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화. 음악 방송에서 생긴 일 (2)
공개 방송의 무대는 항상 공기가 뜨겁다.
이렇게 느끼는 이유는 무대에서 열정이 가득한 가수들의 무대도 있지만 이를 바라봐주는 팬들의 마음이 전체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물론 안에 사람이 많아서 덥기도 하다.
콘서트도 가본 사람들은 말한다.
한번 가보면 절대 한 번으로 안 끝내고 또 간다고.
이처럼 무대가 주는 광기는 정말 매혹적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 진행되고 있는 무대들 또한 그러했다.
곧 우리 애들의 차례가 오고 있었다. 아직 세 차례 정도 앞의 팀이 남아 있긴 했다.
그렇지만 내가 굳이 무대를 계속 볼 필요는 없으니 이 시간 동안 커뮤니티 사이트의 반응을 확인하러 핸드폰을 켰다.
매니저는 아무래도 자신의 담당 평판을 신경 쓸 수밖에 없다.
오히려 자주 보는 게 더 좋다.
찌라시나 스캔들이 터지는 것도 대형 커뮤니티에서 시작돼 확산하는 때도 왕왕 있기 때문이다.
물론 대부분은 루머로 끝난다.
[곧 애들 나옵니다@@@]
[아 이 시커먼 놈들 언제 끝나누 얘네 보려고 킨 게 아닌데 ㅡㅡ]
역시 남자는 다 똑같다.
남자가 남자 아이돌 무대를 봐서 뭘 느끼겠나.
물론 멋진 무대를 보면 감탄을 하기는 하지만 감흥이 크게 오지는 않는다.
[늦은 어제 단관 후기~]
커뮤니티 사이트를 보다 보니 눈에 띄는 게 있어서 그 글로 들어가서 내용을 확인했다.
[어제 단관은 단연코 아이돌 덕질하면서 느낀 행사 중 가장 좋았습니다. 왜냐고요? 단관하면서 애들 실시간으로 반응 볼 수 있지 팬사인회 했지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거 폴라로이드 득템했지. 캬~ 느그덜은 업제? 아직도 애들 친필 폴라로이드 없는 흑우~~ 업제~~? 꺼-억]
└ 이 새끼 주소 삽니다. 010-1234-5678 10만 원 드림
└ 아 메모장 켰다 메모장에 1mb 썻다 할말하않
└ 뭐? 아직도 없는 흑우가 있다고? 폴라미소.jpg >>ㅓ억
└ 이 쉑들 여기 와서 기만질이네 ㅈ같다 싸그리 차단이다
└ 근데 이번엔 폴라 28장 뿌렸다면서? 와 개 많이 뿌렸네. 저번 사녹은 한 장씩이었는데.
반응이 매우 좋다.
아주 긍정적인 지표다. 이대로만 가면 팬들 분위기는 괜찮을 것 같다.
“스타즈 매니저님?”
무대를 보고 있는데 나를 부르던 목소리가 들려서 고개를 돌려 봤더니 아까 봤던 전성기 매니저였다.
그리고 옆에는 또 한 사람이 있었다.
“네. 무슨 일이시죠?”
“아뇨. 애들 무대 기다리고 있는데 심심해서 왔습니다. 그리고 제가 아는 다른 그룹 매니저분이랑 같이 왔는데요. 여기 이분은 와이드그룹 로드인 박형배 씨입니다.”
“안녕하세요. 와이드 매니저 박형배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스타즈 매니저 김현진입니다. 반갑습니다.”
음악 방송같이 친목하기 좋은 곳이 없다.
가수들도 친목을 하지만 매니저도 친목을 한다.
하염없이 기다리는데 동종업계 사람이랑 말 한마디 못 할까.
그리고 매니저끼리 이때 정보공유가 많이 이루어진다.
“처음부터 잘나가는 신인 그룹이라니. 힘드시겠어요.”
“이 바닥 힘든 건 누구나 다 힘들죠. 열심히 버텨야죠.”
“애들은 말 잘 듣나요? 아무래도 서바이벌 버티고 온 애들이라 말 안 들을 거 같은데.”
말하면서 매니저의 애환이 느껴졌다.
역시 다 공통 사항인가보다.
“왈가닥이긴 해도 애들 인성은 괜찮아요. 전 얘네가 처음이라 그런데 안 좋은 친구들도 있나요?”
“뭐…. 많죠. 이런 말 하기 그렇지만 제가 맡은 애들만 해도…. 애들이 괜찮긴 한데 싸가지가 너무 없어서요. 물어보니 케바케라고 하는데 가끔 제가 물건인가 싶기도 해요.”
“그거 팀장님한테 들었는데 2, 3년 차 병이래요. 딱 그 시기가 애들 절정기잖아요. 그러다 보니 눈에 뵈는 게 없어진다고 하던데요. 그때 정떨어져서 담당하던 스태프들 다 떨어져 나간다고.”
숨 가쁘게 이야기를 하던 박형배가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내뱉기 시작했다.
박형배의 말에 공감 가는 듯 전성기는 연신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있었다.
“그 왜 그 그룹 있잖아요. 2세대 인기 남돌 자이언트. 거기도 3~4년 차쯤에 거기 맡았던 스태프들 다 런 했다고 하던데요. 지금 와서는 스태프들한테 잘해준다고는 하는데 결국 다 떠나고 나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거죠.”
“왜 자기편이 될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지 모르겠어요. 안 그런 사람들도 많긴 하지만…. 그, 오늘 제일 짬밥 되는 가수가 민수 씨였죠? 민수 씨 매니저가 민수 씨랑 8년째 같이하고 있다던데.”
전성기도 박형배의 말을 묵묵히 듣다가 한숨을 쉬면서 자기 의견을 피력했다.
“아이돌들은 일찍부터 연습 생활해서 그래요. 사회생활 안 하고 안에서만 겪다 보니까…. 아니면 그룹이라서 그런 걸 수도 있겠네요. 그룹 매니저가 오래가는 경우는 못 봤거든요. 개인 매니저는 오래가도.”
나는 전성기와 박형배가 하는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 있었다.
“다행이네요. 저희 애들은 아직 그러지는 않아서…. 그리고 1년이면 흩어지잖아요.”
“그래서 더 부러워요. 근데 정들면 또 다르긴 하겠네요. 애들 괜찮다고 하시니까.”
“네. 뭐 그때 돼 봐야 알겠죠.”
매니저끼리 이런저런 이야기하다 보니 박형배가 담당하고 있는 와이드 애들이 무대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 저희 무대 시작하네요. 가보겠습니다.”
“네. 고생하세요.”
“아, 저도 너무 자리를 비운 거 같네요. 저도 돌아가 볼게요. 서로 파이팅해요. 고생들 하세요.”
“네. 들어가세요.”
그렇게 서로 각자의 위치로 돌아갔다.
와이드 애들이 끝나고 다음 무대 끝나면 MC들이랑 데뷔 인터뷰를 했던 거로 큐시트에서 본 것 같았다.
나도 애들을 픽업하러 대기실로 돌아갔다.
“어디 갔었어?”
“잠깐 무대 좀 보고 있었습니다.”
“애들 세팅하고 지금 인터뷰하러 가야 해.”
“알겠습니다.”
돌아오면서 대기실 앞에서 남진수와 만났다.
뒤에는 애들이 남진수를 따라오고 있었다.
재잘재잘하면서 따라오고 있던 거 보니 딱히 별일은 없었던 듯싶다.
그렇게 다 같이 MC들과 인터뷰하는 장소로 들어왔다.
와보니 멜론티는 벌써 와 있었다.
우리도 저렇게 빠릿빠릿 움직여야 하는데 역시 인지도와 빽이 깡패다. 조금 느긋해도 뭐라 안 한다.
이내 우리 애들도 바로 준비하기 시작했다.
준비가 다 되자 이내 조연출이 카운트를 새며 알려주었다.
“5초 뒤 들어갑니다.”
“…….”
조연출이 신호를 보내자 모두 조용히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내 큐 사인이 돌아서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혜지 씨, 오늘 왠지 무대가 더 사랑스럽고 향긋하지 않나요?”
“네! 민재 씨 오늘 너무 Lovely하고 별이 내려오는 거 같아요! 이 분위기에 우리 한번 조심스럽게 멜론티 한잔하실래요?”
“좋아요! 그런 의미로 오늘 데뷔하는 두 그룹! 스타즈와 멜론티 두 그룹을 모셨습니다!”
멘트 보면서 생각한 거지만, 하는 MC들도 대단하고 저걸 매주 짜는 작가도 대단하다.
어떻게 저렇게 짜나 싶다. 저렇게 짜는 것도 능력이다.
“둘, 셋.”
“안녕하세요! 반짝반짝 빛나는 무지갯빛 스타즈입니다!”
“둘, 셋.”
“안녕하세요! 당신의 피로를 날려 줄! 향긋한 멜론티입니다!”
“정말 깜찍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분들인데요! 어떤 곡으로 데뷔하게 됐는지 알 수 있을까요?”
배혜지가 스타즈 애들을 보면서 질문을 던졌다.
스타즈도 그렇고 멜론티도 그렇고 다채로운 표정을 보여주며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었다.
“네. 저희는 깜찍하게 여러분을 Bomb Bomb 터트리고”
“진솔하게 지큼, 이 순가늘!”
“상큼하면서도 Lovely하게!”
“여러분을 흠뻑 빠트리게 할 스타즈입니다!”
리허설에서 했던 대로 신희진, 유코, 유미소 순서대로 했고 마지막은 멘트는 멤버 전원이 마무리했다.
리허설과는 다르게 김민재는 화면에 나가는 걸 염두에 뒀는지 아까처럼 행동하지는 않았다.
정말 영악한 녀석이다.
이후로 멜론티 애들이 소개했고 그렇게 데뷔 인터뷰가 무사히 끝났다.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생방송인데 안 떨고 잘하네. 고생했어. 얘들아.”
김민재는 말을 하면서 격려하는 느낌으로 또 박혜연의 어깨를 툭툭 쳤다.
저 새끼가.
“감사합니다. 선배님!”
“선배님 말고 오빠.”
능글맞게 웃으면서 호칭을 수정하는 김민재였다.
“민재 오빠 감사합니다!”
“얘들아, 조심해. 이 오빠 바람둥이야.”
“혜지야. 계속 이상한 소리 할래?”
밖에서 관객들이 보이는 곳에서 인터뷰를 진행한 게 아니고 안에서 진행을 해서 그런지 상당히 편하게 애들을 대했다.
김민재는 카메라가 꺼지니 또 눈빛이 변했다.
확실하다.
이번에도 분명히 피처링 건으로 박혜연한테 연락 올 것 같았다.
“무대 열심히 하고.”
“무대 파이팅하세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배혜지와 김민재가 그렇게 말하고 MC석으로 이동했다.
멜론티와 우리만 뻘쭘하게 남았는데, 우리보다 무대가 먼저인 멜론티 친구들이 빠르게 이동했다.
앞으로 한 팀하고 멜론티 그리고 맨더스 그다음이 우리다.
우리도 대기실로 이동해 마지막으로 무대 의상과 헤어랑 메이크업을 손보고 무대로 이동했다.
무대로 이동하니 맨더스팀이 대기하고 있었다.
이내 맨더스팀이 곧 올라가고 우리도 스탠바이를 하게 되었다.
스타즈 애들은 대기하면서 팬들이랑 눈 마주치면서 대기하고 있었다.
딱히 긴장하고 있지는 않은 듯했다. 그러다가 맨더스팀의 킬링 파트가 나오면 킬링 파트 안무를 조금씩 따라했다.
팬들은 그런 애들을 보면서 즐거워했다. 저런 행동 하나하나가 팬들한테는 아이돌한테 흠뻑 빠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내 맨더스팀이 끝나고 우리 애들 무대 차례가 되었다.
무대가 시작되고 상큼하게 Bomb Bomb 무대를 끝내고 애들이 내려왔다.
이제 다시 엔딩 무대까지 대기실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일뿐이다.
* * *
대기실에서 기다리다가 무대가 다 끝나고 1위 발표 순서가 됐다.
무대에는 모든 가수 팀들이 올라갔다. 그리고 바로 1위 발표를 했다.
우리 애들은 예전에 같이 연습했던 친구들이 있는지, 1위 발표 후 무대에서 내려오면서 다른 가수 팀들과 수다 떨며 친목을 도모하는 게 보였다.
1위 발표를 보니 시간이 돌려지기 전처럼 똑같이 맥스그룹이 받았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우리가 다음 주에 1위를 받게 될지 궁금했다.
어느새 우리 쪽으로 다가온 스타즈 애들이 종알종알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 우리도 1위 상 받고 싶다.”
“될까? 데뷔하고 바로 1위 받은 걸그룹이 몇 없잖아.”
“우리도 거기에 추가되겠지!”
지표상으로는 무조건 받을 것 같기는 했다. 지상파는 힘들 것 같긴 하지만.
이유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올해 성장이 꽤 가파르게 올라 어느 정도 큰 팬덤을 구축한 하늘기획사의 클린힛 그룹이 이번 주에 컴백한다.
클린힛은 우리보다 하루 늦게 컴백했다.
이렇게 하루 밀려서 컴백하게 되면 집계가 오늘 있던 음악방송에서 음원 집계가 1주 늦어지게 된다.
오늘 우리는 데뷔 무대를 했으니 다음 주에 집계되지만 클린힛 그룹은 다음 주 집계에서 빠진다.
신인 데뷔그룹치고는 앨범 판매량 초동이 웬만한 걸그룹들보다 상당히 높으므로 화력이 강한 남자 아이돌 그룹이랑만 안 마주치면 지상파 1위도 했을 텐데.
이렇게 순서를 조정한 것은 회사 간의 이야기가 된 것 같았다.
그게 아니었다면 다음 주에 우리가 K.NET에서 1위를 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지표도 예전보다 더 괜찮아 보이는 것 같던데 지상파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어떻게 무사히 첫 음악방송이 끝났다. 앞으로 한 달 내지는 두 달 정도는 음악방송 스케줄만 쭉 있다.
한 주에서 목, 금, 토, 일. 총 4일을 음악방송에 투자하고 나머지 월, 화, 수는 화보 촬영이나 기업 CF 촬영이 우후죽순 잡혀 있다.
한동안 정말 바쁘고 빡빡한 일정만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정신없이 일주일을 보내고 예전에 딱 이 날짜에 1위를 했던 K.NET 음악방송 날.
그날이 왔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