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화. 서서히 다가오는 그림자 (5)
“후~ 하~ 후~ 하~”
지금 나는 대표실 문 앞에 있다. 처음으로 정인수 대표를 만나는 자리였다.
좋은 의미로 만나는 게 아닌 것 같은 게 흠이었다.
그러다 보니 생각보다 더 긴장되었다.
나는 그냥 위에 보고하고 징계받는 선에서 끝날 줄 알았다.
정인수 대표는 세간의 평가로는 호탕하고 공과 사를 구별하는 아저씨 같은 이미지라는데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내가 아는 정인수 대표의 이미지는 딱 하나였다.
옛날에 봤던 농구 만화에 나오던 선생님 같은 이미지다.
이유는 거기에 나오는 선생님처럼 후덕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진을 봐도 놀랍게도 닮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정인수 대표를 정 선생님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마음을 다잡고 대표실 문을 두드렸다.
똑. 똑.
“들어와요.”
문을 두드리자 정인수 대표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내 문을 열고 들어간 대표실은 드라마에서 보던 대표실과 흡사했다. 소파와 테이블 등 모든 것이 드라마를 그대로 옮겨 논 듯한 모습이었다.
다른 것이 있다면 벽면에 가득한 소속 아티스트들의 포스터들과 다트판이었다.
그중에 가장 크고 눈에 띄는 곳에 있던 것은, 역시 정인수 대표가 프로듀싱한 어비스 그룹이었다.
“안녕하십니까? 4팀 소속 스타즈 로드 매니저 김현진입니다. 부르셨다고 해서 왔습니다.”
“하하하하, 자네가 그 매니저인가? 앉아요.”
“네. 대표님.”
“아무래도 내가 나이가 더 많으니 편하게 이야기하려고 하는데 괜찮죠?”
“네, 대표님. 편하게 대해주시는 게 제가 더 편합니다.”
정인수 대표는 묘하게 친근한 어투로 나를 대했다.
이내 나는 정인수 대표가 말한 대로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정인수 대표도 책상에 앉아 있다가 내 반대편 소파로 가 앉았다.
대표실 소파는 푹신하구나.
이 소파는 얼마나 할까?
소파에 대한 감상을 치우고 눈앞에 있는 대표의 모습을 보았다.
대표는 내가 본 이미지와 똑같았다.
처음 만나자마자 들었던 생각은 저 ‘턱살을 한번 만져볼 수 있을까?’였다. 왠지 탱탱할 것 같았다.
정인수 대표를 보니 긴장이 조금 사라졌다.
왠지 정인수 대표는 묘하게 편안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 같다.
그에 더해서 정인수 대표는 처음 본 나에게 예의를 갖춰 대해줬다.
내가 더 어리고 회사에 손해를 끼치고 온 매니저임에도 불구하고.
김민재를 들이박고 온 것은 회사에서는 정치적으로나 화제성으로나 손해인 장사다.
그런데 정인수 대표는 허허 웃으면서 날 대하고 있었다.
나는 그 이유를 몰라 어리둥절하기도 했고 오히려 풀린 긴장이 다시금 심장을 조여와 긴장이 아까보다 더 심해졌다.
“그래. 들이박았다고? 이유는 김민재가 김현진 매니저, 그러니까 네가 담당하는 스타즈 박혜연이한테 집적거려서고?”
“네. 맞습니다.”
“하하하, 이거 웃긴 놈이네. 혹시 들은 거 있나? 업계에서 너처럼 들이박았다는 매니저.”
유쾌하게 웃는 정인수 대표였다.
나 같은 미친놈이 또 있을까?
“들은 적 없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 정말 죄송하게 됐습니다.”
“아냐. 아냐. 내 연예인이 당하고 있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충분히. 근데 요즘에는 그러는 사람이 없어서 그래. 그리고….”
이유를 모르게도 정인수 대표는 나에게 한없이 호의적이었다.
그리고 이내 말하다 말고 뜸을 들였다.
“그거 나야.”
“네?”
“그거 나라고. 들이박았다던 매니저. 내가 어비스 키울 때 그렇게 했어. 애들 무시하는데 참을 수가 있어야지. 흐흐, 잘 풀려서 다행이었지. 아니었으면 나도 이렇게 못 컸을걸.”
나야 앞으로의 미래를 알아서 그랬지만, 정인수 대표는 그렇지 않을 텐데도 들이박은 게 정말 무대포구나 싶었다.
이 바닥에서 이미지 처신을 잘못하면 끝이다.
매니저나 연예인이나 그건 공통사항이다.
“김민재라…. 매니저가 감이 좋은 건가? 잘했어. 나는 네가 스타즈가 아니라 우리 회사 소속 아티스트 케어했으면 더 좋겠는데 말이야. 혹시 담당 바꿀 생각 있나?”
“그게, 제게 선택권이 있다고 한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저는 스타즈 애들 1년 동안 맡겠습니다. 어차피 1년이면 애들도 흩어지니까요. 두 달밖에 안 됐지만, 벌써 정이 들어버린 것 같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정인수 대표가 나에게 담당을 바꿔보겠냐고 말했지만 내가 제일 잘 아는 건 스타즈다.
다행히도 내 의견을 존중해줘서 바뀔 일은 없을 듯했다.
정인수 대표랑 이야기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손바닥에 땀이 찼다.
푸근한 옆집 아저씨 느낌이었는데 이 정도 위치의 사람이 되면 분위기도 자연스럽게 카리스마가 생기는 건가?
“뭐 특별한 건 아니고 궁금해서 말이야. 우리 회사가 담연에서 투자받고 규모가 급격히 커지다 보니, 회사 자체가 이윤만 추구하는 비즈니스 모델로 커졌어. 회사가 다 그렇다지만 원래는 이렇지 않았거든. 직원들한테 손쓰기도 전에 너무 사무적으로만 바뀌더라고. 그래서 나 같은 놈이 또 있다길래 반가워서 불렀어. 한번 잘 해봐. 회사랑 연예인이 다치지 않는 선에서.”
“네! 알겠습니다.”
“김민재는… 아마 우리한테 클레임 못 걸 거야. 이제 상당히 바빠질 거거든.”
“네?”
정인수 대표는 김민재가 표절 가수라는 것을 알고 있는 걸까?
말하는 게 의미심장했다.
“그래. 앞으로도 패기 있게 생활하고. 힘든 거 있으면 나한테 찾아와. 오랜만에 나 같은 놈 보니까 기분이 좋네. 너 저번에도 음악 방송 몸으로 뛰어서 막았다며? 참 드물어.”
“아, 뭔가 부끄럽네요.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 가봐.”
“네, 가보겠습니다. 고생하십시오.”
나는 정인수 대표에게 인사를 나가려고 하는데 정인수 대표가 나를 불러 세웠다.
“그리고 나가서 진석이… 아니 임진석 본부장 여기로 올라오라고 전해줘.”
“알겠습니다.”
내가 대답을 하자 나가보라는 제스처를 취하며 가보라고 손짓했다.
그리고 나도 다시 인사를 하고 대표실에서 나왔다.
대표실에서 나오자마자 심장이 쿵쾅거렸다.
예전에는 정인수 대표를 한 번도 만나지 못했었다. 직접 보니 편하기도 했으며 카리스마도 있었다.
그리고 정인수 대표가 성공한 것은 왠지 앞뒤 안 가리고 자기가 맡은 애들만 생각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맡은 연예인에게 뒤통수를 맞는다면 그거대로 뼈아프겠지만 그건 본인의 안목 문제라고 생각한다.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고 임진석 본부장을 찾으러 내려갔다.
* * *
대표실에서 내려와 1팀에 있는 임진석 본부장을 찾았다. 다행히 다른 곳에 안 가고 자기 위치에 있어서 금방 찾기가 쉬웠다.
“본부장님. 대표님이 잠깐 대표실로 올라오라고 하십니다.”
“대표님이? 당신은 누구세요?”
임진석 본부장.
정인수 대표와 같이 어비스를 키운 정인수 대표의 오른팔이다.
임진석 본부장이 의아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내 얼굴을 모르는 것 같았다.
“아, 먼저 제 소개부터 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저는 4팀에 스타즈를 담당하고 있는 로드 매니저 김현진입니다.”
“김현진? 이번에 김민재 물어뜯고 왔다던 또라이가 너야?”
내가 자기소개를 하자 임진석 본부장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벌써 소문이 회사에 다 퍼진 듯했다.
“네. 그렇게 됐습니다.”
“그래서 대표님 만나고 왔구만. 오랜만에 대표님 예전 모습 보는 거 같더라. 요즘 그렇게 패기 있게 덤비는 놈이 드문데 말이야.”
“아닙니다. 제가 너무 대책 없었습니다.”
“아냐. 아냐. 또라이도 한 놈쯤은 회사에 있어야지. 대표님이 부르신다고? 알았어, 가봐.”
임진석 본부장도 내 이야기를 했다. 임진석 본부장과는 싱겁게 이야기가 끝났다.
나는 곧바로 4팀 매니저 사무실로 왔다.
사무실로 오니 퀭하기만 하고 사람이 안 보여서 이진성 실장에게 전화했다.
신호음이 몇 번 가더니 이진성 실장이 전화를 받았다.
“실장님. 저 김현진입니다. 통화 가능하세요?”
- 어, 그래. 왜?
“대표님이랑 이야기 끝냈는데 어떻게 할까요?”
- 이야기했으면 됐지. 뭐 더 할 일 있냐? 대표님이 뭐라시던?
이진성 실장도 나를 이해해주는 눈치였다.
아니면 위에서 특별히 뭐라 안 해서 뭐라 안 하는 걸 수도 있는 것 같았다.
“대표님이 걱정하지 말고 그냥 하던 대로 하라고 하시던데요. 패기 있어서 좋다면서.”
- 야. 남들은 왜 너처럼 안 하는 줄 알아? 너처럼 해봤자 의미가 없으니까 안 하는 거야. 알아주는 사람 한 명도 없고. 너만 손해라고. 이번에야 대표님이 좋게 넘어갔지. 진짜 너도 별종이다. 별종이야.
그래도 오늘 알아주는 사람 한 명은 확실히 생겼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아니, 대표까지 두 명인가?
“그런가요. 그럼 오늘은 퇴근해도 될까요?”
- 어. 그래 퇴근하고. 스케줄은 진수한테 전달받아.
“네, 알겠습니다. 쉬세요.”
퇴근이다.
아직 시간은 평소 애들 스케줄 볼 때보다 이른 시간이었다. 그렇지만 체감은 이틀은 지난 느낌이었다.
오늘은 정말 롤러코스터 여러 번 타는구나.
얼른 집 가서 씻고 자고 싶은 마음이었다.
* * *
“들어가겠습니다.”
임진석 본부장이 정인수 대표의 대표실로 들어왔다.
“어, 왔나. 이번에 신입 햇병아리가 재밌는 일을 벌였어.”
“전 보자마자 대표님 떠올렸는데 대표님은 안 그러셨습니까? 이야기 들어보니 완전히 들이박은 거 같던데요?”
“하하하하, 맞아. 딱 내가 어비스 처음에 키울 때 모습 생각나더라고. 나도 그 친구처럼 우리 애들이 부당하다 싶으면 들이박았었지. 그게 계기가 되어 크기도 했지만 말이야.”
임진석 본부장과 정인수 대표가 아련한 표정으로 웃으며 이야기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김민재는… 어차피 곧 터트릴 건이긴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 그리고 진석아. 어차피 여기 둘뿐인데 편하게 이야기해 보자.”
정인수 대표가 말하자 임진석 본부장도 넥타이를 풀며 편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형님. 김민재 건은 아껴두고 있던 거라 조금 아까운데요. 이렇게 된 거 어떻게 할 거요?”
“상황이 이렇게 된 거 빨리 써야지. 이 바닥은 영원한 적도 없고 영원한 아군도 없어. 지금 봐. 내가 잘 나가기 시작하니까 여기저기서 견제가 들어와. 담연과 손잡은 게 아니었으면 진작 무너졌겠지.”
착!
정인수 대표는 책상에서 일어나 대표실 안에 있는 다트판에다 다트를 던지며 말했다.
“이왕에 우리 쪽이랑 엮어진 거 이번에 한 번 크게 판 벌이고 누가 장난질 치는지 간 좀 보려고 했던 건데.”
정인수 대표가 다트를 던지고 다시 다트를 챙겨 손에 굴리면서 다트판을 바라보았다.
“애초에 프로젝트 그룹 맡은 저의가 그거 아니요? 적당히 솎을라고.”
“그래. 더욱이 이번에 나온 애들은 대형기획사 출신은 없고 다 중소기획사 출신이란 말이야. 물어뜯기 딱 좋지. 이 바닥 파이는 한정되어 있는데 또 나눠질 거 같으니까 개처럼 물어뜯을 걸 예상했는데…. 물론 김민재가 우리와 엮이는 건 의외였지.”
정인수 대표는 말하고 나서 손에서 굴리던 다트를 다시 힘껏 다트판에 던졌다.
착!
“근데 또 일이 재미있게 흘러간단 말이지. 이 바닥은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을 해도 예측이 빗나가는 일이 빈번하니 너무 재밌어. 재밌단 말이야….”
정인수 대표는 다트판을 응시했다.
마치 아이가 흥미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듯이 눈을 빛내며 임진석 본부장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기존 전략은 폐기합니까?”
“아니. 기존 전략은 고수하고 햇병아리랑 스타즈 애들 좀 지켜봐야겠어. 애가 감이 좋더라고. 잘 쓰면 좋은 칼이 될 것 같아. 잘 키워보자고. 4팀에 연락해서 운전만 시키지 말고 필드도 뛰어다니게 하고 다른 현장도 보내고 열심히 돌려봐. 본인 의사 최대한 존중해 주면서.”
“그럼 그렇게 알고 진행합니다?”
볼일을 다 봤다는 듯 임진석 본부장이 나가려 하자 정인수 대표도 책상에 돌아와 앉아 말을 했다.
“그래. 그리고 김민재는 우리 쪽 소스인 거 안 들키게 해서 미스 매치 쪽으로 넘겨서 터트려. 이렇게 된 거 저번에 맞은 것까지 이번에 갚아줘야지.”
“알겠수다.”
임진석 본부장이 인사하고 나가자 고요해진 대표실에서 정인수 대표가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불나방이 될지. 사냥개가 될지. 아니면… 킹메이커가 될지. 요즘 같은 때에는 나 같은 놈은 없을 거로 생각했는데 말이야.”
정인수 대표는 혼자 있는 대표실에서 나직하게 말을 내뱉었다.
그러면서 생각에 잠긴 듯, 한 손으로는 턱을 괴며 다른 손 손가락으로 책상을 일정하게 두드렸다.
딱. 딱. 딱.
대표실에는 정인수 대표의 책상을 두드리는 일정한 소리만 들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