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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도 다시 매니저!-27화 (27/200)

제27화. 서서히 다가오는 그림자 (1)

“이번에 스타즈 박혜연에게 피처링 의뢰가 왔습니다. 상대는 요즘 핫 아이콘인 김민재고요.”

“이건 받는 게 맞지 않을까요? 대표님은 뭐라고 하십니까?”

“대표님이 4팀에서 자체적으로 회의해서 결정하라고 해서 이 자리를 연 거 아닙니까?”

마케팅팀과 기획팀 그리고 매니저팀 세 팀에서 피처링 건에 대해서 갑론을박을 벌이며 의견을 내고 있었다.

내가 이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게 신기했다. 사람은 이래서 능력이 있어야 하나 보다.

신기한 마음은 떨쳐내고 이내 나도 회의를 경청하기 시작했다.

“근데 김민재 걔 행실 안 좋은 거로 유명한데 괜찮을까요?”

“행실이 안 좋아도 능력은 좋잖아? 능력만 좋으면 됐지, 뭘. 이 바닥에 인성 따지고 일하면 일 같이할 사람 아무도 없어.”

“뭐…. 그렇긴 하죠. 하기야 별일 있을까요?”

남진수가 이야기하자 이진성 실장이 웃으면서 능글맞게 맞받아쳤다.

김민재에 대한 평판은 업계에서도 깨끗하지가 않았다.

그 이전에 나는 김민재 그 새끼 표절 가수예요. 라는 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참았다.

김민재를 본 이후부터 열심히 노래를 찾았는데도 어떤 노래로 표절했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내가 기억하기론 노래 제목이 불어였던 것 같기도 하고 라틴어였던 것 같기도 한데 정확하게 기억나지가 않았다.

내가 기억나는 불어는 봉쥬르뿐이다.

단순 영어였으면 쉽게 떠올랐을 텐데.

다시 탈력감과 무기력함이 나를 덮쳐왔다.

예전에는 이걸 누가 어떻게 찾은 건지 너무 신기했다.

“매니저팀은 오케이인 것 같고, 마케팅팀은요?”

“엮이면 이슈는 될 것 같아요. 이미지 소비도 크지 않고요. 가수가 피처링 하는데 뭐 문제 있을까요?”

“우리 기획팀도 기존 전략에 영향 가는 선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피처링은 하는 거로 이야기하겠습니다.”

“날짜는 언제가 좋을까요?”

“회사끼리 일정 조율해서 스케줄 잡고 매니저팀으로 넘기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아, 저기….”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나는 손을 들고 말을 꺼냈다.

이내 회의실에 있는 모든 인원이 나를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의견이 떠올랐는데 별로인 것 같아서요.”

김민재에 관하여 이야기하려 했으나 분위기에 숨이 막혀오기도 했고 회의하고 있는 사람들을 설득시킬 자신이 없었다.

“뭐야. 싱겁긴.”

“뭐 그래도 분위기에 겁 안 먹고 의견 제시하려는 자세는 좋네요.”

이진성 실장과 기획팀 사람이 내가 한 행동에 관해 이야기했다.

내가 말한 이후로 피처링 건은 서로가 빠르게 의견이 모아지며 통과가 되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라는 생각이 강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 갈피를 못 잡았다.

썩은 동아줄을 알고 잡는 게 이런 기분인가 싶었다.

“그럼 다음으로는 예능 프로그램 일정에 관한 건데요. 추천 프로그램 있습니까?”

“섭외 온 프로그램이 있나요?”

“섭외는 몇 개 오긴 했습니다. 근데 그렇게 큰 메리트 있어 보이지는 않던데요. 다 하락세인 프로그램이라.”

다음 안건으로 마케팅팀과 기획팀에서 프로그램에 관해 이야기했다.

두 팀 모두 별다른 생각 없이 주는 대로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예전에는 이때 표절 논란이 터져서 프로그램 들어가는 게 다 엎어졌다. 어쩔 수 없이 강제적으로 휴식기를 가졌었다.

그래서 연말 무대도 올라갈 수 있었는데 못 올라갔다.

가수에겐 연말 무대가 몹시 중요하다.

음악방송 1년 뛰는 거보다 연말에 올라가는 게 홍보 효과가 더 좋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무대에 선다는 것 자체가 그해 대세 가수 반열에 들어가 있다는 증거기도 했다.

지금 상황은 표절을 빨리 터트리던가. 아니면 노래를 아예 녹음하지를 말던가.

둘 중 하나밖에 없다. 녹음하고 난 다음이면 너무 늦다.

“매니저팀에선 정보가 없나요?”

“저희도 딱히 정보가 없습니다. 필드 뛰어다녀도 소득이 없더라고요.”

“이제 슬슬 활동 접고 연말 준비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 전에 뭐 하나라도 찍었으면 좋겠는데요.”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조금 더 지켜보고 그 안에 좋은 프로그램이 안 나오면 기존 섭외 요청 들어온 것 중에 진행하는 거로 하죠.”

“네. 알겠습니다.”

앞으로의 방향을 잡는 회의가 끝나고 마케팅팀과 기획팀은 회의가 끝나자마자 빠르게 나갔다.

그들은 우리 팀만 맡는 게 아니라 전반적으로 회사 전체 연예인들을 맡기 때문에 생각보다 두 팀은 상당히 바쁘다.

이 바닥은 역시 능력이다.

김민재 피처링 건도 그렇고 프로그램도 그렇다. 화제성이 있으면 섭외는 가만히 있어도 잘 온다.

이 중에 마음에 드는 게 없다면 이제 필드를 뛰어서 만드는 방법뿐이다.

남아 있던 이진성 실장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아, 그리고 현진아.”

“네?”

“배우팀에서 너 좀 빌려 달래.”

“예??”

이건 또 무슨 소리야.

* * *

“나는 이곳을 포기할 수 없소.”

“…….”

나는 지금 혼자 있는 거다. 뒤에는 아무도 없다.

혼자다. 혼자. 혼자….

“그대들은 이곳을 떠나 내려가시오. 나는 이곳에서 뼈를 묻겠소.”

“형. 그만해요”

“왜 그러느냐?”

또 시작했다.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홍승기의 배우병이 도졌다.

오늘은 홍승기의 일일 매니저가 되었다.

스타즈 애들이 휴식기에 들어감에 따라 할 일이 없어져 배우팀으로 지원 왔다.

물론 내 자의는 아니고 타의다.

왜 굳이 날….

애들 쉬면 나도 좀 쉬게 해주지.

홍승기가 요청한 듯싶었다. 아무래도 아는 얼굴이면 더 편하니까.

“캬, 난 이 대사가 너무 마음에 들어. 얼마나 우직하냐?”

“형, 사극 톤으로 말 안 하면 안 돼요? 듣기 힘들어요.”

“배우는 그 배역에 몰입해야 해. 일상에서도 몰입하고 있어야 촬영장에서 실수 안 하고 바로 나오지.”

“그건 형의 연기론이고요. 보통은 안 그런다고요.”

홍승기의 개똥철학도 본인의 마음에 드는 대사처럼 우직했다.

“닥치고 운전이나 해.”

“와, 진짜 내가 어?”

“이 새끼 맞먹네? 학교 졸업하면 끝이냐?”

“…곧 도착합니다.”

내가 이 인간이랑 말을 섞느니 개랑 말을 섞지.

왈왈.

다행히도 홍승기는 화랑의 배역을 따냈다. 그것도 생각보다 꽤 비중 있는 조연 배역이었다.

먹이를 주긴 했지만 잘 받아먹는 것도 능력인데 확실히 홍승기는 능력이 있다.

화랑은 신라의 왕세자가 당나라로부터 건너온 여자에게 반함으로써 이야기가 시작되는 간단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 여자로 인해 신라와 당의 전쟁이 발발되고 신라가 화랑의 활약으로 이긴다는 그런 이야기.

내용을 좀 더 풀면 화랑의 활약을 학도병들이 고지를 수호했던 영화처럼 꾸민 영화다. 그것의 사극 버전이 화랑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영화가 흥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쉽게 말하면 빈집털이였다.

내용으로는 정말 별거 없지만, 영상미가 좋아서 보는 맛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봉 시기에 볼만한 기대작들이 죄다 망해버려서 상대적으로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다.

“리딩 때나 잘해요. 오늘 전체 리딩이잖아요.”

“리딩 그거 하면 되지. 뭐 어렵냐.”

확실히 연기를 잘하는 사람들은 관록이 있다.

물론 연기를 못하는 사람이 저런 소리를 했다면 ‘저 병신 꼴값 떨고 있네’가 되었겠지만 잘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모든 지 한 끗 차이인 것 같다.

홍승기가 다른 건 몰라도 연기로는 동년배 중에서 누군가에게 밀릴 실력은 아니다. 그래서 이번 배역도 쉽게 따낸 것 같았다.

홍승기랑 편하게 말하면서 오다 보니 금방 전체 리딩 장소인 한우리 필름 제작사에 도착했다.

안에는 아직 주연과 감독 등 헤드급들은 아직 없었고 조연 및 단역들이 앉아 있었다.

“안녕하세요. 홍승기입니다. 화랑에서 무호 역을 맡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홍승기가 인사하자마자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인사를 받아줬다.

그렇게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헤드급들이 들어왔다. 헤드급들은 따로 먼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다른 장소에서 이동해서 온 듯싶었다.

“안녕하세요. 화랑을 맡은 감독 이충재입니다. 이렇게 만나게 돼서 반갑습니다. 잘해 봅시다.”

짝짝짝

간단한 감독의 자기소개와 함께 화랑의 리딩이 시작되었다.

리딩을 보고 싶었지만, 자리가 협소한 관계로 매니저들은 다 빠져나가 기다리기로 했다.

아무래도 전체 리딩이면 소요시간이 길어지는 관계로 나는 근처 카페로 이동했다.

다른 매니저들이랑 말이라도 붙여볼까 했지만, 어차피 일일 매니저라 굳이 말을 걸 필요성은 못 느꼈다.

카페에 앉아서 열심히 인터넷 서핑을 하며 노래를 찾았다.

도대체 김민재는 어디에서 노래들을 따와 표절한 걸까?

확실한 건 웬만한 전문가가 아니고서야 이 사건을 터트린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아무나 들어도 알 정도였다면 이미 터졌을 거로 생각한다.

생각보다 용의주도한 놈이다.

정신없이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핸드폰으로 정보의 바다를 헤엄쳐도 나오지 않았다.

장시간 핸드폰만 보니 눈이 뻐근해지기 시작했다.

띵-

[리딩 끝났다.]

홍승기가 핸드폰 문자 메시지로 리딩이 끝났다고 연락이 왔다.

밖을 보니 밝았던 하루에서 서서히 어두컴컴해져 가며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이제 저녁 시간인데 혹시 회식 같은 건 안 하겠지?

머릿속으로 조금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영화판은 제작사와 감독 성향 그리고 현장 분위기에 따라 다르지만, 술 먹자판인 경우가 굉장히 잦다. 그날 촬영 끝내고 술 먹고 다음 날 촬영하고 반복인 생활이다.

불길한 생각을 머리를 흔들면서 털어내며 카페에서 나와 한우리 제작사로 향했다.

이제 홍승기만 집에 태워서 보내면 오늘 할 일도 끝난다.

혜연이 피처링을 언제 할지 궁금한데 언제 하지?

징 – 지잉 – 징

핸드폰으로 남진수의 전화가 걸려왔다. 양반은 못 되는 것 같다.

“네. 김현진입니다.”

- 어, 현진아. 바쁘냐?

“아뇨. 지금 막 리딩 끝내고 안에서 배우들이랑 제작진들 이야기 나누고 있어요.”

- 다행이네. 내일 애들 팬사인회 있는 거 알지?

“네. 알고 있습니다.”

고작 이걸로 전화했을 리가 없는데.

이미 전달받아 알고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 그거 끝나고 혜연이는 바로 피처링 하러 가야 해.

“피처링 날짜가 잡혔나요?”

드디어 잡혔다.

바로 가야 한다고 하니 그럼 박혜연을 데리고 갈 사람이 필요하다. 예전에는 남진수 혼자 박혜연과 같이 갔었다.

- 어. 일정이 그때밖에 안 된다더라.

“어… 음…. 팀장님. 혹시 혜연이 데리고 제가 가도 될까요?”

- 응? 네가 데리고 간다고? 음, 뭐 그래라.

“알겠습니다!”

남진수는 조금 떨떠름해 했지만 승낙했다.

누누이 생각하는 거지만 사람은 능력이 있어야 한다.

내가 예전처럼 어리바리했으면 이렇게 쉽게 가라고 안 했을 거다.

적극적으로 행동한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동행해서 상황을 살펴봐야겠다.

혹시라도 그 자리에서 김민재가 표절했다는 증거가 나올 수도 있는 거니까.

가기 전에 까발려지면 정말 최고였지만 이젠 차선을 찾아야 할 때다.

통화하면서 오다 보니 금방 리딩 장소였던 회의실에 도착했다.

나 말고도 관계자 매니저들이 상당수 있었다.

“현진아. 오늘 회식한대.”

홍승기가 회의실 안에서 나오면서 이야기했다.

내 동공이 흔들리는 걸 숨기지 않고 홍승기를 애처로운 표정을 지으며 쳐다봤다.

안 가면 안 될까요?

“아, 그래요? 가실 거죠?”

“당연히 가야지. 얼마 만에 술인지 모르겠다.”

홍승기는 당연히 그 눈빛을 무시했다.

조졌다.

혹시 몰라서 남진수가 내 스케줄은 팬사인회 이후로 잡아놔서 다행이었다. 종종 이렇게 회식이 잡힐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이제 촬영 들어가면 못 마시는데 오늘 달려야지. 너도 같이 가지?”

술 귀신인 홍승기도 촬영 들어가면 술을 끊었다.

“일일 담당이어도 제가 매니저인데 가서 상황 봐야죠.”

“아, 뭔 상황을 봐. 그냥 마셔. 대리 부르면 되잖아.”

너랑 마시면 내일 내가 정상적으로 못 나가요.

오늘 하루도 무사히 퇴근하기는 글렀다.

제발 두 발로 집에 갈 수 있게 해주옵소서.

홍승기랑 술을 같이 마신 기억 중에는 네 발로 집에 간 기억밖에 없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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