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화. 서서히 다가오는 그림자 (4)
내가 말을 하자 박혜연과 김민재 둘이 동시에 나를 봤다.
“뭐라고요?”
“그건 좀 곤란할 것 같다고.”
내가 인상을 굳히며 말하자 김민재의 얼굴이 다시금 팍 찡그려졌다.
“하, 말이 좀 짧은데?”
“짐승 새끼한테는 예의를 차리는 주의가 아니라서.”
내가 강하게 이야기하자 안에 있던 박혜연은 어찌할 줄 모르며 당황했고, 김민재는 어이없다는 듯 비웃으며 나에게로 다가왔다.
그리고 이내 김민재의 얼굴이 험악해지며 나에게 위협을 해왔다.
“아저씨. 미쳤어? 하루살이가 왜 이럴까? 아니지 연예인한테 붙어서 피 빨아먹는 놈들이니까 거머린가?”
내 앞으로 와 건들거리면서 한 손으로 내 어깨를 툭툭 밀면서 김민재가 이야기했다.
아주 자신만만한 얼굴이네.
그 얼굴 곧 부숴줄게.
“가수 일에 왜 매니저가 끼어들어? 이 바닥 룰 몰라? 매니저 초짜야?”
“나이 스물일곱 처먹고 미성년자한테 작업 거는 게 제정신이냐? 우리 상식선에서 이야기하자.”
“아니, 그건 당신이 끼어들 일이 아니고요. 나랑 쟤. 둘의 일이라고. 오케이? 아저씨 연애 안 해봤어?”
어이없다는 듯 하 하고 웃으며 김민재가 나에게 말했다.
어이가 없는 건 오히려 나였다.
이런 새끼도 탑 가수라고 뻐기는데 연예계는 정말 알다가도 모를 곳이다.
김민재의 행동에 피식 피식 웃음만 새어 나왔다.
“그건 둘이 사적으로 만날 때 일이고. 지금은 비즈니스로 만난 거 아니었나? 그 정도도 구분 못 하는 머저리였어? 아, 짐승 새끼라 구분 못 하겠네.”
“미친 새낀가? 빠꾸가 없네? 야. 그래서 레슨 해주고 있잖아. 내가. 친히. 시간 내서. 어?”
“레슨이 목 주위를 만지고 상대 배를 만지면서 하는 거였나. 언제부터? 난 그런 레슨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데.”
내가 조목조목 반박하면서 말을 하자 김민재는 당황한 듯 눈동자가 사시나무 흔들리듯 떨렸다.
그러다가 점차 침착해지더니 씨익 웃으면서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이 상황을 떨면서 지켜보던 박혜연에게 엉성하게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어…. 목 주위를 만진 건 발성할 때 어디 써야 하는지 알려주려고 그랬던 거야. 배도 그렇고, 다 이렇게 알려 준다고. 매니저가 뭘 알겠어? 노래도 모르는 새끼가. 그렇지 혜연아?”
“아, 저, 그게….”
김민재가 눈을 부라리며 박혜연에게 답을 요구했다.
박혜연은 그런 김민재의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눈을 피했다. 그리고 재차 대답하려는 박혜연의 목소리가 떨렸다.
“혜연이 곤란하게 떠넘기지 말고. 이렇게 몇이나 피해 봤을지 감도 안 잡히네. 그렇게 겁박 지르면 다 될 것 같지?”
그런 모습을 더는 지켜볼 수 없어서 나는 말을 끊고 들어갔다.
김민재가 영악하다고 생각했다. 본인의 위치도 잘 활용할 줄 아는 그런 놈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제일 곤란한 건 박혜연 본인일 것이다.
박혜연이 겁먹고 괜찮다고 하면 결국 김민재의 원하는 대답이 나오기 때문이었다.
난 더는 박혜연이 곤란해지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에 김민재에게 천천히 다가가 김민재 앞에 섰다.
그리고 내 얼굴을 김민재 귀에 댔다.
김민재가 움찔하는 기색이 있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김민재만 들릴 수 있게 조용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야. 표절로 음악 하는 새끼가 나대지 말고 찌그러져 있어. 조만간일 걸 너? 어? 하루살이인 나한테까지 정보가 들어오는 거 보면 이 바닥에선 이미 다 퍼진 거 같은데. 어때?”
“뭐? 이 미친 새끼가 뭐…라는 거야.”
내가 으르렁거리며 표절 이야기를 꺼내자 의외의 이야기였던 듯 김민재의 얼굴이 돌아가 바로 내 정면에 위치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위치에서 나는 한없이 흔들리는 김민재의 동공이 보였다.
그런 김민재의 눈을 응시하면서 나는 차분하게 입을 떼기 시작했다.
“나도 너한테 레슨 해주는 거야. 원 포인트 레슨. 어디 가서 못 받으니까 귓구멍 열고 잘 들어. 추락에는 날개가 없다. 어디 좋은 날개 구해보라고 미리 알려 주는 거야. 알았어? 물론 개같이 힘들겠지만 말이야. 잘 구해봐. 어디 쓸 만한 날개로 다시 날 수 있을지?”
그렇게 김민재의 얼굴에다가 조용히 이야기하고 김민재의 어깨를 두 번 툭툭 건드린 뒤 혜연이에게 다가갔다.
내 이야기가 제법 충격적이었던지 김민재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가만히 있었다.
“혜연아, 가자. 여기 더 있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네? 네.”
내가 말을 걸자 박혜연은 홀린 듯이 나를 바라봤다.
“나가자.”
계속 있어봤자 무의미하니 박혜연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손을 잡았다.
그리고 멍해 있는 김민재를 뒤로하고 박혜연과 같이 부스에서 나왔다.
밖에 있던 제이슨은 이 상황을 보고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이거 죄송하게 됐습니다. 그렇지만 일로 만나서 이러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
나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박혜연을 데리고 스튜디오를 나와 차로 향했다.
부스에서부터 차에 오기까지 박혜연의 손을 잡고 끌고 나오다시피 나왔는데 박혜연도 나도 차에 도착할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차에 앉아서 시동을 걸고 박혜연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가 괜히 나섰나?”
“아, 아뇨. 저도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긴 했어요. 근데 일단 일은 해야 하니까…. 근데 또….”
박혜연이 머뭇거리면서 말했다.
지금 상황에 겁이 났는지 목소리도 떨렸다.
“내가 보기엔 일보다는 널 어떻게 해보려고 한 거 같은데. 아니야?”
“그런 것 같기도 해요…. 근데 이래도 될까요? 혹시 그룹에 피해가 안갈까요? 제가 좀 더 능숙하게 대처했으면 매니저님이 안 그러셔도 됐을 거 같은데… 제가 문제인 걸까요?”
다시 또 돌아온 박혜연의 밑바닥 자존감 타임이었다.
“아니야. 넌 문제가 없어. 문제가 있는 건 그놈이지. 네가 문제라면 너한테 걔가 빠지게끔 한 너의 매력이겠지. 그리고 걱정하지 마. 너희한테 절대 피해 안 가. 상황이 안 좋아지면 내가 사표 쓰면 되지. 사표가 별거냐? 내가 나선 거니까. 신입 매니저의 당돌한 행동! 하고 끝나겠지.”
“그게 더 안 좋은 거 같은데요…. 그냥 제가 좀 더 사근사근 대할 걸 그랬나 봐요. 매니저님이 보기에 제가 불편한 티를 내니까… 그래서 걱정돼서 그런 거죠?”
“에헤이, 아니래도. 아무튼 걱정 마.”
박혜연이 짐짓 또 심각해지길래 우스꽝스럽게 이야기했다.
걱정하지 말라고 이야기는 했지만 사실 걱정은 됐다.
나야 어차피 망할 놈이니 거리낌 없이 들이박은 거지만 남들이 볼 때는 잘 나가는 가수한테 들이박게 된 거니까.
실직하면 뭘 해야 하나. 애들 계속 커가는 거 보고 싶은데.
잠시 서로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자 차 안이 고요해졌다.
그러다 잠시 후 박혜연이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수줍게 나에게 고맙다고 이야기하는 박혜연이었다.
그리고 다시 또 할 말이 있는지 머뭇거리며 뜸을 들였다.
“매니저님 대신 이제는 편하게 오빠라고 불러도 될까요?”
박혜연은 나를 부를 때 항상 김현진 매니저님이었다.
지금뿐만 아니라 예전에도 박혜연은 항상 나를 김현진 매니저님이라고 불렀다.
박혜연의 말을 들으니 이번 사건으로 인해 나와 박혜연의 벽이 허물어진 느낌이었다.
“어? 그게 편하면 그렇게 해. 나이 차 난다고 하도 그러더니만.”
“이제는 그게 더 편할 거 같아서요.”
“마음대로 해.”
“네. 오빠.”
갑자기 박혜연에게 오빠라는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나는 민망해서 코를 긁다가 차에 시동을 걸었다.
“근데 아까 김민재 선배님한테는 뭐라고 하신 거예요?”
“그따위로 행동하면 이 바닥에서 너랑 일할 사람 없다고 했어.”
내가 김민재에게 해준 말이 제법 통쾌했는지 박혜연이 꺄르륵 웃었다.
“근데 그런 거로 그렇게 충격받나?”
“제 딴에는 잘나서 아무도 이야기 안 했는데 내가 뭐라 하니까 충격받았나 보지.”
박혜연이 김민재한테 뭐라고 했는지 의문을 던졌지만, 내가 그냥 뭉그러트렸다.
표절했다고 어떻게 대놓고 말해.
이번에 안 터지면 나만 이상해지는데. 표절이라는 이야기에 쇼크받아서 김민재가 아무 행동 안 한 게 다행이었지.
“일단 회사로 갈게.”
“네.”
그 대화 이후로 회사로 가는 길은 조용했다.
서로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아주 조용히 회사로 돌아갔다.
* * *
회사에 도착한 후 어느 정도 안정된 박혜연에게 말을 걸었다.
“애들 어디에 있는지 알아?”
“네. 개인지도 끝나고 안무 연습실이래요.”
“그래? 알았어. 난 보고 하러 갈게. 오늘 고생 많았다.”
“아니에요. 오빠가 더 고생이었죠. 그리고 회사에서 뭐라 하면 제 이름 파세요. 혼자보단 둘이 책임 나뉘는 게 더 나으니까요! 가볼게요!”
박혜연이 자기 할 말을 빠르게 다다다 내뱉고 사라졌다.
이래서 내가 애들을 포기 못 하는 거다.
이런 애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그렇게 뚜드려 맞고 추락했을까.
여전히 의문인 점이었다.
일단 지금 상황에 집중하면 일은 저질러 버렸다.
사실 박혜연에게 집적대는 김민재가 아니꼬운 것도 있었지만 이대로 가면 또 저번과 똑같은 절차를 밟게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은 누군가 나서서 이 고리를 끊어야 했다.
고리를 끊으려면 벌어질 일을 알고 있는 내가 끊는 게 맞다.
남들은 모르니까.
또 김민재가 집적거린 것은 이번 피처링을 파토 내기에 내게 좋은 명분이 되기도 했다.
물론 내게만 좋은 명분이지 회사 입장은 아닐 것이다.
나는 어떻게 되려나.
“후….”
깊은 한숨이 나왔다.
막상 저지르고 보고하려니 캄캄했다.
어찌 되었든 일을 저질렀고 숨길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이내 나는 무거워진 다리를 옮겨 매니저팀 사무실로 올라갔다.
사무실에는 남진수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이진성 실장이 보였다. 이내 나는 이진성 실장에게 다가가 이야기했다.
“실장님.”
“어. 피처링 다 끝내고 왔어? 노래 괜찮디?”
“그게….”
“왜? 노래가 구려? 왜 이렇게 얼굴이 썩어 있냐.”
이진성 실장이 내 얼굴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이진성 실장의 행동을 보니 아직 김민재 측에서 우리에게 항의하지는 않은 듯했다.
아니면 내가 말해준 표절 이야기가 충격적이어서 항의할 생각도 못 하는 거던가.
사실 나도 터지는 것만 알지 이 바닥에서 저런 소스가 도는 건 금시초문일 거다.
그리고 내 말에도 허점은 분명히 있었다.
그런 정보가 우리에게 있었다면 우리가 왜 본인과 피처링 하는 걸 수락하고 만난 건지 이해가 안 돼야 했었다. 그렇지만 표절하는 게 발각 나 거기까지는 생각 못 하는 듯했다.
김민재도 머리가 있다면 회사에 도움을 청할 거고 그게 아니면 혼자 안고 터지겠지.
“김민재가 혜연이에게 너무 손대길래 제가 들이박았습니다.”
“뭐? 들이박았다고?”
내가 들이박았다고 하자 이진성 실장의 눈이 동그래졌다.
“네. 그래서 피처링이 파토 났습니다. 죄송합니다.”
“미쳤어? 네가 왜 들이박아? 박혜연은? 혜연이는 가만히 있었고?”
마치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 이진성 실장이 어처구니없어했다.
“혜연이도 거부하긴 했는데 김민재가 선배라 쉽게 거부를 못 하길래 제가 먼저 이야기했습니다.”
“하, 이거 미친놈이네. 골 아프네. 막 주먹으로 싸운 건 아닐 거고.”
머리를 싸매며 정말 미친놈 바라보듯 나를 보는 이진성 실장의 얼굴이 왠지 모르게 고소했다.
사람을 사람 대 사람으로 대해야지. 왜 상품 가치를 생각할까.
“하, 일단 자리 가서 대기해. 본부장님한테 보고하고 올 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이진성 실장은 그렇게 말하곤 바로 쌩하고 사무실에서 나갔다.
나는 내 자리로 돌아가 생각에 잠겼다.
정직일까. 면직일까. 해고일까.
나도 궁금해졌다.
어떻게 결론이 날까?
그렇게 회사 매니저팀 사무실에서 어떤 처분이 내려질지 얌전히 대기하고 있는데 멀리서 이진성 실장이 웃으면서 다가왔다.
잘못되지는 않은 것 같다.
안 좋은 일이었다면 웃으면서 나에게 올 리가 없었다.
“야, 김현진. 위로 올라가 봐.”
“네? 위요?”
“그래. 임마. 위.”
이진성 실장이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위라니 어디 말하는 거지?
“이 새끼 감이 없네. 척하면 척. 바로 좀 알아들어라. 어? 대표실로 올라가 봐. 대표님이 찾는다.”
“네?”
순간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왜 정인수 대표가 날 찾지?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