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화. 음악 방송에서 생긴 일 (3)
“안녕하십니까! 반짝반짝 빛나는 무지갯빛 스타즈입니다!”
이른 아침부터 방송국 곳곳을 누비며 인사를 하러 다니고 있었다.
이러다 허리디스크 올 수도 있겠다 싶을 만큼 인사만 했다.
인사를 받아주는 사람은 각양각색이었다.
“어~ 너희가 이번에 데뷔한 걔네야? 이야, 요즘 애들 무섭게 치고 올라오네. 데뷔한 지 일주일 만에 1위 후보야? 잘 부탁한다.”
말에 가시를 세우면서 견제하는 사람도 있었고.
“와! 나라야! 데뷔 축하해! 오늘 1위 발표라면서? 진짜 결실 봤구나! 너무너무 축하해! 진짜!”
들어가서 인사를 하고 훈훈하게 덕담을 나누며 방방 뛰면서 축하해주는 연습생 시절 동기들도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안타깝고 압권이었던 것은 언제 다시 만날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아이돌이었다.
“우리 다음 음악 방송에서 꼭 만나자. 이번만 만나는 게 아니라. 다음에도 꼭.”
“진짜 꼭 만나자. 우리 힘겹게 왔잖아.”
무수히 많은 아이돌이 사라진다.
한 달에 데뷔와 컴백하는 가수 팀은 한 달에 약 80여 팀 정도.
이 중 10% 정도나 다음 해에 다시 볼까 말까 한 게 현재 음악방송 판이다.
그리고 이 80여 팀도 숱한 경쟁을 뚫고 음악방송 명단에 올린 팀인 것이다.
PD가 탈락시키는 팀까지 합하면 한 120~50팀은 되지 않을까 싶다.
대형기획사를 선호하는 이유도 이런 면에서 나타난다. 대형기획사 출신 그룹이 서류에서 탈락하지는 않으니까.
그래서 로열로드를 걷고 있는 스타즈는 시기와 부러움, 질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저 저희끼리 이야기 좀 하고 싶은데 자리 좀 비켜주실 수 있나요?”
“아, 그게….”
“스타즈 매니저님? 잠깐 같이 나가시죠. 애들도 편하게 이야기하게.”
틴트 그룹의 매니저가 조금 미묘한 표정으로 나를 끌고 나왔다.
“하하, 죄송하게 됐습니다.”
“무슨 이유로 저러는지 아세요?”
무슨 연유긴. 틴트는 텃세 부리는 거로 유명했다.
악질이야 얘네도.
자기들이 못 뜨는 게 왜 잘 뜨는 그룹 탓일까.
“뭐 그냥 이래저래 할 말이 있나 봐요.”
“애들한테 해코지는 안 하겠죠?”
“그러지는 않을 겁니다. 그냥 신인 그룹 신고식이라고 생각하세요.”
아이돌들이 빠르게 사라지다 보니 선후배 문화도 많이 줄어들기는 했으나 아직도 공고하긴 했다.
특히 연차가 오래된 그룹은 아직도 그 색깔이 묻어 있다.
틴트는 6년 차 그룹이다.
“저는 잠깐 다른 곳 좀 갔다 오겠습니다. 들어가지는 마시고 나오면 데려가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틴트 그룹 매니저가 사라졌다.
저 매니저도 왠지 자신의 그룹에 애착은 없어 보였다.
애착이 있었으면 자리를 비우는 게 아니라 같이 있었을 거다. 그룹과 매니저는 닮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럼 방해꾼도 알아서 사라졌으니 뭐라 하고 있는지 들어봐야겠다.
조심스럽게 문을 아주 살짝만 열었다. 끼익 소리가 조금 났지만, 눈치는 못 챌 듯싶었다.
예전에도 이와 비슷한 상황에서는 무서워서 몰래 들을 생각은 안 하고 멀뚱멀뚱 가만히 있었는데.
사람은 경험이 중요한 것 같다.
“…너네 1위 했다고 자만하지 말고. 인기 한순간이야. 우리 봐 이제 쭉 내리막길이잖아.”
“그리고 너네보다 먼저 프로그램으로 데뷔한 애들 다 갈라지고 지금 성적 어떻니? 완전체였을 때는 소위 말하는 1군이었지만 지금은 2군 아니 3군도 못하지. 갈라지고 음악방송 1위 한 그룹이 손에 꼽으니까.”
“네, 말씀 감사합니다. 선배님.”
틴트 그룹의 두 명이 계속 뭐라 이야기하는 것 같다.
대답은 나라가 혼자 대표로 대답하는 것 같았다.
“나머지는 입이 없니?”
“아니요!”
“말씀 감사합니다! 선배님!”
누가 보면 군대인 줄 알 것 같다.
이쪽 업계만큼 군대 문화가 뿌리 깊이 박혀 있는 곳도 드물다 생각한다.
위계질서가 필요 없다고는 생각하지는 않지만 바뀔 필요는 있다.
“그래, 가봐. 오래 보자.”
“네! 감사합니다!”
“둘, 셋.”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스타즈였습니다!”
“어~ 그래~ 잘 가~”
마지막 단체 인사는 처음 들어봤다.
영화계랑 방송계 등 각자 분위기가 다 다르긴 한데 아이돌도 저렇게 위계질서가 빡셌나 싶었다.
애들이 문으로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모른 척해야 하니 문에서 얼른 후다닥 떨어졌다.
문에서 나오는 애들 얼굴을 봤는데 전체적으로 표정이 밝았다.
표정 관리를 하는 듯했다.
그러나 미소 같은 경우에는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는지 표정 관리가 조금 부족했다.
뒤이어 나온 희진이의 표정도 썩 좋지만은 않았다.
예전이라면 나도 몰랐겠지만, 지금은 눈에 보였다.
“어. 나왔네. 뭐래?”
“그냥 덕담해 주시고 뭐 조심하라고 걱정해 주시던데요. 좋으신 분들 같아요.”
나라가 으쓱하며 이야기하는 걸 들으니 조금 오싹했다.
이렇게까지 숨겨가면서 말해야 하는 걸까.
“어, 그래? 더 인사할 그룹 없지?”
“네. 틴트 선배님들이 마지막이에요. 아까 자리에 없으셔서 마지막으로 온 게 여기였으니.”
“그럼 우리 대기실로 돌아가자.”
“네.”
아무런 일이 없다는 듯 평소의 스타즈로 돌아와 재잘거리면서 대기실로 돌아왔다.
확실히 예전과 다른 시야로 모든 게 보였다.
영화도 한 번 이상 보면 또 다른 게 보인다는데 이게 딱 그런 느낌이었다.
다시 대기실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길 몇 시간.
드라이 리허설을 하러 무대로 왔다. 드라이 리허설은 카메라 동선과 안무 동선 등을 점검 차 하는 리허설이다.
저번 주에 했던 것이 있어서 크게 바뀐 것은 없었다. 무난하게 끝내고 애들이 내려왔다.
“다시 또 대기 또 대기네.”
“뭐 할 거 없나?”
“핸드폰 보는 것도 이제 지겨운데.”
“그렇다면 포카에 사인 작업이지.”
할 거 없다고 하길래 일거리를 줬다.
왜 할 게 없어? 산더미처럼 많은데.
* * *
“오늘도~ 우리는~ 노동을 하지요~”
“오늘도~ 우리는~ 기계가 되지요~”
사인을 몇 백 장하더니 애들이 정신이 나간 것 같았다.
혜연이랑 지영이가 이상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아, 어디 내 사인 복사해서 슥삭슥삭 해주는 기계 팔 없나? 만능 로봇 가제트!”
나라가 그래도 나이가 있어서 올드한 만화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 거 있으면 나도 좀.”
“아이돌 필수템!”
애들이 말은 쉴 틈 없이 하는 도중에도 팔은 기계적으로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요령 피워봐야 나중에 어차피 해야 하니 이런 대기시간 자투리 시간에 하는 게 좋다.
“어? 또 희진 언니 포카에 이상한 거 써요!”
“이게 뭐. 뭐. 어때서?”
“누가 거기에 오늘 밥은 뭐가 나올까요? 라고 쓰고 다음 카드에 나는 고기가 먹고 싶어요. 라고 써요.”
“개성 있지 않아? 그냥 고마워요. 사랑해요. 감사해요. 이런 거보다는 낫잖아.”
“어? 그런가?”
“언니. 그거 아니야. 넘어가면. 안 돼.”
희진이 옆에 있던 지영이가 희진이가 쓰는 문구를 보고 난리를 치다 희진이의 언변에 넘어갈 뻔했는데 린이 막았다.
“밥 먹고 해라.”
“와! 밥이다!”
남진수가 문을 열고 밥을 들고 왔다.
웬일인지 나를 안 시키고 본인이 들고 온 걸 보니 신기했다.
모든 잡무는 다 내가 했었는데 남진수가 저렇게 먼저 잡무 해오는 날은 극히 드물었다.
오늘 운이 좋다.
남진수가 도시락을 놓자마자 희진이는 벌써 하나 챙기곤 젓가락을 뜯고 있었다.
먹을 거 앞에서는 진짜 최고인 것 같다.
“밥 먹고 우리 두 시쯤에 1위 후보 리허설 있으니까 알아둬.”
“와, 우리가 1위 후보래. 1위 할 수 있을까?”
“에이 설마 하겠어. 기대도 안 해~”
남진수가 1위 리허설 한다고 했지만, 애들은 기대를 안 하는 것 같았다. 물론 그럴 만도 했다.
계산에 밝은 애들이면 본인들이 받을 것이라 여길 텐데 아직 어려서 그런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아니면 기대를 안 해서 그런 걸지도.
점심시간이 눈 녹듯 빠르게 지나갔고 어느새 리허설 시간이 다가왔다.
“이제 움직이자. 리허설은 뭐 별거 없으니 금방 하고 올 거야.”
“네~”
그렇게 다 같이 움직여서 리허설 장소로 갔다.
리허설 장소에는 MC인 김민재와 배혜지 그리고 우리랑 같은 1위 후보인 저번 주 1위 맥스 그룹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
인사를 나눴는데 김민재는 능글맞게 스타즈 애들을 대했다.
인사를 하고 스타즈 애들 쪽으로 다가가서 오늘 헤어가 잘됐다느니 벌써 1위냐느니 하면서 슬쩍슬쩍 터치하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저건 버릇인 것 같다.
왜 아무도 제지를 안 하지.
“팀장님. 그… 김민재 씨 하는 행동이 좀 그런 거 같은데요. 뭐라 이야기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뭐라고 하겠냐. 괜히 우리가 저런 거 끼어들면 골치 아파. 애들도 불쾌하면 이야기하겠지.”
별일 아니라는 듯 이야기하는 남진수였다.
나는 이런 점이 예전에도 싫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어. 오히려 우리가 뭐라 하면 애들한테 피해 갈 수도 있으니까. 쟤네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우리는 모르니까.”
남진수와 이야기하는 사이에 1위 발표 리허설이 끝났다.
1위를 지금 알 수는 없고 그냥 리허설로 소감이라든가 진행 순서 등 이런 거만 간단하게 하는 순서다.
애들이 인사를 하고 우리 쪽으로 왔다.
“와, 1위 리허설이라니. 꿈이야? 생시야?”
“꿈 아니었으면 좋겠다.”
“1위 하면 더 좋고.”
“그러게.”
꿈이라고 생각하고 상상 속에 젖어 있는 애들이 보였다.
1위라는 그 타이틀이 이 아이들한테는 그렇게 큰 걸까.
대기실로 돌아와서 다시 아까와 같이 하염없이 기다렸다.
애들은 사인하면서 서로 장난치면서 사진 찍고 놀기도 했다. 그러고는 시간이 돼서 최종 리허설을 하러 갔다가 다시 또 대기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생방송이 시작되었다.
무대 순서는 1위 후보라 그런지 순서가 뒤 차례로 밀렸다.
보통 순서는 연차 순으로 끊거나 화제성 좋고 1위 후보들이 뒤로 밀린다.
그 외에는 연차별로 앞으로 가거나 화제성 혹은 기획사의 힘이 작은 곳이 앞으로 가게 되고.
무대가 슥슥 금방 지나갔고 벌써 1위 발표를 앞두고 있었다.
나는 확신할 수 있다.
이번 1위는 우리다.
“네~ 생방송 K.Music! 오늘 1위는 누구일까요? 다 함께 보시죠!”
MC 배혜지의 말에 차트가 뜨고 점수집계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내 점수집계가 합산되어 화면에 1위는 Stars – Lovely라고 떴다.
“이번 주 1위는 Stars의 Lovely입니다! 축하드려요!”
MC의 말과 함께 스타즈 애들이 어안이 벙벙한 모습이 보였다.
“소감 한마디 해주시죠!”
“네. 너무 뜻밖이라 얼떨떨하고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일단 우리 팬 여러분들 너무너무 고맙고 부모님 사랑해요.”
“감사합니다! 여러분 덕이에요!”
나라가 대표로 소감을 말했다.
그 옆으로 애들은 허탈해하면서도 감사 인사를 하며 동시에 또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왠지 코가 시큰거렸다.
근데도 내 눈에 거슬렸던 것은 카메라가 안 걸리는 위치에서 은근슬쩍 울고 있는 혜연이를 위로해주고 있는 김민재였다.
잠시 후 Lovely MR이 흘러나오고 출연진들 모두 무대에서 퇴장하러 이동했다.
그 와중에 나라는 아는 얼굴들이랑 인사를 나눴고 지영이는 잔망스럽게 무대를 휘젓고 다녔다. 나머지 멤버들도 손을 흔들면서 엔딩 무대를 즐겼다.
* * *
정신없이 음악 방송을 돌고 시간이 남을 때 화보 촬영하고, 음반 판매로 인한 팬사인회를 하다 보니 벌써 11월 말이 되었다.
중간에 팬사인회에서 팬 한 명이 난동을 부렸지만, 팬들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우리끼리 그러지 말자는 분위기에 내가 회사 차원에서 대응해야 한다고 적극적으로 건의해서 난동 부린 팬은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그 뒤로는 순탄하게 흘러갔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던 그 사건의 시발점인 피처링 제의가 김민재 회사 측에서 들어왔다.
올 것이 왔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