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화. 나는 배가 고프다 (4)
“야. 거기! 조심하고. 여기에다가 설치해.”
배 PD가 온순한 성격인 줄 알았는데 현장에 오니 완전 달랐다.
프로그램 특성상 동시적으로 모든 출연진이 촬영하는지라, 우리 쪽으로 메인 PD인 배 PD가 안 올 거라 예상했는데 우리 쪽으로 왔다.
말로는 우리가 제일 신경 써야 할 게 많아서 왔다고 했는데 그게 사실일지 아니면 덕심일지는 모르겠다.
배 PD는 연출부를 지휘하며 요리 배틀의 구도를 만들고 있었다. 스튜디오에서 서로 마주 보는 형태로 요리 배틀을 하면서 한 화면에 모두 다 담을 수 있게.
인터넷 방송 세팅도 총 3개 카메라로 3개의 방을 켠다고 한다.
먼저 요리 배틀 하는 두 팀이 풀샷으로 잡히는 화면 하나.
신희진, 서지영, 박혜연 팀이 보이게끔 하는 화면 하나.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코, 린, 유미소가 보이는 화면 하나.
이렇게 3개의 카메라 세팅으로 서로 시청자와 소통하면서 진행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 모든 걸 정면에서 다각도로 다 찍는 방송국 카메라 18대.
각 개인을 찍는 전담 카메라와 풀샷과 바스트 샷을 찍는 카메라 그리고 메인 카메라까지 해서 18대였다.
우리 인원이 적었다면 카메라가 조금 더 적어졌겠지만, 인원이 많다 보니 카메라 대수도 많아졌다.
“와, 카메라 짱 많다.”
“원래 예능프로그램은 이렇게 많이 찍어요?”
어느새 메이크업이 다 끝나고 내 곁으로 다가와 놀라서 말하는 유미소와 서지영이었다.
“글쎄. 나도 이렇게 카메라가 많이 들어온 건 처음 보는데. 요즘은 다 이렇게 찍나 본데?”
“와, 이러면 진짜 코도 못 파겠다.”
“코를 왜 파.”
유미소가 더럽다는 듯 인상을 구기며 서지영을 밀면서 나무랐다.
“가려운데 어떻게 해. 긁어내야지.”
“아, 더러워. 너 예전에도 그랬어?”
“몰래. 조금?”
주눅 들어 있는 것으로 보였는데 평소의 스타즈였다.
“다른 애들은?”
“저희가 좀 일찍 끝났고, 다들 곧 올 거예요.”
“그래, 알았어. 뭐 만지지 말고, 폐 끼치지 말고. 잠시 나도 팀장님 뵈러 갔다 올게.”
이 둘을 붙여놓으면 무슨 행동을 할지 몰라 어린애 다루듯 이야기했다.
“우리 어린애 아니거든요~”
“아니거든요~”
유치하게 반박하는 애들을 놔두고 애들 스탠바이가 다 되었다고 알리러 남진수를 찾았다.
“남 팀장님. 저도 이런 말 안 하는데 진짜 부탁드려요.”
“그렇게 이야기하셔도 제가 힘이 있는 게 아니라서요.”
“오죽하면 저한테까지 이런 부탁 해달라고 하겠어요? 스트레스 장난 아니래요.”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상황을 보니 배 PD가 남진수에게 매달리고 있었다.
“아무튼. 이번 엔딩 무대는 헥사곤이 양보 한 번만 해주셨으면 해요. 하늘 측에서 너무 닦달해서 미칠 거 같다고… 담당 PD가 후배인데 히스테리가 방송국 내에서 자자해요.”
“저도 일단 회사에 이야기는 해보겠습니다. 근데 관례라는 것도 있고 솔직히 그렇게 가기가 좀….”
“얘기나 한 번 더 해주세요. 아무튼 그렇게 알겠습니다.”
“아우, 알겠습니다. 오늘 촬영 잘 부탁드립니다.”
“네. 고생하세요.”
“고생하세요!”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배 PD는 자리에서 떠나 세트장으로 향했다.
이야기가 마무리되어 가고 있던 시점인 듯했다.
한숨을 쉬는 남진수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팀장님. 애들 준비가 됐다고 합니다.”
“아, 그래?”
“네. 어차피 크게 준비할 건 없으니까요.”
“넌 메이크업 받았냐?”
“전 이미 받았습니다.”
“그래? 그래서 그런가. 좀 태가 나네.”
나는 이미 벌써 메이크업을 다 받았다.
남자라 여자보다 좀 더 적게 걸린 것도 있지만 내가 주가 되는 방송이 아니니까 그렇게 힘을 줄 필요는 없었다.
“근데 팀장님. 혹시 실례가 안 되면 배 PD님이랑 무슨 이야기하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아, 그거? 별거 아니야. 아니 별일 맞나? 이번에 어비스가 한국 시장은 조금 저조한데 아시아권이 터졌잖아. 그래서 보통 연말 무대 관례상 그해 가장 잘나간 애들 엔딩으로 세운단 말이야. 근데 또 하늘 기획사가 자기들이 엔딩한다고 방송국에 압박 넣고 있나 보더라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연말에 있는 무대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듯했다.
연말 엔딩이 가지는 의미가 그렇게 큰가?
“아, 그런가요? 그게 큰일이에요?”
“뭐. 우리 입장은 잘 모르겠다. 내가 어비스 담당은 아니라서. 근데 아마 자존심 싸움 아닐까 싶어. 하늘 기획사가 지금 20년 넘게 정상에 있었는데 어비스가 올해 아시아권 터져서 다 먹어버렸잖아. 그래서 그런 것 같어.”
“팀장님, 근데 그런 무대도 PD의 힘이 가장 큰 거 아닌가요?”
내가 남진수에게 물어보자 남진수는 자기 머리를 박박 긁으며 나에게 이야기했다.
“보통은 그렇긴 한데. 하늘 기획사가 연예계 짬밥이 20년인데. 그 정도 압박도 못 할까. 헥사곤도 담연 뒤에 있어서 힘이 없는 게 아닌데 이건 또 상대적인 거지. 어비스도 골치 아프긴 하겠다. 우리야 이번에 무대 들어간 것만 해도 감지덕지하지. 신인이 데뷔 두 달 만에 바로 연말 무대 올라가는 거니까.”
“참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이 바닥은.”
아니다. 알기 쉬운 동네다. 그냥 능력과 화제성, 인지도가 다다.
“뭐 화제성만 입증되면 방송국 입장에서는 만사 오케이니까. 아무튼, 준비는 다 했어? 첫 방송 데뷔네?”
“하하,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네요. 지금이라도 팀장님이 하실래요?”
“미쳤냐. 너나 해. 훠이 훠이.”
남진수가 그렇게 파리를 쫓아내듯 나를 가보라고 손을 휘저었다.
세트장 안으로 돌아오니 스타즈 애들이 메이크업을 다 받고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 갔다 오셨어요! 이제 곧 시작한대요.”
“여기 이거 마이크 착용해 주세요. 착용법은 아세요?”
“네. 알고 있어요. 주시면 제가 할게요.”
이나라가 나에게 볼멘 목소리로 말했다. 스태프가 마이크 때문에 날 찾고 있던 듯했다.
나는 이내 스태프에게 핀 마이크를 건네받아 착용했다.
내 생에 이걸 착용하는 일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배우들에게 착용만 시켜봤지 내가 착용할 거란 생각은 못 했다.
“모두 스탠바이 부탁드립니다! 이제 곧 인터넷 방송 키고 시작합니다!”
크게 들리는 조연출의 말에 우리도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지금도 준비하느라 바쁜 스태프들이었지만 한층 더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분주해진 현장을 보며 멀리서 오는 배 PD가 보여서 나는 인사를 하려고 엉덩일 뗐다.
“그냥 앉아요. 굳이 일어날 필요는 없어요.”
“PD님, 잘 부탁드립니다.”
일어나서 인사를 하려 했으나 배 PD의 제지에 엉거주춤하게 인사를 하고 앉았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만드는 처지에서 출연하는 처지로 바뀌니 신기하네요.”
심사위원에 우리 둘만으로는 부족하다 싶어 스태프 쪽에도 한 명 더 같이 진행봐 줄 수 있냐고 물어봤는데, 의외로 배 PD가 선뜻 나서서 자기가 심사위원이 되어주었다.
요즘은 방송에 스태프가 나오는 게 큰 흠은 아니어서 그렇게 부자연스럽지는 않지만, 메인 PD가 직접 나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시작 1분 전입니다!”
조연출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잘해보죠.”
“네.”
나와 배 PD는 특별 심사위원으로 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방송에 그렇게 많이 나오지는 않을 테지만 그대로 노출된다고 생각하니 꽤나 떨렸다.
“5! 4! 3! 2! 1!”
조연출의 카운트다운 소리가 들렸고 이내 방송이 시작되었다.
“둘, 셋.”
“안녕하세요! 반짝반짝 빛나는 무지갯빛 스타즈입니다!”
“와! 여러분들 저희가 집구석 Live에 출연하게 됐어요!”
“와아아~”
아이들의 인사와 함께 인터넷 방송이 켜졌다. 심사위원석에 있는 태블릿 PC로 배 PD와 채팅창을 보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너는내운명 님. 오늘 진행하는 게 뭐냐고요?”
서지영이 정면에 있는 태블릿 PC로 채팅을 읽고 발랄하게 진행했다.
“오늘 컨텐츠는 바로 요리입니다!”
“뒤에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희가 세 명씩 나눠서 요리할 건데요. 요리하면서도 여러분과 소통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한 명은 뭐하냐고요? 남은 한 명은 두 팀을 오가며 저희가 만든 요리를 먹고 심사를 해주는 심사위원이 됩니다! 요리를 할 줄 아는 리더 이나라 언니가 하게 됐습니다! 나머지 멤버는 오늘이 첫 요리라는 사실!”
“팀은 신희진, 서지영, 박혜연팀이 ‘우리는 오늘 분식집’팀이구요. 이에 대항하는 ‘오늘은 내가 파스타집 요리사’팀! 유코, 린, 유미소팀입니다!”
애들끼리 대본 합을 맞춰 본 듯했다. 물 흐르듯 빠르게 이야기를 했다.
서지영이 바로 이야기를 하자마자 뒤이어 신희진이 팀 설명을 했고, 유미소가 바로 이어서 심사위원 소개를 했다.
그리고 다시 신희진이 팀네임과 인원 분배를 알려줬다.
“네! 심사위원 이나라입니다! 그리고 저 말고도 심사위원 두 명이 더 계시는데요. 바로 프로그램 PD인 배명수 PD님과 저희를 최측근에서 도와주는 김현진 매니저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나라의 심사위원 소개로 애들의 오프닝이 끝났다.
조금 급하게 진행하는 느낌도 있었으나, 방송녹화 시간이 다른 예능과 달리 정해져 있기 때문에 빠르게 진행해야 한다.
다른 예능의 경우 정해져 있는 포맷에 한해서 다시 찍거나 길어지는 경우가 왕왕 있다.
집구석 Live의 경우 말 그대로 생방송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끊고 다시 갈 수가 없었다.
빠르게 애들이 각자 자기 위치로 가는 게 보였다.
“네! 이나라입니다! 저는 양 팀을 오가며 살짝씩 요리를 도와줄 건데요. 과연 어느 팀이 이기게 될까요?”
“HJ0415 님, 저희가 이길 것 같다고요? 감사합니다!”
이나라가 분주하게 양 팀을 오고 가며 오디오가 안 비게 노력하고 있었으며, 팀원들은 자기 팀 앞에 있는 태블릿 PC 화면으로 채팅을 읽으면서 요리하고 있었다.
“아, 지금 파스타팀 요리 속도가 굉장히 빠른데요. 미리 연습해 온 걸까요?”
“아니요! 그냥 블로그만 봤어요.”
“블로그로 요리를 공부한 파스타팀…. 기대해 보겠습니다!”
생각보다 요리 진척 속도가 빨랐다.
파스타팀이 엉성하지만, 요리를 체계적으로 하고 있었다.
면을 삶을 준비를 하는 유미소와 채소를 볶고 있는 린 그리고 소스를 만들고 있는 유코가 보였다.
의외로 맛있는 요리가 탄생할 수도?
“언니! 물 이 정도면 될까?”
“손등 위로만 맞추면 된다는데?”
분식팀은 밥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테이블 위에 있는 재료를 보니 김밥을 만들려는 듯했다.
“분식팀은 김밥을 만들려고 하는 것 같네요! 김밥의 가장 중요한 건 밥인데요. 시작부터 불안한 것 같죠?”
“분식킹 님. 물을 이렇게 넣으면 질어진다고요?”
파스타 팀에서 분식팀으로 넘어와 분주하게 양 팀을 오고 가는 이나라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분식팀들 또한 시청자들과 소통하면서 요리를 만드는 모습이 꽤 즐거워 보였다.
신희진이 밥을 하고 있었고, 서지영이 떡볶이 소스를 만드는지 열심히 큰 국자로 고추장과 함께 섞고 있었다.
박혜연은 김밥과 떡볶이에 쓸 채소를 다듬고 있는 것 같았다.
애들의 요리하는 모습을 구경하다 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패턴은 단순하게 요리를 하면서 시청자들과 소통하면서 진행하는 거지만, 이나라가 왔다 갔다 하면서 도와주기도 하고 끼어들기도 하니 의외로 지루해 보이지는 않았다.
옆에 있던 배 PD도 퍽 만족스러운지 괜찮다고 생각하는 듯 고개를 틈틈이 끄덕이고 있었다.
어느새 방송 진행도 상당히 흘러 요리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의외로 맛있을지도 모를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양 팀 모두 플레이팅을 하는 게 슬슬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다.
플레이팅을 할 게 있나? 싶기도 했다.
이내 이나라도 심사위원석으로 와서 자리에 앉았다.
우리도 어찌 됐든 카메라에 잡히다 보니 얌전히 기다리는 게 생각보다 힘들었다.
애들이 요리를 들고 오는 게 보였다.
분식팀은 떡볶이와 김밥으로 평범한 분식 메뉴를 들고 왔다.
겉모습만 보면 제대로 해온 요리 같았다.
파스타팀은 미니 버거와 크림스파게티가 보였고 미니 버거 옆에 마늘 바게트가 보였다.
마늘 바게트는 언제 만든 거지?
시식의 시간이 왔다.
맛있을까?
겉보기엔 맛있어 보였다.
“여러분들 이제 대망의 시식 타임입니다!”
“빨리 평가해 주셔야 해요. 시간 없어요.”
서지영이 진행을 보면서 이야기했고 뒤이어 신희진이 다급하게 이야기했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우리는 이내 숟가락과 젓가락을 들고 시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옆에서 탄식과 감탄이 나왔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