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도 다시 매니저!-38화 (38/200)

제38화. 제비가 물어온 뜻밖의 수확 (2)

“현진아!”

컷을 외친 사람이 나를 불렀다.

“네!”

그렇지만 대답은 다른 곳에서 나왔다.

“개 짖는 소리 좀 안 나게 해라!”

하하하

목소리가 나온 곳을 살펴보니 컷을 외친 사람은 음향감독이었다.

음향에 개 짖는 소리가 물려 있던 듯했다.

영화 현장에서 카메라가 돌 때 컷을 외칠 사람은 두 명밖에 없다.

영화감독과 음향감독이다.

그 두 사람이 컷을 외치기 전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대로 진행해야 한다.

가령 연기를 하다가 상대가 대사를 씹었거나 당황했거나 하더라도, 컷 소리가 들리기 전에는 무조건 진행을 한다.

음향에 오류가 있어도 그대로 진행하고 후반 작업에서 후시녹음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음향감독이 끊은 거 보니 이충재 감독은 현장 녹음을 선호하는 듯했다.

“지금 가겠습니다!”

그렇게 대답하고 또 다른 현진이 사라졌다. 상황을 보니 제작부 막내인 것 같다.

“놀랐냐? 네 이름 나와서?”

“처음엔 저 부르시는 줄 알았는데 동명이인이었네요.”

“이름이 현진이에요? 아, 맞네. 아까 인사할 때 김현진이라고 했었지.”

“네. 감독님.”

홍승기가 옆에서 말을 걸자 대화 소리를 들었는지 이충재 감독이 나를 쳐다보고 이야기했다.

“승기한테 들었는데 학교 후배라면서요?”

“네, 감독님. 말씀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그럴까? 린이 연기는 어때?”

내가 잽싸게 말을 편하게 하라고 하자 이충재 감독은 고민도 없이 바로 편하게 말했다.

“카메라를 대봐야 알겠지만 딕션도 괜찮습니다. 무엇보다 감독님이 찾던 이미지에도 맞다고 들었습니다. 떨지만 않고 하면 잘할 거로 생각합니다.”

“그래? 그렇다면 다행인데. 아까 1컷은 느낌 좋았거든. 딱 뒤돌아봤을 때! 캬!”

“감독님. 저는 왜 느낌 좋았다는 말은 안 해주세요? 섭섭합니다.”

“새끼야. 네가 연기를 잘해야 좋았다는 말을 해주지. 날로 먹으려 하네.”

“감독님….”

“오늘 이 장면 끝나고 너랑 재성이지? NG 내면 죽어. 진짜.”

“물론입니다. 하하하.”

홍승기가 자신 있게 웃었다.

타박하는 이충재 감독의 눈빛에도 장난기만 서려 있지 진심은 아닌 듯했다.

화랑 영화 촬영장도 분위기가 좋은 걸 보니 역시 뜰 만하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 촬영장이 분위기가 좋은 곳치고 개봉 성적이 나쁜 적은 거의 없다.

분위기가 좋으면 좋을수록 그만큼 스태프들과 연기자들 모두 작품에 활력을 넣기 때문이었다.

린의 모습을 보니 예상치 못한 상황이 조금 당황한 게 보여서 긴장을 풀어 주러 가려고 했으나 이내 들려온 소리에 그만뒀다.

“촬영하셔도 됩니다!”

멀리서 제작부 막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짖는 소리를 멈추게 했나 보다.

먹이를 줬나? 아니면 개랑 놀고 있나?

제작부는 저렇게 예상치 못한 상황이 닥친 현장을 통제하는 게 제일 힘들다.

“시작하겠습니다! 다시 준비해 주세요!”

조연출이 크게 외쳤다.

이내 다시 모든 사람이 촬영 준비를 끝마치고 기다렸다.

“카메라 롤.”

“사운드 스피드.”

“2테이크!”

딱!

슬레이트를 카메라 앞에 댄 뒤 슬레이트를 치고 잽싸게 사라지는 연출부 막내였다.

“레디!”

“액션!”

감독의 액션 소리에 멈춰 있던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이 모니터 너머로 보였다.

가만히 있는 린의 모습과 카메라 바깥에서 린의 어깨를 붙잡으려 하는 모습의 박재영이 등장했다.

“낭자! 잠깐만 서보시오! 낭자!”

박재영이 대사를 치면서 린의 어깨를 붙잡았다.

린은 몸을 돌려 박재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대사를 했다.

“你是谁啊?(누구세요?)”

“어, 나는… 왕호. 我是王虎.(나는 왕호입니다.) 당 여인이오?”

박재영이 말을 혼용해서 이야기했다.

린은 그런 박재영을 쳐다보면서 다시 대사를 말했다.

“哎?(네?) 我是恩绣临.(나는 얜 시우 린입니다.)”

아까 나와 리허설 할 때보다 별로다. 다시 갈 거 같은데.

“컷!”

이충재 감독의 컷 소리가 저잣거리에 울려 퍼졌다.

“음, 린아. 잠시 와볼래?”

역시 예상대로 이충재 감독도 별로였던 듯싶다.

린이 가까이 오자 디렉팅을 시작했다.

“재성이가 붙잡을 때. 그러니까 왕호가 너 어깨를 붙잡았을 때 조금 더 놀라면서 표정을 살려줬으면 싶거든? 그리고 아직 조금 긴장해서 굳어 있는 것 같은데 편하게 해. 이해했니?”

“네. 네!”

이충재 감독이 디렉팅을 하자 더 당황한 것 같았다.

린이 주먹을 꽉 쥐면서 듣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까 큰 화면에서는 긴장한 티가 안 났지만, 인물이 잘 보이는 컷으로 들어가니 확연히 눈에 띄는 것 같았다.

“자, 다시 갈게요!”

이충재 감독이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린을 다시 원위치시켰다.

아직은 스태프들도 그럴 수 있지 라는 분위기였다.

그렇지만 NG가 길어지면 촬영장의 공기가 더 차갑게 얼어붙을 가능성이 높았다.

불안한 마음으로 다시 나도 모니터를 보기 시작했다.

“3테이크!”

딱!

“레디!”

“액션!”

다시 똑같은 장면이 시작되었다.

그렇지만 린은 이번에도 아까랑 비슷하게 연기를 했다.

한겨울임에도 불구하고 훈풍이 불었던 촬영장이 서서히 얼어붙기 시작했다.

린의 상태를 보니 반복된 NG에 넋이 나간 듯했다.

영화를 처음 찍어 보는데 수월하게 하면 정말 재능이 출중한 거다. 저렇게 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이 든다.

린의 경우에는 인맥과 시기와 운. 이 모든 게 맞아떨어져서 연기를 배우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섭외가 된 케이스다.

대다수의 무명 연기자들은 린의 자리가 얼마나 값진 자리인지 안다. 나 또한 그걸 알기에 이렇게 가만히 있을 순 없겠다는 생각했다.

나는 홍승기에게 다가갔다.

“형. 잠시만요.”

“왜?”

홍승기를 불러 현장에서 잠깐 벗어났다.

“혹시 감독님에게 다른 컷부터 가자고 해도 될까요?”

“별로 상관없을걸? 오히려 스태프들이랑 커뮤니케이션 잦은 분이라.”

“알겠습니다. 다행이네요.”

“왜?”

홍승기 의아하게 나를 보며 물어보았다.

“이대로 계속하면 오늘 못 찍을 거 같아서요. 린이랑 잠시 이야기 좀 해보게요.”

“긴장만 풀리면 잘할 거 같은데. 너무 굳어 있더라.”

“네. 잠시 이야기 좀 드려 볼게요. 첫 촬영이라 그런지 카메라 돌자마자 너무 굳었네요.”

“그래. 그렇게 해봐 그럼.”

홍승기랑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 다시 촬영장 안으로 들어왔다. 감독이 린에게 디렉팅을 하고 있는걸 보니 한 테이크가 또 지나간 듯싶었다.

모니터 앞으로 오는 감독에게 다가가 용기 내어 말했다.

“저… 감독님. 지금 린이 당황한 것 같은데 잠깐 따로 린과 조용한 곳에서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혹시 폐가 안 된다면…. 받은 콘티를 봤을 때 박재영 배우님 단독 바스트 샷이 있던 거로 기억하는데 먼저 촬영이 가능할지요?”

“음. 그렇게 할까? 방금 이야기해보니 좀 떨고 있더라고. 알았다. 어차피 같은 위치에서 찍는 거니까 먼저 재성이 찍자. 케어 잘하고 와.”

“네. 감사합니다!”

잠깐 고민하는 이충재 감독이었지만 쉽게 보내줬다.

아마 이충재 감독도 느끼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감독의 짜증이 풀 게이지로 올라가기 전이라 쉽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지금 기회를 잘 살려야 한다.

나는 모포를 들고 갈팡질팡하는 린에게 다가가 최대한 따뜻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린아, 당황하지 말고. 일단 잠깐 차분하게 이야기 좀 하다 오자. 내가 시간을 좀 벌었거든?”

“네? 네!”

린의 몸이 조금씩 떨고 있었는데 지금은 추워서 떠는 게 아닌, 무서워서 오들오들 떠는 것으로 보였다.

“조금 춥지?”

“네? 네….”

“저기 안에 들어가서 잠깐 몸 좀 녹이자.”

“네.”

이야기하면서 모포를 린의 어깨에 둘러줬다.

그리고 건물 안으로 들어올 때까지 말을 안 걸고 린이 천천히 긴장을 풀고 생각해보기를 기다렸다.

“연기해 보니까 어때?”

“어려워요. 어떻게 하면. 좋죠?”

“음,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편하게. 편하게 생각하자.”

“어떠케! 편하게 생각. 생각해요!”

“워워, 떨지 말고. 차분하게. 냉기 펄펄 날리던 린이 어디 갔어?”

나랑 둘이 안에 있어서 그런 걸까.

촬영장의 공기가 린의 마음을 짓누른 듯싶었다.

린의 눈을 보니 약간의 물기가 눈동자를 적시고 있었다.

그런 린에게 농담하며 마음을 풀어주려고 노력했다.

“중국어로 말하는 건 어렵지 않지?”

“네.”

“자. 그럼 우리 이미지 트레이닝 한번 해볼까?”

“이미지 트레이닝요?”

“응. 천천히 떠올리는 거야.”

감독이 분명히 몽환적이고 퇴폐적인 느낌의 인물이라 선택했다고 했다.

이충재 감독이 원하는 분위기는 분명히 이색적인 분위기의 린에게서 느껴지는 알쏭달쏭한 분위기를 원하는 듯했다.

이걸 어떻게 끌어내야 할까.

가장 기초적인 방법부터 시작했다. 린도 다른 게 아니라 긴장해서 몸이랑 생각하는 게 굳어 있는 것이라 생각이 든다.

“일단 눈을 감고. 천천히. 천천히 상상해봐. 지금 너는 저잣거리 한복판에서 길을 걷고 있어.”

“천천히. 천천히. 걷고 있다….”

“근데 갑자기 누가 너한테 말을 걸었어. 쉐이가 눈앞에 있는 거야.”

“아!”

쉐이는 린의 롤 모델이다. 중국 여배우인데 린이 자신의 분위기랑 정반대되어 끌린다고 롤 모델이라고 했었던 기억이 있다.

“이제 눈 뜨고 대사를 해봐.”

“你是谁啊?(누구세요?)”

눈빛이 조금 몽롱해지면서 분위기가 확 살았다.

임시방편인 방법이지만 정말 짧은 연기가 필요할 때는 효과적이다.

“저는, 저는 김현진입니다. 당신은 누구시죠?”

“哎?(네?) 我是恩绣临.(나는 얜 시우 린입니다.)”

그리고 그 몽롱한 분위기가 린이 본인을 소개할 때 분위기가 살짝 깨져서 오히려 알쏭달쏭한 분위기가 연출이 되었다.

연기를 본격적으로 배우면 이런 야매스러운 방법은 안 써도 되겠지만 지금은 괜찮았다.

“좋아! 아주 잘했어!”

“네? 이러면 되나요?”

“응. 이 정도면 될 것 같아. 어때 쉽지?”

“정말로. 이거면 돼요?”

“그렇다니까. 자, 이제 나가서 다시 실전으로 해보자.”

린이 못 믿는 눈치였지만 확실히 연기가 더 좋아졌다.

애초에 회사에서 이야기하기론 린은 연기를 못한단 평가는 듣지 않았다고 했다.

단지 첫 촬영이고 긴장해 감을 못 잡은 거라고 생각한다.

그냥 연습하는 거랑 실전이랑은 조금 다르니까.

“정말. 이거면 돼요?”

“그렇다니까. 어렵지 않지?”

“연기 선생님은. 이렇게 안 알려주던데….”

“트레이닝 방법은 각자 다 다르니까. 어때? 긴장은 좀 풀렸어?”

“네.”

나랑 호흡을 맞추면서 긴장이 조금 풀린 듯했다. 물기 어리던 눈도 다시 똘망똘망해졌다.

린을 데리고 밖으로 나오니 벌써 박재영의 컷은 다 찍은 듯했다.

“감독님. 이제 촬영 들어가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래? 좀 괜찮아?”

“네. 이번에는 괜찮을 것 같아요.”

“슬쩍 봤는데 이번엔 한 번에 OK 나올 것 같은데요?”

내 뒤에서 홍승기가 끼어들어서 이야기했다.

나랑 린이 이야기하는 걸 들었던 듯했다.

“보셨어요?”

“어. 감 안 죽었네?”

“그냥 기초적인 거죠. 뭐.”

“좋아. 다시 2컷 가보자고.”

“2컷 다시 가겠습니다!”

곁에 있던 이충재 감독이 나를 흥미롭게 쳐다보면서 NG가 났던 컷을 찍자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조연출이 모든 스태프에게 알렸다.

잘해야 할 텐데. 잘할 거다.

린이랑 박재영이 다시 위치를 잡기 시작했다. 다른 스태프들도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다시 2컷의 세팅으로 돌아왔다.

린의 얼굴을 보니 눈을 감고 계속 자기세뇌를 하는 중인 듯했다.

“슛 들어가겠습니다!”

조연출의 슛 들어간다는 목소리가 유독 크게 들려왔다.

“카메라 롤.”

“사운드 스피드.”

“12 – 2 – 5!”

딱!

슬레이트가 내려가는 모습이 마치 단두대가 내려가는 착각이 들었다.

분명 좋아진 린의 모습을 보았는데 왜 불안한 걸까.

불안해진 내 마음과 달리 슬레이트는 경쾌한 소리를 내며 촬영의 시작을 알렸다.

“레디!”

“액션!”

이충재 감독의 사인으로 다시 문제의 장면이 시작되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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