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도 다시 매니저!-47화 (47/200)

제47화. 체육 대회인가 만남의 장인가 (1)

“도착하기 전까진 더 자.”

“…….”

내가 애들에게 잠을 자라고 이야기했지만, 공허한 메아리처럼 답을 들을 수 없었다.

애들이 이미 뻗어 있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일명 아이돌 체육 대회가 있는 날이라 급히 애들을 새벽부터 픽업해 데려가고 있다.

아육대는 보통 이른 아침부터 시작해 밤늦게 끝이 난다.

아무래도 참여하는 인원도 많고 종목도 많다 보니 방송국에서는 녹화를 하루 안에 끝내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정말 이른 아침부터 시작했고 끝나는 시간도 다음 날로 넘어가는 편이라고 한다.

이렇게 장기간 녹화를 하다 보니 항상 잡음이 끊이질 않는다.

왜냐하면, 프로그램 참가자뿐만 아니라 이를 응원해주는 팬들도 새벽에 집합해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나오는 말은 팬과 아이돌을 볼모로 잡아 녹화한다는 평가가 많다.

“…….”

“뭐라고?”

“1등…. 1등….”

나를 찾는 줄 알고 백미러를 통해 상황을 보며 물었으나 잠꼬대였던 듯싶다.

이나라가 눈을 감은 채 중얼거리는 모습을 보니 뭔가 짠해 보였다.

어디에서 1등을 하는 걸까?

지금 가는 체육 대회에서일까 아니면 음악방송일까.

어찌 되었든 잠잘 때조차 1등을 찾는 모습을 보니 대중들에게 평가받는 직업이란 게 얼마나 부담감이 큰지 다시금 와닿았다.

괜히 왕관을 쓴 자 그 무게를 견뎌라. 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복잡 미묘한 기분으로 조심스럽게 운전했다.

* * *

“흐암.”

“지금 몇 시예요?”

“지금… 다섯 시 조금 안 되네.”

“코디 언니들은 언제 와요?”

“팀장님이랑 같이 올걸. 곧 오실 듯?”

이나라가 시간을 물어보면서 곧 올 스태프들의 행방을 물어왔다.

이나라가 말하기 무섭게 멀리서 회사 차량으로 보이는 차가 우리한테 오는 게 보였다.

번호판이 조금 생소했는데 우리 회사 차량이 맞는 듯하다.

그 차량이 내가 주차한 차 옆에 섰고 안에서 스타일리스트와 남진수가 같이 내렸다.

“안녕하세요!”

“안녕.”

남진수를 보고 스타즈 애들이 한 번에 인사하는데 소리가 크게 울려 다른 사람이 우릴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그 시선은 도착한 다른 회사 소속 아이돌이었는데, 이내 우리에게 관심을 끄고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이 내 눈에 보였다.

어느 회사나 지금 시간은 다 똑같이 바쁘다.

“오셨어요?”

“어. 비슷하게 왔네. 이럴 시간 없다. 빨리 메이크업 하자. 일곱 시 시작이야.”

“네.”

남진수가 그렇게 이야기하자 스타일리스트들과 스타즈 애들이 빠르게 안으로 들어갔다.

시간이 정해져 있다 보니까 몸과 마음 둘 다 급해진 듯싶었다.

그렇게 갑자기 우르르 빠져나가는 인원들을 바라보며 나와 남진수 둘만 남았다.

“현진아. 차 안에 간단하게 먹을 샐러드 있거든? 그거 좀 꺼내오고. 오늘 주문한다던 도시락 업체에 연락은 했어?”

“네. 어제 연락드렸습니다. 있다가 한 아홉 시쯤에 다시 한번 연락 드려볼게요.”

남진수가 일전에 나누었던 도시락 업체 건에 대해서 나에게 물어왔다.

다행히도 도시락 업체는 내가 선정한 업체로 하게 되었다.

도시락은 거기서 거기이기도 했고 탐사 갔다가 왔다는 나의 말에 쉽게 허가가 났다.

아마 내가 해온 것들이 있으니 쉽게 믿어주었던 것 같다.

“수량은 좀 넉넉하게 했지? 괜히 모자라면 골치 아프다.”

“네. 열 개 정도 더 시켰어요.”

“그래. 조금 있다가 팬들 올 때 가서 정리 한번 하고 오고.”

남진수가 골똘히 생각하면서 오늘 할 일과 문제점을 짚어주면서 일의 방향을 알려줬다.

어차피 스케줄과 녹화가 장시간 이루어지기 때문에 남진수가 말한 사항 외에는 크게 터치할 부분이 딱히 없다.

“네. 근데 팀장님 혹시 팬 매니저는 따로 안 뽑으시나요?”

“너가 맡아서 아직까진 잘하고 있길래 회사에서는 딱히 필요성 못 느끼는 것 같던데. 나도 그래서 건의 안 했고. 어차피 1년이기도 하잖아?”

하도 팬 매니저를 안 뽑길래 이 기회에 이야기를 해봤더니 돌아온 말은 나의 마음에 비수를 찌르는 대답이었다.

이와 같은 상황을 군대에서도 겪었던 것 같은데….

일 잘하면 오히려 더 시킨다는 건 어딜 가나 공통사항인 것 같다.

예전과 다르게 내가 다 처리하자 회사나 남진수나 팬 매니저의 확보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은 듯했다.

“아… 네….”

“지금까지 잘 해왔으니까 뭐. 힘들면 말하고.”

남진수는 떨떠름한 내 대답에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해줬다.

위로는 전혀 안 됐지만.

예전에는 그래도 이맘때쯤 팬 매니저를 구해서 팬 관리는 그 사람이 했었는데….

이번에는 뭘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이러면 내가 그 사람 일자리를 뺏은 게 되는 건가?

미래를 확실히 알고 있다고는 하나 이렇게 조금씩 변화하는 게 생각보다 소름 끼치게 무서웠다.

그리고 이럴 때마다 항상 드는 생각은 내가 바꾸는 미래가 정당한가? 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또 모르는 거다. 예전에 성공했다고 그대로 흘러간다는 보장은 없다.

물론 종종 빼앗는 느낌도 들지만, 능력이 되지 않으면 뺏을 수도 없다.

“안 와?”

“네! 갑니다!”

“야, 샐러드!”

“아, 챙겨서 갈게요!”

그래서 내린 결론은 ‘내 주위 사람만 생각하자.’이다.

그게 맞는 거다.

머리 아프게 다른 사람도 생각하면 될 것도 안 된다.

나는 생각을 떨쳐내며 남진수가 타고 온 차량에서 샐러드 도시락 뭉텅이를 들고 급히 뛰어갔다.

* * *

“팀장님! 근데 여기에서 그렇게 눈이 잘 맞아요?”

메이크업과 의상 체크를 다하고 시간이 조금 남았다.

그 시간에 갑자기 서지영이 이상한 질문을 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연애하는 거 안 말린다. 오히려 막으면 막을수록 더 하고 싶어지니까. 단, 연애하는 거 걸리면 어떻게 되는지는 알지? 알아서 처신하자.”

“저희 모두 연애 생각은 없는데 궁금해서요….”

남진수는 서지영의 질문에 바로 어제 이야기했던 내용을 똑같이 애들에게 말해줬다.

아이돌에게 연애는 정말 크나큰 이슈다.

그것도 신인이면 더욱이.

“연애를 연애 생각난다고 연애하냐? 눈 맞으면 순식간이야.”

“여기서 그렇게 잘 만나요?”

이번엔 유미소가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물어왔다.

“아무래도 같은 공간에서 오래 같이 있으니까. 촬영할 때는 팬들이나 남들 눈 의식해서 별다른 썸씽이 없는데 촬영 끝나고 팬들 나가고 우리끼리 있을 때 종종 연락처 교환하고 가더라.”

“와….”

“괜히 여기가 만남의 장이라고 하는 게 아냐. 방송에서도 폭로전 나오면 아육대 이야기 많이 하지? 여기에서 눈 맞았다고.”

스타즈 애들은 순진무구한 얼굴로 남진수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지금 곰곰이 생각해보면 유독 티 나는 애들이 몇몇 있었다.

그때 당시에는 나도 잘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티가 났다.

“현진이 너도 잘 보면 그런 낌새가 있는 애들이 몇몇 보일 거야. 걔네 보면 의외로 재밌다?”

“재미요?”

“자기들은 남들 모르게 한다고 하는데 보면 티가 나. 나는 항상 생각하는 게 왜 티를 내고 싶어 하는지 모르겠다.”

남진수는 자신이 보았던 광경을 떠올리며 이야기하는지 실실 웃으면서 어이없어 했다.

“걔네 입장에서는 뭐 금지된 사랑? 이런 거 하는 느낌 아닐까요. 회사도 멤버도 웬만하면 안 하는 게 낫다고 이야기하니까요.”

“그럴 수 있지. 근데 아이돌이라는 게… 아니다. 이건 나중에 이야기하자.”

“네.”

남진수가 이야기하다 말고 곁에 있는 애들을 의식해서 말을 끊었는데 나는 무얼 말하려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TV에 나오는 모든 연예인은 상품이다.

배우, 아나운서, 가수 등등.

그리고 이를 소비하는 사람들은 대중인 거고.

아이돌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다른 연예인들과는 달리 아이돌은 팬덤에 의한 소비가 너무 극심해지다 보니까 연애에 관해서는 더욱더 조심하는 분위기다.

그 이유는 예전보다 대중성으로 인한 수익 창출보다 팬덤에 의존하는 수익 창출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창 성장하는 신인이나 2~3년 차 그룹들은 몹시 조심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대중들도 많이 관대해진 편이기도 했다.

“녹화하기 전에 오늘 응원 와준 팬 상황 어떤가 체크하고 와.”

“네, 알겠습니다.”

* * *

“마지막으로 김기춘 씨!”

“네.”

“명단에 있는 사람은 다 왔습니다. 입장은 몇 시인가요?”

“입장은 일곱 시부터 하시면 되고요. 안에서 카메라 촬영이라던지 너무 큰 목소리는 지양해 주세요. 녹화 시작하면 못 나가는 건 아시죠?”

팬카페 스태프가 대표로 나에게 궁금한 사항을 물어오기 시작했다.

“네, 공지로 미리 알렸습니다.”

“네, 그 정도만 지켜주시면 될 것 같아요.”

“혹시 오늘은 다른 굿즈는 안 주시나요?”

굿즈 이야기가 나오자 팬들도 이야기를 멈추고 내 입을 주목하기 시작한 게 느껴졌다.

“공방 참여 때 드리는 공식 포토 카드랑, 멤버 개인별 폴라로이드 사진 말고는 없을 것 같아요. 응원도 해주시고 고생하시는 거 알아서 오늘은 인원만큼 끝날 때 드리는 거로 이야기했습니다.”

오오

내가 오늘은 확률이 아니라 전원 증정이라니까 웅성거림이 커졌다.

우리도 해줄 수 있는 최대치가 이 정도다.

오늘 하루 식비만 300만 원 정도 나간다. 기타 비용까지 합하면 더 되고.

음악 방송할 때보다는 적게 나가는 편이지만, 그래도 나가는 돈은 나가는 돈인 거다.

“방송국 측 안내 잘 따라주시고 혹시 문의할 사항 있으시면 안에 저도 계속 있으니까 문의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애들 혹시 어떤 종목 나가는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음… 양궁이랑 계주요.”

와!

“신인이라 계주 정도만 예상했는데… 다행이네요. 감사합니다.”

신인이라 별로 안 나올 것 같아 걱정했는지 팬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몰랐는데 남진수가 우리 회사로는 단독으로 애들이 나가게 되어 양궁을 따냈다고 했었다.

그게 아니면 계주만 나갔을 거라고.

그럴 거면 볼링 명단은 왜 받아간 거야?

“아니에요. 그럼 오늘 하루 재미있게 보내세요.”

“네. 푸우 매니저님도 고생하세요.”

“네? 컥, 콜록 콜록.”

예상치 못한 공격에 사레가 걸렸다.

이제는 내 이름보다는 별명으로 불리는 횟수가 더 많은 것 같다.

팬들도 그런 내 반응을 즐기는 것 같았고.

예전에는 이렇게 대놓고 언급은 안 했던 것 같은데.

“큼, 아무튼 고생하세요. 가보겠습니다.”

“네, 고생하세요.”

뒤돌아 가는데 웅성거리는 소리가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괜히 찝찝했다.

* * *

“본격적으로 대회를 시작하겠습니다!”

MC의 멘트로 대회 시작을 알렸다.

팬들과 만남 이후로 크게 이슈되는 사건은 없었다.

체육 대회 진행 방식은 일반적인 학교 체육 대회랑 비슷하게 흘러간다.

큐시트를 보아하니 우리 애들은 오후에나 나와 오전에는 이렇다 할 게 없었다.

오전에는 풋살 예선과 리듬체조 예선하고 끝나고 점심 먹고 양궁 예선과 달리기 예선이 이루어진다.

저녁 먹고 나서는 준결승과 결승이 이루어지고.

볼링은 장소가 따로 마련된 곳에서 한다는데 우리는 어차피 안 하니까 상관없다.

“현진아. 난 차에 가서 좀 잘 테니까 점심쯤 되면 깨워줘.”

“네.”

남진수는 모니터링을 나한테 맡기고 사라졌다.

나도 하는 거 없이 그냥 멍하니 있다 보니 오전이 훌쩍 지나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다.

* * *

“안녕하세요. 사장님.”

“안녕하세요! 시간 내에 도착했네요.”

컵밥집 사장님은 오늘도 쾌활했다.

“이따 저녁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어유, 물론이죠. 근데 혹시 이거 혼자 들고 가시나요?”

“아뇨, 곧 도와줄 분 올 거예요.”

“아하, 알겠습니다.”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스타렉스 문을 연 순간 확 풍겨오는 냄새에 저절로 침이 삼켜지며 아찔해졌다.

이른 새벽부터 지금까지 공복이라 몹시도 배가 고팠는데 따끈따끈한 밥 냄새가 올라오니 정신을 못 차리겠다.

“냄새 좋죠?”

“네. 얼른 먹고 싶네요.”

사장님이 한껏 자부심 가득한 목소리와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나는 계속 입맛을 다시며 향을 음미했다.

이번에는 도시락으로 탈 날 일은 없을 것 같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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