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도 다시 매니저!-21화 (21/200)

제21화. 첫 공식 일정 (2)

“죄송합니다. 목소리가 너무 컸네요.”

내가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눈을 부라리자 나를 푸우라고 부른 목소리의 주인이 사과를 했다.

“큼큼, 안녕하세요? 저는 스타즈의 매니저 김.현.진입니다. 먼저 오늘 사전 녹화에 참석해 우리 스타즈 애들을 응원하러 와주신 점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오오

왜인지 모르게 팬들에게서 짧은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일단 입장 전에 당부 말씀드리겠습니다. 팬클럽에서 정한 공식멘트 외에 개인멘트 일절 금지. 안에 들어가면 핸드폰 촬영 절대 불가. 타인에게 불편함을 주지 말 것. 이 세 가지입니다.”

“애들이랑 만날 수는 있나요?”

“제 권한 밖이긴 합니다만, 녹화가 빠르게 종료될 시 건의는 해보겠습니다. 그리고 회사 차원에서 참석자분들에게 종종 드리는 포토 카드 외에 폴라로이드 사진이 있습니다. 이 사진의 경우 무사히 녹화가 종료될 시에 이벤트성으로 드리려고 합니다. 그러니 많은 협조 부탁드리겠습니다.”

무사 종료만 되면 성사시켜 줄 자신은 있었다.

그렇지만 시간 관계상 만날 수는 없을 거다. 그냥 립서비스일 뿐이다.

내가 폴라로이드 사진을 언급하자 움찔거리는 팬들이 꽤 있었다.

의외로 효과가 좋을지 모르겠다.

움찔거리는 팬 중에서 손을 들고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폴라로이드 사진은 어떻게 추첨하시나요? 사인은 들어가 있나요?”

“사인은 있고 추첨은 무사히 녹화 종료 후 랜덤으로 돌리겠습니다. 추첨 번호는 명단제 번호로 가면 될 듯싶고요. 전달할 사항은 다 전달했으니 저는 일단 올라가 보겠습니다.”

전달 사항은 다 전달했으니 남은 건 팬끼리의 자정작용을 기대해 봐야겠다.

잘돼야 할 텐데.

* * *

대기실에 들어가자마자 보인 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스타일리스트들이었다.

우리는 차 한 대로 스타즈 인원이 움직이기 때문에 의상과 필요 소품들은 스타일리스트 차량에서 다 가져온다.

곧 이어서 K.NET 음악방송 스태프가 마이크 사용 여부와 Live MR인지 AR인지, 여부를 물어왔다.

“마이크는 박혜연 씨 말고는 더 안 쓰세요?”

“네. 나머지는 립싱크로 갑니다.”

“알겠습니다.”

남진수가 사용 여부를 알려줬다.

음악방송에서는 Live MR을 많이 쓴다.

Live MR은 녹음된 목소리에서 가수가 불러야 하는 파트만 비워두는 음원을 말한다.

그리고 이 Live MR은 음악방송 PD들이 선호하는 방식이기도 했다.

괜히 가수가 노래 부르다가 음 이탈이 나거나 방송사고가 날 수도 있기 때문에 PD들도 보통 Live MR 요구를 많이 한다.

“오올, 박혜연~”

“가수라면 라이브죠.”

으쓱해져서 어깨가 에베레스트 정상까지 올라간 박혜연이 한마디 했다.

“우린 가수가 아니라는 거네?”

“우리 혜연이가 그런 앙큼한 생각을 하는 줄 몰랐는걸?”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요….”

서지영이 무대준비가 끝났는지 박혜연을 물어뜯었다.

그리고 준비가 끝난 멤버들이 하이에나처럼 박혜연을 물어뜯으며 놀리고 있었다.

“무대준비 해주세요. 곧 들어갑니다.”

웃고 떠드는 사이 스태프가 준비를 알려 왔다.

“팀장님. 저는 무대석 쪽에서 보겠습니다.”

“왜?”

“혹시 핸드폰 촬영 같은 거 미연에 방지할 수 있으면 하려고요.”

“스탠딩석이라 의미가 없을 텐데?”

“그래도 해볼 수 있는 건 해봐야죠. 녹화 엎어지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닌데요.”

“헛수고 같은데. 그래, 알았다.”

남진수는 내가 뭐라도 해보려 하자 신입이라 열정이 넘치나 보다. 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사실 내가 생각해도 헛수고일 거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촬영자가 맨 앞에서 찍고 있으면 거기까지 내가 진입할 수가 없다.

그렇게 남진수에게 이야기하고 무대석 쪽으로 나왔다.

분명 메인 카메라에 걸렸다고 했으니 정중앙에서 보이는 위치일 거다.

무대석 뒤에서 무대에 있는 팬 모습을 보니 장관이었다.

그래도 생각보다 여자 팬이 많은 건 긍정적으로 보였다.

와아!

데뷔 축하해!

팬들의 함성과 목소리에서 스타즈가 무대 위로 올라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애들은 올라오면서 무대 앞에 있는 팬들에게 자기 나름의 제스처를 취하면서 팬 서비스를 하고 있었다.

누가 보면 신인이 아니라 중견 아이돌인 줄 알겠네.

자, 나도 이제 두더지 게임을 할 차례다.

어디에 있을까?

명단이 바뀌었을 수도 있다. 그때 무대를 촬영했던 사람이 없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라도 이렇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실패는 돌아오기 전 1년으로 족하다.

이번에는 내 마음대로 할 거다.

노래가 나오기 시작했다.

“Lovely Lovely”

러블리!

“Lovely Lovely”

스타즈!

팬들의 함성. 아이들의 무대. 전형적인 아이돌 무대였지만 그리웠다.

감성에 젖어 있다가 내가 해야 할 일을 생각했다.

아직까진 튀는 사람은 안 보였다.

노래는 중반을 치닫고 있었다.

이번에는 사고 없이 녹화되는 걸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노래가 끝날 때까지 개인적으로 촬영하는 사람은 발견할 수 없었다.

사랑해!

“저희도요!”

“다시 녹화 시작할게요.”

노래를 끝내고 무대 위에서 스타즈 애들이 눈웃음을 지으며 팬 서비스를 하고 있었다.

한두 명쯤 촬영할 법한데도 불구하고 음악방송 PD가 다음 녹화하는 사인을 줄 때까지 촬영하는 사람 또한 없었다.

폴라로이드 사진의 힘이 그렇게 큰가 생각하게 되었다.

이번 촬영은 지미집 녹화였다.

애들 무대를 정면이나 측면에서 찍고, 이번에는 지미집을 이용해 공중에서 애들을 더 화려하게 찍는 녹화였다.

안도하고 긴장이 풀렸을 때쯤 안 보였던 두더지가 나타났다.

바로 무대석 뒤쪽에서 핸드폰이 올라온 게 내 눈에 보였다.

그럼 그렇지.

생각보다 상황이 급박해졌다.

지금 저 촬영으로 인해 다시 찍는다면 지미집부터 다시 찍는 게 아니라 무대의상을 바꾸든 무대를 바꾸든 아예 바꾸고 녹화를 해야 했다.

나는 누가 찍고 있는지 제대로 파악했다.

흰 모자. 흰색의 긴 티. 청바지. 그리고 뿔테 안경.

무대가 끝나가는데 딱 그 사람 한 명만 찍고 있었다.

주위에서 눈치를 주는 것 같았는데도 꿋꿋하게 찍고 있는 게 느껴졌다.

무대가 종료되었고 애들은 인사를 하며 다음 무대를 위해 대기실로 돌아갔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다음 무대는 지금, 이 순간입니다!”

아직 PD는 누가 촬영을 했는지 모르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분명 무대의상을 바꿔서 오기 전에 모니터링을 할 게 분명했다.

대기시간을 이용해 나는 얼른 내려가 촬영을 한 팬에게 다가갔다.

“저기요. 방금 무대 촬영하셨죠?”

“저요? 아닌데요.”

팬이 발뺌했다. 그러나 떨리는 동공을 보니 분명 찍은 사람이 맞았다.

“이봐요. 당신 찍었잖아요. 왜 안 찍은 척해요?”

“애들 피해가잖아요. 이렇게 매니저님도 찾아서 왔는데.”

“아, 안 찍었다고요.”

주위에 있던 팬들도 나를 도와줬다.

“그럼 잠시 핸드폰 좀 보여주실 수 있으세요?”

“안 들고 왔는데요.”

“그럼 잠시 몸수색 좀 해도 되겠습니까?”

“당신이 뭔데 몸수색을 해? 헥사곤은 팬을 이따위로 대접해요?”

생각보다 거칠게 나왔다.

어떻게 해야 하지? 강행해야 하나?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지면 된다.

강하게 나가자.

“협조를 안 해주시면 저희도 블랙리스트에 올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스타즈 첫 블랙리스트가 되시겠네요.”

강경히 나오던 팬에게서 움찔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아이돌에게도 블랙리스트가 있다.

악질적인 팬이 아이돌에게 피해를 준다고 판단되면 팬클럽에서도 영구 제명하며 각종 팬으로서의 혜택을 받을 수 없다.

그리고 음악방송 사전녹화는 팬클럽에서 선착순으로 명단을 만들어 명단에 든 사람만 올 수 있었다.

“아, 지우면 되잖아요.”

팬이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그래도 다행히 악질적으로 버티는 사람은 아니었다.

요즘 시대는 지운 파일도 복구가 된다지만, 내일 방송 전까지만 유출되지 않으면 그 후에는 방송국도 크게 문제 삼지 않을 거다.

여기는 처리했고 이제 PD랑 담판을 지으러 가야 한다.

어떻게 입을 털어야 하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내가 처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남진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팀장님. 그 문제가 생겼습니다.”

- 뭔데?

- 옷 다 입었어요!

전화를 받은 남진수의 목소리 너머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소리가 들렸다.

“팬 중에 무대 촬영을 했나 봐요. 제가 뒤에서 보면서 촬영한 팬한테서 무대 촬영한 영상은 삭제했습니다. 근데 촬영한 모습이 카메라에 찍혔을 것 같은데 PD가 다시 찍자고 할 것 같습니다. 그전에 미리 선수 치면 다시 안 찍고 정상 촬영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전화 드렸습니다.”

- 뭐? 알았어. 일단 끊어봐.

남진수와의 통화를 끊고 초조하게 무대를 바라보며 기다렸다.

아무 생각 없이 무대를 보고 있었는데 손톱을 물어뜯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예전부터 초조하거나 긴장하면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이 있었다.

고쳤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발병한 것 같다.

뭐가 그렇게 불안했던 걸까.

대처를 할 수 없는 나의 나약함? 상황을 알아도 대처를 못 하는 나의 어리석음?

얼마 후 스타즈 애들이 지금, 이 순간의 무대의상을 하고 나왔다.

그냥 넘어가는 걸까?

무대 위에서 스타즈 애들이 팬들과 꽁냥꽁냥거리며 놀고 있을 때 녹화 큐 사인이 떨어졌다.

이번 무대는 발라드여서 그런지 팬들도 가만히 눈으로 보면서 감상했다.

다행히도 이번엔 무대를 촬영하는 사람은 볼 수 없었다.

그리고 노래가 끝나자 열화와 같은 함성과 박수 소리를 끝으로 무대가 끝났다.

아무 이야기가 없는 걸 보면 그대로 속행인 것 같았다.

남진수에게 어떻게 PD를 구워삶았는지 궁금함에 물어보고 싶었으나 아직 내가 할 일이 남아 있었다.

* * *

홀에서 팬들과 다시 만났다.

“먼저 무사히 끝나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무대 촬영하신 분이 계셨습니다. 먼저 들어가기 전에 저와 약속하신 게 있으셨죠? 제가 제지하지 않았다면 무사히 끝나기는 힘들었을 겁니다. 그래서 이번에 저희가 준비한 포토 카드 외에는 공방 참여 굿즈가 없습니다.”

이게 맞다.

무사히 끝났다고 주면 안 된다.

하면 안 될 일을 하면 보상이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려줘야 자정작용이 될 거다.

그렇지만 팬들의 얼굴에는 실망과 분노와 안타까움이 공존해 있었다.

수긍은 해도 아쉬운 건 아쉬운 거였다.

팬들을 보니 마음이 약해졌다.

“그래도 무사히 끝났으니 멤버별로 사진 딱 한 장씩 총 일곱 장만 풀겠습니다.”

우오오!!!!!

와.

아까 무대에서 애들한테 질렀던 소리보다 더 컸다.

주위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서 다 쳐다봤다.

나는 검지를 들어 입술에 대며 쉿! 제스처를 취했다.

그러더니 팬들도 다 같이 쉿! 제스처를 취했다.

다 큰 성인들이 하는 행동이 귀엽게 느껴졌다.

“오늘 저희 스타즈를 보러 와주신 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드리며 준비한 첫 공식 포토 카드입니다. 공평성을 위해 카드는 개봉 전에는 알 수 없습니다.”

팬들에게 하나하나 포토 카드를 나눠줬다.

자신이 원했던 멤버가 아닌지 받고 오픈하자마자 실망하는 팬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좋아했다.

그리고 대망의 폴라로이드 사진 추첨이 있었다.

“추첨 번호는…. 6, 32, 52, 11, 68, 98, 102입니다. 앞부터 멤버 나이순으로 드리겠습니다.”

추첨에 당첨된 사람들과 당첨되지 않은 사람들의 희비가 교차됐다.

폴라로이드까지 추첨이 끝나고 난 뒤 나는 대기실로 향했다.

가면서 너무 궁금했다.

과연 콧대 높은 PD가 어떻게 이걸 넘어가 준 걸까?

너무 궁금한 나머지 마음이 급해서 그런지 걸음이 빨라졌다.

대기실에 도착하니 무대의상을 다 갈아입고 놀고 있는 애들밖에 없었다.

“팀장님은?”

“팀장님은 백 스테이지에 가셔서 PD님이랑 이야기 중이세요.”

“아, 그래? 따로 말은 없으셨어?”

“네. 그냥 일단 갈아입고 기다리라고 하시던데요.”

애들은 이 해프닝을 모르는 눈치였다.

애들을 대기실에 두고 나도 백 스테이지로 넘어갔다.

백 스테이지에서 PD랑 이야기하고 있는 남진수를 발견했다.

“…아이고. 그럼요. 잘 부탁드립니다.”

“알겠어요. 내일 봅시다.”

“네, 들어가십쇼. 감사합니다. 고생하십쇼!”

이야기가 다 끝났는지 둘이 대화를 마무리 짓고 PD는 무대 쪽으로 사라졌다.

남진수가 나를 발견했는지 오라고 손짓했다.

“임마.”

“네?”

“잘했어.”

어리둥절했다.

저보다 PD를 구워삶은 팀장님이 대단하신 게 아닐까요?

(다음 편에서 계속)

0