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화. 서서히 다가오는 그림자 (3)
“이리와. 작업실은 안쪽이야. 나만 믿고 따라와~”
“네!”
나는 시종일관 투명인간이 될 운명인가 보다. 나한테는 단 한 번의 시선도 주지 않고 김민재는 오로지 박혜연만 보고 있었다.
내가 연예계 생활이 짧다면 짧지만, 이렇게 안하무인인 사람은 없었던 것 같은데 남진수는 예전에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했는지 궁금했다.
남진수라고 김민재가 나한테 했던 행동이 달라질 리는 없었을 테니까.
김민재는 앞장서서 녹음실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나와 박혜연은 조용히 스튜디오를 둘러보면서 김민재를 따라갔다.
김민재를 따라 들어간 곳에는 한 명의 남성이 녹음실 기계 앞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들어온 우리를 보고 일어나서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김민재와 같이 작업하는 제이슨이라고 합니다.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스타즈에서 메인 보컬을 맡고 있는 박혜연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제이슨도 김민재와 똑같이 나를 무시할 줄 알았으나 나를 보며 내가 인사하기를 기다리는 눈치였다.
“안녕하세요. 스타즈 매니저 김현진입니다. 오늘 하루 혜연이 잘 부탁드립니다.”
“아, 매니저분이셨군요. 저희가 잘 부탁드려야죠.”
김민재보단 낫네.
이 사람은 그래도 사람 대 사람으로는 이야기하니까.
“혜연아. 노래 아직 못 들어봤지? 한번 들어봐. 내가 만든 것 중에 가장 잘 나왔어.”
“네!”
얼추 상황 정리가 끝나자 김민재는 박혜연을 바라보며 말한 뒤 본인이 만든 곡의 멜로디를 들려줬다.
멜로디를 듣는데, 문제가 있었다.
내가 알던 그 표절곡이 아니었다.
어떻게 된 거지?
노래는 좋았다.
쉽게 흥얼흥얼하면서 귀에 쏙쏙 박히는 곡이었다. 확실히 곡을 만드는 능력은 뛰어났다.
그 능력이 표절하는 능력인지 아니면 표절해서 자기 것으로 만드는 능력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 곡을 들어본 적이 없다.
나비효과로 인해 바뀐 것일까?
쉽사리 결단을 내릴 수가 없게 되었다.
“와! 좋아요! 근데 오늘 듣고 제가 바로 잘할 수 있을까요?”
“원래는 더 전에 주려고 했는데 내가 시간이 안 나기도 하고 빨리 너랑 합 맞춰 보고 싶어서 바로 오라고 한 거야. 그리고 그렇게 걱정하지 마. 내 프로듀싱 능력을 믿어. 이렇게 말하긴 조금 그렇지만 이래 봬도 지금 내가 잘 나가잖아?”
“네! 알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이구, 귀여워라.”
관심 있는 이성 앞에서 허세는 남자의 기본 패시브인가 아니면 본능인 걸까.
박혜연 앞이라고 우쭐대면서 말하는 김민재 꼴을 보니 어제 먹었던 술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일단 내가 먼저 녹음할 테니까 멜로디랑 분위기 좀 봐. 작사는 다 했으니까.”
“네!”
그래도 지금 할 일은 확실히 아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아, 매니저님은 일 있으시면 나가서 일 보셔도 돼요. 조금 오래 걸릴 수도 있으니까요.”
“아닙니다. 혜연이 매니저로 왔는데 계속 있어야죠. 전 괜찮습니다.”
김민재가 오늘 처음으로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날 내쫓으려 하는 게 너무 눈에 보였다.
미쳤다고 두고 나가겠냐?
박혜연이 혼자 부스 안으로 들어가기 전까진 안 나갈 거다.
“안 그러셔도 되는데.”
내가 거부하자 김민재가 얼굴을 찡그리며 이야기했다.
“저는 그래도 매니저님이 같이 있는 게 더 좋아요. 혼자는 조금 어색해서….”
“그래? 혜연이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런 거지~ 알았어.”
박혜연의 말에 다시 헤실헤실거리면서 말하는 모습에 그 얼굴에 한 대 치고 싶은 마음이 강렬하게 솟아올랐다.
김민재는 이내 녹음 부스 안으로 들어가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김현진 매니저님. 저희는 앨범 녹음할 때 시간 꽤 걸렸잖아요. 민재 오빠는 금방 끝내시겠죠?”
“그러지 않을까? 아무래도 베테랑이니까.”
“민재는 한 곡 녹음하는 데 두 시간 이상 걸린 적이 없어요. 타고났죠. 빠르면 한 시간 안에도 녹음 끝내요.”
“와! 정말요? 진짜 짱이다.”
나와 박혜연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곁에서 듣던 제이슨이 한마디 하며 거들었다.
스타즈 애들은 앨범 녹음할 때 시간이 조금 걸렸다.
그렇다고 많은 시간이 걸리진 않았지만, 시간이 좀 더 걸린 것은 아무래도 프로듀싱을 맡은 사람이 생각보다 깐깐한 것도 한몫했다.
요즘은 옛날처럼 무식하게 6시간 12시간씩 녹음하지 않는다.
기술이 좋아져서 기계로 해결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난 아직 옛날 사람이라 그런지 가수 날것의 노래가 더 좋은 것 같다.
“하하, 혜연 씨도 익숙해지면 금방 하실 거예요. 민재야, 트랙 1부터 시작할게.”
제이슨은 박혜연을 바라보며 사람 좋은 미소를 띠며 대답을 해주고 바로 기계를 조작해 김민재에게 말하고 바로 녹음을 시작했다.
확실히 김민재는 잘했다.
본인이 노래에 직접 관여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포인트는 귀신같이 잡았고 금방금방 진도가 나가게 되었다.
어느새 김민재가 부르는 파트가 끝나서 부스 안에서 나왔다.
“오빠 어때? 괜찮지? 이제 혜연이가 해볼래?”
“네! 노래 진짜 좋은 것 같아요! 잘 해보겠습니다!”
박혜연이 그렇게 김민재의 말에 의욕적으로 화답하고 녹음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혜연이가 부스 안으로 들어갔으니 별다른 일은 없겠지?
일하는 모습을 보니 일할 때는 그래도 사람답게 하는 것 같았다.
그와 반대로 나는 지금 상황이 내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자 너무 답답했다.
“저는 잠깐 바람 좀 쐬고 와도 될까요?”
“네. 그러세요.”
나간다고 이야기하니 다시 또 김민재의 관심을 받았다.
정말 일관적인 친구다.
나가기 전에 부스 안에 있는 박혜연에게 이야기하러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혜연아, 나 잠깐 통화 좀 하고 올게. 일 관련된 거라…. 녹음 잘하고 있어.”
“네, 알겠습니다! 다녀오세요.”
박혜연이 밝게 화답해줬다.
그렇게 박혜연에게 말하고 스튜디오가 있는 건물을 나와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레드 하나 주세요.”
“4,800원입니다.”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고 바깥으로 나왔다.
나는 원래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담배를 피우는 경우는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뿐이었다.
지금도 그랬다.
답답한 마음을 풀 수가 없을 때는 항상 이 담배만 찾았다.
이유는 없었다.
그냥 한 모금 마시고 뱉을 때의 그 청량함이 잊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 시발. 어떻게 하지? 후….”
담배를 내뱉으면서 육성으로 한탄이 나왔다.
그리고 내적 갈등이 너무 심해졌다.
예전과 달라졌는데 그냥 놔둬도 되지 않을까?
예전 노래로 걸린 거잖아? 그리고 김민재의 방금 노래면 시장에서 먹힐 노래 같은데?
괜히 건드려서 화제성과 인지도만 손해 보는 게 아닐까?
아니다.
언젠간 예전 노래와 같이 무더기로 걸릴 거다.
이번에도 똑같이 내리막길 가겠지. 그렇지만 이번에 터진다는 보장도 없잖아?
혼자서 미친놈처럼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면서 무수히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계속해서 상념이 끊이지 않아 애꿎게 담배만 물다가 담배를 두 개비 태우고 나니,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
일단 상황을 보고 기회를 보자.
방금 타들어 간 담배 두 개비처럼 내 속도 계속 타들어 갔다.
그렇지만 해결은 해야 했다.
* * *
녹음실에 다시 도착해서 보니 계속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듣다 보니 이상함을 느꼈다.
내가 나가기 전에 들었던 멜로디와 달라진 것이다. 그리고 이 노래는 분명히 내 기억이 맞는다면 표절로 터진 그 노래였다.
“아까 그 곡보다는 이 노래가 더 맞는 거 같은데?”
“형도 그렇게 생각해? 나도 이걸로 가는 게 나은 것 같아. 내가 녹음한 거는 일단 킵해두고 이걸로 가자.”
김민재와 제이슨의 대화를 듣다 보니 전에 노래는 박혜연과 어울리지 않아서 다른 곡을 고른 것 같았다.
내가 나간 20분 아니 30분도 안 되는 사이에 벌어진 상황에 얼떨떨했다.
“혜연아. 좋았어. 아까 그 곡보다는 이게 너랑 나랑 잘 어울릴 거 같거든? 이걸로 해보자.”
- 네.
박혜연의 목소리가 기계 속에서 흘러나왔다.
“그럼 다시 해볼게.”
김민재가 그렇게 말하고 다시 노래를 틀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박혜연의 가사가 맞았다. 파트도 같았으며 모든 게 같았다.
그럼 예전에도 처음에는 다른 곡 했다가 두 번째 곡으로 바꾼 것이었나.
“혜연아. 그 끝 음 처리가 조금 이상하거든? 조금 더 편하게 해볼래?”
김민재는 계속 끊임없이 박혜연에게 디렉팅을 주고 있었다.
일적인 부분만 보면 확실히 프로는 프로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신은 사람에게 모든 것을 주지 않은 걸까.
기회를 보며 언제 김민재에게 넌지시 표절을 알고 있다는 티를 낼까 고민하던 찰나에 김민재가 녹음을 멈췄다.
“아, 이 느낌이 아닌데. 혜연아. 잠깐 들어가서 팁 좀 줄게. 형 저 잠깐 부스 안에 갔다 올게요.”
“어? 그래.”
김민재는 박혜연의 노래가 무언가 마음에 안 드는지 녹음하다 말고 녹음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김민재가 들어가자 제이슨이 혀를 차며 조용히 혼잣말로 말했다.
“쟤 또 시작이네.”
제이슨은 별다른 일이 아니라는 듯 가지고 있던 핸드폰을 만지며 부스의 안의 일에 관심을 껐다.
그러나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김민재가 녹음 부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박혜연 옆에 찰싹 붙어서 스킨십하며 이야기하는 행동을 보니 기회를 본다는 생각이 사라졌다.
상황을 보니 예전과 같이 표절곡으로 녹음을 진행할 생각인 것 같다.
그리고 지금 이 곡으로 결정이 난다면 결국, 예전과 같은 상황의 반복일 뿐이다.
그렇다면 박혜연이 괜히 김민재의 비위를 맞춰가며 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이 이슈를 막으려면 둘 중 하나였다.
표절이 터지기 전에 터트리거나 녹음을 아예 막거나.
아무리 현재 김민재의 가치가 높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썩은 동아줄이다.
추락하는 데는 날개가 없다.
왜 힘껏 날개를 펴서 날고 있는 아이들의 날개를 망가트리려 하나.
결정적으로 김민재가 박혜연에게 하는 행동을 나 자신이 용납 못 하겠다.
박혜연의 성격상 다 받아주면서 하하 호호 웃을 것이다.
그리고 노심초사 자신 때문에 혹시라도 그룹에 피해가 갈까 봐 선배인 김민재를 쉽게 밀어내지 못하는 거겠지.
그럼 내가 나서면 된다.
나는 이들의 매니저다.
나는 뒷일을 아는데 무엇이 문제일까. 어차피 추락하는 새는 김민재일 텐데.
설령 이번에 내가 하는 행동으로 인해 내가 스타즈 매니저 자리를 잃게 되더라도 다르게 도와줄 방법은 많을 거라 생각한다.
이성적으로 본다면 애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이 자리에서 참아야 하는 게 맞다.
애들한테 붙어서 매니저를 하는 것이 더 오래 케어할 수 있으니까.
그렇지만 그렇게 행동하면 회사에서 비즈니스로 애들을 대하는 거랑 나랑 다를 게 무언가.
나도 똑같은 놈은 되지 말자.
이내 나는 마음을 굳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음? 무슨 일 있으세요?”
“이건 아닌 것 같아서요.”
내 인기척 소리에 제이슨이 핸드폰을 하다말고 나를 쳐다봤다.
“예?”
“잠시 안에서 이야기 좀 하겠습니다.”
내가 그렇게 이야기하고 부스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저지하려는 제이슨의 몸짓이 보였다.
그러나 내 기세가 워낙 사나워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가서 둘의 대화를 들었을 때 그나마 잡고 있던 이성의 퓨즈가 끊어졌다.
“이제 시간 좀 비겠네? 언제 한번 만날까? 나중에 다시 녹음실 놀러 올래? 그러면 내가 좀 더 자세히 알려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아하하, 정말 감사한데요. 근데 그게… 제가 스케줄도 있고… 또 혼자 밖으로 다니기엔 조금 그렇기도 하구….”
박혜연은 김민재의 말에 어색하게 웃으면서 조금씩 거부하고 있었다.
김민재는 내가 방음실 안으로 들어온지도 모르는 듯했다.
이 발정 난 개새끼가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그건 좀 곤란하겠는데.”
그렇게 나는 뒤가 없는 사람처럼 돌진하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