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화. 다시 쓰는 새로운 역사 (1)
“둘, 셋”
“안녕하세요! 반짝반짝 빛나는 무지갯빛 스타즈입니다!”
찰칵. 찰칵.
여기저기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 유독 기자들이 참 많은 것 같다.
시상식 시작 전에 하는 레드카펫 포토타임이었다.
처음 겪어보는 풍경이 낯설었다.
여기에 오면 무슨 느낌일까 궁금했는데 별 느낌은 없는 것 같다.
내가 당사자가 아니라 그런가?
애들은 연신 대외용 미소를 지으며 포토타임을 즐기고 있었다.
그 와중에 가장 미소가 자연스러운 건 역시 유미소였다. 유미소는 가식적으로 웃는지 진짜로 웃는지 정말 분간이 잘 가지 않는다.
연기는 더럽게 못 하는데 웃는 건 이름처럼 정말 잘해서 조금 특이해서 물어본 적이 있었다.
되돌아온 대답은 초등학생 때부터 웃는 연습을 꾸준히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다고 이야기해줬다.
그래서일까? 미소는 이름답게 미소가 아름다웠다.
한차례 포토타임을 즐긴 후 무대 안으로 들어갔다.
모든 시상식장이 그러하듯 무대를 보고 있는 팬들도 시상식을 기다리는 우리 애들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대기실 마냥 장난치면서 놀지는 못할 거로 생각했다. 그러나 애들이 앉아 있는 곳을 유심히 보니 기다리기가 지루했는지 테이블 위에 있는 물병 가지고 놀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에 저희 무대가 10분 좀 안 되죠?”
“어. 역시 뒷배경이 있어야 해. 신인이 어떻게 10분을 따내냐.”
“어비스가… 15분 조금 넘는 것 같던데요.”
“잘될 때 푸시해 주는 거지 뭐.”
내가 남진수에게 애들이 배정받은 시간을 묻자 남진수의 목소리가 황당하다는 듯 시간을 재차 확인해줬다.
이번 시상식에서는 이례적으로 우리 애들이 10분 정도 무대에 설 수 있는 시간을 줬다.
물론 올해 가장 핫한 걸그룹이기도 했지만, 신인이 10분을 받는 건 이례적이다.
이 배경에는 K.NET과 연결된 회사가 우리 모회사인 담연이 한몫한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리고 전에는 시상식 근처도 못 왔기 때문에 정확히 몇 분을 배정받을지는 몰랐다.
연말 대비 연습도 인트로 부분 짧게 짜고 타이틀 한 곡 기준으로 짰는데, 거의 두 곡을 더해야 해서 부랴부랴 곡 선정하고 더 빡세게 연습하느라 애들이 죽을 맛이었다.
물론 말로는 죽을 맛이지만 웃으면서 준비했던 것 같다. 10분을 준비하는데 상도 안 주고 돌려보낼 리는 없었으니까.
지금 이런 상황이 꿈만 같다.
예전에는 구멍이 뚫려 가라앉는 배여서 푸시를 못 받았었다.
사태가 더 악화할수록 관심도 멀어져갔고.
역시 자본 논리에 따라 선택하는 것 같다.
잘나가면 더 잘나가게 푸시하고 가라앉는 배는 냉정하게 버리고.
이쪽 바닥은 참으로 극단적이라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저희 근데 열 시 되면 린이랑 혜연이, 지영이, 유코, 미소 다섯 명이나 퇴근시켜야 하죠?”
“어. 희진이 나라 빼고 다섯 명. 이야. 그러고 보니 과반수가 넘네?”
22시에 퇴근시키는 이유는 간단했다.
우리나라 법률상 22시 이후에는 미성년자는 방송에 나올 수가 없다.
방송도 영리활동이기 때문에 미성년자는 아웃이다.
물론 벌금을 내면 되지만 누적 횟수가 쌓이면 제제도 강력하게 들어오기 때문에 법정준수를 지키는 편이 좋다.
애들 데뷔프로그램인 ‘너의 아이돌은 누구?’도 생방송 직전까지 녹화된 방송은 다 23시에 방영했으나 생방송은 극단적으로 시간을 당겨 19시 시작 22시 종료로 끝났었다.
이렇게 보니 애들 나이 체감이 확 오게 되는 것 같다.
“애들 별 사고는 안 치겠죠?”
“사고는 딱히 없을 것 같은데. 남돌 애들이랑도 테이블 구분되어 있고. 딱히?”
“잘했으면 좋겠네요.”
“잘하겠지. 우리가 애들 걱정할 때는 지났어. 애들도 프로야. 그래도 이번엔 그냥 무대만 보고 있으면 돼서 편해서 좋네.”
“그 점은 저도 동의합니다.”
남진수가 하품을 하며 말했고 나도 남진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연신 동의했다.
시상식장은 공개된 장소에서 바로 무대 준비하러 이동하기 때문에 매니저인 나와 남진수는 할 게 없었다.
얌전히 그냥 무대만 바라보고 애들 뭐 하나 보는 것뿐.
관계자석에서 무대를 보다 오랜만에 애들에 대한 팬들 반응이 어떤가 커뮤니티 사이트를 켰다.
분위기는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바보가 아닌 이상 우리가 이번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타게 될 거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정말 확정적인 미래였다.
신인이 신인상을 받게 되는 건 데뷔한 그 한 해 딱 한 번이다. 신인상을 못 받는 그룹도 정말 많기 때문에 받는다는 건 의미가 매우 크다.
눈에 띄는 글이 있어서 핸드폰으로 들어가서 확인해봤다.
[애들 실시간 직찍.jpg]
└ 와 존예네.
└ 우리 애들 신인상 받으러 가는구나 ㅎㅎㅎ
└ 설레발치지 마; 누가 그런 빻은 애들 신인상 줌?ㅋ
└ 아 ㅋㅋ 느그들 빼고 우리 애들 받는 거 다 아는데 머가리는 장식품? 우리 애들이 빻은 거면ㅋㅋㅋㅋ 웃고 갑니다^^
└ 또또 어그로에 끌리네 걍 무시해라 병먹금 ㄱ
이제 슬슬 타 팬덤에서도 견제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물론 내부 결속이 예전과는 다르게 아주 좋았기 때문에 쉽사리 휩쓸리지 않고 견고했다.
이게 아이돌은 팬덤 시장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악질적인 팬들이나 자기 그룹에 위해가 될 것 같은 그룹은 깎아내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이 여기저기 이간질하면서 팬덤이 분열되고 점차 망하는 길로 가니 정말 악질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커뮤니티 사이트를 눈팅하면서 남자 아이돌이 나오면 노래만 듣고 커뮤니티 반응을 보고, 여자 아이돌이 나오면 무대를 보면서 시간을 축내고 있을 때 우리 애들 순서가 됐다.
무대는 준비했던 대로 인트로를 강하게 주고 시작했다.
여기에 연출적인 효과로 애들 모습은 나오지 않고 춤추는 모습을 그림자로만 보여주었는데 생각보다 멋있는 인트로가 되었다.
인트로가 끝나고 올해 스타즈 데뷔곡인 Lovely 노래가 나왔다.
Lovely가 끝나고 겉에 두른 옷을 빠르게 떼어내고 Bomb Bomb 무대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바로 Bomb Bomb 노래가 나오고 다른 그룹의 팬덤들도 같이 환호해 주면서 무대를 즐겼다.
애들이 매력적이니 다른 팬들도 같이 홀리는 것 같다.
무대가 끝나고 애들은 다시 자기 테이블로 돌아와 하염없이 기다렸다.
그리고 대망의 신인상 발표가 시작되었다.
“네. 올해의 신인상은….”
MC가 감질 맛나게 웃으면서 말을 끌었다.
“축하합니다! 스타즈입니다!”
이내 MC가 신인상을 발표하자 멀리서 애들이 방방 뛰며 기뻐하는 게 보였다.
신인상 탄 게 이리도 기쁠까. 기쁘겠지.
예전과는 벌써 많은 게 달라졌다.
나 또한 예전과 많은 게 달랐다.
예전엔 스타즈가 내리막길로 내려갔다면 지금은 오르막길로 빠르게 올라가는 중이었고, 나는 전과 다르게 많은 부분에 손을 대고 있었다.
예전의 나는 매니저라는 직업 자체에 적응하기 바빴다.
그리고 나대지도 않았다. 그냥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부품처럼 하염없이 순응했다.
지금은 매니저라는 직업 자체에 적응은 이미 다 되어 있으며 나대고 있었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나대고 있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결과가 좋아 회사도 크게 뭐라 안 하는 듯했다. 역시 능력이 있으면 다 된다.
그렇지만 내가 미래의 정보를 알지 못했다면 과연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나대며 삶의 변화가 있었을까?
깊게 생각할 거 없이 현재를 보면 된다. 나는 행복하다. 그리고 즐겁다.
이제 내가 아는 지식은 1년 남짓밖에 안 되는 미래지만 그 미래로 많은 걸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만 해도 많은 결과가 바뀌었다.
그리고 그 1년 남짓 안 되는 지식으로 내 미래도, 애들의 미래도 더 많이 바꿀 거다.
날아오를 발판을 만들고 날아오르자.
“그리고 우리 헥사곤 스태프 식구들 모두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희를 매일 제일 가까이서 돌봐주는 푸우… 아니 김현진 매니저님. 감사합니다!”
아니, 잠깐만. 이거 생중계라고.
내 이름을 불러준 건 고마운데.
왜 앞에 이름 말고 다른 게 있니? 지영아?
“이야. 나머지는 다 스태프로 퉁 쳤는데 현진이만 이름이 나왔네?”
“네? 저도 제 이름밖에 못 들어서요. 팀장님이나 다른 사람 이름 안 나왔어요?”
옆에 있던 남진수가 나 혼자 이름이 나왔다며 딴지를 걸며 말을 걸어왔다.
딱히 기분 나쁜 어투는 아니었으나 장난기가 가득했다.
“언제 애들을 그렇게 홀리고 다녔어? 꿀이라도 줬어?”
“꿀이라뇨. 하하….”
이 양반이….
“꿀단지라도 준 거 같은데?”
“저 그런 거 없습니다.”
남진수가 건수를 잡은 듯 눈을 빛내며 이야기했다.
내가 애들한테 신뢰를 받은 것 같아 기분은 좋은데 왜 이렇게 묘할까. 참 묘해.
그렇게 이날의 시상식은 열 시에 급식 애들을 방송에 안 나오게 따로 빼낸 뒤 시상식이 끝나고 나머지 둘을 챙겨 숙소로 보내고 끝났다.
그리고 12월 31일. 올해의 마지막 날이 다가왔다.
* * *
올해는 이제 다 갔다. 남은 1년이 중요하다.
노트를 보며 바로 앞으로 닥쳐올 2월의 신희진 왕따설이 어떻게 바뀔지 너무 궁금했다.
내가 알던 대로 일어날까? 아니면 없어질까?
1월에는 사건 사고가 없어 다행이었다.
마녀가 이제 사전 제작에 들어가고 있는 거로 아는데 방영이 3월이었나?
화랑은 이제 촬영 마무리 짓고 후반 작업 들어갈 거고.
이진철의 첫 장편 데뷔작 준비는 아마 4월 이후에나 들어갈 거고.
또 다른 게 없나 노트를 보면서 유심히 고민 중이었다.
“뭐해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신희진이 노트에 쓰여 있는 글을 보며 물어왔다.
나는 자연스럽게 대처했다.
“아. 할 거 없어서 잠깐 노트에 생각나는 대로 아무거나 끄적이고 있었어.”
“와, 이게 뭐지? 글씨야? 암호야? 이거 뭐라고 쓴 거예요?”
언제 왔지? 애들끼리 노느라 나한테는 관심 없는 줄 알았는데.
역시 읽지는 못하는구나. 다행이야.
“아, 이거? 심심하다. 의식의 흐름대로 쓰고 있다.”
“뭐예요. 그게.”
“그냥 할 거 없어서 진짜 아무 생각이나 끄적이는 노트야.”
나와 신희진이 이야기를 하는데 이나라가 나를 향해 재빠르게 다가왔다.
“폴라로이드 사진기 없어요? 오빠?”
“아, 맞다. 깜빡했네. 가져올게.”
“네!”
지금 우리는 연말 무대 대기실에 있었다.
시상식과는 다르게 그냥 대기실에서 대기하다가 무대에 올라가면 됐다.
그러다 보니 대기실에 대기하는 시간이 유독 길어졌는데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이나라가 아니었으면 그냥 넘어갈 뻔했다.
화려하게 입었으니 사진으로 남겨야 했는데 내가 깜빡 잊고 사진기를 못 챙겨왔다.
챙겨 와서 애들 사진이나 찍어야지.
이내 나는 노트를 접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 * *
차에서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찾은 다음에 들고 내렸는데 어디서 고함이 들렸다.
웬 고함이지?
호기심에 이끌려 도둑마냥 조심조심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갔다.
마침 기둥이 있어서 기둥 뒤에 숨어 조용히 지켜봤다.
“너 죽고 나 죽는 거 보기 싫으면 어떻게 해서든 따와.”
“진짜 제 역량으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실장님.”
“안 돼? 해봤어? 해보고 이야기해. 네 담당이잖아.”
기둥 뒤에서 상황을 조심스럽게 보니 남자 두 명이 대화하고 있었는데 한 명이 다른 한 명에게 정말 불쌍한 얼굴로 빌고 있었다.
“관례로는 엔딩은 어비스가 하는 게 맞아서 어떻게 할 수가 없….”
짜-악
앞에 있는 사람이 불쌍한 얼굴로 이야기하는 남자의 따귀를 때렸다.
주차장이 따귀 맞는 소리로 크게 울려 퍼졌다.
“새끼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따오라고. 어? 따와라. 난 분명 말했다. 못 따오면 너랑 나 둘 다 대표님한테 가는 거야. 알았어?”
엔딩 이야기를 하는 거 보니 예전에 남진수에게 들었던 내용이 생각났다.
상황을 보니 하늘 소속인 듯했다.
따귀를 맞은 남자는 하늘 소속 매니저고.
“그럼 실장님이 조금만 도와주시면….”
“아, 이 새끼. 말 못 알아먹네. 네 담당이니까 네가 해결해 오라고. 알겠지? 응?”
대화를 들어보니 실장인 것 같은데 실장이란 사람이 책임을 매니저한테 떠넘기려고 하는 거처럼 보인다.
실장은 매니저로 보이는 사람의 뺨을 가볍게 두 대 툭툭 치고 유유히 안으로 들어갔다.
가만히 있던 매니저는 분함을 삼키며 실장이 들어가자 실장에게 하는 말인 듯 나직이 내뱉었다.
“하, 시발 새끼….”
이 광경을 보면서 남의 일이라 그런지 호기심도 들었지만 처량한 남자의 모습을 보니 안타까움도 들었다.
그렇지만 안타까운 마음과 반대로 내 심장은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강 건너 불구경이 제일 재밌기 때문이다.
숨어서 보느라 메말라진 입술을 핥으며 생각했다.
꿀꺽.
상황이 재밌어 보이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