로 보니 애들이 열심히 창가에서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었다.

정말 길고도 긴 하루가 끝나니 감개무량이었다.

그렇게 체육관에서부터 나오니 애들도 기운이 빠졌는지 가만히 눈 감고 있었다.

평소라면 시끌벅적한 차 안이었겠지만 피곤하면 정말 쥐죽은 듯 조용해진다.

그렇게 침묵 속에서 애들을 숙소에 바래다주고 남진수와 같이 회사에 도착했다.

“오늘 고생했고. 내일은 두 시까지 회사 와.”

“네. 알겠습니다.”

“내일 보자.”

“네. 들어가세요.”

서로 피곤한 목소리로 오늘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현재 시각 2시 27분. 참담한 시간이다.

근처에서 택시를 잡아 최근에 구했던 내 집으로 향했다.

* * *

“좋은 오후입니다….”

피로가 가득 차오른 몸을 이끌고 회사에 출근했다.

사무실에는 사람이 몇 없었다. 기껏해야 이진성 실장 정도뿐.

어제 결국, 끝나고 집에 들어가니 새벽 네 시였다.

지금은 어제 있었던 아육대 후기 모니터링을 할 차례다.

너무 피곤해서 집 들어가자마자 뻗었기 때문에 지금에서야 반응 모니터링을 하게 됐다.

다행히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도시락이라던가, 애들의 팬서비스라던가 대체적으로 만족스러운 평이었다.

다행이다.

안도의 한숨이 내쉬어졌다.

피곤함에 절어 있는 얼굴로 업무를 보고 있는데 내 곁으로 이진성 실장이 다가왔다.

“이야, 섭외가 왔네.”

“어디에서요?”

이진성 실장이 나를 보고 기분 나쁘게 웃었다.

뭐지?

“전화 바꿔줄 테니까 네가 받아봐.”

“네? 제가요?”

이진성 실장이 나를 보고 계속 실실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내가 왜 전화 받으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여보세요. 스타즈 김현진 매니저입니다.”

- 안녕하세요? 매니저 관찰 예능 ‘너는 뭐해?’의 작가 이지선입니다. 김현진 매니저님 섭외하려고 연락 드렸습니다.

나를? 갑자기? 왜?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 얼떨떨하기만 했다.

얼빠진 내 표정을 보고 앞에 있던 이진성 실장이 낄낄 웃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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