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화. 나는 배가 고프다 (5)
“이 맛은… 마치 밥알 하나하나가 입 안에서 살아 숨 쉬는 듯한 식감! 거기에 떡의 쫄깃쫄깃함과 어우러진 바다의 향이 첨가된 어묵의 맛이란! 그리고 이에 더해 산속에서 노니는 메추리들의 울음소리까지 들리는 아주 좋은 음식입니다.”
“대박….”
이나라가 배명수 PD의 표현에 입을 벌리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순간 배명수 PD가 미쳤나 싶었다. 카메라 들이대고 방송을 타니까 사람이 바뀌었다.
그걸 듣고 나는 어릴 때 봤던 요리 만화가 떠올랐다. 그 만화에서 저런 식의 표현을 자주 했었다.
나와 이나라는 놀란 눈으로 배명수 PD를 보면서 어처구니없어 했다.
저렇게 표현하면 우리는 뭐가 되나.
분식팀은 배명수 PD의 평가에 환호를 질렀고 반대로 파스타팀은 안색이 살짝 굳어지며 긴장했다.
“어음…. 전 일단 평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PD님처럼 표현에 뛰어난 게 아니라 뭐라 표현할지는 모르겠어요. 솔직히 전 밥이 좀 질다고 생각했거든요. 떡볶이는 뭐 그냥 떡볶이구요.”
이나라는 나름 솔직하게 이야기한 듯싶었다.
앞의 압도적인 표현에 이어 밋밋한 평가가 이어져서 그런지 반응은 조금 시큰둥했다.
다음은 내 차례였다.
너무 부담되는데.
“앞에 PD님이 너무 화려하게 표현해주셔서 저는 간단명료함으로 가겠습니다. 평범. 끝!”
“우우!”
내가 간단하게 맛 평가를 끝내자 모두 야유를 보냈다.
아니, 어떻게 저 표현을 이겨? 난 못해.
이렇게 평가를 끝내고 보니 배명수 PD가 파스타팀 평가를 어떻게 할지 기대가 되었다.
“저희는 남녀노소 모두가 좋아하는 파스타입니다! 크림 파스타구요. 미니 버거와 마늘 바게트도 같이 드시면 매우 좋습니다!”
“이의 있습니다! 저 마늘 바게트는 어디서 난 거죠? 요리를 지금 해온 게 아닙니다!”
“마늘 바게트는 그냥 소스 같은 거예요~ 요리에 소스가 필요하잖아요?”
신희진이 날카롭게 마늘 바게트의 존재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나 유미소는 능글맞게 이를 대처했다.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신희진과 유미소가 서로의 눈빛을 교환했는데 마치 불이 튀는 것 같았다.
“이거 마싯습니다!”
“같이 먹으면. 더 맛있어요.”
유코와 린이 맛있다면서 눈을 빛내며 우리 앞으로 요리를 내려놨다.
나는 냉정하게 평가할 테다.
이번에도 역시나 배명수 PD가 먼저 먹고 음식 평가를 시작했다.
“면이 마치 입 속에서 꿈틀거리면서 살아 움직이고 있네요. 훌륭합니다. 어떤 우유를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맛 자체가 너무 깔끔해 입 안에서 푸른 초원의 향이 났습니다. 또한, 미니 버거 안에 들어 있는 싱싱한 채소와 담백하고 깔끔한 고기의 육즙이 일품이었습니다. 이를 감싸주는 빵도 퍼펙트! 마늘 바게트와 크림 파스타 소스의 궁합은 언제나 옳군요. 감탄했습니다.”
“야호!”
유미소가 배명수 PD의 말을 듣고 환호를 질렀다.
나는 배명수 PD의 쉬지 않고 내리는 평가에 입이 쩍 벌어졌다.
왜 PD 하고 있지? 맛 평론가 하면 잘할 거 같은데.
배명수 PD의 맛 평가는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두 팀 모두 칭찬 일색이라는 것이다.
중도를 지키지 못할 바엔 찬양하면 되는 건가.
그래도 배명수 PD의 과한 평가에 채팅창 분위기나 애들의 분위기도 좋아졌고 예능용으로 쓰기 딱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PD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그리고 이번 촬영의 신스틸러는 아무래도 배명수 PD인 듯했다.
“어, 어…. 저는요. 일단 맛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제 취향은 이쪽에 더 가까운 거 같아요. 파스타도 파스타지만 역시 찍어 먹는 마늘 바게트가 제일 맛있네요.”
“이거 반칙입니다!”
“소스입니다!”
이나라 앞의 배명수 PD의 맛 평가에 주눅이 들었는지 조금 어벙하게 말했다.
그리고 이나라가 다시 마늘 바게트를 언급하면서 맛있다고 하자 이번에는 박혜연이 강하게 의견을 피력했다.
박혜연이 나서서 이의 제기하는 거 보면 생각보다 많이 억울한 듯했다.
“빵이 소스인 게 어딨어!”
“여기.”
서지영도 나서서 이야기했으나 유코의 한마디에 분만 삼켰다.
신희진은 왜 가만히 있나 살펴봤더니 이기는 것보다 먹고 싶은 욕망이 큰 듯했다.
계속 침만 꼴깍하고 넘기는 모습이 보였다.
“다음은 저인가요? 이번에도 간단명료하게 이야기하겠습니다. 평범!”
“심사평이 너무 짧은데요? 그리고 둘 다 평범이잖아요. 이래서 어떻게 평가가 됩니까!”
“이나라 양이 맛있다고 했으니 승리는 파스타팀 아닐까요?”
서지영이 나보고 둘 다 평범하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며 날뛰었다.
그러나 옆에서 배명수 PD가 교통정리를 해주었다.
두 팀 중 누가 더 맛있다고 하면 후폭풍이 거세서 안 된다. 이나라한테 떠넘기는 게 베스트다.
그리고 첫 요리치고는 생각보다 다들 잘하기도 했다. 나는 먹다가 배가 아파서 화장실에 갈 줄 알았다. 다소 걱정했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파스타팀 우승!”
“와!”
“이건 사기야! 이러면 우리도 사 왔지!!”
촬영 종료 시간이 임박해져 가므로 이나라가 잽싸게 파스타팀 우승으로 이번 요리 대결을 끝내버렸다.
파스타팀은 서로 얼싸안고 환호를 내질렀고 이와 대조되게 분식팀 두 명은 분함을 터트리며 허망해했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에 대조되는 한 명이 있었다. 그 인물은 결과가 나오자마자 남아 있는 마늘 바게트를 크림소스에 찍어 먹고 있었다.
“희진아… 끝나고 먹어.”
“배고파요.”
“일단 촬영 마무리해야지.”
“네. 네.”
신희진이 열심히 주워 먹고 있었다. 이 모습도 분명히 방송에 나갈 거다.
우리가 굶기는 건 아닌데….
잠시 시간이 흐르자 소강상태가 되었고 촬영 종료 임박 1분 전이라고 조연출이 신호를 보내왔다.
“오늘 재미있게 잘 즐기셨나요? 새롭게 시도한 방식이었는데 재밌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잘 즐겨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럼 이제 저희 인사드리고 끝내겠습니다!”
“지금까지!”
“반짝반짝 빛나는 무지갯빛 스타즈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애들이 인사하고 멀뚱멀뚱 잠시간 가만히 있자 조연출이 신호를 보내왔다.
“고생하셨습니다! 촬영 종료입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촬영이 종료되자 여기저기 고생했다는 말이 나왔다.
그중에는 나도 있었다.
“배명수 PD님. 방송 데뷔 너무 화려하게 하시는 것 같은데요?”
“하하, 이 정도는 해야 방송이 살죠. 저도 컨셉 잡고 하기 힘들었습니다.”
남진수가 다가와 배명수 PD에게 웃으며 이야기했다.
배명수 PD도 오늘 촬영이 괜찮다고 생각하는지 웃으면서 화답했다.
“진짜 깜짝 놀랐습니다. 앞에서 그렇게 이야기하시니 뭐 어떻게 할 말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간단하게 했어요.”
“오빠 근데 그건 좀 심했던 듯요.”
“인정.”
“너무해.”
근처에 있는 애들이 내가 너무 간단하게 음식을 평했다고 토라졌다.
어쩔 수 없었다.
이게 내가 얘네들 사이에서 살아남는 방법이었을 뿐이다.
오늘 시즌 2 첫 촬영이지만 생각보다 순항인 촬영이었는지 헤드 스태프들도 그렇고 메인 PD도 얼굴이 밝았다.
나는 이게 잘 녹화가 된 건지 잘 모르겠다. 어차피 편집을 거쳐서 재미있게 바뀌긴 할 것이다.
그렇게 스태프들과 마무리 인사 후 우리는 세트장을 빠져나왔다.
생각보다 정신없기도 했고 신선한 하루였다.
앞으로 당분간은 연말 대비해 일정이 거의 스톱 상태이다.
이번 주 스케줄은 간단한 잡지 인터뷰와 바이럴 광고 하나 정도다.
지금까지는 무난하게 흘러가서 이번에 처음으로 연말 무대에 서게 된다.
애들이 잘했으면 좋겠다.
* * *
“헉, 헉.”
“학. 어때요?”
하는 거 없다고 애들 안무 연습실에 끌려왔다.
오늘은 정말로 쉬는 줄 알았는데.
“느낌 괜찮긴 한데. 선생님은 뭐라셔?”
“이제 데뷔했다고 너희가 알아서 해보라고 하셔서요.”
“그래도 연말 무대는 한번 봐주실 만하지 않나.”
“강하게 크라던데요? 나중에 틀만 봐준다고 아직은 저희 보고 해보래요.”
내가 평가를 하자 호흡이 어느 정도 돌아온 이나라가 똑 부러지게 대답했다.
안무가 선생이 생각보다 독하게 키우시네.
“어차피 우리 무대 인트로랑 타이틀곡 해서 4분이지?”
“네.”
“그럼 인트로를 힘줄지 중간에 브레이크타임을 힘줄지 고민해야 할 거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둘 다 가져가는 건 별로인 것 같아.”
“그래요?”
내 말에 이나라가 생각보다 깊게 고민했다.
지금 짜고 있는 안무와 연출은 거의 이나라가 도맡아서 하고 있었다. 제일 실력이 좋은 것도 맞지만 기본 센스가 좋았기 때문이었다. 애들도 이나라의 말에는 군말 없이 따르는 편이었다.
“언니! 차라리 우리 인트로에 힘주자. 춤추다 브레이크타임 주고 들어가면 느낌 별로 안 살 거 같애.”
“아~ 우리도 시간 배정 더 받았으면 이런 고민 안 해도 되는데.”
“내년에 받자. 내년에.”
서지영도 내 말에 공감하는지 이나라에게 의견을 피력했고 박혜연이 괜히 배정 더 받았으면 좋겠다며 투덜거렸다.
이나라는 오히려 의욕을 더 불태웠다.
연말 무대 배정 시간은 그해 얼마나 잘 나갔느냐에 따라 받는 시간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내년에 우리. 연말에 또 같이. 무대에 설 수 있을까?”
“물론이지! 충분해!”
린이 내년 이야기를 꺼내면서 우울하게 이야기했다.
그런 린에게 유미소가 아주 밝게 웃으며 이야기했다.
“어비스 선배님들은 몇 분 배정 받았대요?”
“어비스는 아마 내가 알기로는 15분.”
“와, 대박….”
신희진이 가만히 있다가 내게 올해 핫 아이콘인 어비스의 배정 시간을 물어봤다.
내가 대답해주자 눈이 동그래지면서 감탄했다.
“그래도 이렇게 휴식기 가지면서 연말 준비하니까 좋다.”
“난 더 바쁘게 지냈으면 좋겠는데….”
“내년에는 더 바빠질 거야. 연말이라 그래.”
“그렇겠죠?”
애들이 내심 휴식기에 들어간 게 아쉬웠는지 한 소리 하길래 내가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쳐낼 거 다 쳐내고 좋은 스케줄만 먹이면 바빠지겠지.
지잉– 징– 지잉.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리길래 핸드폰을 꺼내서 봤다.
[홍승기 26기]
이 사람이 왜 나한테 지금 시간에 전화했지?
“네. 김현진입니다.”
- 여. 잘 지내시오?
“형. 끊어도 돼요?”
- 아, 알았어. 바쁘냐? 좋은 소식 들고 왔는데 매정하네.
통화 소리에 촬영장에서나 들릴 법한 소리가 몇 들리는 거 보니 쉬는 시간에 전화한 듯했다.
“애들 휴식기 들어가서 그렇게 바쁘지는 않고요. 좀 한가하다 싶으면 회사에서 절 다른 쪽으로 팔더라고요. 한가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촬영은 잘돼 가세요?”
- 어. 촬영은 순탄해. 이제 거의 다 찍기도 했고.
“다행이네요. 사고는 없었죠?”
- 고사 안 지내고 했는데도 신기하게도 큰 사고는 없더라. 미신이긴 해도 고사 안 지내면 망한다는 소리 있어서 불안하긴 해.
“에이, 요즘 누가 고사 지내요. 고사 지내도 그냥 간단하게 하지. 아무튼 좋은 소식은 뭐예요?”
예전에만 해도 고사를 꼭 하고 영화 촬영을 진행했는데 지금은 잘 안 하는 추세다.
그래도 계속 고사를 지내고 영화를 찍는 사람들도 많다.
미신이라도 조금 믿고 가야 마음이 편하다면서.
- 아, 그거? 너 담당이 스타즈 맞지?
“네. 스타즈 맞죠.”
- 감독님이 원하는 이미지에 맞는 애가 거기에 있는 거 같아서 추천해줬는데 한번 이야기해 보라고 해서. 회사로 컨택 하기 전에 너가 영업했다고 하라고 먼저 말하는 거야. 네가 화랑 해보라고 나한테 추천해 줬으니까 나도 한번 해준 셈이지. 아무튼 영화에 크게 비중 있는 인물은 아닌데. 꼭 필요한 신스틸러거든?
이게 은혜 갚는 제비인 건가?
감독이 이미지에 맞다고 오케이 했으면 우리만 오케이 하면 바로 될 듯했다.
“단역으로요? 저희야 좋죠. 누군데요?”
- 그… 걔 있잖아. 걔. 이름이 생각이 안 나네. 아 ,생각났다.
“네? 누구요?”
핸드폰 너머에서 들려온 이름에 순간 나는 당황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