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화. 첫 공식 일정 (3)
“나는 헛수고라고 생각했는데 일이 잘 풀렸네. 잘했어.”
“감사합니다. 근데 팀장님. PD님에겐 어떻게 말 하셨어요?”
“내가 말 안 했어. 내가 어떻게 PD랑 맞먹냐? 나도 갈팡질팡하다가 실장님에게 보고했는데 실장님이 본부장님에게 이야기하고 대표님 귀에까지 올라갔다더라.”
남진수는 머쓱해하며 말했다.
이게 대표님까지 올라갈 일은 아니었던 거 같은데 어쩌다 대표님까지 올라간 거지?
다시 찍는 거 가지고 대표님까지 올라가다니 스케일이 너무 커졌다.
“나도 그냥 다시 찍으면 될 일 같은데 데뷔 초반 이미지도 있고 또 대표님이 CP랑 안면도 있으시니, CP 쪽에 연락해서 그냥 넘어가자고 말했다더라. 어차피 영상은 지웠고 우리 측이 확인했다고 하니까.”
와우.
나는 회사에 들어와서 정 대표 얼굴을 직접 본 적이 없었다.
“네가 나서서 막았다니까 대표님이 당돌한 친구라고 칭찬했다던데.”
“혹시 피해가 갔을까요?”
“아닐걸. 그리고 너무 나섰다면 칭찬도 안 했겠지. 그리고 대표님이 그렇게 빡빡하신 분은 아니야.”
다행이다. 이번에는 갑자기 대표와 접점이 생겼다.
좋은 징조인가?
“자, 여기서 원래 네 시까지 촬영한다고 생각했는데 한 시간 만에 칼 같이 끝나버렸네. 회사에서 좀 쉬다가 단관 장소로 넘어가자.”
“네. 알겠습니다.”
다행히 일찍 끝나서 회사에서 조금 쉴 시간이 있을 것 같다.
“애들한테 이번 기회에 회사에 있는 앨범 CD에 사인 좀 하라고 해라. 미리미리 만들어 놔야지.”
“알겠습니다.”
쉬러 회사 가는 게 아니었어?
* * *
“아!! 못 해! 아니 안 해!”
유미소가 팔이 아픈지 하던 사인을 멈추고 소리를 질렀다.
벌써 사인 CD가 600장이 넘어갔다.
음악방송에서 만나는 가수 팀들에게 줘야 할 CD들과 이벤트성으로 팬들에게 뿌리는 CD.
게다가 포토 카드에도 사인해야 하므로 남는 시간에는 쉬거나 항상 사인하고 있었다.
“이건 노동법에 접촉 안 돼요?”
“아이돌한테 노동법이 어딨어. 언니.”
신희진도 질렸는지 나한테 물어왔다.
박혜연은 마치 부처님이 오신 듯 달관한 표정으로 신희진한테 이야기했다.
그렇게 이야기해도 둘 다 계속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안 해. 못 해. 배 째.”
서지영도 파업을 선언했다.
손을 놓고 그냥 방전된 상태로 배를 내놓고 있었다.
어차피 이제 시간이 다 돼서 가봐야 했다.
“고생했어. 이제 단관 하러 가면 될 것 같다.”
“와! 이제 우리 리얼리티 보러 가요?”
“어떻게 나올까? 너무 궁금해.”
“근데 우리 숙소 너무 개판으로 쓰지 않았나?”
늘어져 있던 서지영이 반동을 주며 앞으로 올라왔다.
옆에 있던 박혜연은 방송 내용을 궁금해하고 있었고 이나라는 방송에 찍힌 숙소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 정도면 양호했지, 뭘. 지금 숙소 봐.”
“언니, 쉿.”
오호. 카메라가 빠지자마자 숙소가 개판이 됐구만.
이미 짐작하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그래도 헥사곤은 주기적으로 청소업체를 불러서 숙소 청소는 꾸준히 해준다.
그걸 믿고 정리를 안 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만 떠들고 가자.”
남진수가 나서서 교통정리를 했다.
“네!”
항상 이런 대답은 잘하는 것 같다. 이렇게 대답할 때가 가장 흐뭇했다.
애들도 사인하던 것만 마저 하고 일어났다.
과연 예능은 어떻게 나왔을까?
* * *
단관 장소는 작은 홀을 빌려서 개최했다.
안에는 벌써 팬들이 도착해 있었다. 정원은 150명 정도.
원래는 이렇게 할 생각은 없었는데 마케팅팀에서 좋은 기회라고 살려보자고 해서 추진하게 되었다.
팬들은 정확하게는 우리가 오는지 모르지만, 분위기상 온다는 걸 알고 있는 듯했다.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도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Re: 방송시작 30분 전인데 은제하냐 기다리다가 죽겠다]
[Re: 애들 빨리 보고 싶음 ㅡㅡ 아;;]
[Re: 오늘 사녹 갔다 왔는데 다행히 원큐에 끝났어요. 사녹 프리뷰.jpg]
오늘 사전 녹화에 왔었던 팬의 글이었다.
└ 와 녹화 다시 안 했음? 팬 중에 촬영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어떻게 다시 안 했지? 무조건 다시 하는데
└ 촬영한 사람 있었는데 그 쇼케 엔딩 마지막에 올라왔던 곰매니저가 그 사람 처리함
곰 아니다. 사람이다.
엔딩무대 때 애들이 나를 그렇게 부른 이후로 다 이렇게 부르기 시작했다.
└ 애들은 푸우? 라고 부르던데
└ 오늘 사녹에서 누가 큰 소리로 푸우다! 라고 했었음 ㅋㅋ 근데 갑자기 매니저가 인상 팍 쓰면서 그 사람 노려보더니 쫄아서 사과하더라 ㅋㅋㅋㅋ 개쪼갰음 ㅋㅋㅋ
└ 그래도 매니저 괜찮더라. 애들 챙기는 게 확실히 보였음 팬들도 챙겨주려고 하고 이번에 애들 매니저 잘 만난 듯
└ 아니 내가 최애돌 매니저도 저거 반만 닮았으면 소원이 없겠네 캬악 퉤
└ ? 본진이 여기가 아님? 첩자네
└ 아님;; 저 잡덕이라 아이돌 다 좋아함 ㅎㅎ;;;;
그 밑에 주르륵 댓글이 달려 있었다.
나에 관한 내용도 있었는데 대체로 호의적이었다.
[Re: ★현장 가는 사람들한테 중요한 팁★]
[Re: 무조건 매니저 하는 말 지키면 애들 폴라로이드 사진 얻습니다. 부럽냐? 느그들은 없지?.jpg]
└ 와;; 개레어템이네 산다
└ 위에보다 비싸게 삼
└ 안 팔아요 꺼지세요ㅗ ^^ 그리고 공방 따라다니는 사람들은 무조건 스타즈 측 말 들으세요. 갑질하는 게 아니라 우리 애들 안전이나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 우리보고 딴짓하지 말라고 잘 따르면 준다고 합니다.
내 의도가 먹힌 것 같다.
이렇게 팬들끼리 자정작용이 되면 관리도 수월해지고 애들도 훨씬 안전해진다.
이게 맞는 건데 어쩌다가 한 번씩 나오는 과격한 팬들은 어쩔 수가 없다.
그래도 사람인 이상 분위기를 봐가면서 행동하기 때문에 전체적인 분위기가 따르는 분위기면 통제하기도 훨씬 수월할 거다.
커뮤니티 사이트 반응을 보고 있으니까 시간이 금방 갔다.
애들이 입장할 시간이 다가왔다.
천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입장하면서 애들은 천방지축 장난꾸러기에서 화려한 연예인으로 변했다.
팬들을 보면서 웃어주면서 팬 서비스를 했다.
그리고 애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가 대망의 애들의 첫 리얼리티 예능이 시작되었다.
- 리얼리티요? 이미 데뷔 전부터 리얼이었죠.
화면에서 유미소가 보이면서 유미소의 말로 영상이 나오기 시작했다.
나도 자리를 잡아 앉아서 구경했다.
[☆★들이 내려온 날]
화면에서 특수효과로 별들이 화면에 내려오면서 시작은 다른 아이돌 리얼리티 프로그램과 같이 비슷하게 시작했다.
- 4위는… 바로! 박혜연 양이었습니다! 축하합니다!
다시 화면이 넘어갔고
- 포기하기 싫었어요.
- 이게 마지막이라 생각했거든요.
- 가수가 우습지? 너희 이런 식으로는 데뷔 못 해.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나왔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화면으로만 봐도 얼마나 치열하고 독하게 했는지 알 수 있는 장면들이었다.
이내 화면은 넘어가 스타즈 숙소를 비춰줬다.
아주 개판인 숙소를.
와….
팬석에서 짧은 감탄사가 나왔다. 그리고 그 감탄사에는 나도 있었다.
와.
리얼리티 한다고 회사에서 청소업체를 안 넣어준 게 분명했다.
그래도 좀 정리하고 청소도 좀 했으면 좋았을 텐데 애들은 귀찮다고 내버려 뒀던 것 같았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가장 더러울 때 리얼리티팀이 들이닥쳤다.
리얼리티팀이 들어온 날이 뮤직비디오 촬영부터였으니까.
아마 이른 아침부터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정리를 못 했던 날이었던 듯싶다.
“아앗, 내가 정리 좀 하고 살자고 그렇게 말했는데.”
앞에서 부들부들 떠는 이나라가 보였다.
“언니 포기해. 우리 이제 끝났어.”
“와, 이렇게 보니 진짜 더럽다.”
“스고이.”
서지영은 이미 달관했고.
신희진은 옆에서 감탄사를 내놨다. 유코도 일본어로 혼잣말로 이야기했다.
저 말이 대단하다는 뜻이었나.
왜 이리 놀라. 너희 숙소야. 다른 곳이 아니라고.
이제 화면은 다른 화면으로 넘어갔다.
뮤직비디오 촬영 끝나고 들어오는 애들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 와. 우리도 이제 숙소에 카메라 달고 리얼리티 하는 거야?
- 나 이거 진짜 해보고 싶었어! 내 버킷리스트!
방방 뛰어다니는 동갑내기 둘이었다.
- 이제 제발 숙소 정리 좀 하자. 응? 서지영. 박혜연. 특히 너희 둘.
- 아~ 나라 언니 또 잔소리 시작한다. 팬들은 우리의 리얼을 보고 싶어 한다고!
- 뒤지기 싫으면 정리해. 응?
이나라가 서지영과 박혜연을 혼내는 장면이었다.
성격 나오는걸.
- 언니. 언니. 카메라.
- 앗, PD님 이건 편집해 주세요. 싹둑싹둑.
린이 카메라를 언급했고 이나라는 카메라에 대고 가위 표시를 하면서 다시 비즈니스로 돌아왔다.
하하하.
팬들은 이런 이나라의 모습에 빵 터졌다.
이내 이나라는 정리를 하기 시작했고 다른 멤버들도 조금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다시 화면이 바뀌어서 편한 복장의 멤버들이 비쳐졌다.
- 띵동. 띵동.
- 왔다. 왔어. 왔다구!
갑자기 스타즈 전원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 감사합니다. 고생하세요!
- 앗싸. 포식이다. 포식.
이날은 다이어트하고 있는 멤버들한테 치킨을 사준 날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남진수는 리얼리티로 인해 카메라가 숙소에 있으니까 허락해 준 게 아닐까 싶었다.
- 흐엉, 그리웠어. 치킨아….
신희진은 다시 돌아온 애인을 바라보듯 표정이 일품이었다.
다시 화면이 바뀌어서 거실에서 치킨을 먹고 있는 애들이 나왔다.
- 우리 근데 이제 그냥 먹어도 되지 않을까? 굳이 다이어트 하는 모습 보여줄 필요 없잖아.
- 먹자. 먹고 살아야지. 사람은 먹고살자고 사는 거야. 먹어야 해.
박혜연이 의문을 던졌고 거기에 치킨을 먹고 있는 신희진이 손에 있는 치킨 다리를 번쩍 들면서 말을 했다.
- 다음 날 인바디 체크 통과할 자신 있는 사람만 먹으라고 난 말했어. 난 안 말린다.
- 포기.
- 나도.
- 나두.
이나라의 말에 포기자가 우후죽순으로 다수 나왔다.
- 이러면 똑같잖아!
- 언니는 먹어. 우린 안 될 거야.
- 내가 어떻게 혼자 먹겠어.
- 언니.
- 미소야.
유미소와 신희진이 서로 산파극을 찍고 있었다.
서로 껴안으면서 뭐가 좋은지 서로 들고 있던 치킨을 먹여주고 있었다.
먹고 있던 거 아니었나? 안 먹고 있었던 건가.
그렇게 숙소 생활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조금 더 나왔다.
그리고 이어지는 암전 후 애들의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이 나왔다.
촬영 시기로는 뮤직비디오 촬영이 먼저고 숙소가 나중이지만 역시 편집의 힘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뮤직비디오 촬영장에서는 이와 상반되는 모습인 프로답게 촬영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 컷!
- 표정 좋았어요. 이번에는 다른 표정으로 해볼까요?
개인 촬영을 하는 유미소의 모습.
- 컷! 소품팀! 저거 좀 봐줘.
- 갑자기. 위에서 떨어졌어요.
촬영하다가 무대에서 소품이 떨어지는 일이 발생해 촬영을 멈춘 에피소드.
전반적으로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게 리얼리티는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홀 자체가 영화관처럼 어두웠고 앉아 있다 보니 나는 급격하게 피로감이 몰려왔다.
자면 안 된다는 생각에 눈을 계속 감았다 떴다 했지만, 너무 졸렸다.
모니터링 해야 하는데.
다 봐야 하는데.
잠깐만 눈 감아볼까?
정말 잠깐만….
* * *
의식을 잃었다가 갑자기 눈이 번쩍 떠졌다.
아무래도 분위기도 분위기지만 몸이 너무 피곤한 듯싶었다.
- …….
- 장난해? 맞잖아. 빨리 나와. 나 진짜 미치기 일보 직전이야.
정신을 차리고 화면을 보니 이나라가 얼굴을 굳힌 채 이야기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자다 깨서 나도 정신이 없었다.
- 좋아. 해보자는 거지? 후회 없지?
애들이 싸웠나? 이걸 방송에 내보낸다고?
- 언니. 언니잖아.
린 또한 얼굴을 굳히며 정색하고 말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