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도 다시 매니저!-37화 (37/200)

제37화. 제비가 물어온 뜻밖의 수확 (1)

“에취!”

“춥지? 괜찮아?”

“네. 괜찬아요.”

두텁게 껴입음에도 불구하고 추운지 린이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어쩌다 보니 린과 같이 화랑 촬영장에 오게 됐다.

홍승기의 단역 출연 요청 인물은 의외의 인물이었다.

감독이 요구한 인물상이 몽환적이고 퇴폐적인 느낌의 인물을 원했다고 한다.

극 중 왕세자가 당나라의 여인을 보고 한눈에 빠지는데 그 인물로 린이 적합하다는 거였다.

원래는 한국인 배우로 촬영까지 끝냈는데 느낌이 영 살지 않아 해당 장면을 폐기하고 다시 찍을까 고민하던 참이라고 했다.

예전에도 이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스타즈와 나에겐 호재였다.

문제가 있다면 린의 연기는 이번이 처음이라는 점이다.

회사에서도 애들 이미지 소비를 고려해 영상 노출을 꺼리긴 했지만 이런 신스틸러를 물지 않으면 회사가 멍청한 거다.

그래서 출연을 웬 떡이냐 하고 받았지만, 연기가 문제였다.

연기력이 크게 필요로 하는 장면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대사 두 줄이 있었다.

누구세요? 라고 하는 장면과 나는 린입니다. 라고 하는 대사 딱 두 줄이었다.

대사를 해야 하면 연기의 난이도가 달라진다.

그래서 부랴부랴 회사에서도 급히 연기 선생을 구해 연기를 가르쳤다.

조금 더 시간이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제작사 측에서는 일주일 후에 촬영장으로 와달라고 이야기했다.

사실상 연기할 필요가 거의 없으니 별로 생각을 안 하고 그렇게 시간을 둔 것 같았다.

그리고 정확히 홍승기가 나에게 섭외를 요청한 후 일주일이 지난 게 오늘이었다.

“떨려?”

“네.”

“연습 많이 했잖아.”

“그래도 떨려요.”

추위에 떠는 건지 아니면 긴장해서 그런 건지 계속 떠는 린이 안타까워 계속 말을 걸었다.

아마 둘 다이지 않을까.

연기는 처음이기 때문에 무척 떨릴 것이다.

“무대 위에 있다고 생각하면 편해.”

“어떠케 같아요! 무대랑 다르죠!”

내가 무대 위랑 똑같다고 하니까 버럭 하는 린의 모습이 퍽 귀여웠다.

린과 이렇게 단 둘이 스케줄 나온 건 또 처음이었다.

이번에도 내가 물어왔다면서 회사는 이번 스케줄을 나한테 떠넘겼다. 나는 남진수가 갈 줄 알았다.

그리고 내가 계속해서 무언갈 물어오자 회사 사람들이 혹시 미래에서 온 거 아니냐고 우스갯소리를 하길래 식은땀이 줄줄 흘렀었다.

진짜 미래에서 왔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생각하니 심장이 철렁해진다.

“그래도 한국말로 하는 게 아니고 중국말이니까 자연스럽잖아. 해볼래?”

“지금요?”

“어. 계속해 봐야 늘지.”

“네. 해볼게요.”

한국말도 발음이 많이 좋아졌는데 버릇인지 계속 끊어 말하고 있었다.

거슬릴 정도로 끊어 말하는 것은 아니었고 지금은 린의 특유의 화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오히려 팬들은 독특하다고 좋아했다.

“你是谁啊?(누구세요?)”

“我是恩绣临.(나는 얜 시우 린입니다.)”

확실히 중국말로 하니 훨씬 자연스러웠다.

한국에서 연습생 생활이 조금 짧았던 것도 한몫하는 것 같았다.

이런 면에서 어드밴티지가 있네.

“말하는 톤은 괜찮은 것 같다. 표정 연기만 좀 더 다듬으면 좋겠네.”

“정말요?”

“응. 잘하네. 촬영 들어갔을 때 떨지만 않으면 되지 않을까? 어차피 짧은 장면이니까.”

린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촬영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조연출이 와서 곧 촬영 들어간다고 알려왔다.

“이제 곧 촬영 들어가니 준비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조연출이 이야기하니 이제 촬영을 한다는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그와 더불어 린도 양손을 가슴에 모으고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후~하! 후~하!”

“가자.”

“네!”

린과 함께 촬영 준비가 끝낸 장소로 이동했다.

저 멀리 우리와 호흡을 맞출 배우도 보였다.

왕세자 역의 박재영.

화랑에서 왕세자의 비중은 그렇게 크게 높지는 않으나 중요한 인물이긴 했다. 비중은 린보다 조금 더 있는 수준이었다.

합은 아까 살짝 맞춰보긴 했으나 실전에서는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게 합이 필요한 장면은 아니라 간단하게 리딩 정도만 했었으니까.

“자자! 빠르게 찍고 넘어갑시다! 오늘 영하 9도랍니다. 이 장면만 촬영하면 오늘은 전부 실내 촬영이니 힘내봅시다!”

이충재 감독이 의욕적으로 이야기했다.

겨울의 사극 촬영은 정말 할 게 못 된다. 오죽하면 배우들도 겨울에 사극 촬영은 꺼렸다.

의상이 얇거나 갑주를 착용하게 되는데 더럽게 춥기 때문이었다.

여자는 더욱이 머리 모양이 화려해질 경우 너무 무거워 목이 아프다고 하소연을 많이 한다고 했다.

린은 다행히 머리를 올리지 않고 적당히 만지는 선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

“화이팅!”

“네! 파이팅!”

린을 격려했는데 린도 귀엽게 두 손을 주먹 쥐며 파이팅을 외쳤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지며 카메라가 안 걸리는 선으로 빠지려 하는데 린이 내 옷깃을 잡아끌었다.

돌아보니 의아한 눈초리의 린이 서 있었다.

“마이크는. 안 차요?”

“마이크? 아, 영화는 마이크 착용 없이 그냥 찍어. 저기 보면 기다란 봉 들고 있는 분 보이지? 저게 마이크야. 붐 마이크라고 하는 건데 저걸로 주변 음성 지향해서 따는 거야.”

방송하면서 붐 마이크를 본 적이 없나 싶었다.

하긴 보통 다 이어마이크만 쓰면서 했으니까 스타즈는 볼 일이 별로 없는 물건이기도 했다.

“아하. 그럼. 그냥 가면 돼요?”

“어. 감독님이 잘 알려주실 거야.”

내 말이 끝나자 린은 조연출이 알려준 위치로 쪼르르 달려갔다.

“린 양? 린 씨?”

“감독님. 그냥. 린이라고 불러주세요.”

“어…. 음. 알겠습니다.”

린의 호칭 문제를 어떻게 할까 쑥스럽게 고민하는 이충재 감독이었으나 린이 재빠르게 이야기했다.

“감독님. 배우 차별 너무 심하신 거 아닙니까? 온도 차가 너무 다른데요!”

“시끄러워. 새꺄. 너랑 같냐?”

“이거 서러워서 연기 못하겠네.”

하하하.

홍승기가 이충재 감독에게 딴지를 걸었다.

감독과 배우가 격의 없이 친한 게 여기도 촬영 분위기가 매우 좋았다.

감독이 입이 걸걸한 것 같긴 했으나 스태프들도 딱히 큰 부담은 없어 하는 거 보니 괜찮은 듯했다.

승기 형은 나한테는 사극 톤으로 이야기하더니 감독한테는 안 하네.

이내 이충재 감독은 린에게 디렉팅을 하기 시작했고 근처에 있던 홍승기는 내 곁으로 다가왔다.

“캬, 분위기가 딱이구만. 우리 왕세자가 홀릴 만해. 보면 볼수록 예진 누나 데뷔 때 보는 거 같단 말이지. 중국의 이예진?”

“오늘은 웬일로 컨셉 버리셨어요?”

“컨셉? 임마. 그거도 사람 봐가면서 해야지. 감독님한테 어떻게 그러냐.”

홍승기가 건들거리면서 말했다.

언제부터 사람 가려가면서 그랬습니까.

학교 다니면서 작업할 때도 몰입해야 한다고 교수한테 개겼으면서.

“현진아. 네가 볼 땐 금방 끝날 거 같냐?”

“글쎄요. 연기를 눈앞에서 본 건 처음이어서요. 연기지도는 회사에서 구한 선생이 와서 가르쳤거든요.”

“네가 해도 될걸. 굳이 왜?”

“저 매니접니다.”

“아아, 그랬지. 참. 아무튼 어때?”

“아까 보니 딕션은 괜찮고 표정 연기가 조금 어색한데 합 맞추다 보면 괜찮아질 거 같은데요.”

“늘어지면 감독님 성격 나올 텐데.”

“그전에 끝내야죠.”

“그럼 다행이고.”

홍승기는 촬영 딜레이가 걱정되는지 손으로 턱을 쓰다듬으며 이야기했다.

린이 나오는 장면의 콘티를 받아보니 이번 장면은 5컷밖에 없는 정말 간단한 장면이었다. 영화로 따지면 30초 나오는 정도다.

장면의 개요는 간단했다.

저잣거리를 걸어가고 있는 린의 모습에 한눈에 반한 박재영이 달려와 린이 누구냐고 묻는 간단한 장면이었다.

이걸 5컷으로 찍는 거였다.

멀리서 크레인을 이용해 린과 박재영, 저잣거리 사람들을 다 담는 전경을 찍는 익스트림 롱샷.

가까이서 둘이 마주칠 때 무릎부터 배우 얼굴 조금 위까지 찍는 니샷 하나.

그리고 대사를 칠 때 린과 박재영의 모습이 단독으로 들어가는 배부터 얼굴까지 나오는 바스트 샷 하나씩.

박재영의 얼굴을 확대한 클로즈 업 하나.

이렇게 총 5컷을 찍는다.

지금은 첫 컷인 전경을 찍으려고 하는 듯했다.

나는 슬금슬금 움직여 감독의 뒤로 가 모니터 화면 쪽으로 이동했다.

그래도 감독의 위치랑 가깝게 붙어서 보지는 않았고 어느 정도 멀리 떨어져서 위치했다.

그렇게 자리를 잡으려 하는데 홍승기도 나를 따라왔다.

“모니터 보려고?”

“네.”

“감독님! 여기 린 매니저인데 같이 모니터링 가능할까요?”

정말 단순한 형이다.

나는 여러 관계를 고려해서 선뜻 이야기하기 꺼렸던 것인데….

모니터를 같이 보는 걸 싫어하는 감독도 많다.

“어? 이쪽으로 오세요.”

“아, 아닙니다.”

“불편해하실 필요는 없어요. 확인하셔야죠.”

“감사합니다.”

이충재 감독도 흔쾌히 홍승기의 말을 듣고 허락해줬다. 홍승기가 내 가려운 부분을 시원하게 긁었다.

제대로 보고 싶었는데 감독 옆을 비집고 들어가기엔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멀리 있었던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준비 끝났습니다.”

조연출도 보조 출연하는 사람들의 이동 동선 디렉팅이 끝났는지 가까이 다가와 감독에게 말했다.

“자, 그럼 첫 컷! 한 큐에 가봅시다!”

감독의 말에 다들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이제 촬영장이 고요해졌다. 옆에 있는 홍승기의 숨소리만 들릴 정도로.

나는 이렇게 고요해지는 촬영장이 항상 너무 좋았다.

“카메라 롤.”

“사운드 스피드.”

“씬 12 – 1 – 1!”

딱!

경쾌한 슬레이트 소리가 촬영이 준비가 끝났음을 알려왔다.

“레디!”

감독이 레디를 외치고 한 호흡 쉬었다. 카메라에 담기는 모든 연기자의 호흡이 들려오는 착각이 들었다.

“액션!”

감독의 호쾌한 액션 소리와 함께 린의 첫 영화 촬영이 시작되었다.

나도 모니터 속 화면으로 빨려 들어갔다.

저잣거리에서 사람들이 분주하게 장사를 하고 있다.

그리고 한 인물이 옆에 자신을 지나치는 여인을 보고 그 여인에게만 시선이 고정되면서 눈이 돌아간다.

그 인물은 바로 박재영이 맡은 극 중 인물인 왕세자 왕호다. 그리고 여인은 바로 이번 장면의 왕호와 같은 주인공 린이다.

그렇게 린은 왕호를 지나치고 저잣거리를 유유히 지나가고 있었다. 이내 박재영은 린에게 홀린 듯 달려갔다.

“낭자! 잠깐만 서보시오!”

박재영이 급하게 뛰어와 린을 불렀다. 린은 자기를 부르는 줄 모르고 계속 걸었다.

다급한 모습의 박재영이 린의 어깨를 건드리자 린이 돌아봤다.

그리고 무어라 이야기했다. 대사인 누구세요?인 것 같다.

나는 감독처럼 헤드폰을 쓰고 있지 않아 거리가 멀어지면 들리지 않았다. 따로 연결된 헤드폰을 쓴 감독은 다 듣고 있겠지만.

“컷! 오케이!”

다행히 그림이 감독의 마음에 들었던 듯했다. 사실 전경을 담는 거라 세세한 디테일은 필요가 없었다.

“다음 컷 가겠습니다! 다음 컷은 니샷 마스터입니다!”

조연출의 말이 들려왔다.

여기가 고비가 될 듯싶었다. 박재영과 린이 만나서 대화하는 장면을 처음부터 끝까지 담는 장면인 듯했다.

촬영 준비하는 동안 스크립터가 전에 화면에서 어느 위치에 만났고 어느 시점에서 돌아봤는지 세세하게 린과 박재영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따로 촬영장에 있는 메이크업팀과 스타일리스트들도 붙어서 박재영과 린의 모습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린도 점검받으면서 스크립터의 말을 다행히 알아듣는지 고개를 연신 끄덕이고 있었다.

다시 빠르게 촬영장이 재정비되어 다음 장면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확실히 프로들이니만큼 진행 속도가 빨랐다.

영화 촬영은 시간이 생명이다.

빠르게 찍으면 좋지만 늦게 찍으면 찍을 것도 못 찍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감독이 연출하는 의도에 따라 베스트 장면을 뽑아내 진행하는 것이다.

“다음 장면 찍겠습니다!”

벌써 준비가 다 된 듯싶었다.

“롤.”

“스피드.”

“씬 12 – 2 – 1.”

딱!

다시금 고요한 적막감이 촬영장을 휩쓸었다.

“컷!”

고요한 촬영장 속에서 누군가 컷을 외쳤다.

처음 들어본 목소리였다. 이충재 감독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누구지?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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