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도 다시 매니저!-48화 (48/200)

제48화. 체육 대회인가 만남의 장인가 (2)

“야, 현진아. 티 나지 않냐?”

“네? 어디요?”

“저기. 우리 애들 뒤에 서로 눈빛 교환하는 애들.”

“어…. 저기 구석요?”

얌전히 앉아서 밥 먹고 있는데 남진수가 말을 걸어왔다.

남진수가 말한 곳을 보니 확실히 묘한 기류가 흐르는 게 보였다.

확실히 여기가 합법적인 만남의 장이라 그런지 지금 보는 둘 외에도 조금씩 티가 났다.

되게 신기하네.

“팬들도 이런 거 다 알까요?”

“쉽게 알긴 힘들지. 그래도 눈치 좋은 사람이면 뭔가 있나? 싶을걸.”

“풋풋하네요.”

“여기에서 냄새 맡고 뒤 캐서 스캔들 터트리는 기자들도 많아.”

그러면 언제지? 3월인가 4월에 터진 열애설도 여기서 맡은 걸까?

우리는 열애설로 엮인 적은 없었지만, PM 기획사랑 한울 기획사의 양대 그룹 둘이 얽힌 열애설이 터졌었다.

PM은 본인들 대표 그룹인 맥시멈그룹의 리더였고 한울의 대표 걸그룹인 티어즈의 막내와.

이건 정말 크게 터졌었다.

양대 기획사의 얼굴마담이라고 할 수 있는 핵심 그룹 두 멤버가 걸렸기 때문이다.

두 기획사가 푸시를 그렇게 해준 그룹이었는데 소문만 무성한 열애설이 아닌 사진까지 곁들인 열애설이 터져 그 이후로 쭉 하향곡선을 꾸준하게 탔던 거로 알고 있다.

“아이돌은 연애하면 정말 안 되는 걸까…요?”

생각만 해야 하는 말이 필터링이 안 되고 입 밖으로 나왔다.

“음… 현진아. 예를 하나 들어줄게. 아이돌은 말이야. 그래, 음식을 예로 들어보자. 너가 초밥집에 갔어. 근데 요리사가 방금 똥 싸고 똥 닦고 왔다고 말을 하네? 그럼 넌 무슨 기분이 들어?”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말에 남진수가 장황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무래도 조금 불쾌하겠죠. 초밥집이면 손으로 만드니까요. 아, 이걸 먹어야 하나?”

내가 맞장구쳐주자 남진수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래. 그래서 요리사 손도 씻었고 청결도 괜찮다고 이야기하네? 어때?”

“그래도 좀 꺼릴 것 같아요.”

“아이돌도 똑같아.”

“네?”

내가 반사적으로 반문을 했지만 남진수가 말하는 요지를 대충 알 것 같다.

“아이돌의 연애도 같은 거야. 모를 때는 상관없는데 알면 기대감이라던지 무언가 확 죽게 되는 거지.”

“아….”

왠지 공감 가는 말이었다.

아이돌에 과몰입하지 않으면 팬이 될 수가 없다.

근데 과몰입한 대상이 누구와 연애를 한다는 걸 알게 되면 계속해서 몰입하며 좋아할 수 있을까?

“그래서 아이돌은 연애하면 안 돼. 아니, 해도 되는데 걸리면 안 돼.”

“…….”

“무수히 많은 기획사가 괜히 숨기고 감추는 게 아니야. 연애를 공개한 시점부터 팬의 유입도 사라지고 팬들이 떨어져 나가는 게 보이거든. 그나마 연차 좀 쌓이면 그게 좀 덜하고.”

“그런가요… 팀장님 밥은 어떠세요?”

괜히 내가 필터링 안 거치고 말을 내뱉는 바람에 분위기가 요상해졌다.

화제 전환을 위해 도시락 이야기를 꺼냈다.

“이거 괜찮은데? 팬들은 뭐라 하는지 모르겠네. 난 입맛에 맞는 것 같아.”

다행히 남진수는 별 감흥이 없는 듯했다.

“팬들도 잘 먹는 것 같은데요? 불평은 여기서 봐서는 모르겠고. 한번 커뮤니티 확인해 볼게요.”

“그래.”

멀리서 봤을 때는 불평불만 없이 잘 먹는 것처럼 보였는데 또 모르지.

[이번 아육대는 버틸 만한 것 같다.]

가장 댓글이 많은 글을 찾아 들어가 봤다.

[새벽부터 나와서 이게 뭐하는 짓인가 했는데 애들 얼굴 보니 일단 1차적으로 힐링 됐고 도시락이 하도 거지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걱정했는데 준 도시락도 괜찮다. 컵밥을 주길래 싸구려 주나 했는데 인터넷에 찾아보니까 프리미엄 컵밥 집이더라.]

└ 밥 개맛있음; 더 없냐니까 수량 맞춘 거라고 없다더라.

└ 난 일단 따뜻해서 좋았음.

└ 2222

도시락도 생각보다 호평인 것 같았다.

다른 기획사들이 가져온 도시락 보니 우리만큼의 특색은 없었다.

그냥 다 비슷비슷했다.

“팬들 반응도 괜찮은 것 같아요.”

“다행이네. 작년에 어떤 기획사는 도시락 때문에 팬들이랑 크게 싸웠다는데.”

그게 올해는 우리가 될 뻔했습죠.

“저녁에는 또 다른 메뉴니까 괜찮지 않을까 싶어요.”

“나도 그냥 일반적인 것보단 이게 더 나은 것 같아. 일단 찬밥이 아니란 거에 별 네 개 주고 시작한다.”

“제가 조금 신경 써달라고 이야기 드렸었거든요.”

좋아 좋아. 만족스러워.

“나라가 그래도 연생 기간이 길어서 그런지 아는 사람도 많긴 한가 보네.”

남진수의 말에 우리 애들이 있는 곳을 보니 이나라가 컵밥에서 한 숟가락을 퍼서 주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나라한테서 얻어먹은 친구도 이내 자신의 도시락에서 반찬 하나를 이나라한테 먹여주었다.

“음방 뛸 때 보니 완전 마당발이던데요.”

“8년이면… 이 바닥이 은근 좁으니까.”

이나라에 대해 이야기한 뒤로 남진수도 할 말이 떨어졌는지 말이 없었다.

서로 아무 이야기 없이 앉아 있는데 멀리서 스태프가 촬영 재개 신호를 알려왔다.

“곧 시작하려나 본데요?”

“그러네. 오후에는 양궁 예선이랑 또 뭐 있지?”

“달리기요.”

체감은 저녁 먹은 것 같은데 점심이라니. 생각보다 꽤 힘든걸.

* * *

“언니 자신 있나!”

박혜연이 유코에게 말했다.

“이 정도 거리면… 머….”

“좋아. 좋아. 그럼 린이랑 희진 언니만 잘 쏘면 되겠네.”

유코는 자신감 있게 대답하며 몸을 풀었고 그런 유코의 말에 박혜연이 쉽게 긍정했다.

“화이팅!”

“예!”

유코와 린 신희진 셋이 한데 모여 전의를 다지고 체육관 내에 설치된 양궁장으로 향했다.

“예선은 뚫어야 TV 나와! 잘해!”

이나라가 양궁장으로 가는 애들의 뒷모습을 보며 응원했다.

양궁장에 도착한 세 명에게 심판이 나와 룰을 설명해줬다.

“신호 울리고 20초 안에 쏘시면 되고요. 한 사람당 3발 마지막은 제일 잘하는 사람이 나와서 쏘시면 됩니다.”

“네!”

심판은 스타즈 인원에게 룰을 설명해 준 뒤에 뒤이어 나온 티어즈에게 설명하러 갔다.

“그럼 유코가 마지막에 쏘는 거로 하고. 내가 먼저 쏘고 그다음에 린, 유코순으로 쏘자.”

“알았어.”

“목표는!”

“금메달!”

서로 으쌰으쌰 한 뒤 신희진은 양궁을 들고 본인의 과녁 라인에 섰다.

곧이어 티어즈 측에서도 한 명이 나와 과녁 앞에 서서 기다렸다.

“시작하겠습니다.”

“선공은 스타즈부터.”

심판의 말에 양궁 과녁을 바라보며 대기하고 있던 두 명의 얼굴이 긴장으로 굳어졌다.

삐-

신호음과 함께 이내 신희진이 양궁을 들어 과녁에 조준했다.

* * *

“제발. 제발. 제발.”

“아!”

유코가 9점을 맞춘 모습을 보고 나와 남진수가 동시에 탄식했다.

“흐아… 아쉽네요.”

“그러게. 10점 맞췄으면 동점이었는데.”

“그래도 스토리 있는 구성이니까 예선이라도 얼굴 비춰주지 않을까요? 아슬아슬하잖아요.”

나름 선방했는데 예선 탈락이라 너무 아쉬웠다.

“그것보다 그냥 본선에 올라가서 깔끔하게 나오는 게 낫지. 아쉽네. 희진이가 당황해서 6점만 안 쐈어도….”

“그래도 침착하게 다시 주워서 쐈으니까 이런 스토리라도 나오죠. 그냥 0점이었으면 이렇게 쫄깃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신희진이 두 번째 화살을 쏠 때 화살이 걸려서 흐름을 놓친 게 너무 컸다.

그 뒤로 다 잘 쏘기는 했으나 상대편인 티어즈 애들이 너무 잘 쐈다.

저번 아육대 금메달이라더니.

“아쉽긴 하네. 본인은 더 아쉬울 거고.”

“유코가 연달아 3번 10점 쏘길래 마지막도 10점이 나오나 했는데….”

다시 생각해도 너무 아쉬웠다.

“우리 애들 나오니까 그래도 시간은 빨리 가네.”

“응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확실히 시간 가는 줄 모르겠더라고요.”

“팬들도 너무 아쉬워하네.”

“아쉽긴 한데 첫 출전이니까요. 계주는 땄으면 좋겠네요.”

이러면 다음 금메달은 계주밖에 없었다. 출전 종목은 계주랑 양궁 두 종목뿐이었으니까.

“다음 아육대에서는 린이랑 유코가 워낙 잘 쏴서 금메달 딸 수 있을 것 같은데?”

“팀장님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유코가 어릴 때 양궁 했다고 하니까. 약간 반칙이죠.”

“양궁이야? 궁도야?”

“저도 그건 잘 모르겠어요. 그냥 쏴봤다고 하던데요.”

신년 맞이해서 양궁카페 갔을 때 너무 잘 쏘길래 물어봤더니 활 쏴본 적이 있다고 했었다.

그래서 그런지 회사에서 코치를 붙여줬을 때도 쉽게 흡수한 것 같았다.

“이제 계속 기다리는 일뿐이네.”

“그래도 양궁은 재밌네요. 시간 빨리 가는 것 같아요.”

스타즈 애들의 양궁이 끝난 뒤 바로 다음 조 예선이 시작했는데 벌써 반 가까이 지났다.

“얘네 만났으면 이겼겠는데?”

“대진도 운이 많이 작용하죠.”

남진수와 실없이 이야기하면서 양궁 예선을 보다 보니 어느새 달리기 차례가 되었다.

오전보다는 체감상 시간이 확실히 빨리 지나간 것 같다.

아이돌 애들이 하나둘 달리기를 하러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중에 우리 애들도 있었는데 계주 출전 인원 중 가장 에이스인 이나라와 서지영이 나갔다.

계주 인원은 유미소, 박혜연, 이나라, 서지영이었는데 예전에는 신희진이 양궁과 계주 둘 다 출전했다면 이번에는 양궁에만 나가고 계주에는 빠졌다.

어쩌다 보니 양궁 세 명, 계주 네 명으로 딱 인원에 맞게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탕!

육상 경기할 때 매번 들리던 고유의 출발신호와 함께 달리기를 준비했던 아이돌들이 일제히 뛰기 시작했다.

“오, 제법 빠른 친구들도 보이네요.”

“우리 애들은 안 되겠는데?”

“개인전은 힘들고 계주를 노려봐야….”

“글쎄, 되려나?”

달리기는 정말 금방금방 지나갔다. 뛰고 바로 주자 준비시키고 바로바로 했다.

탕!

그리고 남진수의 부정적인 반응도 이해가 갔다.

마침 우리 애들 차례가 되어 보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빠르지는 않았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빠른 편이니까 계주는 다르지 않을까?

“달리기도 예선 탈락이고. 이제 남은 건 계주뿐이네.”

“그럼 지금부터 계속 계주까지 기다려야 하는 거죠?”

“어.”

이게 팬들이라면 애들 노는 모습 보면서 덕질이라도 할 텐데 나랑 남진수는 일이라 너무 죽을 맛이었다.

이 기회에 다른 아이돌 덕질이라도 할까?

“나 잠깐 회사 갔다가 저녁 전에 올 테니까 이상 있으면 연락해.”

왠지 오전에도 본 장면인 것 같다.

“네. 알겠습니다.”

나는 오늘도 묵묵히 자리를 지킨다.

* * *

저녁에도 맛있는 컵밥을 먹고 다른 아이돌들의 준결승과 결승을 보면서 계주를 기다렸다.

모든 체육 대회의 엔딩은 항상 계주이듯 아육대 또한 계주가 마지막이다.

“드디어 계주하네.”

“네, 드디어….”

“이번에도 정말 오래 찍는구나.”

오후에 도망갔던 남진수가 저녁 먹을 때 귀신같이 와서 나랑 같이 쭉 시간을 함께했다.

“벌써 다음 날이 되었네요.”

“계주 하나만 후딱 하고 정리하고 가야지.”

예전에도 겪었던 장시간 녹화였지만 다시 겪어도 정말 지옥이다.

오랫동안 녹화를 하다 보니 팬들도 지치고 아이돌들도 지친 게 보였다.

그렇지만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이유는 녹화 시간만큼 대기 시간도 길었는데 실시간으로 눈 맞는 현장을 보니까 이래서 동물의 왕국이라 하는구나 싶었다.

물론 프로그램 자체에서 주는 재미도 있었으나 이런 요소가 나를 그나마 버티게 해주었다.

“팀장님, 그럼 내일 스케줄은 일단 없는 건가요?”

“일단은?”

잠깐 기억을 더듬어본 남진수가 이어서 말했다.

“일단 녹화 끝나고 정리하고 들어가면 새벽 세 시쯤 될 테니까. 너도 내일은 점심 지나서 출근해. 애들도 좀 쉬다가 오후에 개인레슨 일정일 거야.”

“알겠습니다.”

촬영 다음 날 스케줄이 없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준비가 다 된 것 같은데요?”

“그러네. 우리 계주 출전 인원 중에 혜연이가 제일 느리지?”

“네.”

애들이 나름 자기들끼리 전략을 세워 제일 느린 사람을 앞에 배치해둔 것 같았다.

탕!

출발 신호에 맞춰 첫 선두주자로 나온 박혜연이 달리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