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도 다시 매니저!-43화 (43/200)

제43화. 다시 쓰는 새로운 역사 (4)

“큐시트 바뀐 거 참고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무대에 도착하니 스태프가 바뀐 큐시트를 남진수에게 주었다.

“큐시트 바뀌었어요?”

“음, 우리는 상관없고 어비스랑 클린힛 둘만 순서가 바뀌었어.”

“왜요?”

곁에 있던 이나라가 남진수에게 큐시트 정보를 물어왔다.

“뭐 바뀐 건 이유가 있겠지. 얼른 무대 준비나 해.”

“앞 팀이 끝나야 올라가죠.”

“요즘 나라가 지영이한테 많이 물들었어. 따박따박 말대답하고. 초반에만 해도 이러지 않았는데….”

“사람은 바뀌기 마련이죠.”

이나라가 양팔을 가슴께에 팔짱을 끼며 자신 있게 말했다.

서지영과 같이 많이 붙어 다니더니 확실히 서지영의 성격도 닮아 갔다.

예전에는 저렇게 능수능란하게 대처하지는 못했다.

거의 예스맨에 가까웠다.

“무대 끝났다. 올라가.”

“네.”

앞 팀이 리허설을 끝내고 내려왔다. 애들은 장난스러운 분위기는 잠시 접어두고 다시 프로 레벨로 돌아왔다.

“애들이 슬슬 저희가 편해지기 시작하나 보네요.”

“어후, 편해지면 더 말 안 들을 텐데.”

“그래도 애들이 착해서 보기 좋은데요. 귀엽지 않아요?”

“딸 일곱 명 키우면 이런 기분일걸?”

나는 그래도 서먹서먹하게 지내는 것보다는 좋다고 생각한다.

남진수가 푸념하는 걸 보니 남진수는 아닌 듯했지만.

“하하, 그런가요. 그럴 거 같기도 해요. 딸을 키워 보지는 않았지만요. 근데 순서는 결국 바뀌게 됐네요.”

“애초에 우리만 오케이 하면 됐던 문제였으니까. 뭐 바뀐 순서에 대한 이득은 거기서 알아서 잘 조율해서 남겨 먹겠지.”

“난리 안 날까요?”

“우린 강 건너 불구경이지. 팬덤끼리 불붙을 거 같기도 하네. 근데 팬들이야 속사정까지 어떻게 알겠어.”

내가 어비스의 일을 언급하자 남진수도 자신의 의견을 같이 말했다.

“그렇긴 하죠. 근데 정말 대형기획사에서 우리 견제하는 걸까요?”

“아마 맞을걸. 괜히 중소기획사들이 대형기획사 눈치 보면서 컴백이랑 데뷔 날짜 잡는 게 아니야. 걔네랑 붙어서 치킨 게임 하면 결국 손해는 중소기획사가 더 타격 입거든. 체급이 달라, 체급이.”

“우리 애들도 확실히 데뷔 때 그렇게 안 나왔으면 팬 유입이 더 불붙었을 텐데 좀 아쉽긴 했어요.”

이번에 정말 아쉬웠다.

그렇게 연달아 대형그룹이 컴백만 안 했어도 데뷔 1주 만에 지상파 1위라는 쾌거를 볼 수 있었을 텐데.

“뭐 그네들 입장에서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파이를 뺏기는 느낌일 테니까. 한편으로는 이해되는데 어떻게 보면 기득권을 꽉 잡고 안 내려놓는 게 보이니까.”

“그래도 이제 많이 상향평준화된 것 같아요. 회사가 아무리 포장해도 매력이 없으면 안 팔리니까요.”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해. 요즘 대형기획사에서 그룹 런칭 하고 들인 노력과 비용과 비교하면 성과는 영 신통찮으니까. 우리가 그 자리를 비집고 들어가고 있는 거고. 그래도 뜨는 건 확률상 대형기획사가 높긴 하지.”

이 업계가 거의 사람 관계가 주가 되다 보니까 항상 관계가 상당히 어렵다고 느낀다.

방송 제작에 필요한 것을 다루는 것도 결국은 사람이고 거기에 나오는 출연자도 사람이다.

남진수와 진지하게 업계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애들 모니터링을 너무 대충 한 듯싶었다.

무대를 보지도 못한 것 같은데 벌써 무대를 끝내고 내려오는 애들이 보였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열심히 해요?”

“우리 무대 안 봤죠?”

이나라와 신희진이 내려오자마자 다다다 쏘아붙이며 말했다.

곁에 있던 애들의 눈초리도 조금 싸늘했다.

너무 티 나게 우리끼리 이야기한 듯싶었다.

“아냐. 역시 잘하네. 올해 신인상 받은 그룹다운데?”

남진수가 노련하게 빠져나갔다.

신인상 이야기를 하자마자 얼굴이 헤실헤실거리면서 눈까지 풀렸다.

“힛.”

단순하기는. 아직 애는 애다.

“자, 대기실 가서 푹 쉬고 올해 마지막 날인데. 뜻깊게 보내자.”

“네!”

남진수의 기지로 인해 애들도 하려는 말은 접어두고 서로 꽁냥꽁냥거렸다.

그렇게 무사히 최종 리허설을 끝내고 대기실로 돌아왔다.

남은 건 무대에 올라가는 일만 남았다.

* * *

“아~ 나이 언제 먹지. 왜 우리는 여기에 있어야 하는 걸까.”

“그건 바로.”

“급식이기 때문이지 뭐 별거 있냐?”

“아, 내가 하려고 했는데! 왜 뺏어요!”

박혜연이 푸념하자 서지영이 이야기하는 걸 내가 뺏어서 말했다.

우리는 지금 대기실에 있다.

연말 무대는 별 탈 없이 무사히 진행되었다.

우리는 급식 애들이 다섯 명이나 있었기 때문에 배치 순서가 상당히 앞쪽에 있었다.

연말 무대라고 크게 다를 건 없고 무대가 끝나면 음악 방송처럼 다시 또 기다리는 일이다.

결국, 이건 시간대가 다른 스케일이 조금 큰 음악 방송의 연장선인 것이다.

다른 게 있다면 새해 카운트다운할 때 보통 모든 가수가 무대로 올라가는데, 우리 애들은 그러지 못하고 대기실에서 손 빨면서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이유는 나이가 안 돼서 방송에 얼굴 비추면 안 됐으니까.

그래서 지금 우리는 대기실에서 새해 카운트다운을 기다리고 있었다.

엔딩 무대도 다 같이 노래 부르면서 끝나는 거로 큐시트에서 봤는데 그것도 얘네는 빠졌다.

“그래도 내일부터 휴가니까 이건 좋다.”

“근데 너무 짧아.”

“유코랑 린이는 집 갔다 와?”

몽롱한 표정의 유미소를 시작으로 서지영은 짧다고 투덜거렸고, 박혜연이 유코와 린에게 물었다.

새해 맞이해서 회사에서 간단한 휴가를 줬다.

결정 난 건 오늘 무대 준비하면서 결정된 거라 애들도 오늘 소식을 알았다.

더 미리 알려줬으면 좋았을 텐데.

아니면 그냥 화끈하게 일주일 주면 안 되나. 2박 3일은 너무 짧은데.

“너무 짧아. 안 가.”

“저도요. 너무 짤바요.”

아무래도 둘은 숙소에만 있을 운명인 듯했다.

아니면 어디 놀러 가지 않을까?

- 이제 새해가 1분 남았습니다. 여러분 새해는 모두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대기실에 있는 화면에서 MC가 카운트다운을 알려왔다.

방송에서의 생방송은 예전에는 정말 실시간이었는데 방송사고가 있던 직후 이제는 3분이나 5분 딜레이를 넣고 생방송을 한다.

그러나 유일하게 정말로 실시간 Live를 하는 방송이 있다.

바로 지금 나오는 방송이다.

연말 무대는 정말로 예전 그대로 생 Live다.

그래서 이때는 생각 외로 MC들도 많이 긴장한다.

가수들도 이때는 정말 실수를 안 하려고 노력 많이 한다. 음 이탈 사고 한 번 나면 평생 박제다.

모니터 화면에서 이제 카운트다운을 하기 시작했다.

- 5! 4! 3! 2! 1!

- Happy New Year!

- 데엥- 데엥- 데엥-

연도가 바뀌었다.

“새해 복 많이 받아라. 얘들아. 새해에도 힘내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 복 많이 많이!”

애들과 덕담을 나누며 새해 인사를 했다.

애들이 소원으로는 무얼 빌었을까?

“급식 애들아. 소원 뭐 빌었어?”

“급식 아니거든요!”

“언니 아직 생일 안 지났잖아. 그럼 같이 급식이지.”

“하!”

“우리는 급식 파이브!”

내가 대기실에서 대기하고 있는 애들에게 묻자 급식이라는 단어에 강한 반발이 일어났다.

유미소는 자기가 급식 라인에 들어가는 게 불만인 듯했으나 박혜연이 침몰시켰다.

개의치 않고 미소를 안으며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서지영은 제외다.

서지영을 제외한 나머지는 뾰로통해졌다.

어릴 때는 나도 빨리 성인이 되고 싶었는데, 지금은 나이를 그만 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하지만 역시 성인에 걸쳐 있는 나이대는 어쩔 수 없이 성인이 되기를 갈망하는 것 같다.

“미쳤나 봐. 쟤.”

“근데 생일 이야기하니까 갑자기 궁금해진 건데. 오빠 우리 생일 다 알아요?”

아니.

내 얼굴을 볼 수 없겠지만 짐작이 갔다.

한겨울인데도 불구하고 땀이 삐질 났다.

싸늘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아, 이거 망했다.

여자친구가 오늘 무슨 날인지 알아? 하는 느낌이었다.

“오호, 그러게. 다 알겠죠? 설마요? 그렇죠?”

“매니저인데. 담당 연예인 생일도 모를까. 그치~ 유코야?”

“마자요. 마자. 모르면 안대지.”

“어음, 음….”

유미소가 건수를 잡은 듯 눈을 빛내며 다가왔고 서지영이 유코와 함께 합심해서 훅 들어왔다.

대기실 분위기가 매우 훈훈했다.

그래서 지금 땀이 나는 듯했다.

애들의 초롱초롱한 눈초리에 공부할 때도 일하지 않았던 두뇌가 열렬하게 일하기 시작했다.

“미소는 10월. 유코 5월. 지영이 5월 혜연이 2월. 린 7월.”

맞겠지?

최대한 머리를 쥐어 짜냈다.

내 생에 이렇게 머리를 혹사한 적은 없을 것이다.

“며칠인지는요?”

“에이, 그거야 그달 들어가면 확인하려고 했지. 맞지? 월은?”

“몇. 일. 인. 데. 요.”

유미소가 성큼 위협적으로 다가와 나에게 말했다.

나는 양손으로 다가오지 말라고 밀어내는 제스처를 취했다.

“나는 이런 기념일은 그달 들어가서 체크한다. 몰라, 모른다고.”

“쳇, 잘 빠져 나가시네.”

등줄기에 소름이 쫙 끼쳤다.

생각이 안 났으면 어떻게 됐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아마 시체도 안 남기고 물어 뜯겼겠지.

“그래서 소원은?”

더 화제를 끌면 나에게 좋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재빠르게 화제를 전환했다.

“저 올해에 대상 받게 해달라고 했어요!”

유미소는 정말 소원으로만 끝날 소원을 빌었다.

“전 지상파 1등!”

그나마 현실적인 소원을 빈 박혜연이었고.

“저는. 모두가. 건강했으면 좋겠다고 빌었어요.”

린은 본인 성향대로 소원을 빈 느낌이었다.

“나는 속물적인가? 빨리 정산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빌었는데.”

서지영은 정산 이야기를 꺼냈다.

아마 이르면 다음 앨범부터는 되지 않을까 싶다.

“나는 치킨 CF 찍게 해달라고 해써.”

유코가 촉이 좋은지 치킨 CF 이야기를 꺼냈다. 아직 애들에게 이야기는 안 했지만, 협의 중인 치킨 CF가 있는 거로 알고 있다.

광고주 측에서 상당히 긍정적이라 조만간일지도?

다들 소원이 가지각색인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은 본인들 그룹에 관한 소원이었다.

“오빠는요?”

“나?”

박혜연이 대뜸 얼굴을 들이밀며 나에게 소원을 물어봤다.

“네.”

“너희 마지막에 하는 콘서트까지 높게 높게 날게 해주세요. 라고 했어.”

“와, 마지막이래. 소름.”

몸서리치는 서지영이었다.

“아 쫌… 센스 없으시네!”

“아~ 바로 전까지만 해도 좋은 분위기였는데 분위기 깨졌잖아요. 책임져요.”

박혜연도 버럭 소리를 질렀고 유미소는 분위기를 깬다며 혀를 찼다.

지나치게 솔직했었던 듯싶다.

근데 생각나는 게 그거밖에 없었다.

마지막 이야기를 하니 애들이 벌써 침울해졌다.

아직은 멀지만 멀다가도 짧은 시간이니까.

침울해진 분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다시 내가 분위기를 잡았다.

“나는 너희를 이렇게 약하게 키우지 않았다.”

“하. 강한 게 뭔지 보여드려요?”

“아니. 참아줘.”

서지영이 어이없다며 반문했다.

기세가 정말 물어뜯을 기세였다.

솔직히 조금 무서웠다.

눈앞에서 사람만 한 대형견이 으르렁거린다고 하면 딱 지금 그 느낌일 것 같다.

“그래도 소원을 우리한테 썼으니까 정상 참작해드릴게요.”

“그래. 고맙다.”

박혜연이 옆에 있는 서지영을 거들어 말했다.

왜 내가 정상 참작을 받아야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눈물 나게 고맙네.

나는 마른세수하고 진행 중인 연말 무대 모니터를 보았다. 애들도 이제 흥미가 떨어졌는지 얌전히 무대를 보기 시작했다.

밖에서 그리고 안에서 연신 폭죽 소리와 종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그리고 들려오는 보신각 종소리와 함께 새해가 시작되었다는 게 실감났다.

다시 온 새해에는 애들이 저 높이 날 수 있기를.

* * *

연말 무대가 끝난 후 다음 날.

다시없을 2박 3일 휴가라 집에서 배를 벅벅 긁으며 느긋하게 보내고 있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네? 애들 시다바리요? 공식 스케줄 아니라고요? 애들 요청이라고요?”

매니저도 사람이야. 사람.

나도 쉴 땐 좀 쉬자.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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